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80화 (180/648)

180장. 피 한 방울에 덜덜 떨고

당엄이 포함된 다섯 번째 조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학생이 당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중엔 두변도 있었다.

당엄은 눈을 감고 정신 집중 상태로 들어갔다.

두변은 13점 뒤처져 있어!

1점 점수 차를 줄이는 것도 몹시 힘들어.

모든 건 승리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승리뿐이야.

두변이 어떻게 천재가 되었는지는 상관없어. 몇 년 지나면 저놈을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내가 13점이나 앞섰으니까, 나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이 싸움에선 무조건 내가 이긴다!

올해 환관 학원의 졸업 배정에서는 딱 한 사람만 동창에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번 졸업 시험은 그저 두변과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장차 엄당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두변도 정신력 각성을 했지만, 당엄은 1년 반 전에 이미 정신력을 각성했다.

두변이 정신력 집중 궁술을 할 수 있는 만큼, 당엄도 할 줄 알았다. 게다가 당엄의 천부적인 정신력은 무려 100점 만점에 65점에 달했다.

65점이라는 점수가 높아 보이지 않을 순 있지만, 정신력 세계에서는 꽤 높은 축에 속한다.

대부분 사람의 정신력 점수는 40점대인지라, 정신력 계승을 받은 두변의 정신력 55점은 천 명 중 한 명, 아니 만 명 중 한 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55점보다도 높은 65점이니, 그의 천부적인 정신력은 정말로 보기 드문 수준인 것이다.

이 세계에서 하늘을 거스르는 실력의 소유자인 영종오 대종사의 정신력도 77에 불과했다. 그 정도는 거의 천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신력의 점수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1점 차이로도 엄청난 차이를 낼 수 있게 된다. 7.1급 지진과 7.2급 지진이 숫자로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파괴력이 몇 배나 차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신력 포인트가 65점인 당엄은 고정 과녁 궁술에서 가뿐히 만점을 얻어낼 자신이 있었다.

“준비!”

당엄이 화살을 겨누고 송과선에 정신력을 집중했다.

90미터 밖에 있던 과녁이 순식간에 그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작!”

시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집중력 고정을 끝낸 당엄이 망설임도 없이 연이어 열다섯 발 화살을 쏘아냈다.

슉, 슉, 슉, 슉.

당엄은 두변과 똑같은 수준으로 빠르게 화살을 쏘았고, 심지어 그보다 몇 초 더 빨리 활을 내려놓았다.

그는 두변처럼 과녁을 보지도 않고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후련한 듯 작게 한숨을 쉰 뒤 과녁으로 시선을 던진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과녁의 중심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열네 개의 화살 옆에, 마지막 화살이 과녁 중심의 경계를 살짝 빗나간 채로 꽂혀 있었다.

학원 졸업 시험의 점수 제도가 워낙 엄격한지라, 화살 열다섯 발이 과녁 안으로 들어가야만 만점이었다. 그래서 당엄의 최종 점수는 0.5점이 깎인 14.5점이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작은 탄성을 뱉었다.

당엄의 궁술이 너무 출중해서가 아니라, 그의 점수가 두변보다 낮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당엄의 점수도 역대 최고 점수를 깰 정도로 우수한 점수였건만, 모두의 예상을 깬 두변에게 지고 말았다. 학원에서 만인의 우상이자, 미래 엄당의 지도자가 될 젊은 수재 당엄이 두변에게 진 것이다.

당엄은 자신의 후광이 차츰 퇴색하고 있음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기초 무도의 세 번째 시험이 끝났다.

현재 당엄의 총점은 297.5점, 두변의 총점은 285점이었다.

오후가 되자, 기초 무도의 마지막 시험인 기마 궁술이 시작되었다. 만점은 15점이며, 울타리가 둘린 직경 약 150미터의 원형 시험장에서 시험이 치러진다.

수험생이 동쪽 입구에서 말을 탄 채 울타리로 봉쇄된 시험장 안에 들어가면, 문이 닫힌 뒤에는 야생닭 열다섯 마리가 시험장 안에 풀린다.

야생닭들이 푸드덕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것이고, 수험생은 2분 안에 야생닭을 전부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한다.

동쪽 입구로 들어가서는 서쪽 출구로 나가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그려진 경로로만 말을 타고 직진할 수 있고, 절대로 말에서 내려선 안 된다. 시험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수험생은 잠시도 말을 멈춰서 조준할 수 없고, 말은 전진만 할 수 있을 뿐 뒤로 갈 수는 없었다.

야생닭 한 마리를 완전히 죽이면 1점, 화살에 맞았으나 죽지 않았을 경우 0.5점을 준다.

시험 규정만 보아도 기마 궁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기마 궁술은 매년 합격점을 가져가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가장 많이 점수를 잃는 과목으로도 유명했다.

환관 학원 설립 이래 기마 궁술의 역대 최고점은 11점이었다.

사람도 움직이고, 말도 멈추지 않는 데다, 겁에 질린 야생닭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니, 이 과목은 합격만 해도 감지덕지한 수준이라 할 만했다.

시험장의 제한이 있는지라, 기마 궁술은 따로 조를 나누지 않고 이백여 명의 학생이 순서대로 한 명씩 시험을 치르게 된다. 사람이 많다 보니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두변은 운이 좋아서 그런지 아홉 번째 순서로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염세는 더 운이 좋아서 다섯 번째 순서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두변은 울타리 밖에서 앞선 수험생의 시험을 지켜보았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는 야생닭이 시험장 밖으로 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이가 4미터 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대나무 사이사이로 남의 시험을 엿볼 수는 있었다.

앞선 수험생 여덟 명의 실력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만약 정신력이 각성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랜 세월 사냥을 통해 감각을 쌓았어야 하겠지만, 엄당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해봤을 리 없을 터.

첫 번째 수험생, 0점.

두 번째 수험생, 0점.

세 번째, 네 번째 수험생 역시 0점.

다섯 번째 수험생 염세는 드디어 야생닭을 처음으로 죽인 수험생이 되었고, 뜻밖에도 여덟 마리를 죽여서 8점을 얻어냈다.

“으앗!”

염세가 시험장에서 나오면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기합을 외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여섯 번째 수험생은 1점, 다음 수험생은 3점, 그다음 수험생은 0점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 벌써 두변의 차례가 되었다.

두변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터라 영종오 대종사에게서 기마 궁술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신력 각성을 했고 집중 궁술을 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수험생, 두변!”

시험관이 외쳤다.

모든 사람이 눈을 반짝이면서 호명된 두변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기마 궁술 시험장 울타리에 바짝 다가서면서 두변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했다.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천재의 한계를 보여줄지 몹시 궁금하지 않은가!

당엄, 왕굉, 낭정, 염세 등이 숨을 죽인 채 두변을 지켜보았다.

대녕 제국의 엄당 학생들이 북방 유목 민족이 아니다 보니, 기마 궁술에 소질이 없는 건 당연했다.

정신력 각성을 했고 집중 궁술을 할 줄 아는 당엄도 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 사실상 정신력 각성을 하고, 집중 궁술을 할 줄 아는 두변이 얻을 수 있는 최고점은 기껏해야 12점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두변은 야생마의 등 위로 몸을 날렸다.

곧 시험장 입구가 열리고, 두변은 야생마를 타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야생닭 열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푸드덕 방출되었다.

겁에 질린 채 푸드덕대며 뛰어다니는 야생닭이 어찌나 빠른지, 활쏘기는커녕 어느 한 마리 제대로 집중해서 보기도 힘든 정도였고, 시험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준비!”

두변은 말 위에서 화살을 얹고 활시위를 당겼다.

“시작!”

시험관이 외치는 순간, 두변은 야생마를 탄 채 폭이 2미터 정도 되는 경로를 따라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전진했다.

말이 경로를 이탈하게 되어도 0점 실격 처리된다.

두변은 정신력 집중을 활용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닭에게 정신력 고정을 하려 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고정이 자꾸만 풀렸다.

뭐지, 왜 정신력 고정이 안 외지? 빠르게 떨어지는 물방울도 고정이 되는데, 물방울보다 훨씬 더 큰 야생닭을 고정할 수 없다니?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두변은 다시 침착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방울은 떨어지는 궤적이 일정하지만, 겁에 질린 야생닭은 어디로 튈지 몰라서 문제인 것이로군.

목표물을 고정할 수 없다면 아주 치욕스러운 점수를 얻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변이 당엄을 이기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두변은 그제야 기마 궁술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시험인지 실감했다.

아무리 정신력 각성이 되었다고 해도, 목표물 고정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두변은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야생마의 등 위에서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래, 정신적인 경지의 ‘시간 완행술’을 쓰면 되겠군!

영종오 대종사가 쓴 저서 <정신력 각성술>에는 ‘시간 완행술’이라는 기술이 있었다.

두변이 지금 아주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는데, 책에서는 정신력 각성과 시간 완행술이 한데 묶여 있긴 했지만, 그가 아는 정신력 각성과 시간 완행술은 같은 맥락의 기술이 아니었다.

시간 완행술은 사실상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엄청난 기술 비급으로, 영종오와 소수의 대종사 외엔 그 누구도 할 줄 모르는 국보급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두변은 자신이 읽었던 시간 완행술에 관한 내용을 떠올리면서 서서히 기술을 시전했다.

일순간, 정신세계의 시간이 몇 배로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하더니,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야생닭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이 상태에서라면 집중력 고정을 통해 평소처럼 집중 궁술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던 기마 궁술이 고정 과녁 궁술만큼이나 쉬운 시험이 돼버렸다.

두변은 빠르게 목표물 고정을 한 뒤, 야생마에 박차를 가했다.

슉, 슉, 슉, 슉.

야생마는 정확히 30초도 안 걸려서 시험장 밖으로 나왔다.

그 말인즉슨, 두변이 30초도 안 된 시간에 화살 열다섯 발을 쏘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두변이 쏜 화살이 전부 야생닭의 급소를 명중했고, 모두 즉사했다.

두변은 기마 궁술의 역대 최고점을 갱신하면서,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냈다.

남녕부, 남해도장 안.

이문회가 백 명의 정예 동창 무사를 이끌고 인정사정없이 남해도장 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교관이든 남해도장의 학생이든, 어느 귀족 집안의 자식이든 상관없이 검을 휘둘렀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이문회가 이끄는 정예 무사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남해도장의 학생들로 이뤄진 수비벽을 단칼에 베냈다.

학생들은 단숨에 성벽 위로 올라온 무사들과 겨뤄볼 틈도 없이 몸이 두 동강 났고, 짧디짧은 몇 분 사이에 수백 명의 학생이 망혼이 되었다.

새빨간 피바다에 온전치 못한 시신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살아남은 학생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어서 감히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동창 무사들이 검 끝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손쉽게 남해도장의 대문을 열었고, 선두의 정예 무사 백 명을 따라 동창 무사 천여 명이 남해도장 안으로 몰려들었다.

학생병이 수적으로 아무리 우세하다고 한들, 피 한 방울만 봐도 덜덜 떠는 배짱 없는 놈들이라면 군대라고 말할 것도 없게 된다.

축무애가 큰 기대를 안고 인간방패로 내세운 이삼 천 명의 학생병은 일각이 되기도 전에 완전히 와해되었다. 아직 학생들이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저항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사기와 배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문회가 동창 무사들과 함께 축무애가 서 있는 탑루를 포위했다.

탑루 아래에서 벌어지는 혈투와 사방에 널브러진 시신, 그리고 점점 더 새까맣게 몰려오는 동창 무사를 보면서 축무애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절대로 이문회의 손에 들어가선 안 돼!

이문회에게 붙잡히면 죽음 이상의 고통이 따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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