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99화 (199/648)

199장. 친구를 사귀는 것

이연정이 말했다.

“네가 백색부에서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백색부에 뿌리를 박고, 동창 세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겁니다. 언젠가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백색부에도 쓸 사람이 있도록요.”

이연정이 지도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그렇다. 몇 년 뒤에 여씨 토사가 또 한 번 역모를 꾀할 것이다. 네 의부인 이문회가 죽을 각오를 하고 광서를 피로 씻어낸 덕에 우리가 전에 없는 좋은 국면을 맞이했다. 여씨 토사가 문회 때문에 절반의 돈줄을 잃었으니, 분명히 백색부에 집중을 할 것이다. 백색부는 우리가 여씨의 발목을 묶어두고 공격할 급소가 될 것이야. 너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려 여씨의 눈엣가시가 되어야 하고, 삼키려야 삼킬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연정이 진지하게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네 다음 임무는 2년 이내에 백색부에 세력을 확장해서, 이천 명 이상의 무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부대원은 네가 현지에서 찾아야 하고, 우리가 제공해줄 수 없다. 백색부에 동창 무사들이 진입한다는 건, 본토 세력의 역풍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창 백호가 해야 할 임무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일인지라, 두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자신을 동창 백호 신분에 옭아맬 필요는 없다. 백색부의 관아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그곳에서 관아는 꼭두각시일 뿐이니, 네 자신을 제국의 대표로 생각하고 백색부에서 투쟁하도록 해라. 동창의 명목으로 백색부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백색부의 거대 세력 중 하나가 되어라. 그리고 이천 명이 넘는 병력을 마련해야 한다. 2년 이내에 네가 목표를 달성하는 그 즉시 너를 천호로 승진시키겠다.”

전 동창 대도독 이연정은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2년 뒤라고 해도 두변의 나이가 갓 스물인데, 임무만 성공한다면 그를 5품 천호 자리에 앉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를 날카로운 검으로 여기고 여씨 토사의 가장 취약하지만 가장 중요한 곳에 심는 것이다. 이 검을 잘 쓰게 된다면, 적의 요해를 깊게 찔러서 끊임없이 출혈하도록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백색부는 위험천만한 곳이니 자칫하다가는 네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네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마.”

이연정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백색부로 가는 건 일찍이 생각했던 겁니다. 며칠 전에 대종사와 잠시 대화를 나눌 때도 졸업 후에 백색부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변이 단호하게 말했다.

“영종오가 네게 모든 걸 전수해주려는 모양이구나. 영종오는 너와 함께 백색부로 가서 네게 무공을 가르치고 네 신변을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영종오가 더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지 못하니, 절대로 그를 위험에 빠트리게 해선 안 된다. 영종오는 제국의 둘도 없는 보물이다. 그리고 백색부는 막무가내로 무력으로 부딪힐 곳이 아니라 계략과 지혜로 네 천하를 만들어야 한다.”

이연정이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연정이 말했다.

“거기서 인마를 모으고 세력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백색부처럼 온갖 사람이 드나드는 곳인 중립 지역에서는 특히나 더 돈이 필요할 게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네 의부는 평생 돈을 멀리한 사람인지라, 그가 모아온 돈이 없다. 저번에 여씨 토사에게서 빼앗은 돈 중 일부는 폐하께, 일부는 진남공에게, 일부는 공주 전하께 드렸다. 공주 전하께서 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만들고 계시니, 돈이 필요할 수밖에. 그래서 지금 육십만 냥이 남았는데, 얼마를 챙겨갈 생각이냐.”

두변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삼만 냥을 가져가겠습니다.”

이연정이 멈칫했다.

적어도 십만 냥은 챙겨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고작 삼만 냥을 챙겨간다고?

두변이 이연정의 표정을 보고 설명했다.

“백색부에 간다고 한들 동창 세력이 아직 약한지라 은자를 많이 챙겨가는 건 위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익을 강조하는 관계가 더욱 미덥지요.”

이연정이 흐뭇하게 웃었다.

“참으로 똑똑한 아이로구나. 바로 핵심을 파악하다니. 내가 안심하고 너를 백색부로 보낼 수 있겠다.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백색부로 가서 네가 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일이 무엇이냐?”

두변은 며칠 전에 이미 백색부로 가겠다고 결심한 터라, 그곳에서 뭘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의부 이문회가 몇 년에 걸쳐서 힘들게 백색부에 동창 천호소를 하나 만들었다.

그가 보냈던 세 명의 천호가 다양한 수법으로 백색부에 뿌리를 내리고자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동창의 위엄을 알리려던 두 명은 목숨을 잃었고, 뒷배를 찾아보려던 천호는 그곳에 물들어서 부패한 자들의 주구가 되었다.

두변이 말했다.

“백색부로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이연정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느 친구를 사귄단 말이냐?”

“청룡회의 우두머리인 계청주와 친구가 되고자 합니다.”

백색부가 명목상으로는 조정 직속의 주부이지만, 여씨에 의해서 이곳저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다.

백색부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세력이 여씨 가문인 건 맞지만, 모두가 여씨 가문의 말을 따르는 건 아니었다.

여씨 가문과 견줄 수 있는 세력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막씨 토사의 잔당이고, 다른 하나는 두변이 말한 청룡회였다.

막씨 토사가 이곳을 백 년 넘게 통치했던 터라, 그해 막씨 토사가 뿌리째 뽑힌 것처럼 보이긴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세력이 많이 남아있었다.

청룡회는 광서, 더 나아가 서남에서 가장 큰 무림 파벌 중 하나였다.

청룡회의 우두머리인 계청주는 무도 종사이자, 제국 서남의 명목상 제일 고수였다.

계청주는 조금 복잡한 인물로, 젊었을 때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거인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관포를 벗어던지고 무도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는 한때 북명검파 종주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제자였지만, 돌연 북명검파를 배반하고 나와서 백색부에서 자신의 파벌을 만들었다.

북명검파가 그를 죽이기 위해 열 번이나 추살령을 내렸지만, 그를 죽이러 간 사람은 족족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 계청주는 제국 서남의 무도 거물이 되었고, 북명검파도 그가 파벌을 배반하고 나갔다는 걸 잊은 것처럼 그의 영역에 관여하지 않았다.

당시 막씨 토사가 백색부를 통치할 때도 계청주는 혼자만의 세력을 키워나갔고, 막씨 토사가 절멸한 뒤에도 우직하게 자신의 세력을 지켰다.

여씨 가문이 백색부 곳곳에 침투해서 대부분의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도 계청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도 종사 계청주는 백색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여여해도 그를 만날 때는 허리를 숙이며 형님, 하고 부를 정도였다.

이연정이 말했다.

“계 종사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그해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던 지의도 냅다 던졌던 사람이다. 네 의부가 계 종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아예 문전박대했다더구나. 워낙 사람을 무시하는 자인지라, 네가 그와 친구가 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네가 백색부에서 제대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고, 그 누구도 너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두변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자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냐. 내 기대해보마. 사람을 몇 명 데려갈지 생각해보았느냐? 폐하와 먼 곳인 데다 혼란스러운 곳인지라, 사람을 너무 많이 데려가도, 너무 적게 데려가도 안 될 게다.”

“여섯 명 데려가겠습니다.”

이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많지도 적지도 않구나. 준비하는 데 열흘의 시간을 주겠다. 열흘 뒤에 곧장 백색부로 가도록 하여라.”

이연정이 동창 관첩 하나를 가져와서 그 위로 광서 동창 진무사 인장을 찍었다.

두변은 더는 광서 환관 학원의 학생이 아닌, 동창 백색부 천호소의 시백호가 되었다.

두변이 데려갈 첫 번째 사람은 나중에 병사를 훈련하고 군대를 지휘할 사람으로, 과거 두변에게 기마술을 가르쳤던 교관 이위였다.

“선생님, 과거 선생님이 제국의 최연소 기병 천호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백색부로 가시게 된다면, 시백호 아래서 관직도 없이 지내셔야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변이 말했다.

이위가 허리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당치도 않으신 말씀입니다. 이위, 백호 대인을 뵙습니다.”

두변은 순간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위가 허리를 펴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곳에 가면, 정말로 병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겁니까?”

병사들을 거느리고 훈련시키는 건 이위의 꿈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늘 군인이 한 명 살고 있었고, 엄당의 일원이 된 뒤에도 장군이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했다.

두변이 말했다.

“그곳에서 우리의 천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린 꼭 성공할 겁니다.”

두변이 데려갈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은 당연히 이삼과 이사였다.

이 두 사람은 동창 고수이자 두변의 최측근 호위였다. 이들이 백색부에서 해야 할 건 여전히 두변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것.

두변이 데려갈 네 번째 사람은 진평으로, 백호소의 문서(文書: 서기)를 맡아 문서와 관련된 일을 총괄하게 된다.

두변은 진평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의 부모도 계림부로 모셔오고자 했지만, 그의 부모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두변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두변은 오주부 동창 천호 종정에게 진평의 부모를 위해 새집을 지어주고 삼십 묘 전답을 선물했다.

진평의 모친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지 않자 두변이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편히 말씀하세요. 또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진평의 모친이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동창 백호라는 건 몇품 관인지 물어도 될까요?”

두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6품입니다.”

그러자 진평의 모친이 화들짝 놀라면서 더욱 기뻐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관직의 사람을 처음 보는지라, 더는 두변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그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제가 눈앞에 태산을 두고도 못 알아뵀습니다. 대노야, 대노야를 뵙습니다.”

두변이 그러지 말라며 서둘러 진평의 모친을 일으켜 세웠다.

‘세상에나. 내가 아는 가장 높은 관리는 7품 관리인 현태야(縣太爷: 현령縣令)인데, 진평과 비슷한 나이인 이 청년이 벌써 6품 관리란 말이야?’

진평의 모친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두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녀는 제 아들 진평이 얼굴이 망가져서 평생 출세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6품 대관의 막료가 되어서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게다가 자신의 허름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던 영종오가 황제의 스승이었다는 걸 듣고도 몹시 놀랐다. 그녀는 영종오가 그저 자유롭게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나이든 의원인 줄로만 알았다.

두변이 6품관이라는 걸 알게 된 진평 모친은 그에게 진평의 누이인 진쌍쌍을 같이 데려가 달라고 사정했다.

진쌍쌍은 부끄러움을 엄청 많이 타는 귀엽고 예쁜 토끼 같은 소녀였다.

진평 모친의 표현에 따르면, 두변 같은 고관 곁에는 꼭 살림하는 여인이 옆에 있어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쌍쌍은 온화한 성격에 바느질도 잘하고 밥도 맛있게 할 줄 아니, 두 대노야의 일상 기거를 잘 모실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진평 모친의 생각은 무척 단순했다.

그녀는 진평이 두변의 막료가 되고 진쌍쌍이 두변의 첩이 되면, 자기네 집도 두변을 따라 덕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진평의 모친은 두변이 환관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동창이 엄당 관직이라는 것도 새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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