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34화 (234/648)

234장. 두고 보라고 했지!

“이 비밀을 어떻게 안 것이냐.”

천마교주 기음음이 물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이런 어투를 쓰며 말을 하니,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제 스승인 견사 대사께서 예전에 귀 교단에 불교를 선양하시고자 한동안 머무르셨지요. 당신이 살생을 줄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당신은 제 스승이 말이 잘 통하는 고상한 말동무라고 생각해서 반년 넘게 손님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살생을 줄이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천마책’의 마지막 권 수련을 강행했던 건, 청춘이 영원하길 바라서였겠죠. 당신보다 열 살은 어린 사내가 당신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하지만 수련은 실패했고, 그로 인해 근맥이 역행하고 하루하루 끝도 없이 회춘하기 시작했고요.”

어떻게 보면 기음음의 수련은 회춘의 의미에서 보면 유래에 없는 성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내가 바로 현재 북명검파의 종주 영도현(寧道玄)이고, 그해 북명검파의 수백 고수를 이끌고 천마교와 최후의 결전을 펼쳤던 사람일 겁니다. 영도현이 당신의 곁에 나타났던 건, 모든 게 철저하게 계획된 음모였고 미남계였습니다.”

기음음은 그 일이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웠고, 20년이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

“그 말을 하려고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말 끝났으면 이제 죽어줘야겠다.”

기음음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일고여덟 살 여자아이의 입에서 이렇게 독한 말이 나오니, 두변은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두변이 말했다.

“전 당신과 담판을 하러 왔습니다. 만약 제가 틀린 게 아니라면, 지금은 여여해도 당신을 더는 주목하지 않겠죠. 여기에 갇힌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는데, 당신은 아무런 특별한 변화도 없이 매일매일 회춘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여기 있는 수백 명의 동군 외엔, 아무도 당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음음이 두변을 빤히 노려보면서 말했다.

“죽기까지 세 마디만 해라.”

동시에, 수십 명 여인이 몰려들어 칼을 뽑고 그를 겨냥했다. 기음음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두변은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죽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 공격술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수십 명에게 동시에 정신 공격을 가할 순 없었다.

“당신의 몇백 명 동군을 다 제게 주시지요. 동군이라기엔 모두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제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한마디, 했고.”

기음음의 말에 수십 명 여인들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칼끝에서부터 두변의 몸까지 불과 한 치의 거리였다.

두변이 침을 꿀꺽 삼키고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회춘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고, 앞으로 길어야 1년 반이 지나면, 당신은 생명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1년 반이 지나면 당신은 죽게 됩니다.”

“두 마디가 끝났다. 마지막 한마디가 남았으니, 잘 생각해보고 말해라.”

기음음의 말에 수십 명의 여인들이 다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고, 칼끝이 두변의 몸에 닿기 직전이었다.

기음음의 명령이 떨어지게 되면, 이 여인들은 두변의 몸에 그대로 칼을 꽂아 넣을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어!’

두변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그에게 꿈속 세계의 조언도, 예지도 없었다.

기음음에게 얘기할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하나는 기음음에게 자신이 그녀를 구해줄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는 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기음음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기음음을 순간 동결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액체 질소와 유사한 물질을 찾아내서 그녀를 순간 동결해서 동면에 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은 지구상에서도 미숙하니 단기간 내에 그녀를 생명의 지장 없이 깨울 순 없겠지만, 지금 당장 기음음의 회춘을 멈출 방법이 없으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순간 동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선택지는 기음음에게 그녀가 죽게 되면, 남은 수백 명 동군을 두변이 데리고 이끌고, 보호하고 키워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10여 년을 갇혀 산 동군이 인생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기음음과 함께 묻히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꿈속 세계가 있었다면, 분명히 두변에게 첫 번째 선택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꿈속 세계는 기음음은 냉정하고 잔혹한 사람이니,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생사일 것이고, 분명히 첫 번째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또 한 번 자신을 믿고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제가 할 마지막 말은, 이 수백 명 동군이 당신과 함께 묻히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이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주고, 이들이 인생을 의미 없이 보내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당장 내일 일어날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외롭게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죽진 않을 겁니다.”

두변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택했다.

그는 기음음이 동군을 자신의 목숨보다 아낄 것이라 생각했다. 두변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두변은 꾀를 부리지 않았고, 꿈속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의 감정은 이성을 이긴다는 데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붉은 불빛이 허공에서 말했다.

‘저 멍청한 숙주놈이 또 죽으려고 작정했군.’

기음음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미련한 약속이로군.”

사실 두변으로서도 가장 미련한 도박을 걸어보는 셈이었다.

기음음이 두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넌 머뭇거렸다.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었겠지. 그 선택이 뭐였는지 말해봐라.”

“당신을 일단 순간 동결해서 동면에 들게 한 뒤, 회춘을 멈출 방법을 찾아낸 뒤에 당신을 다시 깨우는 겁니다.”

“그럼 왜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인가?”

“당신이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수백 명 동군과 함께 땅속에 묻히길 원하지 않는다고요. 당신이 당신의 목숨보다 이들을 더 아낀다는 것에 제 전부를 걸었습니다.”

“예전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내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고, 나를 도울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 그런데 넌 예외군. 내가 아니라, 내 동군들을 구해주겠다고 하는군. 네 신분이 무엇이지?”

“동창 시백호입니다.”

“티끌만 한 관직이로군.”

기음음이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했다.

“네가 이겼다. 앞으로 내 천마군은 네 것이다. 난 이들이 나와 함께 땅속에 묻히길 바라지 않는다.”

두변은 속으로 무척 흥분했지만, 겉으로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두변은 이렇게 그의 첫 번째 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됐어. 시스템! 내가 두보고라고 했지!

“그리고 네 말이 맞다. 내게 남은 시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아. 난 그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지내면서, 내가 가지지 못했던 행복한 유년 시절을 가지고 싶다.”

기음음이 고개를 들고 금빛 찬란한 감방을 둘러보았다.

“이것들은 원래 막씨가 내게 준비해준 것들이다. 그러다 나중에 여씨도 내게 진귀한 것들을 갖다 바쳤지만, 그런 건 내가 원하는 것들이 아니야. 근래에 여씨도 그렇고, 이제 나를 찾아와서 항복을 권하는 사람도 사라졌지. 하늘이 내게 회춘이라는 벌을 내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저 하늘은 내가 갖지 못했던 유년 시절을 선물하려는 모양이지 않나? 내가 온전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뒤이어 기음음의 목소리가 완전히 평범한 여덟 살 정도의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변했다.

“오늘부터 나는 평범한 소녀이지, 더 이상 천마교주가 아니야!”

바로 이것이 두변이 그녀를 설득할 수 있던 이유이다.

누구나 죽기 직전이 되면, 생각하는 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기음음은 야망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여한 없이 온전하게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마음 놓고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건, 그녀만 보고 따르는 수백 명 동군이 있기 때문이었다.

20여 년 전, 기음음에게 천마군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수백 명 천마군이 그녀의 유일한 걱정으로 남아 있었다. 비록 지금은 기음음이 여덟 살 소녀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 이들은 마음으로 낳은 자식들이었다.

수백 명 동군은 심지가 불온한 사람들이다. 당시 천마교가 일부러 살인 병기를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고아를 데려왔고,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세뇌 교육을 하면서 기음음을 하늘처럼 섬기게 했다. 이들이 배운 것과 할 줄 아는 건 싸움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열 몇 살 때부터 기음음과 함께 이 어두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여기서 십수 년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들의 심지는 더욱 온전치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음음이 죽는다면, 이들이 맞이할 결말은 두 가지였다.

제일 큰 가능성은 기음음이 죽게 되면 기음음과 함께 땅속에 묻히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은 이대로 바깥세상에 버려져서 살인광이 되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제국을 혼란스럽게 해서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남겨진 천마군에게는 이들이 따를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들은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고, 오직 지도자의 말을 따를 줄만 알기 때문이다.

두변은 그리 성숙한 사람이 아니고, 관직 지위도 높지 않았다. 그는 기음음에게 뭔가 있어 보이는 계획이나 맹세를 하지 못했지만, 기음음은 오히려 두변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음음의 눈에는 두변이야말로 이 남겨진 천마군에게 가장 좋은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자야말로 충분히…… 순진하니까.

기음음이 자그마한 손을 뻗으면서 두변을 올려다보았다.

“두변 오라버니, 내 손 잡고 같이 가요.”

두변이 살짝 몸을 움찔했다.

“적어도 내게 입을 옷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이대로 둘이 손잡고 가는 건 좀 범죄 같지 않아?”

천마교 시녀가 두변에게 옷을 한 벌 가져다주었고, 두변은 그 옷을 걸친 뒤에 기음음의 손을 잡고 감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깥의 거대한 감방에 도착하자, 기음음이 명령했다.

“횃불을 밝혀줘.”

모든 횃불이 밝혀지자, 두변은 그제야 이곳에 모여 있는 천마교 동군을 모두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동군이 아니라, 서른이 넘은 사내들이었다.

이들의 눈이 꼭 짐승들의 눈처럼 어둠 속에서 초록빛을 띠는 이유는 이들이 어려서 먹은 약 때문이었다.

천마교는 이들이 어렸을 때 통증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먹였다. 그 약 덕분에 이들은 통증이라는 걸 모른 채 자랐지만, 그 약의 후유증 때문에 어둠 속에서 형광을 띠는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다.

횃불이 밝혀진 뒤, 두변이 보게 된 동군은 야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혀 짐승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무척 조용하고 점잖아 보였다. 모든 사람이 매우 야위었지만 강철같이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변은 어딘가 모르게 이들이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감방에서 10여 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천마교에서 지낼 때와 똑같이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천마교에서 교육받았던 대로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고, 수련했다.

천마교는 이들을 무도 고수라기보다는 인간 병기 수준으로 훈련을 시켰다.

무도 고수는 소수의 싸움에서는 빛을 발하지만, 칼과 화살이 오가는 전장에서는 무공 수준보다 단합력 있는 대규모 군대가 훨씬 더 전투력이 뛰어난 법이다.

천마교는 동군을 인간 병기로 쓰기 위해 이들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철저한 규칙과 잔혹한 세뇌로 이들을 관리했다.

그래서 이들은 10여 년의 감옥 생활에도 항상 청결을 유지했고, 머리카락과 손톱도 늘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두변과 기음음 등이 예고 없이 이들 앞에 나타났지만,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대열을 갖춰서 두변 등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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