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장. 누굽니까?
인소당이 발끈했다.
“증거도 없으면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군. 계표표를 구하기 위해서 정말 필사적이로군.”
“증거요? 얼마든지 보여드리죠. 조금 전에 탕약을 먹고 죽은 가축들의 사체를 가져와서 해부해보면 됩니다. 죽은 가축들의 핏줄을 자세히 본다면, 마치 금색 실 같은 노란 줄이 있을 겁니다.”
세 제자가 조금 전 죽은 가축들의 사체를 가지고 와서 해부해보니, 두변의 말대로 모든 가축의 핏줄 안에 노란 줄이 섞여 있었다.
“이 금색 실 같은 게 바로 맹독입니다. 계청주 대종사의 체내에도 똑같은 게 있을 것이고요.”
삼사형이 다른 제자들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사매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부를 위해서 사부의 몸에 칼을 대야겠습니다. 저로 인해서 사부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
삼사형이 작은 칼을 들고 와서 소독한 뒤, 계청주의 손목을 살짝 그었다.
그의 손목에서 흐르는 피를 자세히 보니, 죽은 가축들에게서 본 금색 실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럴 수가!”
제자들이 헉 소리를 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소당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이게 무슨 증거가 된다고. 사부와 가축들은 다 저 탕약에 든 독 때문에 그런 거겠지.”
두변이 말했다.
“그래도 못 믿으시겠다면 새로운 가축들을 데려오십시오. 가축들에게 마연향을 탄 물을 먹이고, 일각이 지난 뒤에 삼룡탕을 먹여보십시오.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삼사형이 밖에서 닭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두변이 말한 대로 했다.
마연향을 물에 섞어서 주사한 뒤 일각이 지난 뒤 삼룡탕을 먹였더니, 닭은 조금 전 봤던 광경과 똑같이 칠규에서 피가 흐르면서 죽었다.
그리고 닭을 해부해보니, 다른 가축들과 똑같은 금빛 실이 발견되었다.
대사형 인소당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이제야 알겠군. 두변 네가 이 맹독에 대해서 잘 아는 이유를 알겠어. 넌 일찍이 사부를 독살할 계획을 가지고 계표표에게 접근했고, 계표표에게 탕약에 마연향을 넣으라고 지시한 거야!”
두변이 냉소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는 마연향을 코를 통해 흡입하셨습니다. 대종사의 콧구멍에 마연향의 잔향이 남아있거든요.”
두변이 얇은 대나무 막대로 계청주의 콧구멍 안쪽을 살짝 긁은 뒤, 삼사형에게 건넸다.
“마연향은 무색무취이지만, 조금만 맡아도 바로 심신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리고 강한 기운이 느껴지죠. 삼사형께서는 의술에 능통하시니 마연향이 느껴지실 겁니다.”
삼사형이 두변이 건넨 막대의 끝을 힘껏 들이마신 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연향이 맞아.”
옆에 있던 이사형이 다가와서 말했다.
“나도 한 번 맡아보지.”
두변은 살짝 놀랐다.
이사형은 무예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도 이런 걸 안다고?
두변의 표정을 본 이사형이 말했다.
“한때 아무리 수련해도 무공이 제자리걸음이어서 심신이 많이 힘들었다. 그때 온갖 방법을 써서 마연향을 조금 구해와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곤 했지.”
두변이 대나무 막대를 이사형에게 건넸고, 그도 있는 힘껏 냄새를 맡은 뒤 눈을 감고 마연향을 느꼈다.
이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확실히 마연향이군.”
삼사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역무도한 질문이긴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사부께서 이런 맹독에 중독되셨는데도 살아계시는 이유가 무엇이지?”
두변이 대답했다.
“여러분 모두 계 대종사의 무공 수준을 얕보신 겁니다. 계 대종사의 무공 수준이 너무도 높아서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걸 알아챈 즉시 내력으로 자신의 심맥을 봉쇄해서 독이 뇌에 침투하는 걸 막으신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스스로를 가사(假死) 상태로 만드신 거죠.”
두변이 계표표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마지막에 계표표 누이에게 저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첫째는 계표표 누이가 이곳에 남아있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하신 것이고, 둘째로는 제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신 거겠지요. 제가 워낙 교활하고 꾀가 많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그런데 계표표 누이도 한 고집하는지라, 자리를 떠나지 않았죠. 자신이 여길 떠난다면 분명 살인자로 몰릴 테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남았던 겁니다.”
두변의 표정에는 측은함이 묻어났다.
계표표는 두변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게 민망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두변이 말한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아버지의 칠규에서 피가 나는데 딸로서 아버지를 이대로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아버지를 이대로 버리고 가는 건 짐승만도 못한 짓 아닌가.
계표표는 똑같은 상황을 백 번 겪는다고 해도 아버지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삼사형이 어느 정도 상황을 눈치챈 듯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 이제 우리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게.”
두변이 예리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쯤 다들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쓰시는 모든 걸 준비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고 계 대종사의 전담 의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고, 계 대종사께서 태우시는 초에 마연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사형 인소당에게 향했다.
인소당의 안색이 급변하면서 말했다.
“다들 왜 그러는 거냐. 설마 지금 날 의심하는 것이야? 청룡회에서 반역을 일으킬 셈이야? 난 대사형이다. 사부께서 계시지 않을 땐, 내가 청룡회의 대장이라고!”
이때, 계속 침묵을 지키던 소목지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청룡회의 대장이 대사형이었습니까? 계표표 누이도 계시고, 저도 있는데 말입니다.”
두변이 인소당을 향해 말했다.
“인소당, 당신은 이미 손을 수백 번 씻었을 테고, 마음 같아선 피부를 한층 벗겨내고 싶었겠지만, 마연향을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이기에 지금도 몸에 마연향의 흔적이 남아있을 겁니다.”
두변이 삼사형에게 물었다.
“삼사형, 청룡회에 야광나비 있습니까? 야광나비는 마연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물이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귀신같이 마연향을 찾아냅니다.”
“있지. 내가 지금 당장 가져오겠다.”
삼사형이 서둘러 야광나비를 가지러 갔다.
“나가서 실험하시지요.”
두변이 사람들에게 말한 뒤 다 같이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소당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더니, 가장 앞서서 걷던 인소당이 갑자기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직 자신이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도망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딜 도망가!”
계표표가 격노해서는 포탄이 날아가듯 인소당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계표표가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치려던 찰나, 인소당이 화들짝 놀라면서 본능적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았지만, 그대로 몇 미터 날아가서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인소당의 무공은 계표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러니 청룡회에서 온갖 잡다한 일밖에 못 하는 것이고.
계표표가 그의 가슴팍을 발로 눌러 밟으면서 칼을 그의 목에 댔다.
“내 아버지께서는 네놈에게 태산과도 같은 은혜를 베푸셨다. 네놈이 청룡회의 모든 내무를 전담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배은망덕하게 아버지를 배신한 거지?”
인소당이 처량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패배한 싸움이 되었으니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난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왜 배신을 하겠어? 하하하하!”
계표표가 경악했다.
두변이 그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설마 너도 북명검파의 첩자냐?”
인소당이 냉소를 터트리면서 두변을 노려보았다.
“엄당의 주구놈. 예전에 네놈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엔 북명검파에서 네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하지만 넌 이제 북명검파에게 찍혔다. 네놈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단 뜻이지. 하하하.”
부아가 치밀어오른 계표표가 그의 가슴팍을 더욱 세게 짓밟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저주를 퍼붓다니. 죽지 못해서 안달이 났구나.”
인소당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두변, 내가 범인이라는 걸 밝혀내다니 아주 대단해. 하지만 나 하나 없어진다고 청룡회가 안전할까? 하하하. 꿈 깨라. 마연향과 삼룡탕을 혼합해서 만들어진 맹독은 해독법이 없어. 계청주는 결국 죽는다.”
두변이 갑자기 소리쳤다.
“저자가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어금니에 독이 숨겨져 있어요!”
이사형이 빠르게 나서서 그가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비수를 이 사이에 꽂았다.
그러자 인소당이 갑자기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배를 부풀더니 한 번에 숨을 뱉었다. 그러자 그의 몸 안 다른 곳에 숨겨져 있던 독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북명검파는 이 정도로 무서운 집단이다.
인소당은 소리소문없이 청룡회에 들어와서 몇십 년을 숨죽이고 지냈고, 2인자 자리까지 꿰찼다. 그런데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북명검파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고, 오죽하면 타협의 여지도 없이 목숨을 끊었을까.
자리에 있던 계표표와 제자들은 인소당을 죽도록 증오했지만, 저도 모르게 북명검파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 삼, 사, 오사형이 계표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사매, 정말 미안해. 우리가 눈뜬장님이었다. 첩자의 계략에 넘어가서 너를 의심하고 감옥에 넣었다니, 우리가 너무 멍청했어. 정말 미안해.”
계표표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넓은 아량을 베푸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을 책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이들이었어도 자기를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최근 계청주와 사이가 안 좋기도 했고, 탕약을 먹일 때조차 그와 말다툼이 있었으니까.
제자 넷과 소목지가 두변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두 대인, 저희의 지난 무례함을 잊어주시고, 제발 사부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계표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두변,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겠어? 인소당 그놈의 말로는 이 맹독에는 해독제가 없다던데?”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할 수 있죠.”
그러자 제자 넷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만약 두 대인께서 저희 사존을 살려주실 수 있다면, 앞으로 두 대인께서 부르시는 대로 달려가겠습니다.”
두변이 허리 숙여 답례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표표 누이를 위해서라도 꼭 계 대종사를 살려내겠습니다.”
두변이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시스템! 계 대종사를 구할 방법이 있어요?’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인소당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마연향과 삼룡탕이 혼합된 맹독은 해독할 수가 없어. 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계 대종사의 체내에 있는 맹독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방법 말이다.’
‘어떻게요?’
‘마연향은 해저 괴수인 해야차(海夜叉)의 분비물의 결정체인데, 해야차는 몸집이 몹시 크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해야차에게 천적이 하나 있지. 해야차의 체내에 기생하는 향마혈질(香魔血蛭)이라는 작은 기생충이지. 이 기생충은 해야차의 체내에서만 기생하고, 해야차의 피를 빨아들이면서 해야차가 마연향을 분비하기도 전에 해야차 체내의 모든 마연향을 빨아들인다. 어떤 해야차는 향마혈질 때문에 죽기도 하지.’
‘어딜 가야 향마혈질이라는 걸 얻을 수 있습니까? 제가 바다에 잠수해서 해야차를 죽여서 얻어와야 하는 건 아니겠죠?’
‘해야차를 죽인다고? 대종사급 무도 고수도 그런 말을 함부로 못 할 것이다.’
‘그럼 어디에서 향마혈질을 구하냐고요.’
‘잔혈방 막한에게 향마혈질이 한 마리 있다.’
‘예? 뭐라고요? 그 머저리가 향마혈질을 가지고 있다고요?’
‘막한의 아버지인 감타가 똑같은 수법에 당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어서 막씨의 후손이 향마혈질을 구해왔지. 그때 향마혈질이 그의 체내에 있던 마연향을 모조리 빨아먹어서 그가 살 수 있었다. 향마혈질은 생명력이 끈질긴 놈이라 물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수십 년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때 감타에게 쓰였던 향마혈질이 아직 막한의 손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한은 이미 제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는데요.’
‘걱정하지 마라. 그러다 미운정이라도 쌓이는 거지.’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된 게 맞나 보네. 이젠 썰렁한 농담도 하고.
두변이 속으로 투덜댔다.
그는 본능적으로 소목지를 시켜서 막한에게서 향마혈질을 받아올 수 없냐고 물어보려다가 곧바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자신을 욕했다.
이 일은 소목지에게 절대로 시켜서도 안 되고, 소목지의 힘을 조금도 빌려선 안 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계청주를 구해야만 계청주의 완전한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변이 눈을 뜨고 계표표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계 대종사의 곁을 지키고 있어요. 영존의 해독제를 구해올게요.”
계표표가 물었다.
“같이 갈까?”
“괜찮아요. 혼자도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