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73화 (173/648)

173장. 부정행위

당엄의 발걸음이 자석처럼 공고 게시판으로 끌려갔다. 걸음을 멈춘 그는 고개를 들고 두변의 국학 시험 답안지를 읽기 시작했다.

첫 열 줄을 읽은 당엄은 동공이 흔들렸다.

순간 그는 더 황당하고 실감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 이건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서 볼 수준의 글이 아니잖아!’

당엄은 두변의 책론과 팔고문, 그리고 시를 빠르게 읽으면서 수차례 소름이 돋았다.

‘이런 작품은 졸업 시험이 아니라, 전시에 참가해도 장원이 될 법한 글이잖아. ’

당엄은 뭐에 홀린 듯이 두변의 답안을 읽고 또 읽었다.

글의 조예가 실로 너무도 높아서, 오죽하면 시험관들이 모두 만점을 줄 수밖에 없었을지 너무도 분명했다.

당엄에게 답안지를 채점하라고 했더라도 만점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엄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두변은 절대로 이런 수준의 글을 쓸 수가 없을 텐데? 나도 이런 수준의 글을 써낼 수 없으니까.’

당엄이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돌려서 두변을 쳐다보았다.

이때, 두변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염세의 얼굴에 발 씻은 물을 붓고 있었다.

‘저런 놈이? 저렇게 저급하고 경솔한 놈이 이런 글을 써냈다고?’

당엄이 이를 부득 갈면서 곧장 광서 환관 학원 산장 왕굉의 서재로 갔다.

당엄은 깊이 심호흡을 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산장, 두변이 국학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것 같아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저는 두변이 미리 문제를 알고, 영종오 대종사께 대필을 부탁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종오 대종사는 대녕 제국의 무도 대종사로 알려져 있지만, 국학에서도 대종사급 소양을 갖추신 분입니다.”

염세는 피할 틈도 없이 두변에게 발 씻은 물세례를 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파리와 모기가 둥둥 떠다니는, 하룻밤 숙성까지 거친 구정물이었다.

정신을 차린 염세가 부르르 몸을 떨면서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어라?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나 보네?”

두변이 염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이 비웃는 시선으로 염세를 바라보았다.

이 내기는 졸업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염세가 먼저 두변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증인 앞에서 내기를 없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토 나올 정도로 지독한 냄새의 물을 그대로 맞고 있자니, 너무나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기할 배짱이 있으면 패배를 인정할 배짱도 있어야지. 다음에 또 이런 재미난 내기가 있다면, 나 꼭 껴줘.”

두변이 웃으면서 말한 뒤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렸다.

“잠깐! 두변, 네놈은 부정행위를 한 게 틀림없다!”

염세가 두 주먹을 꽉 쥐고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어제 두변이 어떤 꼴로 시험자에 들어왔는지 다들 봤잖아. 두변은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못 잔 사람처럼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했어. 그런데 그랬던 두변이 한 시진 만에 답안을 제출했는데, 만점을 받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을 본 염세가 더욱 기세등등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두변, 넌 왜 시험이 시작되기 반 시진 전에 부랴부랴 시험장에 도착한 거지? 왜 몇 날 며칠 잠도 못 잤고? 네 말은 왜 탈진하기 직전까지 달린 거야? 내가 대답해 볼까? 네놈이 국학 시험지를 미리 입수해서 널 위해 대필할 누군가를 찾아갔겠지.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영종오 대종사일 테고. 이문회가 너를 영종오 대종사의 제자로 찔러넣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 그러니까 저 답안은 네가 쓴 게 아니야. 다른 사람이 널 대신해서 쓴 거지.”

염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두변을 노려보면서 쐐기를 박았다.

“감히 졸업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니. 네놈을 시험관들께 고하겠다. 네 의부인 이문회는 이미 끝장났으니까,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시지!”

두변의 표정이 급격히 싸늘해졌다.

염세! 내 기필코 네놈을 죽여주마.

두변은 염세가 자신을 괴롭혀온 건 맞으나, 평생 변소나 치우는 하등 잡역 환관으로 만들 생각까지만 했다.

하지만 그가 이문회와 영종오를 욕한 이상, 그는 죽어야 했다.

영종오 대종사가 중상을 입은 몸으로 제국을 위해, 황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여여해를 공격했고, 그 공격으로 인해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다.

며칠째 계속 길 위에 있던 두변은 어제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염세가 감히 영종오 대종사를 욕보이는 말을 한 이상, 졸업 시험이 끝나자마자 아무 빌미나 대고 염세를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염세를 죽이기 전에, 자신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해야 했다. 이대로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간, 정말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되어 평생을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야 할 가능성이 컸다.

두변의 국학 시험 점수가 모두를 놀라게 한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엄당 학생들은 자기 줏대 없이 팔랑귀를 가진 터라, 자연스럽게 염세의 말에 선동되어 두변을 못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두변이 염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내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그래!”

염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두변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냐고 묻지 않았다. 누군가를 모함할 땐 심증 하나면 충분하니까.

“염세, 네 말은 내가 시험 문제를 미리 알고, 영종오 대종사께 대필을 부탁했다고 말하는 거냐?”

“그래! 네 수준에 절대로 저런 글이 나올 리가 없지. 그것도 한 시진 만에 말이다.”

“그럼, 내가 국학 시험뿐만 아니라, 다른 시험의 시험지도 미리 빼돌렸다고 생각하겠네? 오늘 산술 시험도?”

“그랬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정 그렇게 의심된다면, 네가 산장 왕굉 대인, 그리고 네 의부인 낭정 대인께 부탁해라. 시험 감독관이자 채점자이신 다섯 분께 산술 시험지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졸업 시험에 예비 시험 문제가 없을 리가 없잖아.”

염세가 냉소를 지었다.

“시험지도 빼돌렸다면, 예비 시험지도 같이 빼돌렸겠지.”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두변의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두변이 말했다.

“그럼 사례감 대환관 세 분께 산술 문제를 다시 내달라고 부탁드려 봐. 내가 그분들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알아올 순 없을 테니까.”

염세가 그건 괜찮은 제안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졸업 시험의 문제를 바꾼다는 건, 일개 학생이 요구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염세는 자기 하나로는 부족할 테니, 해원 당엄을 앞세워서 산장 왕굉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시험도 당일 문제를 바꾸는 경우가 있으니, 환관 학원 졸업 시험이라고 못할 건 없었다.

염세는 일단 의부 낭정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재촉하려고 했다.

“잠깐.”

두변이 불렀다.

“왜? 쫄려?”

염세가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되물었다.

“만약 시험관들이 새로 만든 문제로 산술 시험을 치르게 됐는데, 내가 너보다 점수가 더 높으면 어쩔 거냐?”

두변이 물었다.

“꿈 깨셔. 네가 산술 시험을 치를 때마다 0점을 받은 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알아. 설마, 네가 그걸 까먹은 건 아니겠지?”

염세가 조롱 가득한 어조로 말했지만, 두변은 흔들림이 없었다.

“임시 문제로 바꿨는데도 내 점수가 너보다 더 높으면, 네가 날 모함했다는 게 증명되는 거지?”

“흥.”

염세는 두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내 점수가 네 점수보다 높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큰절을 하면서 사죄해라. 그리고 나한테 따귀 열 대를 맞는 거다. 어떠냐?”

“이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네 의부 이문회는 이미 끝났어. 네놈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날뛰는 거냐?”

염세가 펄쩍 뛰었다.

두변이 담담하게 말했다.

“졸업 시험은 개인의 실력을 겨루는 건데, 여기서 의부가 왜 나와? 네가 쫄리는 건 아니고?”

“내가 쫄릴 게 뭐 있다고. 반대로, 네 점수가 내 점수보다 낮으면 어쩔 거냐?”

염세가 턱을 치켜들고 물었다.

“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고, 내가 내 뺨을 열 대 치마.”

두변이 대답했다.

“아니, 내가 직접 때린다. 네 친부모도 네 면상을 못 알아볼 정도로 때려줄 테니까, 각오하라고.”

염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좋아. 약속하지. 자, 여기 있는 모두들 다 들었지?”

두변이 주위에서 구경하던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응, 들었어.”

수백 명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미진진하게 대꾸했다.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도 산장께 시험지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겠다. 그리고 예비 문제가 아니라 시험관들이 즉석으로 만든 문제로 시험을 치르는 거지. 이런 경우엔 문제가 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잖아?”

두변이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임시 문제로 시험지를 바꾼 뒤에도 내 점수가 염세의 점수보다 높다면, 염세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게 모함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고, 내게 뺨 열 대를 맞아야 해. 반대로, 내 점수가 염세의 점수보다 낮다면, 나는 학원 대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부정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고, 염세가 내 뺨을 열 대 치게 한다.”

설명을 마친 두변이 큰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내기를 결정하고자 하는데, 다들 증인이 되어주겠지?”

“당연하지!”

수백 명의 엄당 학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당엄은 산장 왕굉의 서재에서 두변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시험지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산장 왕굉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다섯 명의 시험관 중, 두 명은 동창 세력이지만 나머지 세 명은 사례감 세력이었다.

사례감 출신의 대환관 세 명은 순전히 학술파인 사람들로, 세력이나 파벌 싸움에 전혀 관심이 없고 개입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시험지를 바꿔 달라는 요구를 한다면, 어만루가 사례감 출신 대환관들의 입지를 고려해 격노하면서 그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문밖에서 들려오는 염세와 두변의 대화, 그리고 학생들의 대답을 들은 산장 왕굉은 시험지 교체가 불가피함을 깨달았다.

같은 시각. 염세가 의부인 부산장 낭정을 찾아왔다.

“의부, 두변 그 자식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게 분명합니다. 그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문장을 쓸 수 없어요.”

낭정이 혀를 차면서 그를 꾸짖었다.

“당엄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나서긴 왜 나서?”

낭정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두변의 점수에 놀란 건 낭정도 마찬가지인지라, 염세가 의심할 만했다.

그리고 이문회와 관계가 좋지 않던 그는 두변이 잘되는 꼴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설 수는 없다는 판단에 조용히 산장 왕굉을 찾아갔다.

왕굉과 낭정이 잠시 상의를 한 뒤, 같이 시험관 다섯 명을 만나러 갔다.

부산장 낭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다섯 어르신들께서 이번 졸업 시험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를 쏟으셨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후세대 엄당 인재들의 귀감이 되시는 분들이지요. 하지만 이문회의 수하 중엔 능력이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한 자들이 많은지라, 사람을 시켜서 시험지를 빼돌렸을 가능성이 전무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이문회가 두변을 영종오 대종사께 데려간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두변을 가르쳐서 졸업시키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빼돌렸다면, 영종오 대종사께 대필을 부탁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두변의 과거 성적으로 봐선, 그가 이런 수준의 문장을 써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시험관 다섯 명은 입을 꾹 다물고 왕굉과 낭정을 바라보았다.

“두변이 졸업 시험 반 시진 전에야 급히 시험장에 도착한 것, 몇 날 며칠 잠도 못 잔 사람처럼 보이는 것, 먼 길을 달리느라 그의 말이 탈진해서 쓰러진 것을 고려해보면, 학생들이 두변을 의심하는 게 이해되긴 합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이미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낭정이 사정하듯이 말했다.

어만루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래서, 어쩌고 싶다는 것인가?”

낭정이 난색을 표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술 시험까지 아직 한 시진이 남았습니다. 졸업 시험의 공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두변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부디 어르신들께서 임시로 새로운 산술 문제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낭정이 왕굉과 함께 깊이 허리를 숙이고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험관 다섯은 서로 눈짓 주고받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만루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 하지만 문제를 다시 내는 데 두 시진이 필요하니, 산술 시험을 한 시진 미뤄주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장 왕굉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다시 한번 예를 표했다.

어만루가 말했다.

“이번에 시험지를 바꾸는 건, 시험의 공정함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결백을 위한 것이기도 하네. 이제 문제를 새로 내야 하니, 그만들 나가보게.”

왕굉과 낭정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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