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06화 (206/648)

206장. 무식한 건지, 멍청한 건지

종정이 말했다.

“여봐라. 지금 당장 가서 두 사람을 조사해라. 저 두 관리가 뇌물을 받거나 부당한 일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찾게 되면, 그 즉시 저 둘을 감금하고 광서 순무 대인께 아뢰거라.”

“알겠습니다!”

동창 기마병 한 무리가 대답한 뒤, 오주부와 몽산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여경사 천호가 당황한 기색으로 계왕에게 말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관도 몽산현과 오주부가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제국의 율법에 따르면, 문관을 감시하는 권한은 저희 여경사의 권한이 동창의 권한보다 더 큽니다.”

여경사 천호는 정말로 몽산 현령과 오주 지부를 조사하려는 게 아니라, 이 일을 빌미로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여경사 천호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관에게는 문관 감시를 하는 임무가 있는지라,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경사 천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 위로 몸을 날렸다.

“무엄하다!”

두변이 소리쳤다.

“조정의 번왕께서 자리에 계시거늘, 어찌 먼저 자리를 떠난다는 말이냐. 친왕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안건을 더 중요시한단 말이냐? 여경사 천호! 넌 지금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이냐? 감히 직무를 태만히 한다면, 내 지금 당장 왕야의 명령을 받아 천호의 관복을 벗길 것이다.

네가 문관의 주구를 너무 오래해서, 여경사의 제1 임무가 황실 호위라는 것도 잊었느냐!”

이어서 두변이 명령했다.

“여봐라, 당장 여경사 천호를 막아라. 저자가 이곳을 한 발자국이라도 떠났다가는 조정 번왕의 안위를 무시하여 직무 태만한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천호 관직을 박탈한다. 저자가 반항했다가는 왕야의 명령을 무시한 죄로 즉살하라.”

여경사의 전신은 금의위(錦衣衛)으로, 대녕 제국 태조가 친히 명령을 내려서 만든 친위병이었다. 그들의 제1 임무는 황제와 황실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다음 임무가 문무백관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태조가 퇴위한 뒤 문무 집단이 공모하여 황권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금의위는 여경사와 현무위(玄武衛)로 나뉘었다.

내각이 여경사의 지휘권을 가져가고, 무장이 현무위의 지휘권을 가져가면서, 문무 집단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꼴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여경사의 제1 임무가 황실을 호위하는 것이라는 걸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이 점을 기억하고 있던 두변이 여경사의 제1 임무를 들먹이면서 여경사 천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삼과 이사가 대답한 뒤, 곧장 여경사 천호를 말에서 끌어 내렸다.

이삼이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천호 대인, 아무래도 왕야의 안위를 지키는 게 더 급선무이지요. 이런 사사로운 안건은 수하에게 맡기시지요.”

이삼이 여경사 천호를 제압할 때 이미 검을 뽑은 상태인지라, 여경사 천호는 이를 부득 갈면서도 그에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동창과 계왕이 완벽하게 협력하면서 이 싸움에서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포정사 두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계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왕야, 송구합니다. 하관이 술에 취하여 늦게 왔습니다.”

두강은 분명히 근처에서 이 모든 걸 다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기세가 완전히 기운 걸 확인한 뒤에야 상황을 수습하려고 모습을 드러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두강은 계왕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큰소리로 말했다.

“순무 대인께서 계시지 않으니 하관이 포정사의 권한으로 이번 안건을 판결하겠습니다. 조정의 율법에 따라 양민의 부녀자를 추행하다 미수한 경우 태형 오십 대, 감금 1년의 형에 처합니다. 하지만 두평아는 저희 두씨 가문 가노의 여식이고, 노비 문서가 여전히 저희 가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여 두우의 처벌을 절반으로 줄여서 태형 스물다섯 대, 감금 반 년의 벌을 주겠습니다.”

두강이 공손하게 계왕에게 예를 표한 뒤,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범인 두우에게 태형 스물다섯 대를 쳐라.”

두강의 부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쳤다.

“두강! 당신 미쳤어요?”

두 사부인은 어딜 가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다녔고, 남편 두강 앞에서도 똑같이 오만한 태도를 일관해왔다. 주위에 누가 있든, 두강이 아들에게 태형을 벌한다고 하자 곧바로 호통을 치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찰싹.

두강이 두 사부인의 따귀를 올려쳤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두 사부인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왕야 앞에서 여편네가 어딜 감히!”

두강이 강씨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

그리고는 계왕을 향해 공손하게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왕야, 하관의 처가 아둔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두강은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수하들을 보면서 목청을 높였다.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태형 스물다섯 대를 치거라.”

건장한 시종 몇 명이 흠칫 놀랐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두우를 붙잡고 바닥에 고정했다.

짝, 짝, 짝.

시종이 사정없이 두우에게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우가 울부짖으면서 시끄럽게 반항했지만, 나중에는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아파서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두우의 피부가 찢어져 옷이 온통 붉게 물들었지만, 두강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공손하게 계왕에게 말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나 두변은 저희 두씨 가문의 적자입니다. 두변을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숙부의 자격으로 잠시 사담을 나누고 와도 괜찮을지요?”

두강이 예를 갖추는 만큼 계왕도 예를 갖춰서 말했다.

“포정사 편의대로 하시오.”

두변과 두강은 계왕을 향해 예를 표한 뒤, 뒷걸음질로 십여 미터 물러난 뒤에야 허리를 펴고 걸었다.

두 사람 모두 계왕에 대한 예의에 조금도 소홀한 점이 없었다.

두강이 오씨 장원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두강이 한참 동안 두변을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두헌,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느냐.”

두헌이라는 이름이 몹시 낯설었다. 두변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 이름이 경성 두씨 가문에 살 적의 이름이라는 걸 기억했다.

두변이 활짝 웃으면서 되물었다.

“두 대인,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두강이 대답했다.

“나도 네가 네 부친과 우리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안다. 네가 유배당한 것도 우리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 방씨 가문의 협박에 못 이겨서 그렇게 한 것이야. 특히 네 정혼녀였던 방청의가 천생 고자의 부인이라는 말을 듣는 게 싫다고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협박했었다. 그래서 네 부친이 하는 수없이 너를 보낸 게지.”

두변이 냉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유배요? 두 대인은 기억을 너무 미화한 것 아닙니까. 당신들은 내가 굶어 죽길 바라는 마음에 나를 무인도에 버린 겁니다. 내 유모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죠. 듣기로는 경성에서 이미 내 장례식까지 치렀다던데요.”

두강이 탄식했다.

“그만하자꾸나.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두자꾸나. 사람은 미래를 봐야 한다. 네가 보기엔 엄당의 미래가 어떠하냐.”

두변이 대답하지 않자, 두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의부 이문회가 아주 대단한 인물인 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엄당에서 이문회 같은 위인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그리고 이문회가 이번에 목숨을 건진 것도 고정 총독 대인의 덕이 크고, 동창 대도독 이연정이 퇴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두변, 이 일련의 일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냐?”

두변이 두강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됩니다. 어제의 일이 오늘 일이 되기도 내일의 일이 되기도 하죠. 이번 같은 일은 역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잖습니까.

태조께서 황실을 호위하고 문무백관을 감독하라고 금의위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문관, 무장이 금의위를 두 갈래로 찢어서 여경사와 현무위의 지휘권까지 뺏어갔지요.

백 년 전, 금의위 대도독이 당시 홍성제(弘成帝)의 유모의 아들이었는데, 당신들이 간악한 수법으로 그를 몰아내고, 금의위 대도독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앉혔지요. 그리고 마지막 대도독은 꼭 누구의 말을 듣는 꼭두각시처럼 15년이 되던 해에 순순히 금의위를 두 기관으로 찢었고요.”

두강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똑똑하구나. 이런 게 바로 음모가 아니라 양모(陽謀)라는 것이다. 금의위가 찢어지듯이 동창도 결국엔 찢어지게 될 것이다. 엄당은 결국 이빨과 발톱이 빠진 개가 될 것이고,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노비 집단으로 전락하겠지.”

두강이 말한 엄당의 미래는 이미 다른 지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숭정제(崇禎帝: 명나라 마지막 황제)가 제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엄당을 없앤 것이었다.

당시 문무백관이 숭정제를 성군이라 칭송했지만, 숭정제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았다. 손승종 같은 유능한 충신이 있긴 했지만, 가장 날카로운 무기를 잃게 된 것이다.

명나라 때는 황제가 대의를 명목으로 마음껏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숭정제가 대신들을 죽이고 또 죽였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이미 기울어진 권력은 바로 세울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대녕 제국의 황제는 가슴 아프게도 마음대로 대신들을 죽일 권력조차 없었다. 황제라 해도 2품 이상의 관리를 사형에 처하지도 못했으니, 황권이 바닥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셈이다.

만약 지금의 두변이 이 지구에 없었다면, 동창은 아마 두강의 말대로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것이다.

두강이 말했다.

“엄당이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잃게 된다면, 네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쓰일 곳이 없지 않겠느냐.”

두변은 여전히 냉소를 지을 뿐 말이 없었다.

두강이 그를 다독이듯이 말했다.

“가문으로 돌아오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을까 봐 걱정이냐. 두염은 열일곱에 진사에 합격해서 한림원에서 1년을 보냈고, 지금은 현령이 되어 백색부로 갈 것이다. 방청의와 혼례를 올렸으니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하겠지. 그러니 두염이 네게서 뺏어간 걸 네가 다시 가져올 순 없다. 네 부친에게서 네가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을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게 그 기회가 없진 않다.”

두변은 경악했다.

내 삶을 날로 먹은 두염이 백색부로 가서 현령을 한다고? 방씨 세력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거지? 두씨 가문은 또 무슨 생각이고? 이들이 하려는 건 도대체 뭐지?

두강은 두변의 표정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내게는 아들이 셋 있는데, 두 명은 그저 그런 놈들이다. 제일 어린 두우는 네가 봤다시피 평생 철들지 않을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야. 내게는 특출난 아들놈이 하나도 없고, 내가 네 넷째 숙부이기도 하니 너를 내 아들로 받아들이마. 내가 전력을 다해서 너를 밀어주고, 네게 맞는 짝을 찾아주겠다. 네가 아이를 낳지 못해도 괜찮다. 두우가 쓸모없는 놈이긴 해도 아이를 낳는 데엔 문제가 없으니까. 나중에 그놈이 낳은 아들 중 제일 괜찮은아이를 데려와서 네 의자로 삼고, 네 후대를 남기거라.”

두변은 다시 놀라고 말았다. 두강이 자신에게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할 줄이야.

두강이 말했다.

“사람이 넓은 도량으로 세상을 살아야지, 과거 원한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미래를 생각하고, 네 앞길을 생각해라. 엄당에는 네 앞길이 없다. 네겐 창창한 앞날이 있겠지만, 파멸이 정해진 엄당에서는 그 앞날이 없다는 뜻이다.”

두변이 두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 대인께서 이런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앞날을 묻지 말고, 초심을 잊지 말라.(莫問前程, 不忘初心)’는 말 말입니다. 엄당이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제가 엄당이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낼 겁니다.”

두강이 흠칫 놀랐다가 이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변을 비웃었고, 그의 눈빛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진중함이 걷혔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는 말이 아닌가. 무식한 건지, 멍청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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