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72화 (272/648)

272장. 왼쪽, 아니면 오른쪽

두변은 대은구도의 방 하나에 갇히게 되었고, 누군가 매일 그의 삼시 세끼를 챙겨주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방 안에는 서적이 꽤 많았지만, 무공에 관한 서적은 단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숙주. 네 운명은 아직도 예측 불가 상태다.’

‘알고 있습니다.’

‘북명검파 역사에서 두 명만 신마의 심판을 통과했는데, 한 명은 북명검파의 구세주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북명검파의 변절자가 되었기에, 지금 대은구도 도주가 네 운명을 빠르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네게 제시했던 노선은 비교적 안정적인 노선이었다. 조금 구질구질하긴 하지만, 이도진의 제자가 되어서 가장 안전하게 북명검파의 일원이 될 방법이었지. 하지만 너는 신마의 심판을 받겠다는 결정을 해서 운명을 더욱 짜릿하게 만들었군.’

‘미안해야 하나요?’

‘아니다. 너는 운이 타고난 사람이다. 어쩌면 네가 고른 이 방법이야말로 우리를 최종 목적지까지 이끌어 줄 열쇠일지도 모르지. 우리도 네가 앞으로 갈 여정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사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미래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니까.’

두변이 꼬박 사흘을 방 안에서 보냈을 무렵, 대은구도 도주가 드디어 그를 만나러 왔다.

두변은 그제야 대은구도 도주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대은구도 도주는 야윈 체형에 눈매가 무척 깊고 코가 높고 얼굴이 길었다.

“두변, 너는 신마의 심판을 통과했으니 무죄가 인정되었다. 하늘도 아직 너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우리 대은구도의 추살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지. 지금도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도주.”

두변이 예를 올렸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북명검파의 역사상, 신마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사흘 내내 너를 어떻게 할지 회담을 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말고 너를 처형하라고 하더구나.”

두변은 말이 없었다.

대은구도 도주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았으니, 대은구도에서 너를 더 죽일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제안을 기각했다.”

대은구도 도주가 두변을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두변, 솔직하게 말해보아라. 너는 우리 북명검파에 대해 적의가 가득한가, 아니면 경의가 가득한가?”

두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적의겠죠.”

대은구도 도주가 말했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이미 하늘이 꼭 점지해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북명검파에 화를 끼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네 운명은 네가 결정하거라.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떨어지거나.”

대은구도 도주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두변에게 손짓했다.

“나를 따라오거라.”

두변은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대은구도 곳곳에는 각종 정자와 누각, 그리고 동굴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무려 수천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대은구도 도주가 두변의 손목을 가볍게 잡더니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무공이었다.

도주는 잠자리가 수면을 치듯 가볍게 해수면을 밟고 뛰었고, 자연스럽게 두변까지 파도를 밟고 나아갔다.

도주와 두변은 바다에 가라앉기는커녕, 신발 밑창조차 바닷물에 젖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동쪽을 향해 달렸고, 해가 저물고 달이 뜰 때까지 길을 재촉했다.

두 사람이 2백여 리를 달렸을 무렵, 두변은 이곳이 더는 신선경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이곳 주위는 대은구도와 달리 회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외로이 떠 있는 회색 섬 하나를 발견했다. 그 섬의 모래와 땅은 모두 회색이었고, 섬 위의 바위도 회색이었다. 섬에서는 살아있는 식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은구도 도주가 두변을 데리고 회색 섬에 착지했다.

“대은구도 도주 하진, 강 사숙을 뵙습니다.”

대은구도 도주가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은구도 도주가 이번에 내력을 이용해서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하진, 사숙을 뵙습니다.”

도주가 내력을 내뿜는 순간, 바다에 파도가 요란하게 치기 시작하더니 섬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뛰지 않나, 섬 전체를 뒤흔들지 않나. 대은구도 도주의 무공 수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 뒤, 어디선가 노인의 쇠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주 대인, 이 늙은이는 곧 죽을 목숨이니, 대인을 접대하긴 어렵겠소. 게다가 나는 잘못을 저질렀고 천기를 누설했던 불길한 사람이오.”

대은구도 도주가 말했다.

“손아랫사람에게 대인이라니요. 당치도 않으신 말씀이십니다, 사숙”

노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돌아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무슨 일이든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강 사숙, 한 사람이 천형을 받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게 복인지, 화인지 구분하지를 못하겠습니다. 강 사숙께서는 점괘의 대가이시기도 하고, 천기를 알아내는 능력이 있으시니 이 사람을 강 사숙께 데려왔습니다.”

“뭐라? 또 누군가가 신마의 심판을 통과했다고?”

노인의 목소리에서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예. 역사상으로 세 번째입니다. 이런 큰일이 아니고서야 제가 사숙의 휴식을 방해할 리가 있나요.”

“저 아이가 복이면 어떻게 되고, 화면 어떻게 되는가?”

“복이라면 북명검파에서 전력을 다해서 이 사람을 양성해야지요. 하지만 화라면, 대은구도에서 이 사람을 죽이진 않을 겁니다. 네, 죽이진 않겠지요.”

대은구도 도주는 두변을 죽이진 않겠지만, 멀쩡하게 살려두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여보내시오.”

강 사숙의 말에 대은구도 도주가 두변을 데리고 외딴섬의 중앙으로 향했다.

쿠구구구궁.

“혼자 들어가면 된다.”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고, 도주가 두변에게 말했다.

“강 사숙! 두변 이 아이는 사숙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이 아이가 복일지 화일지는 사숙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대은구도 도주는 이 말을 남긴 뒤, 다시 빠르게 바다 위를 달려갔다. 이곳에 잠시라도 더 있기 싫은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외딴섬의 모든 것이 비밀스럽고 기이하기만 했다.

“얘야, 천천히 내려오거라.”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변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한참을 걸은 뒤에야 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탁자 위에 등잔이 있으니, 등잔을 밝히거라.”

노인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두변은 탁자 위를 더듬거리다가 등잔을 찾아서 불을 밝혔다.

동굴 안이 조금 밝아진 뒤, 두변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두변은 이렇게 생긴 사람은 처음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이 인간인지조차 의심이 됐다.

흡혈괴인 막영 토사도 인간이 아닌 괴물 같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더욱 인간 같지가 않았다.

그의 머리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고, 오관도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아서 얼굴 없는 사람 같았다. 이 사람의 두 눈은 꼭 단추 구멍처럼 작았고, 코는 이미 사라졌다. 입도 입술이 없이 작은 구멍만 남아 있었다.

두변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인간인가?’

“얘야, 많이 놀랐겠구나.”

얼굴 없는 노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천기누설을 너무 많이 해서 두 눈이 퇴화되었고, 코도 사라졌다. 입은 구멍만 남았고 귀도 사라졌지. 말 그대로 괴물이 된 것이다.”

노인의 말에 두변은 머릿속에서 시스템과 교류했다.

‘이 세계에 정말로 점괘 대사가 있습니까?’

하지만 시스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난번 견사 대사의 동굴 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동굴을 나갈 때까지 시스템과 교류가 되지 않았었다.

문득,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이 노인이 엄청난 능력을 가진 정신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변의 정신세계를 단절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불길한 사람이다. 그래서 대은구도 도주 대인이 너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뒤에도 내 동굴 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발을 들이지 않은 게다. 도주 대인께서 네가 북명검파에게 복이 될 사람일지, 화가 될 사람일지를 점을 봐달라고 하더구나. 나더러 네 운명을 결정해달라고 말이다. 네가 보기엔 네가 북명검파에게 복이 될 인물이냐, 화가 될 인물이냐?”

노인이 천천히 물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리 와보아라. 얼굴을 좀 만져봐야겠다.”

얼굴 없는 노인이 말했다.

두변이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주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독사처럼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어라? 이상하다. 너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인데?”

얼굴 없는 노인이 말했다.

두변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진짜 천기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천형에서 살아남은 건 그렇다 치자. 회오리가 너를 데려간 덕에 번개에 맞지 않았던 거겠지. 회오리가 규칙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밀한 계산을 하면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10여 년에 꼭 한 번씩 그 회오리바람이 나타나니 말이다.”

얼굴 없는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두변은 노인이 정말로 천기를 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네가 때마침 그 회오리바람을 마주쳤고, 너도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게 놀랍구나. 네가 타고난 운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얘야. 내가 만약 너를 북명검파의 화라고 점지한다면, 네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느냐?”

얼굴 없는 노인이 물었다.

“죽지는 않지만, 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겠지요.”

두변의 대답에 얼굴 없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네 혼백을 없애고 너를 걸어 다니는 시신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대은구도 도주가 너를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그리 만들 것이야.

자, 그럼, 네가 북명검파의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네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겠느냐?”

“아니요.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얼굴 없는 노인이 두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구멍은 꼭 콩알만큼 작았다. 콩알 같던 두 눈에서 갑자기 빛이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

노인이 갑자기 당황한 기색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노인의 콩알만 한 눈구멍이 다시 어두워지더니, 그 사이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천기? 이게 바로 천기인가?

이 세계의 최종 비밀이 바로 이것인가? 내가 백 년 넘도록 이 세계의 기밀을 파헤쳤는데, 그 기밀이 바로 이거였다니!

난 죽은 목숨이로구나. 난 끝장이야!

절대로 보면 안 될 것을 보아버렸어! 내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버렸구나.”

노인은 경황없이 주절거리기만 했다.

두변은 노인의 콩알만 한 두 눈구멍이 피눈물에 꽉 막혀버린 걸 빤히 바라보았다.

“얘야. 네 미래에서 보면 안 될 걸 보아서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네 운명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네가 말한 대로 네 운명은 너만이 결정할 수 있구나.”

쿠구구구궁.

동굴 전체가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다.

두변이 들어왔던 길이 완전히 막혀버리고, 두변의 앞에 바위 문 두 개가 나타났다.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천국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지옥을 뜻하지. 둘 중 하나는 너의 무도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면서 좋은 것들을 얻게 해주지만, 다른 하나는 네가 완전히 암흑에 집어삼켜져서 죽음을 맞이하게 할 것이다. 어떤 문을 선택할지는 너에게 달렸다.”

얼굴 없는 노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힘없이 고개를 떨구면서 숨을 거뒀다.

그의 눈구멍 두 개와 입 구멍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진정으로 얼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두변은 앞에 놓인 문 개를 보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문을 선택해야 하지?

하나는 천국, 다른 하나는 지옥이라고? 무궁무진하게 좋은 걸 얻을 수 있거나, 완전히 죽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군.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니까, 내가 선택해야 하는데.

왼쪽 문을 열어야 하나? 아니면 오른쪽?

검은색 문을 열어? 아니면 하얀색 문을 열어?

왼쪽에는 검은 문이, 오른쪽에는 하얀 문이 놓여 있었다.

시스템, 난 어떤 문을 선택해야 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