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92화 (192/648)

192장. 굴절 환영

영종오 대종사는 두변에게 역사구검에 관한 설명을 2각 정도 해주고 나서, 별다른 말 없이 두꺼운 <역사구검> 비급을 건네며 스스로 깨우치라고 말했다.

두변 같은 천재에게 뭘 더 가르쳐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두변은 빠르게 <역사구검>을 훑어보면서 한 시진 만에 비책 전체를 다 읽었다. 그리고는 곧장 눈을 감고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두변의 정신력이 55가 된지라, 꿈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 세계의 30배가량이 되었다.

처음엔 비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외우기 시작했지만, 몇 시진이 지나니 검법의 내력 운용법이 오묘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력 운용은 이 검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아무리 무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어도 역사구검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보통 한두 해가 걸리곤 한다.

하지만 두변에게는 보름이면 충분했다.

꿈속 시스템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

꿈속 시스템이 두변에게 사람의 모형을 3D로 구현하여 인체 내에서 내력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검법의 모든 동작에서 현기 내력이 어디서 어떻게 작용되어야 하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니, 수십 배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내력의 운용을 깨우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철저히 깨우친 뒤에 남은 것은 연습뿐이었다.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두변은 끊임없이 이 검법을 연습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하루에 백 번이 최대였을 것이다. 이 검법을 한 번 연습하는 데 소모하는 현기 내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만 번 넘게, 무수히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사구검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연단 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총 13시간 내내 꿈속 세계에서 이 검법을 연습했지만, 꼭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것만 같으면서도 막상 성공하기가 힘들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왜 이 화려한 검법을 끝까지 익히지 못하고 포기하는 건지 알 듯했다.

이렇게 극악의 난이도면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검법들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곤 하는데, 의외로 아주 우연한 시기에 검법을 성공한다는 점이었다.

두변은 지금이 만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연습하다가…… 갑자기 의도치 않게 검법을 성공시켰다.

두변은 드디어 굴절 환영을 만들어냈다.

꿈속 시스템은 두변에게 제 3자의 시선으로 굴절 환영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이서 검법을 사용하는 장면은 소름 돋는 동시에 몹시 놀라웠다.

이 검법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왜 그리들 자지러졌는지 알 듯했다. 그 정도로 이 검법은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너무 짜릿하게 만들었다.

극악의 난이도면서 엄청난 위력을 뽐내는 검법에 대해 일단 감을 잡게 되면 그 뒤로는 순조롭게 검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계속해서 이 검법을 연마했고, 신기하게도 감을 잡은 뒤로는 매번 성공적으로 굴절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졸업 시험의 마지막 시험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예정대로 연무 시험이 먼저 진행된다.

오후에 예정된 비무 시험은 모든 학생이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무 시험은 연무 시험에서 갑급 기술을 선보이고, 9할 이상의 점수를 얻은 사람만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비무 시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학생들은 비무 점수 20점을 못 얻게 되는 것이다.

전투 무도에서 가장 잔인한 점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비무 시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져도, 결국 1등만 20점을 얻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0점 처리된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제로섬 게임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시험이었다.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승자생존의 싸움이었다.

이전의 졸업 시험이었다면 다들 1위를 추측하기 힘들었겠지만, 이번 졸업 시험은 두변과 당엄의 결전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학생들은 비무 점수에 대한 미련을 이미 버렸고 두 사람 중 누가 1등을 할지가 더욱 궁금했다.

사실 학생들은 감정적으로는 두변을 응원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만년 꼴찌였던 두변이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변의 모습은 모든 엄당 학생들이 꿈꾸고 바라왔던 영웅에 대한 환상과 완벽하게 부합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학생들은 두변이 지고 당엄이 이기는 것에 돈을 걸 것이다.

현기 내력이란 게 하루아침에 수련되는 게 아니다 보니, 두변이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무도 발전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주 공교롭게도 연무 시험에서 갑급 기술을 선택한 사람은 두변과 당엄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 두 사람의 결투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두변과 당엄은 자연스럽게 졸업 시험의 마지막인 비무 시험에서 두 사람만의 결투를 펼치게 될 것이다.

연무에서 선보일 공법을 신고한 뒤, 학생들은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하늘의 뜻인 건지, 당엄은 아홉 번째, 두변은 열 번째 순서를 뽑았다.

연무장 앞은 다시 한 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번에는 졸업 시험에 참여하는 이백여 명의 수험생뿐만 아니라, 환관 학원의 천여 명 학생, 백여 명 선생까지 전부 다 두변과 당엄의 결전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당엄과 두변이 각각 아홉 번째, 열 번째 순서인지라, 앞의 수험생 여덟 명은 병풍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점수를 매기는 무도 환관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여덟 명의 연무를 지켜보고 채점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시간 끝에 드디어 당엄의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은 앞선 여덟 명의 점수가 몇 점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번 졸업 시험의 첫 번째 주인공 당엄이 마침내 무대에 올랐다. 그가 연무할 검법은 갑급 검법 ‘대자비검법(大慈悲劍法)’이었다.

검법을 들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놀라 외쳤다.

‘대자비검법’이 얼마나 강력하고 어려운 검법인지는 차치하고, 이 검법은 검기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검기의 패기와 웅장한 기장이 특징인 검법이었다.

이 검법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강력한 검기가 땅에 부딪히면서 엄청난 파장이 일고, 그 파장이 순식간에 바닥을 치고 올라 흙먼지를 하늘로 치솟게 한다. 그 광경은 마치 흙먼지가 분수가 되어 하늘에 뿌려지는 듯한 장관이었다.

이 검법도 ‘역사구검’처럼 사람들이 잘 배우려 하지 않는 검법 중 하나였다.

현장을 압도할 정도로 화려하고 살상력이 엄청나지만, 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당엄이 이 검법을 선택했다는 건,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는 걸 친히 보여주기 위함이고, 두변에게 빼앗겼던 무수히 많은 흠모와 선망의 눈빛을 되찾아오기 위함이었다.

당엄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향해 정중히 예를 표한 그의 표정이 바로 변했다. 스스로가 한 자루 검이 된 듯 온몸에서 날카로운 검기를 내뿜었다.

당엄이 한쪽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톡 치자, 바닥의 흙먼지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당엄의 ‘대자비검법’ 연무가 시작되었다!

순간, 검영(劍影)은 용과 같았고, 검명(劍鳴)은 천둥소리와 같았다.

사람들은 넋을 놓고 당엄의 검법을 감상했다.

‘대자비검법’이라고는 하지만, 검법에는 자비라고는 반푼도 없었다. 자비보다는 오직 패기가 넘쳤다.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와 검기가 채찍처럼 바닥을 후려치는 듯한 매서운 광경은 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만 했다.

30초가 지날 무렵, 사람들은 당엄의 ‘대자비검법’이 곧 절정에 달할 것을 알아챘다.

곧 모두가 기대하던 그 장관이 곧 눈앞에 펼쳐지겠구나!

콰광!

마침내 검기가 솟구치면서 지면에 격렬한 파장을 일으켰고, 반사된 파장이 땅에 있던 모든 흙먼지를 하늘로 치솟게 했다.

분수처럼 급속도로 수십 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던 흙먼지가 허공에서 원을 그리면서 또 한 번 폭발했다.

허공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광경에 수천 명의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여운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시험관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몸을 일으켜 손뼉을 쳤다.

곧이어 당엄의 ‘대자비검법’ 연무 점수가 나왔고, 의심할 여지 없이 만점 80이었다.

이번 연무 덕에 당엄은 잃어버렸던 무수히 많은 선망과 숭배의 눈빛을 되찾은 셈이었다.

당엄의 차례가 끝나자, 모든 이목이 두변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두변이 당엄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압박감에 무척이나 힘들어할 것이라 짐작했다.

열 번째 순서인 두변이 연무장 안으로 입장했다.

두변은 큰소리로 자신이 연무할 검법을 소리쳤다.

‘역사구검!’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초절정으로 화려하지만, 끔찍할 정도로 어려워서 아무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그 검법 말이야?”

“그 검법은 이미 실전된 거 아니었어? 아직 할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해?”

사람들이 웅성거리든 말든, 두변은 길게 숨을 내뱉으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두변이 눈을 지그시 감는 걸 보자, 사람들은 즉시 입을 다물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지켜봤다.

검광이 희미하게 번뜩이고, 흑영(黑影)은 바람과 같았다.

그의 검법은 한 수 한 수 끊겨서 보이는 게 아니라, 귀신이 춤을 추는 것처럼 물 흐르듯 부드러워 보였다. 마치 온 세상에 오로지 검광 한 줄기와 그림자 하나만 남은 것처럼.

두변의 검법은 당엄의 패기로운 검법과는 풍격이 달라서 기이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드디어 두변의 검법이 서서히 절정에 달했다.

스으으윽.

화려하기 그지없는 굴절 환영!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순식간에 두 명의 두변과 두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그 순간, 수천 명이 모인 연무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두피가 저릿해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몇 년 만에 이 광경을 보는 걸까.

스물도 되지 않은 청년이 어떻게 이 어려운 검법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무도 시험관들이 눈을 번쩍 뜨면서 흥분한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엄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사구검’을 고려하긴 했으나, 너무 어려운 검법이어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두변이 자신이 포기했던 검법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연무했으니, 당엄의 속이 말이 아니었다.

저놈에게는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역사구검’을 깨우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해낸 거지?

당엄의 ‘대자비검법’은 검기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화려한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지만, ‘역사구검’의 굴절 환영만큼 기이하고 소름 끼치고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검법은 아니었다.

두변의 연무가 끝나자, 사람들이 하늘이 울릴 정도로 열렬하게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두변은 검법 연무에서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잠시 당엄에게 빼앗겼던 관심과 흠모의 눈빛을 되찾아왔다.

두변의 연무 성적이 나왔다.

역시 마찬가지로 당엄과 똑같은 만점 80점!

이로써 당엄과 두변은 여전히 0.5점의 점수차가 남았다.

갑급 공법을 선택한 사람이 당엄과 두변밖에 없으니, 비무에 참여할 사람도 이 둘뿐이었다.

비무는 이긴 사람에게는 20점, 진 사람에게는 0점이 주어지는 잔인한 시합이었다.

결국 두 사람 중, 비무에서 이기는 사람이 졸업 시험의 최종 승자가 된다.

두변과 당엄이 백 미터 거리를 두고 연무장에 섰다.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두변, 나는 6품 무사이고, 이도진 종사가 주신 폭원단(爆元丹)도 있다. 네놈은 비무 시합에서 내 손에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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