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24화 (224/648)

224장.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띵.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사무도의 검 끝이 두변의 가슴팍에 닿으면서 맑은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무공 차이가 정말 너무 커서, 두변이 정신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사무도의 검을 피할 방법도 막을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사무도가 계표표의 이사형이니, 차마 정신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두변은 제자리에 서서 사무도의 검 끝이 닿은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관문은 과연 실패한 것일까.

“자네는 성공했다. 이번 관문은 자네의 무공을 검증하는 게 아니라, 자네의 배짱과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나와 무공 실력이 확연히 차이 난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자네는 내 검을 피하긴커녕, 먼저 나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내가 자네를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차치하고 용감하게 나를 공격했으니, 이번 관문은 통과다.”

두변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사실 그는 조금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해 명상했고, 꿈속 세계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확인했었다.

꿈속 예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사무도에게 정신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올라가 봐라. 사부께서 위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다.”

사무도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사형.”

두변이 다시 한번 예를 표한 뒤, 층계를 따라 산을 올랐다.

산꼭대기의 고탑 앞에 도착한 두변은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이제 곧 계청주 대종사를 만나게 되겠지만, 천문 지리를 잘 알고, 뛰어난 문무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로, 계청주가 준비한 네 개의 관문을 순조롭게 통과한 자가 운중사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일지 몹시 두려웠다.

두변은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고 고탑 안으로 들어갔다.

거구의 사내가 뒷짐을 지고 고탑에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계청주인가? 키가 진짜 크네. 거의 2미터 되겠는데. 계표표 누이가 왜 키가 1.8미터 가까이 되는지 알겠다.’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영종오에 비하면, 계청주는 대종사 특유의 패기로 가득 차서, 제 자리에 선 모습이 한 자루 날카로운 검 같기도, 굳건한 태산 같기도 했다.

계청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정오 때, 표표가 집으로 와서 혼담 얘기를 꺼냈다. 한 사내가 곧 와서 혼담을 넣을 거라길래, 내가 이 고탑에서 계속 그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 계청주의 사위가 되려면, 천문 지리를 알고, 문무 재능이 뛰어나야만 한다. 자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걸 증명한 것이니 자네의 신분이 어떻든 상관없다. 자네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비렁뱅이라 할지라도 인품만 손색없다면 아무렴 상관없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대종사의 기개와 품격에 걸맞지 않은가!

거지여도 상관없다라. 그럼 인간말종은요?

두변이 속으로 물었다.

계청주가 이어서 말했다.

“표표 말로는 자네의 이름이 뭔지도, 자네의 얼굴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른다더군. 그런데도 혼례를 치르겠다고 하니, 표표가 참 남다르긴 해. 이제 자네의 이름이 뭔지 알려주겠나?”

두변이 용기를 내서 이름을 말했다.

“저는 운중사라고 합니다.”

그가 이름을 내뱉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두변은 계청주가 몸을 크게 움찔한 걸 똑똑히 보았다.

태산 같던 계청주가 몸을 움찔할 정도이니, 운중사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계청주가 몸을 돌렸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노려보았다.

두변은 드디어 계청주 대종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헉. 왜 이렇게 잘생겼어? 서남 제일 무도 고수가 아니라, 서남 제일 미남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계표표 누이가 그렇게 빼어난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동굴 속이 너무 어두웠던 터라 눈이 아닌 몸으로 계표표의 몸매를 제대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두봉을 벗어라. 네 얼굴을 봐야겠다.”

계청주가 애써 살기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두변이 검은 두봉을 젖히고 두모를 걷었다.

운중사의 사악하고 알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얼굴을 보는 순간, 계청주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를 숨기지 못했다.

‘운중사? 무림에서 악명높은 강간범, 인간말종 운중사? 내 딸이 저런 놈을 골랐단 말이냐? 하늘이시여, 제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리 처참한 벌을 내리시는 겁니까.’

계청주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가 무슨 방법을 썼길래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딸의 마음을 훔친 거지? 게다가 몸까지 섞었다고?’

사실, 계표표는 계청주에게 정확히 이렇게 말했었다.

‘아버지. 제가 그 사내를 덮쳐버렸어요.’

하지만 계청주는 계표표의 말을 애써 믿지 않았다.

‘저놈이 분명히 남들에게 말 못 할 방법을 써서 딸의 몸과 마음을 유혹한 게지.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저놈의 목을 비틀어서 당장 죽여버리고 싶다!’

계청주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일대 대종사이기도 하지만, 딸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계표표는 그의 유일한 자식이자, 그의 모든 희망이고 자랑이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운중사에게 당했다니!

계청주가 아니라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누구나 계청주처럼 눈앞에 있는 두변을 가루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애써 살기를 누르고, 누르던 계청주가 어렵게 입술을 뗐다.

“솔직하게 말해라. 도대체 무슨 술수를 써서 표표의 몸과 마음을 훔친 것이냐.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간 넌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때, 문밖에서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 사숙(師叔). 소목지가 사숙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두변은 청량한 사내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내는 봄처럼 따뜻하고 환한 미소를 가진 미남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계청주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크게 기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는 두변을 향한 분노와 살기를 잠시 넣어둔 뒤, 다급하게 문가로 걸어갔다.

“목지구나!”

계청주의 목소리에서 다정함이 잔뜩 묻어났다.

잠시 후, 계청주가 한 청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엄청난 미남이었다. 아주 상큼하고 청량한 느낌의 미남. 태양이 거의 쟤만 따라다니나 싶을 정도로 후광이 비치는 미남.

계청주가 두 손으로 소목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목지야, 네가 정말 죽지 않았구나. 정말로 다행이다. 사존 어른의 유일한 혈맥인 네가 살아 있었구나. 10여 년 전에 내가 표표를 데리고 너희 집으로 갔었는데, 집이 이미 불에 타서 재가 되었고,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어서 너도 그때 변을 당한 줄 알았다.”

“저는 죽지 않았지만, 제 부모님과 가족들이 모두 북명검파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목지가 비통해하면서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도 괴로운 기색이 없었다.

소목지라는 청년은 계청주의 죽은 스승의 유일한 손자였다. 계청주가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소목지는 계청주의 사존과 몹시 닮아 있었다.

“내가 기필코 그 복수를 해주마. 얘야, 요즘 어떻게 지냈느냐? 앞으로 이곳을 네 집이라고 생각하거라. 그해 사존 어른께서 나를 감옥에서 구해주시고, 내게 이토록 강한 무공을 전수해주셨다. 오늘날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사존 덕분이니, 이곳의 모든 게 다 네 것이라고 생각하거라.”

계청주가 말하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아 참. 넌 표표와 어렸을 때 정혼한 사이 아니더냐. 두 사람 모두 성인이 되었고 표표도 아직 시집가지 않았으니, 네가 온 김에 혼례를 치르자꾸나.”

소목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저도 스무 몇 해 전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숙을 뵈러 왔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역시 나의 사위답구나. 자고로 신부가 신랑보다 세 살 위면, 그 혼인에는 운이 따른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세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봐도 된다.”

계청주로서는 소목지가 하늘이 계씨 가문을 위해 내려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기 딸이 인간말종 운중사에게 시집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어느 모로 보나 운중사보다 소목지가 월등히 뛰어난 사내이지!

아무리 남자 보는 눈이 없는 여인이어도, 이 둘을 놓고 봤을 땐 당연히 소목지를 남편으로 택할 것 아닌가.

게다가 어렸을 적 정혼까지 했었으니, 약속이라면 철저히 지키는 딸 아이가 분명히 소목지와 혼례를 올리겠지!

계청주는 운중사(두변)는 이미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

두변은 옆에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우연인 일이 있을까? 내가 청혼하러 오자마자 십여 년 동안 죽었나 살았나 소식 한번 안 전하던 놈이 여길 왔다고? 20 몇 년 전의 정혼을 왜 지금 와서 지키려고 해? 표표 누이의 혼기를 10년이나 늦췄으면서 이렇게 뻔뻔하게 나타나서 청혼한다고?’

두변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지만, 어느 면에서 봐도 소목지가 운중사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계청주 대종사 옆에 서 있는데도 전혀 기세가 밀리지 않았고, 어딜 가든 태양이 그만을 쫓아다니는 것처럼 후광이 느껴지는 자였다.

소목지와 계표표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잠깐 상상한 두변은 이 둘이 정말 잘 어울리는 미남미녀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소목지는 올해 스물여섯이고, 두변은 아직 열여덟이었다. 어떤 면에서든 운중사보다 소목지가 훨씬 더 계표표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계표표와 혼례를 올리는 건 ‘육맥신검’ 비급 임무의 관건이고, 동창이 백색부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인 만큼, 이대로 계표표를 놓치게 된다면 두변 역시 이 세계에서의 숙명이 끝날 위기에 처한다.

두변은 이번 기회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계 대종사, 설마 따님을 두 사내에게 시집보내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소목지가 조금 놀란 눈치로 두변을 쳐다보고는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운중사 형님?”

‘아씨, 날 알아? 아니지. 운중사를 알아?’

두변은 속으로 땀을 삐질 흘리면서, 혹시라도 정체가 탄로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답례만 했다.

계청주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두변을 흘겨보고는 수하에게 명령했다.

“가서 표표를 불러오너라.”

잠시 뒤, 계표표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계표표의 안색은 창백하면서도 살짝 홍조가 어려 있었다. 아직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변이 계표표의 얼굴을 똑똑히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옥진 군주, 여천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 하지만 관건은 그 아름다움에서 동시에 사내대장부의 기개가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1.8미터에 육박하는 키와 표범같이 순간 폭발력이 뛰어난 허벅지, 그리고 잘록한 허리와 하늘을 향해 솟을 것만 같은 탄력 넘치는 엉덩이까지. 그녀는 정말로 유일무이한 매력을 가진 미인이었다.

만약 동굴 속의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이렇게 훌륭한 여인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을 것이다.

계표표의 세상엔 남자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온 계표표가 가장 먼저 바라본 건 운중사의 모습을 한 두변이었다. 그녀는 흠칫 놀랐다가 의아한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소목지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그가 누군지 알아보고는 계청주처럼 크게 기뻐했다.

“목지 사제! 아직 살아 있었어? 죽지 않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정말 천운이야.”

계표표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소목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계청주가 말했다.

“표표, 네가 어렸을 때 목지와 정혼했던 걸 기억하느냐? 10여 년 전엔 목지가 죽은 줄만 알아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네 적령기도 지났지 않으냐. 이제 목지가 정혼을 지키러 왔으니, 오늘 바로 네 죽마고우와의 혼례를 결정하는 건 어떻겠냐.”

두변은 계표표를 바라보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다.

그녀는 과연, 어렸을 적의 죽마고우이자 갑자기 나타난 초특급 미남 소목지와 혼례를 올릴 것인가, 아니면 무림에서 인간쓰레기로 불리지만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운중사와 혼례를 올릴 것인가.

계표표가 두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 잠깐 날 따라와요.”

계표표가 먼저 문을 나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청주는 계표표의 반응에 만족한 듯했다. 두변을 바라보는 계표표의 표정이 무척이나 차가웠기 때문이다.

두변이 계청주를 향해 예를 올린 뒤, 계표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두 사람은 연달아 몇 층을 올랐고, 고탑의 최고층에 도착했다.

고탑의 최고층이 규수의 방이라니. 여긴 땅에서 무려 30미터가 훌쩍 넘는 높이였다.

“여기서 하는 말은 밑에서 듣지 못해요. 당신은 운중사가 아니잖아요. 예전에 그와 싸운 적이 있어서 알아요. 나이도 어릴 텐데,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 도대체 누구죠?”

계표표가 두 사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두변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내 진짜 신분을 말해버려? 하지만 그럼 내가 환관이라는 게 들켜버리는데. 그리고 동창 백호 두변이 계표표에게 접근한다는 건, 너무 의도가 분명하게 보이잖아!’

두변이 고민하는 걸 눈치챈 계표표가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난 진실만을 믿고, 당신의 말을 믿어요.”

두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

“저는 백색부 동창 시백호 두변입니다.”

두변이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서 작게 말했다.

환관 주제에 청혼이라니!

두변은 자신의 대답을 들은 계표표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안쪽에 있던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여인 하나가 걸어나왔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든 두변은 그 여인을 발견하고는 두피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소름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혈관음?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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