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58화 (158/648)

158장. 솔직한 대답

경쟁자들을 확인한 두변은 견사 대사를 쳐다보았지만,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과 야윈 몸만 어렴풋이 보일 뿐, 꼭 무슨 안개라도 머리에 쓴 것처럼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영면을 앞둔 고승과 그의 정신 계승을 받고자 하는 열세 명의 제자라. 꼭 다른 종교가 떠오른단 말이지.’

두변의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던 찰나, 견사 대사가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내 정신력을 계승 받고자 이리로 온 것인지요?”

“맞습니다.”

두변을 포함한 열세 명의 사람들이 대사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견사 대사가 말했다.

“모두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난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을 통해 각자의 깨달음과 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열세 명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견사 대사를 바라보았다.

견사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묻는 이 세 가지 질문에는 옳고 틀림이 없습니다. 다들 마음속에서 대답하면 되고, 조금 전 저 청년처럼 입 밖으로 답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옥진 군주가 다시 한번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을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영감탱이.’

두변이 속으로 욕했다.

“그래요. 바로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하면 됩니다.”

견사 대사가 두변의 머릿속에서 말했다.

흠칫 놀란 두변은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그는 입도 다물고 마음속의 생각도 비웠다.

‘엄청나긴 하군. 거의 독심술 수준이니.’

“첫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견사 대사가 물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어떤 이는 이렇게나 쉬운 질문이라는 점에, 또 어떤 이는 이렇게나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에 놀랐다.

모두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에 쉽지만, 특출난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어려웠다.

두변이 견사 대사의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답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두 눈을 감고 꿈속 세계로 들어가려던 찰나, 견사 대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명상하지 말고, 본심을 따르십시오. 이 노납(老衲: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이란 뜻으로, 승려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의 의중을 파악하려고도 하지 말고요.”

‘이야. 대박이네. 정말 국보급 정신 대사가 맞네, 맞아.’

두변이 화들짝 놀라면서 다시 눈을 떴다.

나는 누구인가.

이는 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3대 질문 중의 첫 번째 질문이다.

두변은 현대 지구에서 철학과를 전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변이 철학과를 전공하면서 깨달은 건, 철학은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학문이고, 철학 전공을 해서 뭐 하나 얻는 것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차라리 안 배우느니만 못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두변은 이 질문 하나로 삼만 자에 달하는 논문도 써낼 수 있었지만, 도무지 좋은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는 두변입니다.”

두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껄껄껄.”

견사 대사가 조용히 웃었다.

모든 사람이 답변을 끝낸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답했을지는 모르지만, 두변은 옥진 군주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 듯했다.

이는 견사 대사가 웃으면서 한 말 때문이었다.

“참 재미있군요. 여기서 제일 교활하고 꾀가 많은 사람의 대답이 여기서 가장 순진하고 심지가 올곧은 사람의 대답과 같군요.”

옥진 군주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두변을 쳐다보았다.

견사 대사가 한술 더 떠서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시주와 하고 싶다는 저 청년 말입니다.”

두변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꾹 참았다.

‘이 늙은 영감탱이가 진짜!’

견사 대사가 두변을 가뿐히 무시하고 말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도 두변이 첫 번째 질문 못지않게 수만 번 생각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두변이 생각해낸 답변은 늘 같았다.

‘아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론, 지금 세계의 두변이라면 더욱 간지나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다른 지구에서 왔습니다’라든가, 우주 대폭발이라든가, 생명의 기원, 우주 등을 말하면서 꽤 그럴싸해 보이는 대답 말이다.

이 주제로는 족히 십만 자에 달하는 작품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이번에도 단순하게 대답했다.

“저는 광서에서 왔습니다.”

두변은 지금 모든 가식을 버리고 태초의 마음가짐으로 대답하려는 것도, 일부러 순박한 척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두변은 이 질문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예 깊어 보이는 답변들이 종종 치졸하기 이를 데 없고 소름 끼칠 정도로 민망한 경우가 많았다.

두변은 자신이 한 대답이 참으로 일차원적이고 형편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인슈타인이 세 번째로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보잘것없던 그 나무 의자1)처럼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지. 제가 만든 이 의자가 엉망이라고요? 제가 만든 더 엉망진창인 의자는 못 보셨잖아요.’

두변은 다른 사람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견사 대사가 움찔거리는 건 볼 수 있었다.

대사의 움찔거림은 놀라움의 움찔거림이 아니라, 온몸에 닭살이 돋아서 오그라듦의 극치를 겪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그런 움찔거림이었다.

이곳에 있는 몇몇 천재들이 아주 심오하고 조잡스러운 대답을 한 게 분명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인간이 철학적인 고찰을 하게 되면,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가 피식하고 웃는다고.

두변은 아인슈타인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 바로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상대성 이론에 관해 토론할 때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어쩌면 상대방은 자신이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놀라운 발견을 했다며 핏대를 세우고 열변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폭발적인 몸매를 가지신 시주께서 또 뭘 하고 싶다던 청년과 답이 똑같군요. 아, 폭발적이라는 단어는 저 청년이 말한 단어입니다.”

견사 대사가 말했다.

살기가 극에 달한 옥진 군주가 주먹을 꽉 쥐고 모든 내력을 주먹에 집중하여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쾅!

굉음이 들리고, 딱딱한 바닥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폭발적이란 말은 이런 데 써.”

옥진 군주가 두변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어서 견사 대사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아, 그 뭘 하고 싶다던 분은 내가 한 질문을 좀 골똘히 생각한 뒤에 대답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또 저 시주와 같은 대답을 했다간, 저 시주의 손에 맞아 죽을지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두변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대사, 제발 고승다운 면모를 보여주실 순 없습니까? 후세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좀 보이셔야지요.’

“세 번째 질문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입니다.”

조금 전처럼 일차원적인 답변이라면, ‘저는 광서로 돌아갈 겁니다.’ 하고 대답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폭력적이고 순진한 옥진 군주가 ‘저는 전장으로 나갈 겁니다.’ 하고 대답할 것만 같았다.

두변은 그녀와 비슷한 답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 어딜 가냐도 아니고, 내일 어딜 가냐도 아니고, 모레 어딜 가냐도 아닐 거란 말이지.

이 세계에서 최종적으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목적이 뭔지, 내 인생의 사명이 뭔지 묻는 거겠지? 모든 철학적인 질문에는 모호한 함정이 있으니까?’

철학과 출신인 두변은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수도 없이 생각했었고, 매번 몇 시간을 써가며 정답을 찾았다. 하지만 고찰의 끝엔 늘 답이 없었고, 도리어 자신이 보잘것없는 우주의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는 절망감만 찾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늘 그랬었다.

이번에도 꽤 오래 답변을 생각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답은 전혀 없었다.

두변이 포기하듯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답을 끝낸 모양이었다. 견사 대사가 다시 오그라들어서 움찔거렸다.

두변은 견사 대사가 분명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드디어 세 개의 질문이 끝나고, 견사 대사가 씁쓸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했다.

“쯧.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무도 세계, 권력 세계에선 다들 더 많은 힘과 권력을 원할 뿐, 천지의 도리와 우주의 도리는 안중에도 없군요.

자, 결과가 나왔습니다. 폭발적인 몸매의 시주와 뭘 하고 싶다던 분 외에 모두 탈락입니다. 다들 그만 돌아가세요.”

충격적인 결과에 열한 명의 사람들이 격노했다.

이들은 모두 몇천 리 내에서 소문난 천재이자, 무도, 학문, 심지어 신비학, 양학 등 뭐 하나 뒤질 게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혀끝으로 꽃을 만들어 내는 수준으로 엄청나게 심오한 대답을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터라, 자신들이 탈락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견사 대사가 말했다.

“이 두 사람이 남은 건, 대답이 유별나게 우수해서가 아닙니다. 정신 탐구에 있어서 여러분의 수준이 쓰레기보다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 질문을 했던 건, 누가 더 우수한 대답을 하는지를 가려내는 게 아니라, 누가 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는지를 가리기 위함이었지요.”

너무도 솔직한 견사 대사의 말에 열한 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견사 대사가 이에 그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의 대답이 그렇게 별로인 건 아니었습니다. 몸매가 폭발적인 저 시주가 심지가 올곧고 순수함의 결정체라면, 반대로 뭘 하고 싶다던 청년은 교활함의 극치이지요. 하지만 교활함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순수해지는군요. 점점더 깊이 고민하던 저 청년이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겸손함이란 게 우러나오더군요.”

‘1절만 하시지요. 그러다 돌 맞아 죽어요.’

두변은 너무도 솔직한 견사 대사의 평가 때문에 저 열한 명이 무슨 짓이라도 벌일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열한 명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더니, 급기야 그중 한 명이 칼을 뽑아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사의 말에 따르긴 힘들게 됐습니다. 무력으로 결판내지요.”

칼을 뽑아 든 거구의 사내는 깊은 눈매를 가진 무공 고수였다.

“우리 열한 명이 힘을 합쳐서 저 개 같은 연놈들을 죽이고, 우리 중 한 명을 뽑아서 계승을 받도록 합시다.”

그가 선동하면서 말했다.

열한 명의 사람들이 이렇게 견사 대사의 결정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견사 대사가 수십 년 동안 개미 한 마리조차 죽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가 어찌 됐든, 견사 대사는 자신의 정신력이 아까워서라도 이중 한 명에게 정신력 계승을 해주고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정신력 계승을 하지 않고 열반에 오르게 된다면, 그의 값진 정신력이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게 아닌가.

그래서 열한 명의 탈락자들은 먼저 두변과 옥진 군주를 죽이고, 남은 사람끼리 또 서로를 죽여서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이 계승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1) 아인슈타인의 세 번째 의자:

어릴 적 아인슈타인은 수공예 수업을 들었다. 어느 날 나무 의자를 만드는 과제가 주어졌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우르르 나가 자기 작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얼굴이 땀범벅인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교사는 수학에 재능이 있는 아인슈타인이 다음 날 근사한 작품을 가져올 거라 믿었다.

이튿날 아인슈타인은 다리 한 짝이 기운 나무 의자를 내밀었다. 기대했던 교사는 무척 실망하며 말했다.

“얘들아, 이렇게 못생긴 의자를 본 적 있니? 세상에 이보다 형편없는 의자는 없을 것 같구나.”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얼굴이 벌게진 아인슈타인이 교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있어요, 선생님! 이것보다 훨씬 못한 의자가 있다고요!”

순간 교실이 고요해졌다.

아인슈타인은 자리로 돌아가 책상 밑에서 볼품없는 나무 의자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이건 제가 처음 만든 거고, 이건 두 번째로 만든 거예요. 방금 선생님에게 드린 건 세 번째로 만든 의자고요. 근사하진 않지만 앞의 두 개보단 분명 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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