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05화 (205/648)

205장. 두강의 제안

예상치도 못한 계왕의 출현에 오주 지부와 오주 참장은 놀라서 자지러질 지경이었다.

조정 번왕인 계왕은 평소에 무척 조용하고 신중해서 어디에 얼굴을 잘 비추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왕부 안에서만 지냈고, 가끔 뒷산에 가서 사냥하는 것 말고는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일부 특수한 황가 행사 말고는 오주성에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중대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백성을 위로해줄 때 빼고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왕 전하의 존재는 차차 잊히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절에서 모시는 보살 정도로 취급했다. 가끔가다 한 번 보게 되면 무릎을 꿇고 절 한 번 하는 게 다지, 평소엔 그의 존재를 아예 잊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계왕이 엄당의 환관 한 명 때문에 밤을 뚫고 나선 것이다.

이곳은 오주의 땅인지라, 명목상으로는 계왕의 봉지였다. 봉지의 번왕이 나타났으니 모두가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계왕이 말에 탄 채 오주 지부와 오주 참장 앞으로 다가갔다.

“오주부가 무슨 일로 이렇게 일천 병력을 대동하게 되었는가? 설마 오주부에 반역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오주 지부가 엎드린 몸을 더욱 낮추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왕야께 아룁니다. 하관은 간악한 백성이 동창의 일원으로 위장하여 조정 관료의 가족을 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력을 동원하여 이리로 온 것입니다. 조정 관료의 가족을 보호하고, 간사한 백성을 국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휘익!

계왕이 손에 쥐고 있던 채찍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오주 지부의 손등이 터졌다.

계왕이 차갑게 말했다.

“거짓을 고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거라. 본왕이 바보인가?”

오주 지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던 찰나, 계왕이 또 채찍을 매섭게 후려쳤다.

계왕이 제국의 주군은 아니지만, 봉지에서는 주군을 대표했다. 조정의 관리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건 주군을 기만하는 것이니, 계왕이 오주 지부를 산 채로 때려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짝, 짝, 짝!

계왕이 쉬지 않고 채찍질하자, 오주 지부의 피부가 찢기고 터지면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신, 잘못했습니다.”

오주 지부가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계왕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는 아파서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진심으로 계왕이 무서워졌다. 마냥 보살인 줄만 알았던 계왕이 한 번 화가 나면 이토록 무서워지는 사람인 줄 몰랐고, 얼른 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이대로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계왕이 이번에는 오주 참장에게 앞으로 다가갔다.

“오주 참장, 광서 순무의 균령을 받고 주둔병을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양광 총독의 균령을 받았느냐?”

오주 참장이 대답했다.

“말장은 조정 관료의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여나 늦게 도착할까 봐 걱정되어…….”

오주 참장이 말끝을 흐리자, 계왕이 고개를 돌리고 명령했다.

“여봐라. 참장의 갑옷을 벗기고 군곤(軍棍) 오십 대를 때려라.”

계왕부의 무사 두 명이 오주 참장의 갑옷을 거칠게 벗긴 뒤, 사람들 앞에서 맨 등이 훤히 보이도록 그를 엎드리게 했다. 무사들은 일반 곤장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군곤을 들고 와서 곤장을 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계왕부의 무사들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군곤을 내리쳤고, 오주 참장은 군곤 스무대 만에 혼절해버렸다.

계왕은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줄줄 흐르는 오주 참장의 등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계속하거라.”

퍽, 퍽, 퍽.

횃불로 밝힌 어둠 속에서 오주 참장이 군곤을 맞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내 계왕이 여경사 천호 앞으로 다가갔지만, 잠시 미간을 찌푸릴 뿐 그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조정 관료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여경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관료를 보호하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여경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온 건 군법에 맞는 것이니, 계왕이 그에게 책문할 게 없었다.

이어서 계왕이 몽산 현령에게 물었다.

“고위 관리는 역참이나 객잔에서 지낼 수 없다고 하던가? 누가 너에게 강제로 민가를 점령하는 권력을 주었는가?”

몽산 현령이 열심히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신,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본왕을 기만하지 않았으니 너를 때릴 수도, 네 관복을 벗길 수도 없다. 하지만 본왕은 이 사실을 폐하께 알릴 것이니 기다려라.”

몽산 현령이 머리를 조아리다가 흠칫 놀라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조정의 번왕이 황제에게 그를 일러바친다는 건, 앞으로 현령 직을 잃게 된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계왕이 두강의 부인 강씨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남의 집을 빼앗은 건 차치하고, 주인 일가를 내쫓기까지 해? 게다가 네 아들이 집주인의 소부인을 범하는 건 도리에 맞는 짓이라고 생각하느냐. 두씨 가문의 가규에서는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냐?”

강씨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첩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더니 강씨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번쩍 들고 말했다.

“하지만 왕야께서는 꼭 그렇게 엄당 환관 두변의 편을 들어주셔야겠습니까. 민가를 빼앗고 주인을 내쫓은 건 신첩의 잘못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두변이 신첩의 아들의 손을 절단한 건 어찌 말씀하실지요. 두변에게 그럴 권력이 있습니까? 설령 신첩의 아들이 오씨 가문의 며느리를 범하려고 했다고 해도, 죄를 묻는 건 몽산현 관아여야 도리에 맞지, 동창이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왕야께서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위해 나서주신 것이니, 저 겁도 없이 설치는 엄당 환관도 같이 처리해주시지요. 괜히 조정 친왕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 공정하지 못한 결정을 내린다는 소문이 듣기 싫으시다면 말이죠.”

두 사부인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목청을 높여서 말했다.

“조정의 율법에 따르면, 남의 손을 절단한 죄인은 똑같이 손을 절단하고, 얼굴에 노비 낙인을 찍어서 변관에 노비로 유배를 보내야 합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계왕이 호통쳤다.

“지금 본왕 앞에서 대녕 제국의 율법을 운운한 것이냐. 두변이 두평아와 무슨 관계인지는 알고 그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누이가 외간 사내에게 추행당하는 걸 목격한다면, 그 사내를 잡아 죽여도 과실치사로 풀려날 것이다.

그럼 이제 네 아들이 양가의 부녀자를 범하려 한 사건을 다뤄볼까?”

계왕이 수하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범인 두우를 잡아 와라.”

“존명!”

무사 두 명이 큰 마차로 향하더니, 마차에 타 있던 두우를 잡아끌었다.

두우의 잘린 손목은 꼼꼼하게 봉합이 되었고, 퉁퉁 부은 얼굴도 잘 감겨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의원이 네 명이나 붙어있었는데, 두우가 무사들에게 끌려나가는 걸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계왕이 몽산 현령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몽산 현령, 네가 판결해봐라. 대녕 제국의 율법에 따라 양가 부녀자를 범하려다 미수한 죄는 어떤 형에 처하는가?”

몽산 현령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판결을 볼 수 없습니다.”

계왕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계왕이 오주 지부에게 다가가 또 물었다.

“오주부, 주부의 주관으로서 이 안을 판결할 수 있으니 네가 한번 말해봐라. 양가 부녀자를 범하려다 미수한 죄는 어떤 형에 처하는가?”

채찍에 맞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던 오주 지부가 꿋꿋하게 말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단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두변, 이릉, 종정, 그리고 계왕이 격노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문관이 조정 번왕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했다.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할 수는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허수아비 취급할 뿐이었다. 계왕이 조정 율법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문관의 주관이 없으면 두우의 죄목을 결정할 수 없고, 그를 처벌할 수 없었다.

동창에서는 사건을 심리할 수 없고, 그건 계왕도 마찬가지였다.

강씨가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왕야, 보셨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강씨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소리치자, 계왕은 화가 나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때, 두변이 두 사부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곱고 부드러운 볼에 따귀를 올려쳤다.

짝.

두 사부인 강씨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 몹쓸 놈이 감히 나를 때려? 여러분들 다들 보셨지요. 동창 환관이 조정 관료의 부인에게 손찌검했습니다. 저놈을 당장 체포하시지요.”

두변이 말없이 왼손으로 두 사부인의 목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뺨을 미친 듯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두변은 쉬지도 않고 그녀의 뺨을 십여 대 때렸다.

두 사부인의 두 뺨이 퉁퉁 부어오르고 이 몇 개가 부러졌다.

“대녕 제국의 율법에 따르면, 조정 관료의 부인이 친왕께 말씀을 아뢸 때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하여 부인은 절대로 왕야를 똑바로 바라봐서는 아니 되며, 똑바로 바라보게 될 경우엔 왕야에 대한 불경으로 따귀 스무 대를 맞습니다.”

두변이 손에 힘을 실어서 마지막 따귀를 올려쳤다.

“감히 계왕 전하께 또 불경을 보였다가는, 또 따귀 스무 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내게 맞아 죽기 싫다면 전하께 경의를 보이는 게 좋을 겁니다.”

퍽, 퍽, 퍽, 퍽!

이 와중에도 오주 참장의 군곤형은 계속되고 있었다.

군곤 사십 대를 맞았을 때쯤, 오주 참장의 숨소리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왕야?”

군곤을 세던 환관이 계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속해라.”

계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계왕은 이대로 오주 참장을 군곤으로 때려죽일 생각이었다.

계왕이 그를 때려죽이는 데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친왕이 지방의 참장을 때려죽이는 데에는 그만큼 결과도 심각했다.

하지만 계왕은 더는 이들이 자신을 기만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사람들에 잊히든가, 그게 아니라 일단 손을 댔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고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친왕이기를 택했다.

퍽, 퍽, 퍽.

군곤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렇게 군곤 오십 대를 맞은 오주 참장은 뼈가 으스러지고 오장육부가 터져서 완전히 죽어버렸다.

계왕이 물었다.

“오주부, 몽산현. 두우가 양가 부녀자를 추행하려다 미수한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것인가. 너희들이 맡지 않겠다면, 본왕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억울한 자들과 함께 관아로 가서 북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몽산 현령은 여전히 같은 말만 되뇌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휴가를 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주 지부는 냉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왕야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이 몸이 다쳤으니 반달은 요양을 해야겠습니다.”

계왕으로서는 이 두 문관의 파업에 속수무책이었다.

두변이 종정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개자식들의 죄증을 모조리 수집해서 사형시킨다. 절대 유배도 안 된다.”

한 성의 순무라면 절대로 처형당할 일이 없지만, 지부나 현령 따위에게는 사형당할 정도의 죄명은 얼마든지 씌울 수 있었다.

두변이 모두에게 들으란 듯이 큰소리로 말하자, 종정이 더욱 목청을 높여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동창은 문무백관의 청렴을 감시하는 권리가 있으니, 저 두 관리를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물론, 죄 없는 사람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우지도 않을 것이고요.”

몽산 현령과 오주 지부는 그들의 협박을 듣고도 무덤덤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냉소를 짓고 있었다.

‘네놈들이 우리를 조사할 때까지 우리가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 있을 것 같으냐? 오늘 밤에 돌아가는 즉시 짐을 싸서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1년 정도 조용히 지내다가 다른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이어서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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