소설리스트

환관무제-283화 (283/648)

283장. 친모의 후회

막추가 매서운 눈초리로 천기도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강 노귀, 당신 같은 사람이 감히 나를 탐내? 거울 가지고 자기 얼굴 좀 비쳐 봐. 나는 당신처럼 못생긴 사람이 범접할 수 있는 여인이 아니라고. 나는 천상에서 내려온 선자와도 같은 사람이야.”

막추가 콧방귀를 뀌고는 이어서 말했다.

“강 노귀, 남들이 아무리 당신을 무서워해도, 난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아. 지금 내가 천기도로 간다고 한들 당신이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막추가 발끝만 가볍게 톡 치면, 눈 깜빡할 사이에 바다를 가로질러서 천기도에 도착할 것이다.

막추는 천기도에 가서 이도진과 희민지, 그리고 강 노귀를 다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원래는 강사에게 이도진과 희민지의 목숨을 맡기려고 했지만, 강사가 도망쳤으니 막추가 직접 죽일 수밖에.

두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끈질긴 거야? 이대로 천기도까지 오겠다고?’

막추의 무공을 생각하면, 두변이 천기도 위에 서 있어도 죽고, 지하 석실에 있어도 죽는다. 반쯤 미친 막추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을 것이다.

이때, 두변은 석실 안에 세워진 거대한 흔들 기둥 하나를 발견했다. 어디에다 쓰는 건지는 잘 몰랐지만, 재빨리 흔들 기둥을 세게 돌렸다.

쿠구구구궁.

그러자 천기도 전체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사방에서 거센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막추는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그제야 이곳이 꺼림칙하고 불길한 곳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하지만 흡성대법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이도진을 확실히 죽여야만 했다.

두변이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막추, 난 당신이 이도진을 죽이려는 이유를 알고 있지. 두 사람이 동시에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게 되어서 그런 거 아닌가? 아, 당신이 흡성대법을 얻게 된다면, 10년 후에는 영종오 종주가 당신의 유일한 적수가 되겠지.”

막추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그게 다가 아니지. 흡성대법은 전설급 무공이야. 북명검파의 선조께서 천하무적이 되고, 북명검파를 창립할 수 있게 됐던 것도 전부 북명대법 덕분이잖아. 흡성대법은 북명대법의 가장 강하고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내가 흡성대법을 손에 넣게 된다면 십여 년 뒤에 천하무적이 될 것이고, 영종오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해. 그때가 되면, 영종오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단 말이지.”

막추가 갑자기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강 노귀, 당신이 어떻게 흡성대법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두변이 강 장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같잖다는 말투로 말했다.

“누구든 천기도에 올라오기만 하면, 비밀이 없게 되지. 내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 잊고 있었나 보군.”

콰과과광.

천기도가 또 한 번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파도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막추는 드디어 조금 겁을 먹었다. 무공 실력에 관해서라면 자신감이 넘쳤지만, 천기도 도주 강 장로의 정신력은 두려웠다.

‘천기도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비밀이 드러나게 되다니. 흡성대법 비밀까지 알아낸 걸 보니 정말 대단하군.’

막추가 머뭇거리자 두변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시오. 옥교와. 와서 나도 죽여야지.”

그 사이, 이도진과 희민지는 천기도에 도착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모습으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제 ‘유명신장’에 맞았으니, 2각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게 확실했다.

‘천기도에 가기가 영 찝찝한데. 강 노귀의 정신력이 너무 기이하단 말이지.’

두변이 강 장로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입을 열었다.

“옥교와, 얼른 도망치는 게 좋겠는데? 강사 그 몹쓸 놈이 자기 살길을 찾기 위해서 당신을 팔아먹을 것 같으니 말이야. 그 몹쓸 놈은 태생이 뻔뻔한 놈이니, 무슨 일이든 해낼 놈이지. 그러니까 얼른 도망쳐야지. 북명검파를 떠나는 게 좋겠군.”

막추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강 노귀의 말이 맞긴 하지. 강사처럼 교활한 놈은 틀림없이 내가 북명검파 영역에서 이도진과 희민지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대은구도 도주에게 알릴 테니까.’

막추가 소리쳤다.

“강 노귀, 당신은 점복 대사잖아. 한때 나를 흠모했던 사람으로서 말해줘. 내가 흡성대법을 손에 넣을 수 있겠어?”

두변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교와, 난 곧 죽을 목숨이라서 흡성대법이 사실 내겐 큰 의미가 없거든. 난 당신이 그 비급을 진심으로 얻길 바라. 하지만 그 비급을 당신이 얻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야. 당신은 흡성대법을 얻진 못하지만, 그 비급을 얻은 것만큼, 아니, 그 비급을 얻은 것보다 더 잘 지낼 게 분명해.”

“개뿔. 순 사기꾼 같으니!”

막추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가볍게 발끝으로 땅을 치고 두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제일 빠른 속도로 북명검파를 벗어나야만 했다.

이 미치광이 여인은 북명검파에서 세 번이나 좌천되었었다. 본래는 북명검파에서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는데, 고작 대은구도의 사도 정도만 되었고, 지금은 사고까지 쳐서 북명검파에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막추는 자신이 북명검파에게 쫓기거나 배신자가 되는 것보다, 흡성대법을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마두 막추는 그렇게 멀리 달아나 버렸다.

두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도진이 석실 밖에서 소리쳤다.

“천기도 도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도진의 목소리는 무척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천기도에서는 한 시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두변이 강 장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

“이도진, 희민지. 두 사람은 막추의 유명신장에 맞았으니 반 시진 내에 목숨을 잃을 것이오.”

“하지만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대은구도 도주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흡성대법의 행방에 관해서도, 막추의 배신에 관해서도요.”

이도진의 말에 두변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밑으로 내려오시오. 내겐 유명신장을 해독할 방법이 있소.”

이도진이 입술을 꾹 깨물고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도 이미 천기도 도주 강 장로에 관해서 익히 들은 터라,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이상 천기도에 올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은 강 장로가 유명신장을 해독할 방법이 있다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막추가 유명신장을 익히게 된 것 또한 강 장로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강 장로가 워낙에 신귀막측(神鬼莫測)한 사람인지라, 이 세상에서 유명신장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강 장로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도진과 희민지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강 장로 자체가 너무도 불길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길한 자의 석실 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두변이 강 장로의 목소리로 냉소를 터트리면서 말했다.

“반 시진 뒤에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울 게 있소? 내가 그렇게 무섭단 말이오?”

결국 이도진, 희민지는 서로를 부축하며 천기도 중심으로 향했고, 지하로 향하는 층계를 찾았다.

두 사람은 크게 심호흡한 뒤, 천천히 층계를 밟고 석실로 내려갔다.

지하 석실 안은 어둠 그 자체였다.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도진이 어둠 속에서 예를 올렸다.

화르륵.

두변이 촛불을 하나씩 밝히자 석실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이도진과 희민지는 두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서는 자신들의 눈을 믿지 못했다.

이도진이 한참이 지난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주께서는 정신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와 이런 장난을 하지 마시지요.”

이도진은 강 장로가 정신적 환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변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해명했다.

“이 종사, 진짜 접니다. 천기도 도주 강 장로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두변이 손으로 강 장로의 시신을 가리켰다.

이도진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천기도 도주 강 장로에 관한 소문만 들었지, 그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강 장로는 얼굴도 없어지고, 단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섬뜩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이도진이 애써 침착한 모습으로 물었다.

“두변, 조금 전에 우릴 구한 게 너라고?”

두변의 친모 희민지가 복잡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너무 많은 감정이 몰려와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천기도 도주 강 장로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천기도 도주 자리를 제게 물려주셨고, 오늘부터 제가 천기도의 도주입니다.”

이도진과 희민지가 경악했다.

‘두변이 새로운 천기도 도주라고?

강 장로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천기도가 대은구도의 감시 하에 있는 건 맞지만, 역사적으로 북명검파 종주 세 명이 천기도 도주 출신인데?

이건 너무 엄청난 우연이잖아!’

적어도 오늘부터 북명검파 사람은 두변을 마음대로 죽일 수 없을 것이고, 공손하게 도주라고 불러야 했다.

이도진이 말했다.

“나와 희 사매는 대은구도 도주의 명령에 따라 천기도 근처까지 와서 너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막추의 습격을 당했는데, 네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줬구나.

하지만 우리는 유명신장에 맞아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다. 서신을 한 장 써줄 테니, 대은구도 도주께 전달해 다오. 미리 고맙다는 인사를 하마.”

희민지가 두변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두변, 나도 곧 죽을 목숨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진실해진다고 하듯이 네게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오랫동안 북명검파에 몸을 담아왔고, 내 삶에서 중요한 건 오직 무도 수련, 그리고 북명검파에서의 지위 상승밖에 없었다. 네 아버지 두회에게 시집간 것도 가족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다.

북명검파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이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너는 내가 낳은 친자식이지만, 사실 너를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네 존재 자체를 망각했다. 너는 내 몸을 거쳐서 태어난 것일 뿐, 내가 너를 품에 안은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고, 직접 모유를 먹여준 적도 없으니까. 너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다시 북명검파로 돌아오게 되었고, 무도 수련에 집중했다. 집안의 잡다한 일들이 내게는 그저 귀찮은 일들이었고,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닌 이상,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두변 몸의 원래 주인인 두헌도 친모 희민지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마치 희민지가 친모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희민지가 이어서 말했다.

“당시에 방청의가 두씨 가문에게 너를 내쫓고, 이 세상에서 증발시켜버리라고 아주 집요하게 협박했다더구나. 난 그때 북명검파에 있던 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건 제발 믿어다오. 난 네가 집에서 쫓겨난 뒤 1년 반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모든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난 정 따위를 중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잠시 속상해한 뒤에 그 일을 잊기로 했다. 너는 내가 낳은 아이일 뿐이지,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잊고 살았기때문이다.”

희민지가 잠시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대은구도 도주께서 너를 죽이고자 했을 때, 나도 인륜적인 차원에서 너를 구하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내 제안을 거절하고 천형을 선택했지.

이것도 믿어다오.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치던 그 찰나, 나는 네가 죽는 줄 알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프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숨도 쉬어지지 않더구나. 그제야 나는 내가 어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아주 먼 곳에서,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알렸다면, 아마 잠시 속상해하고 말았겠지. 하지만 네가 내 눈앞에서 죽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웠어.”

희민지가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지금 와서 이 말들을 하는 건 뭔가를 바로잡고자 하는 게 아니다. 네 용서를 얻고자 하는 말들도 아니야. 네 마음속에는 진정한 어머니인 네 유모가 있겠지. 유모의 이름이 뭐더라. 여낭이었나? 네게 따뜻한 마음과 온정을 베푸는 여낭이 있으니, 굳이 내가 둘 사이에 낄 생각은 없다. 내가 이 말들을 네게 하는 것은 단지 죽기 전에 진심을 말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그저 내 말이 죽기 전 참회라고 받아들이고 싶다면, 내 참회인 걸로 쳐도 상관없다. 누구든 죽기 전에 한 말은 진실 된 말이니까 말이다.”

희민지가 말을 끝낸 뒤, 밖을 향해 몸을 돌려서 말했다.

“이제 난 대은구도로 돌아가야겠다. 그곳이 내 집이니, 죽어도 거기서 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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