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35화 (235/648)

235장. 내가 가여워?

이들은 누가 있든 없든, 언제나 대열을 갖추고 정돈된 모습으로 대기하고, 밥을 먹고, 훈련하고, 목욕했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은 늘 무감각하고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 오직 기음음을 봤을 때만 동요가 일어난다.

기음음이 나타나자, 수백 명 동군 병사가 열광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주인을 뵙습니다!”

동군 병사들은 서너 살 때 천마교에 들어가서 기음음만이 주인이라는 세뇌를 하루도 빠짐없이 받았다.

이들의 사명은 주인을 위해 싸우는 것이고, 주인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두변은 동군 병사들이 수염이 없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원인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욕망에 마음이 흐트러지고 전투력에 영향을 미칠까 봐 아예 이들의 고환을 잘라버린 것.

천마교는 그렇게 그 어린아이들을 그저 전쟁의 도구로 키워냈다.

다행히 동군 양성 계획이 아직 초기 단계일 때 기음음의 수련이 실패했고, 그 덕분에 동군은 수백 명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만약 기음음이 그때 수련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10여 년 동안 기음음은 족히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천마군을 양성했을 것이고, 아주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됐을 것이다.

두변이 빠르게 세어보니, 이곳에 갇혀 있는 동군은 대략 6백 명 정도였다. 그의 착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동군 병사들은 생김새까지 거의 비슷해 보였다.

6백 명이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두변에겐 충분한 숫자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환이 잘린 동군 병사들이 결국 엄당의 군대가 된 건,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기음음이 두변을 가리키면서 동군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오늘부터 내 오라버니야.”

그녀는 올해 쉰이 넘지만, 외형은 예닐곱 살의 소녀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음음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이 사람은 너희의 주인이야.”

6백 명 동군 병사가 일제히 두변을 바라보면서 큰절을 올렸다.

“주인을 뵙습니다!”

병사들의 움직임은 흡사 한 명이 움직이는 것처럼 질서정연했다.

큰절을 올린 뒤, 병사들은 몸을 일으키더니 두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들이 그를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철저히 머릿속에 기억하기 위해 두변의 이목구비와 머리카락, 그의 모든 걸 관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감옥에 갇힌 건 큰일이 아니지만,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들의 머릿속에 기음음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 셈이니까.

눈동자를 움직이며 두변을 1분 동안 열심히 관찰한 병사들은 그를 뇌리에 박제한 수준으로 기억했다.

1분 뒤, 병사들은 두변을 열광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기음음을 바라볼 때처럼 미친 듯이 열광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를 물건 보듯이 보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동군 병사들은 그들이 따를 최고 권력자가 기음음이고, 그다음 순위가 두변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최고 권력자와 이인자가 충돌하게 되었을 때, 이들에겐 최고 권력자의 명령이 절대 명령이었다.

“기대(紀大), 기이(紀二), 기삼(紀三), 기사(紀四), 기오(紀五), 기육(紀六), 나와.”

기음음이 이름을 부르자, 사내 여섯 명이 대열 밖으로 나왔다.

기음음이 말했다.

“이 여섯 명은 천마혈군(天魔血軍)의 백부장(百夫長)이에요. 다 4품 무사이고 전투 전략에 대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전장에 나가는 장군이라면, 4품 무사여도 충분했다. 전장에서는 내력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전략과 병력으로 싸우는 것이니까.

내력 현기로 전투에 임하게 되면 칼을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칼을 휘둘러야 한다.

무공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설령 대종사가 온다고 해도, 현기 내력이 소진되어 버리면 평범한 졸병 열 명도 그를 죽일 수 있게 된다.

“이제부터 나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거야. 난 이제 행복한 소녀가 되기로 했거든.”

기음음이 후련한 듯 웃으면서 말한 뒤, 두변에게 말했다.

“자, 이제 오라버니의 첫 번째 명령을 내려요.”

두변이 6백 명 천마혈군을 바라보면서 명령했다.

“첫 번째 명령을 내린다. 자, 탈옥이다!”

“네, 알겠습니다!”

6백 명 천마혈군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반 시진 뒤. 두변은 6백 명 천마혈군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탈옥했다.

혈군 병사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대열을 정돈했고, 병사가 두 명 이상만 되면 무조건 줄을 서서 정렬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계표표와 막야 등은 너무도 기뻐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변을 기다리던 한 시진 넘는 시간은 이들에게 영겁의 시간이었다.

막야 등은 여러 차례 비밀 통로로 들어가서 두변을 구해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계표표가 번번이 그들을 막았다.

계표표는 지금 이 시점에 두변을 구하겠다고 흑애 감옥에 들어간다면, 두변을 구하지 못할뿐더러 그의 계획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계표표의 판단이 맞았고, 두변을 믿은 덕에 6백 명 천마군을 얻게 되었다.

막씨 가문의 잔여 세력인 잔혈방보다 천마혈군이 몇 배는 더욱 강력했다.

6백 명 천마혈군이 모두 수면 위로 올라오자, 두변이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흑애 감옥을 공습하고, 그들의 칼, 활과 화살, 갑옷을 빼앗아라.”

“알겠습니다!”

백부장 여섯 명이 대답했다.

백부장들의 진두지휘 하에 천마혈군은 분산 기습을 할 수 있는 돌격대 진열로 빠르게 변형했다.

6백 명 천마혈군은 허리를 숙이고 소리 없이 흑애 감옥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흑애 감옥 전투는 30분 만에 끝났다.

흑애 감옥을 지키던 백여 명의 무사가 순식간에 몰살당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새벽잠에서 깨기도 전에 소리 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제 6백 명 천마혈군 중, 백여 명이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백색성으로 들어가서 동창 천호소를 되찾고, 변절자 장소를 죽여라.”

두변이 세 번째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은 무기와 갑옷이 많이 없었지만, 백색성 안에는 이문회가 몇 년 동안 준비한 비밀 근거지에 대량의 갑옷과 무기가 숨겨져 있었다.

동이 틀 무렵.

구 동창 천호소 안, 변절자 천호 장소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두변을 기다렸다.

그는 두변 등을 찾으려고 온 백색성을 뒤졌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다. 대신 진평과 장옥윤을 찾아냈다.

진평은 다리가 부러졌고, 장옥윤은 무공을 전혀 할 줄 몰랐기에 백색성에 있는 어느 동창 비밀 근거지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위치를 밀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장소의 수하들이 워낙 샅샅이 수색하면서 이 두 사람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은 나무틀에 묶여 있었고, 그들의 발치에는 기름이 부어진 장작이 가득 쌓여있었다.

촤락! 촤락! 촤락! 촤락!

장소가 직접 채찍을 들고 두 사람을 수십 번 채찍질했다.

두 사람은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이미 다리가 부러졌던 진평은 고통을 못 이겨서 맞다가 혼절해버렸다.

장소는 자기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자기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두변은 이미 도망쳤고, 내가 이곳을 점령했어. 두변은 집 잃은 개새끼가 된 것이고, 내가 이 싸움에서 승리한 건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내가 그 새끼를 질투해서? 아니야. 내가 보기엔 두변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지, 이문회의 인정을 받아서 그의 후계자가 된 건 아닐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날까!’

그는 자신이 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두변 그 새끼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소가 이를 부득 갈면서 구 동창 천호소의 제일 높은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와서 구경 좀 하지 그래? 네 개새끼 두 마리가 여기 잡혀서 낑낑대는데, 나한테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 주인 주제에 수하 하나 지키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넌 광대에 불과해. 이문회도 눈이 멀었지. 너 같은 놈을 의자로 거두다니.

제 주제를 알아야지. 무슨 배짱으로 백색부에 발을 들인 것이냐. 이문회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군. 저런 놈을 백색부에 보내다니.

너 같은 놈은 내 신발을 닦아줄 수준도 못 되는데, 미래 동창의 소주인이 되겠다고? 하하하. 정말 황당하구나.

두변, 네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광대짓뿐이지? 숨어다니는 게 지겹지도 않아? 고환이 잘릴 때 용기도 같이 도려내진 거냐?

너를 따르는 개새끼 두 마리를 지금 죽여주마!”

장소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동창을 배신한 동창 무사가 횃불 하나를 들고 쌓여있는 장작 앞으로 다가갔다.

장소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무사는 이 횃불을 장작 위로 던질 것이고, 진평과 장옥윤은 그대로 불에 타서 죽게 될 것이다.

두변을 따르기로 한 두 사람은 그날 이후 하루도 호강한 적은 없고 오히려 고난과 역경의 연속에서 죽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두변, 내가 지금부터 다섯을 세겠다. 다섯을 셀 동안 나타나지 않는다면, 저놈들은 불에 타서 새까만 재가 될 것이다!”

“다섯.”

“넷.”

“셋.”

피슉.

새벽녘 어렴풋한 푸른 빛에서 화살 하나가 날카로운 각도로 날아왔다.

화살은 장작 앞에서 횃불을 들고 있던 무사를 명중시켰으며, 무사는 횃불을 쥔 채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동창 변절자 천호 장소는 화를 내긴커녕 몹시 기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멍청한 놈이구나. 드디어 왔느냐. 네가 얼마나 멍청한 놈인지를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구나. 고작 개새끼 두 마리 살리자고 네 목숨을 내버리다니. 참으로 아둔한 자식이구나.”

진평은 아직도 혼절한 상태였고, 두변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옥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변의 모습을 찾으면서 외쳤다.

“대인,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여기로 오시면 안 됩니다!”

장옥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외치자, 진평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면서 정신이 들었다.

“주인! 푸른 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소인들이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저희는 주인을 따른 것이 후회되지 않고, 주인을 모시며 더 큰 업을 쌓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 어서 가십시오!”

변절자 장소가 낄낄대면서 말했다.

“두변, 두변, 멍청한 두변이 어디 있을까? 어디 한 번 나와서 그 귀한 면상 좀 보여주시지? 우리 아직 안면도 트지 않았잖아! 이문회가 고른 천하의 멍청한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구나. 너 같은 놈을 후계자로 삼다니.”

잠시 뒤, 두변이 건너편 건물의 창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광기 어린 장소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참 가엾구나.”

장소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라고? 내가 가여워? 내가? 내 손에 잡혀서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고, 근맥이 뽑힐 사람은 넌데, 내가 가엾다고 한 거냐 지금?”

장소가 웃음기를 거두고 명령했다.

“가서 두변 저놈을 잡아 와라. 내 저놈의 근맥을 직접 뽑아야겠다.”

“알겠습니다.”

수백 명 무사가 두변이 있는 건물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이와 동시에,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두변의 동창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소리 없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6백 명 천마혈군은 동창 무사복을 입고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동창 무사가 되었다. 아마 제국 최정예 동창 무사이지 않을까.

천마혈군은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1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집합해서 대열을 갖췄다.

변절자 장소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