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52화 (252/648)

252장. 계청주의 중독

계표표는 눈꺼풀이 살짝 떨렸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짝, 짝, 짝, 짝.

인소당이 채찍을 몇 번 더 휘둘렀지만, 계표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공 수준이 너무 높아서 아무런 느낌이 안 난다? 그럼 다른 걸 가져오지.”

금세 숨이 찬 인소당이 채찍을 한쪽으로 던지더니 뜨거운 화로를 가져왔다. 뜨거운 화로 안에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인두가 놓여 있었다.

인소당이 인두 손잡이를 쥐고 옆에 있던 나무토막에 인두를 지지면서 말했다.

“사매, 난 사매처럼 탄력 있고 풍만한 몸매를 본 적이 없다. 누구나 한 번 봤다 하면 침을 줄줄 흘릴 정도로 폭발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이 인두 자국이 생기면 어떨까?”

계표표의 안색이 변했다.

“하하. 이제야 좀 무섭나? 무서우면 어서 배후가 누군지 불어.”

계표표가 이를 악물고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계표표에게는 이 일이 너무도 황당했고, 배후가 누구냐고 고문당하는 이 상황도 너무 어이없었다. 물론 배후는 있을 것이다. 자기 편이 아닐 뿐.

인소당이 그녀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서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사부를 죽이라고 사주한 사람은 두변이잖아. 사부께서 별세하시면, 딸인 네가 청룡회주가 될 것이고, 두변에게 홀딱 빠져버려서 정신이 나간 너는 청룡회를 두변에게 바치겠지. 두변이 네게 접근한 이유가 바로 그거잖아. 참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다. 영웅이 미인을 구하는 연극도 준비하고, 네게 독을 써서 너와 뜨거운 시간도 보내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거든? 환관이라면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 뜨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계표표가 냉랭한 눈빛으로 인소당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해라. 네 배후에 있는 사람이 두변이지? 맞다고 대답하면 너를 잠시 놓아주마. 하지만 끝까지 말하지 않거나, 아니라고 한다면, 네 몸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에 이 인두를 찍어버릴 것이다. 네 심장과 제일 가까운 그곳 말이다.”

“나가 죽어버려! 이 더러운 새끼! 몇 년 동안 내 눈이 삐었었네!”

계표표가 드디어 대꾸했다.

“그래. 눈이 제대로 삐었었지.”

인소당이 징그럽게 웃으면서 말하더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인두를 계표표의 가슴을 향해 들이댔다.

“잠깐!”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동창 천호소 안.

꿈속 세계에 있던 두변의 개천안 개조가 끝났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이래서 현실이 재밌다니까.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해.’

- 신규 임무: 계청주를 구하라. 임무 목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계청주를 구하고, 계표표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계청주를 죽이려 했던 진범을 찾아라.

- 임무 포상 1: 계청주의 호감 획득. 청룡회의 전폭적 지지 획득.

- 임무 포상 2: 백색부에서 입지 다지기 성공.

- 임무 포상 3: ‘육맥신검’ 비급 획득.

두변은 순간 기분이 얼떨떨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계청주는 대종사급 무공자잖아. 그런데 누가 그에게 독을 썼고, 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고?

그리고 계표표가 독을 쓴 사람이라고 의심받고 있다고? 청룡회 사람들이 단체로 미친 건가?

포상도 엄청나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천도회와 홍하회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막강한 두 세력이 있는 한, 두변이 백색부에서 입지를 다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청룡회가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다면, 동창은 백색부에서 천도회와 홍하회에 견줄 수 있는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억울하게 혐의를 뒤집어쓴 계표표를 위해서 서둘러야 했다.

계청주가 참 얄미운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의 목숨을 꼭 살려야만 했다.

명상에서 빠져나온 두변은 곧장 청룡회로 달려갔다.

지난번과 달리 두변은 순조롭게 청룡회 대문은 통과했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청룡회 무사들에게 붙잡혔다.

“청룡회주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당신을 잡아 오라는 명령이 있소.”

무사가 말했다.

두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무사들 뒤로 이사형과 삼사형이 서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두변이 운중사 얼굴로 사위 시험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변의 지혜를 높이 샀다.

“이사형, 삼사형. 제가 계 대종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두변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사형과 삼사형이 비통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럴 기회가 없다. 사존께서 이미 숨을 거두셨어.”

두변이 말했다.

“제가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단언합니까?”

삼사형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설마 의술까지 할 줄 안다는 건가?”

“일단 최선을 다해봐야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안 되잖습니까.”

이때, 오사형이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두변, 정말로 사존을 되살릴 수 있나?”

“해봐야죠. 하지만 먼저 계표표를 풀어주십시오. 계표표와 제가 함께 가서 계 대종사를 치료해보겠습니다. 물론 옆에서 저희를 지켜봐도 좋습니다.”

세 제자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두변에게 정말로 희망을 품는 건 아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를 데리고 고탑으로 향했다.

“안 돼.”

대사형 인소당이 호통쳤다.

“절대로 저놈이 사부 근처에 가게 해선 안 돼. 저놈은 사부를 독살한 진범인데, 사부의 시신에 손을 대게 하다니. 다들 미쳤나? 사부의 시신을 더럽힐 셈이야?”

세 제자는 대사형의 격한 반응에 난감해했다.

두변이 말했다.

“대사형이라고 하셨죠? 제가 계청주 대인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으면, 그게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이라고 해도 시도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소당이 두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사존을 구하기는 무슨. 넌 지금 사존께서 정말로 숨을 거두신 건지 확인하러 온 것이고, 사존을 완전히 죽이려고 온 거겠지. 그리곤 계표표를 청룡회주 자리에 앉힌 다음, 네가 청룡회를 집어삼키려고 말이야. 네놈이 무슨 꿍꿍이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방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이때, 소목지가 고탑 앞에 나타나서 두변에게 허리를 숙였다.

“두 형, 부탁 좀 하겠습니다.”

지금 소목지는 청룡회의 소주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사형 인소당은 그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조용해졌다.

계표표가 지하 감옥에서 끌려왔고, 제자들이 쇠사슬과 혈도를 풀어줬다.

두변은 상처투성이인 계표표의 모습을 보고 눈에 불이 날 정도로 화가 났다.

계표표가 두변을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두변,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어. 제발 아버지를 살려줘. 제발.”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살려줄게요.”

소목지와 제자들이 두변과 계표표를 에워싸고 고탑 안으로 들어갔다.

계청주의 방 안.

두변의 시야에 들어온 건 정말로 죽은 모습의 계청주였다. 칠규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고, 호흡과 맥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변이 아닌 누가 와서 봐도 그가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변은 눈을 감고 정신력을 송과선에 집중했다. 붉은 불빛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송과선을 통해 강한 불빛을 쏘아냈다.

‘천안 작동!’

두변의 눈에 계청주 체내가 투시되듯 보이면서 근맥의 흐름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두변은 계청주의 오장육부에서 손상이 가장 심한 곳, 독소가 모여있는 곳, 독소가 비교적 적은 곳, 독소가 어딜 통해서 유입되었는지 등을 살폈다.

놀랍게도 계청주의 심장은 아직 약하게 뛰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의 심장 박동이었고, 그의 뇌도 휴면상태이긴 하지만 정신 세포의 미약한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것은 계청주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두변이 몸을 낮추고 계청주의 콧구멍과 그의 코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계정추가 마셨다던 탕약 그릇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두변이 냄새를 맡는 것 같겠지만, 사실 그는 천안을 통해 모든 걸 관찰하고 있었다.

계표표는 두변의 말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녀는 긴장한 기색으로 두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고, 그의 입에서 좋은 소식이 나오길 기대했다.

소목지와 다른 제자들도 계표표만큼 긴장된 눈빛으로 두변을 지켜보았다.

그중 대사형 인소당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예리한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았고, 행여나 그가 계청주의 시신을 훼손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2각의 시간이 지나고, 두변의 작업이 끝났다.

두변이 깊게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우선 모두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아직 살아계십니다.”

“말도 안 돼!”

제자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하면서 소리쳤다.

대사형 인소당과 삼사형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삼사형이 말했다.

“그럴 리 없다. 나도 의술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어서 알지만, 내가 사부의 시신을 몇 번이고 확인해보아도 사부에게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어. 나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고, 너무도 마음 아프지만 스스로를 속이고 싶진 않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계표표는 무척 기뻐하면서 말했다.

“난 두변을 믿어. 두변이 아버지께서 죽지 않았다고 말한 거면 정말로 아직 살아계신 거야.”

두변이 말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중독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계표표가 아니라 당신들 중에 있겠군요.”

두변이 예리한 눈빛으로 소목지와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계청주 대종사께서는 탕약을 통해 직접적으로 중독된 게 아닙니다. 일전에 대종사께서는 혼자서 아주 협소한 공간에 계셨겠죠?”

두변이 묻자,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좁고 밀폐된 공간이라면 촛불이 필요했을 테고, 안 그래도 탁한 공기가 더욱 탁해졌을 겁니다. 누군가가 촛불에 마연향(魔涎香)이라는 향료를 섞었는데, 이 향료는 무척 진귀한 향료입니다. 이 향은 아주 소량만 맡아도 곧바로 심신이 이완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죠. 하지만 일시적으로 다량을 쓰게 될 경우엔 신경계에 손상을 입혀서 갑자기 사람을 병상에 앓아눕게 만듭니다.”

삼사형이 말했다.

“맞다. 사부께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주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이유 없이 앓아누우셨지. 우린 사부께서 자네가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아서 쓰러지신 거라고 추측했는데.”

“갑자기 앓아누우신 건, 마연향이 혈액에 과도하게 유입되어서 신경계에 손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아무리 무공 수준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런 신경계 공격을 막아내실 수는 없겠죠. 그 뒤로 제 승전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으셔서 쓰러지신 겁니다. 계청주 대종사께서 무공이 막강하시긴 하나, 독에 대해서 그리 많이 알고 계시진 않을 겁니다. 물론 부정적이면서 어두운 기운에는 민감하실 테니, 누군가가 대종사께 직접 독을 썼을 리는 만무하죠. 그런데 이 마연향은 선한 기운을 가진 향료여서, 대종사께서 아무런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셨을 겁니다.”

마연향은 무색무취에 아주 특수한 기운만 있는 향료라서 만약 두변의 천안이 아니라면 마연향의 기운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두변이 탕약 그릇을 들고 말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이 탕약은 진귀한 삼룡탕(蔘龍湯)일 겁니다.”

여기서 용은 진짜 용이 아니라,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나는 형상이 용과 비슷한 약재의 이름이었다.

두변이 말했다.

“이 약은 혈류와 근맥을 트이게 하는 아주 좋은 약이죠. 하지만 이 탕약을 마연향과 같이 쓰게 된다면, 엄청난 맹독이 됩니다. 그래서 다들 이 탕약을 먹었을 때는 몸에 아무런 이상 반응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계청주 대종사께서는 마연향을 이미 많이 흡입하신 상태에서 이 탕약을 드셔서 목숨을 잃을 뻔하신 거죠.”

인소당이 반박했다.

“너는 지금 계표표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쓰는 거겠지. 남은 삼룡탕에 독이 없다면, 어째서 가축들도 죽은 것이냐?”

두변이 말했다.

“당신이 사전에 그 가축들에게 마연향을 주입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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