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장. 막씨 토사의 보물
두변이 흠칫 놀랐다.
‘남편이 부인한테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보면 막씨 토사가 반역을 일으켰을 때 최고 지휘자가 감타이긴 했지.’
두변이 물었다.
“감타가 일부러 어르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어르신을 이곳에 감금한 겁니까?”
“그래. 감타는 내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알기에 평생토록 나를 미워했지. 그리고 나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대권을 독식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반역을 일으켰던 주된 이유도 막씨를 감씨로 바꾸기 위함이었고.”
“그런데 감타는 몇 년 전에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그때쯤이면 이미 야심이고 뭐고 다 사라졌을 때인데, 왜 어르신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두변이 묻자, 흡혈 괴인의 눈빛에 갑자기 살기가 일었다.
“그 찢어 죽일 놈이 죽을 때, 우리 막씨 토사 전체를 함께 순장했어. 그놈이 나를 죽이지 않은 건, 몇백 년 동안 가보로 전해져 내려온 막씨 토사의 보물을 얻기 위함이었지.”
“어떤 보물입니까?”
“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 그 보물은 막씨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온 보물이고, 막씨 토사 전체의 가산과도 맞바꿀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라는 것 말고는. 조상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막씨 가문이 절멸의 길로 가게 되었을 때만 그 보물을 열어볼 수 있다고 했고, 그 보물을 열게 되면 막씨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는군.”
순간, 두변의 호기심이 싹트고 말았다.
막씨 토사의 보물이 도대체 뭐지?
뭐길래 그렇게 신비로운 데다 절멸의 길로 향하는 가문을 한 번에 일으킬 수 있다는 거야?
막씨 토사의 조상은 다른 토사에 비해 신분이 특별했다.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막씨 가문은 안남 왕국의 왕실로서 백여 년 동안 안남의 강산을 손에 쥐었었다. 하지만 후대에 여러 대의 잔학한 혼군들이 나라를 말아먹는 바람에 그 땅은 현재 여씨 가문의 땅이 되었다.
막씨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안남 왕국의 최북부로 도망쳤고, 그들은 척박한 북쪽 땅을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훗날 대녕 제국이 중원 지역을 통일하게 되면서 대녕 제국에게 충성을 바치는 토사가 된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막씨 토사의 보물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은보화일 거라는 말도 있었고, 비밀 병기나 금으로 만든 갑옷과 무기일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막씨 토사의 보물 중 하나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절대 무공 비급이라고 추측했다.
어찌 됐든, 막씨 조상의 유언에 따르면 막씨 가문의 보물을 꼭 가세가 기울어서 절멸의 길로 치달았을 때만 열어야 하고, 그 보물을 열게 되면 필시 막씨 가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여씨 토사가 막영을 여태 살려놓고, 그녀에게 수시로 산 사람을 먹이로 던져준 이유가 바로 막씨 가문의 보물 때문이었다.
“아사가 죽었다고 하니, 나도 이 세상에 더 살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막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막영이 죽는다면 막씨 토사의 보물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될 것이고, 막씨 가문은 이대로 재기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아직 남아있는 막씨 가문 사람이 있을까?”
막영이 물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막씨 가문이 학살당할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밀리에 도망쳐서 민간에 숨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색부에도 막씨 가문의 옛 세력이 활동하고 있고, 암암리에 지하 파벌인 잔혈방(殘血幇)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막영이 두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다가 말했다.
“견사는 내가 평생토록 사랑했던 사람이자 내 일생의 유일한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람을 잘 알아.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지. 얘야, 견사가 너를 계승자로 고른 데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너를 믿어보려고 하는데, 너는 믿을 만한 사람이냐.”
두변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렵게 대답했다.
“예, 아마도요.”
두변은 거짓말할 땐 얼굴에 철판을 깔고 큰소리까지 치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을 할 땐 사람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곤 한다.
막영이 두변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얘야, 역시 너는 믿을 만한 사람이구나.”
두변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막영을 바라보았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나를 믿는다고요.’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처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을 할 땐 확실한 어조로 말을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땐 도리어 호언장담을 하지.”
막영이 다 내려놓은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겐 다른 선택권이 없기도 해. 난 곧 죽을 텐데, 막씨 가문의 보물을 이대로 지하 세계로 가져가서 막씨 가문이 다시 일어날 희망을 없애버릴 순 없지. 그래서 나는 너를 믿기로 결심했다. 얘야, 나는 이제 막씨 가문의 보물을 네게 알려주려고 한다. 막씨 가문의 마지막 희망을 부탁하마.”
“제가 어떤 맹세 같은 걸 할까요?”
막영이 힘 빠진 웃음을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바로 맹세니까.”
막영이 두변을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멸혼루(滅魂樓)라는 곳으로 가서, 아야(阿野)라는 사람을 찾아라. 반지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 돼. 그 반지는 막씨 가주의 영계(令戒: 표식 반지)이자, 이백 년 전 안남 막씨 국왕이 대대로 물려준 국왕 영계이다. 그건 내 남편과 여여해가 꿈에서도 원하던 것이야. 그 반지 안에 막씨 보물의 비밀이 숨겨져 있고, 막씨 가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이 깃들어 있다.”
두변이 물었다.
“가자마자 반지를 달라고만 하면 되나요? 어떤 비밀 구령도 없이?”
“구령은 ‘아야, 네가 열한 살 때 침상에 오줌을 쌌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이다.”
‘구령 한 번 끝내주네. 오직 두 사람만이 알 법한 비밀 암호이기도 하네.’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기억했느냐?”
막영이 물었다.
“기억했습니다.”
“그럼 이제 막씨 가문의 보물과 미래를 모두 네게 맡기마.”
막영이 고개를 끄덕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내 두 손, 두 발이 잘렸지만, 내 단전에는 종사급 내력이 아직 존재한다. 나는 단전 안에 있는 내력을 소진해야만 죽을 수 있다. 내 내력을 네게 줄 테니, 네가 빨아들일 수 있는 만큼 빨아들이거라.”
두변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흡혈 괴인이자, 마지막 막씨 토사였던 종사급 고수 막영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막영의 몸이 미세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단전 안에 잘 보존되어 있던 가장 순수한 내력이 도도한 강물처럼 쏟아져나왔다.
두변은 다급히 구양진경을 시전했다.
단전 안의 현기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면서 막영이 흘려보낸 내력을 광적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키고.
막영이 쏟아내는 내력의 밀도와 수준이 너무 높았는지, 두변의 피부가 조금씩 갈라졌고 그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올 정도였다.
콰광!
이내, 두변의 단전 안에 있던 내력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내력 수준이 한 단계를 돌파했다.
그 사이에도 두변은 구양진경을 통해 미친 듯이 막영의 내력 현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내력 현기가 두변의 단전 안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었고, 그의 내력 수준이 미친 속도로 상승했다.
그때, 두변의 뇌리에서 기이한 불빛이 나타났다.
- 긴급 임무를 시작한다. 계청주의 딸 계표표를 구하라.
- 45분 이내에 계표표의 목숨을 구해야 하며, 시간을 초과할 경우 계표표는 정절과 목숨을 잃게 되며 육맥신검 비급 임무와 백색부 정복 임무가 실패 종료처리 된다.
- 임무 성공 시 포상: 백색부 제일 미인, 신규 무도 종사 계표표가 숙주 두변에 대한 호감도 50 증가. 계표표와 혼례를 올리는 임무 진행률 50퍼센트로 상승. 육맥신검 비급 임무 진행률 30퍼센트로 상승.
- 계표표를 구하는 임무를 실패할 경우, 두변의 숙명이 실패처리 되어 영원히 종료된다.
두변이 깜짝 놀라서 역정을 냈다.
“그 얘기를 무슨 이럴 때 해요? 좀 미리미리 알려주면 어디 덧납니까?”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 이 세계는 우리가 제어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일들은 우연히,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다. 계표표는 지금 이곳에서 몇만 미터 떨어진 신비한 동굴 속에 있다. 막영 토사의 내력 현기를 마저 빨아들여라. 몇 분 후면 그 과정이 끝날 것이다. 내력을 모두 흡수한 뒤에 네 무공 수준을 최대치로 향상하고 계표표를 구하러 가라. 서둘러야 한다. 어서!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작스럽게 다시 두변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흡혈 괴인, 종사급 무도 강자 막영 토사는 끝까지 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두변은 구양진경을 통해 그녀가 내뿜는 현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1분, 2분, 3분이 지나고.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막영 토사가 말했다.
“얘야. 우리 막씨 가문의 미래가 네 손에 달려있다. 이것도 인연이니, 막씨의 후손들을 잘 좀 돌봐줘라.”
막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몸이 산산조각 났고, 단전은 완전히 파열되었다.
막영의 단전이 파열되면서 마지막 현기가 모두 공중으로 흩어졌다.
두변은 허공에 뜬 막영의 내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빨아들였고, 그렇게 2분을 더 빨아들인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두변은 곧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눈을 감고 내력 돌파를 시작했다.
쾅. 쾅. 콰과광.
단전 안의 현기가 수차례 폭발하면서 그의 무도 수준이 순차적으로 올라갔다.
7품 중등, 7품 상등, 6품 하등.
그의 마지막 무도 수준 돌파는 6품 하등이었다.
두변은 구양진경 덕에 막영이 내뿜는 내력을 쉬지 않고 빨아들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겨우 몇 분 만에 무도 수준을 3급이나 올린 것이다.
영설 공주 같은 절대 천재도 7품 무사에서 6품 무사가 되기까지 최소 1년이 걸렸다. 당엄도 만만치 않지만, 그는 7품 무사에서 6품이 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하지만 두변은 무도 품급이 급상승한 기쁨을 만끽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무도 품급 돌파를 끝내고 근맥과 단전을 개조한 후, 막영이 묶여 있던 쇠사슬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막영 어르신, 제가 꼭 막씨 가문의 생존자를 보호하겠습니다. 그리고 막씨 가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제가 잘 이끌어보겠습니다.”
두변의 머릿속에서 기이한 불빛이 나타났다.
- 흡혈 괴인 임무 성공. 십만 대군 활성화 첫 개시 성공.
- 막씨 가주의 영계 임무 획득. 막씨 가문의 신비한 보물 임무 개시.
- 숙주 두변의 무도 수준 6품 돌파.
- 계표표를 구하라 임무 시작.
두변은 재빨리 명상 상태로 돌입해서 꿈속 세계와 교류했다.
“제가 언제쯤이면 명상 없이 꿈속 세계와 교류할 수 있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 아직은 정신력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 정신력이 70 이상이 될 경우, 언제든 나와 교류할 수 있다.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계표표는 정확히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알려주세요.”
- 2.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네가 갈 동굴은 미로와도 같은 곳이라,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다. 계표표가 있는 곳까지 정확한 최단 경로의 도안을 네 머릿속에 각인시켜주겠다.
두변의 머릿속에 최단 경로 도안이 나타났다.
- 임무 시작. 시간제한 38분. 카운트다운 시작!
두변은 눈을 뜨고 머릿속에 표시된 최단 코스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갔다.
동굴은 미로처럼 복잡해서, 꿈속 세계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조건 이곳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동굴에는 절벽, 물웅덩이, 낭떠러지가 도처에 있어서 꿈속 세계가 아니었다면 두변은 아마 몇 날 며칠을 써도 계표표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두변은 모든 생각을 뒤로하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 35분.
25분.
15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