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장. 동실조과
두염은 두변이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게 몹시 언짢아 보였다.
두변이 그렇다는 의미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두염이 말했다.
“내가 현령에 부임하기 위해서 백색부로 가는 것이다 보니, 박식한 막료와 대유(大儒: 대학자) 문객을 많이 데려왔다. 여기서 즉흥적으로 주제 하나를 가지고 시 한 수를 짓고, 그들에게 평가를 맡기는 건 어떠냐? 시를 더 잘 지은 사람이 여기서 묵을 수 있고, 진 사람은 이곳에서 꺼지는 것으로. 어때?”
“좋습니다! 아주 좋은 제안이십니다!”
“역시 고야(姑爷: 처가에서 사위를 부르는 말)께서는 남다르십니다!”
방씨 가문의 막료와 문객들이 마차에서 내려와 손뼉을 치면서 두염의 말에 호응했다.
“엄당을 상대하는 데도 품격을 잃지 않으시다니요. 고야께서는 황제 폐하께서도 칭찬하시는 시문 능력을 타고나셨지 않습니까. 고야께서 즉흥으로 짓는 시를 듣게 될 수 있다니, 오늘 저희가 복 받았습니다.”
두변이 피식 웃었다.
“좋지. 이긴 남자는 방에서 자고 진 ‘남자’는 꺼지는 거야.”
두변은 일부러 ‘사람’이 아니라 ‘남자’라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두염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두염이 부인 방청의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 부인이 문제를 내보겠소.”
방청의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 사람은 원래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형제인데, 지금은 서로 눈도 마주치기 싫어하는 원수가 되었네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죠. 동실조과(同室操戈: 같은 집안에서 창을 잡다, 집안 싸움, 형제 싸움)를 주제로 시를 한 수 지어봐요. 싸움에서 진 사람은 깔끔하게 이곳을 떠나기로 하고요.”
두변이 주제를 듣고 흠칫 놀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제 발로 찾아와서 따귀를 맞겠다는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시겠다? 내가 져 주고 싶어도 져 줄 수가 없네.’
두염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먼저 하겠소.
산새가 떠날 때, 떠나지 못하고 산을 빙빙 돌며 구슬피 우는 것을 들어보라.
전(田)씨 가문 세 형제가 분가를 결정했을 때,
푸르디푸르던 정원의 박태기나무가 시들어 버렸네.
그러나 그들이 다시 분가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시들었던 화초와 박태기나무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네.
같은 곳에 뿌리를 둔 나무이거늘,
동쪽을 향해 나는 가지는 초췌했고,
서쪽을 향해 나는 가지는 무성했다.
나무조차 이러한데,
어찌 같은 하늘에서 공존하지 못하는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처럼
서로 투쟁하며 살아가려 하는가.”
(삼성參星은 동쪽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에 있어 각각 황혼 녘과 새벽녘에 뜨기에 서로 만날 수 없음.)
두염의 시를 듣자, 방청의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두염이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내뿜을 때가 가장 멋있어 보였다.
‘이래야 내 부군이지!’
방씨 가문의 대유 문객들이 쾌재를 외치면서 환호했다.
“정말로 잘 지은 시입니다!”
“두 고야처럼 뛰어난 시문 재능을 가진 자는 대녕 제국에 몇 명 없을 것이외다!”
“우리가 평생을 글에 파묻혀 살았다만, 그럼에도 두 고야 같은 재능이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그려.”
놀란 건 두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복동생 두염의 재능이 이렇게나 출중할지 알지 못했다. 두변은 두씨 가문이 손쉽게 자기를 버리고 두염을 선택한 이유와 방씨 가문이 두염이 서출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한 이유를 이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두염이 서출임에도 방청의를 시집 보냈을까.
‘시를 구상한 시간이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저런 시를 만들어 내다니. 사람들이 저놈을 인정할 만하네. 저런 우월감은 천재적인 재능에서 나온 거였어.’
두염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제 네 차례다. 아,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내가 마차에 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도 되지. 반 시진이면 되나?”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나도 ‘동실조과’를 한 수 지었는데, 잘 들어봐.”
두염이 귀를 쫑긋 세웠다.
방청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한 손으로 치마를 살짝 쥔 채 두변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두변은 깊이 심호흡한 뒤, 비장한 어조로 시를 읊었다.
“콩을 삶아 국을 만들고
콩국을 걸러 즙을 만들려는데.
콩대는 솥 아래서 불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본래 한 뿌리서 태어났거늘
어찌 그리 급하게 닦달하는가.”
(자두지작갱煮豆持作羹
녹시이위즙漉豉以爲汁;
기향부하연萁向釜下然
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
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
상전하태급上煎何太急
- 한漢 말,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인 조비曹丕가 한나라 헌제獻帝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자신을 위문제魏文帝로 칭하였다. 이로써 그는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개국 황제가 되었다.
조비의 동생인 조식曹植은 글재주가 뛰어나 열 살이 되던 해에 이미 시부詩賦를 읊고 쓸 줄 알았다. 조조는 생전에 조식을 특히 총애하였다. 하지만 조비는 그를 시기하여 황제가 된 후에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조식을 괴롭혔다.
한번은 조비가 조식에게 말했다.
“듣자 하니 네가 시를 쓰는 능력이 비상하다는데 정작 나는 아직 본 적이 없구나. 지금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한 수 지어보도록 해라. 만약 짓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속인 죄로 다스릴 것이다.”
이 시는 조식이 일곱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지은 시이다.)
두변이 시를 다 읊자, 역참 앞에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고, 준수한 두염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었다가 창백해졌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고 이복형제인 두변을 바라보았다.
줄곧 고개를 숙이고 두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방청의도 놀란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열댓 명의 방씨 가문 막료들도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문장에는 으뜸이 없다고 하고, 우수한 시끼리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법이다. 하지만 어떤 시들은 그런 평가의 잣대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훌륭하다.
두염이 지은 시도 훌륭했지만, 두변(사실은 조식이지만)이 지은 시 앞에서는 두염의 시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두변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청의 누이, 제가 지은 시는 어떱니까? 누이의 부군 것과 비교했을 때는요?”
방청의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껴안고 있던 두염의 팔을 풀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까지 걸어간 방청의를 보면서, 두염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그대로 서 있었다.
“거기 서서 뭐해요? 또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
방청의가 소리치자 두염은 그제야 발걸음을 옮겼다. 두변이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면서 목청을 높였다.
“청의 누이, 벌써 가려고요? 역참이 이렇게나 큰데, 같이 들어와서 하룻밤 묵는 건 어때요? 제가 조금 전에 분명히 진 사람이 아니라, 진 남자들만 꺼지라고 했는데 누이 같은 미인은 역참에서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려야죠.”
방청의가 이를 부득 갈면서 자기 남편인 두염을 한 번 흘겨보고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두변이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더 큰소리로 외쳤다.
“청의 누이, 제가 실은 어떤 면에서든 다 두염 아우보다 낫거든요? 못 믿겠으면 이 자리에서 한 번 꺼내 볼까요? 나중에 외도하고 싶거든, 잊지 말고 꼭 나를 찾아와야 합니다!”
마차에 오른 방청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좀전의 우아한 자태는 벗어 버리고 검을 꺼내서 마차 안의 물건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한바탕 깨부수고 나서야 방청의는 씩씩대면서 검을 내던졌다.
방청의는 지금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의 남편 두염은 준수한 용모에 재능까지 출중했고 무공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뭔가 모자란 기분이었다.
자기가 평생 무시해오던 두변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시를 지어내서 두염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놓고, 뒤이어 무뢰배처럼 저속한 말로 자신을 희롱했다.
방청의는 기이하기도, 복잡하기도 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자리에 앉았다.
역참에서 하룻밤을 보낸 두변 일행은 계속해서 갈 길을 재촉했고, 오후가 될 무렵에 백색부에 도착했다.
‘여기가 백색성?’
백색성 안으로 들어간 두변이 놀란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색성은 계림과 남녕부만큼 무척 번화한 곳이었다.
이곳의 거리거리에서 그야말로 금과 은 냄새가 났고, 사람들은 안거낙업(安居樂業)하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게다가 어딜 봐도 혼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모든 게 질서정연하기만 했다.
두변은 ‘백색부는 겉으로 보기에 잠잠한 호수 같지만, 사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엄청난 지하 세계를 가진 곳’이라는 좌앙의 말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서 현직 지부, 현직 지현, 그리고 동창 천호 등이 원인 불명으로 죽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곳의 저수지 도랑은 일정 기간에 한 번씩 꼭 청소를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죽어간 수많은 시신이 저수지 바닥을 가득 메운다나.
두변은 백색성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지켜보는 수백 쌍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백색부에 들어온 이상, 여씨 토사가 동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이제 두변은 이곳에서 나체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비밀을 가질 수 없었다.
얼마간을 걸어가서 어느 뜰 앞에서 멈춰선 두변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곳이 동창 천호소라고? 그럼 백호의 사무 관사도 바로 여기라는 뜻인데?
계림부, 오주부 동창 천호소는 아주 화려하고 으리으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동창의 위엄과 위풍을 느낄 수 있었다. 각 관사는 최소 몇십 묘 이상의 부지를 차지했고, 적어도 십여 명의 무사가 무장한 채 자리를 지키며 당직을 섰다.
하지만 누가 봐도 삼엄함과 위엄이 느껴져야 할 백색부 동창 천호소는 거의 폐허가 되기 직전이었다.
당직을 서는 무사는 당연히 없었고, 문 앞에는 거지 수십 명이 햇볕을 쬐면서 이를 잡고 있었다.
두변이 놀란 표정으로 문 앞에서 얼어 있는 걸 보자, 문을 막고 앉아 있던 나이 든 거지 하나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를 흘깃 쳐다보고는 손에 잡힌 이를 입안에 던져 넣고 우물거렸다.
‘닭고기 맛이 나네. 아주 바삭하니 맛있어!’
늙은 거지가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두변이 거지들을 무시하고 천호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천호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호는? 동창 번자(番子: 동창 하급 관리)는? 나머지 백호 두 명은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백색부 동창 천호소가 열악하다고 해도 수십 명의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지?’
두변이 외쳤다.
“다들 어디 있지?”
텅 빈 관저 안에서는 두변의 목소리만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장 천호.”
“임(任) 백호!”
두변이 연이어 외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屠) 백호!”
두변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외쳤다.
이때, 조금 전에 두변의 길을 막고 앉아 있던 늙은 거지가 이를 잡아먹던 손을 치켜들었다. 그새 그 이를 다 먹었을 텐데도 여전히 되새김질하면서.
“여기요! 여기!”
두변은 너무 놀라서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를 잡아서 먹는 저 늙은 거지가 백색부 동창 백호 도천리(屠千里)라고? 무공이 강하기로 소문난 연로한 동창의 영웅?’
두변이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그, 그럼 동창의 무사나 번자는 어디 있습니까?”
늙은 거지가 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거지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다 여기 있잖소. 총기 세 명, 그리고 소기(小旗) 열 명.”
두변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백색부 동창 천호소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지경으로 참혹할 줄이야.
천호소의 백호부터 총기까지, 총기부터 소기, 번자까지 다 거지가 되어 있었다.
동창 백호는 6품 관리이고 총기는 7품 관리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품, 7품 관리 정도라면 죄인의 생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고, 어딜 가나 위엄이 따르는 품급이다. 품위 유지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이나 잡아먹는 거지가 되어 있다니.
두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쩌다 이렇게.”
도 백호가 대답했다.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사람은 투항해서 여씨 토사가 지어준 천호소에서 지내고 있소. 이도전의 천도회와 함께 합친 게지. 우리는 투항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들도 우리를 죽이진 않더군. 하지만 백색부 안에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구하지 못하고, 병을 치료할 약도, 그 무엇도 살 수가 없게 되었소. 은자가 있는데도 말이오. 그쪽에서 말하기를, 여기 천호소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처럼 문 앞에서 평생 구걸하면서 살던가, 백색부에서 꺼지던가 하라고 했소.”
늙은 거지 차림의 도 백호가 이 한 마리를 또 찾아내서 입 안으로 넣었다.
그는 맛있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빨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당연히 투항하지 않고 천호소를 지킨다고 했지. 투항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탈영병이 되는 건 또 싫으니,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렁뱅이가 되어야지 않겠소? 해보니까 환관이 거지가 되는 게 그렇게 창피한 일은 아니더라고.”
도 백호에게 경외심이 일어난 두변은 커다란 전병을 꺼내서 공경한 태도로 그에게 건넸다.
“새로 부임한 시백호 두변 맞소?”
도 백호가 커다란 전병을 열 몇 조각으로 나눠서 주위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에게 나눠줬다.
“맞습니다. 전병을 많이 가져왔으니, 다들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