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33화 (133/648)

제133장: 대열을 변경하라

수백 명 동창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이문회는 단호하게 수백 명의 목숨을 대신해서 이도진, 여천천의 목숨과 맞바꾸려는 것이다. 이 전술을 쓰게 된다면, 정말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어쩌면 혈관음과 이문회도 목숨을 잃을 것이다.

영종오가 규일을 죽일 때의 일격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검마 이도진의 일격이 영종오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크게 차이 나진 않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수천 명의 동창 무사가 이문회를 에워싸고, 이도진과 여천천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었다.

이도진이 정말로 이문회를 죽이고자 한다면, 온몸에 남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일격을 가해야 한다.

그때가 된다면, 이도진의 몸에는 다시 방어할 현기 한 가닥 남지 않을 것이다. 영종오가 일격을 가할 때, 규일의 검이 자신의 폐를 뚫는 걸 막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이도진이 정말로 이문회를 죽이게 된다면, 동창 무사들은 그 즉시 이도진과 여천천을 향해 수천 개의 화살을 쏘아낼 것이고, 두 사람은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죽을 것이다.

적과 함께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이문회의 결의에 가득 찬 마지막 한 수였다. 그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도진과 여천천을 죽여야 했다. 설령 자신이 이 싸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도진은 이문회의 계획을 단번에 알아챘고, 심지어 어떤 결말이 될지까지 예상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문회를 죽이는 순간, 여천천과 자신도 화살에 맞아 죽는다는 걸 알았다.

이문회와 이도진의 숨 막히는 대치가 시작되었다.

이도진은 이렇게 이문회와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고, 죽기도 싫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이도진의 마음속에 이문회에 대한 경외감과 감탄이 일었다.

만약 대녕 제국의 모든 이들이 이문회처럼 사리사욕에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여천천이 오늘처럼 날뛸 수 있었을까? 북명검파가 무력을 이용해서 국법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었을까?

이도진은 죽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 살고 싶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이문회를 죽이지 않고, 여천천을 데리고 망신스럽게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도진이 평생 쌓아온 종사로서의 영예가 무너지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 치욕스러운 오늘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영종오와 대종사로서 10년에 한 번 겨루는 대결을 빌미로 두변을 죽일 수도 없게 된다.

오늘이 바로 영종오와 결전을 펼치는 날인데, 오늘이 아니라면 다시는 같은 이유로 두변을 죽일 수 없게 된다.

이도진은 분했다.

두변은 오늘 죽어 마땅한 놈인데, 이문회가 모든 판국을 뒤엎어 버렸다.

두변을 죽이는 대가로 이미 몇십만 냥에 달하는 이익을 받아들인 상태이니, 두변을 죽이지 못한다면 다시 그 이익을 뱉어내야만 한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는 그때, 멀리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기마병 한 무리가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축무애의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기세를 역전시킬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이도진은 크게 기뻐했다.

하하하! 이렇게 된다면, 이문회도 죽이고, 두변도 죽일 수 있구나!

이도진에게 아주 완벽한 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축무애의 일천 명 기마병이 먼저 여씨 별원에 도착했고, 그 뒤로 이천 명 보병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축무애는 어제 이문회가 문산루를 공격한 후,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남녕(南寧)으로 가서 직접 남해도장의 일천 기마병을 이끌고 염주부로 달려왔다.

남녕에서 염주부까지의 거리가 족히 삼사백 리가 되는데, 축무애는 기마병과 함께 열댓 시간 만에 여씨 별원에 도착한 셈이었다.

나머지 이천 보병은 급히 염주부에서 소집한 병사들이었다.

광서 행정지에서 군사력이 제일 강한 자는 진남공이지만, 바로 그 뒤를 잇는 사람이 바로 전(前) 광서 총병관, 축무애였다.

이문회가 눈이 뒤집혀서 문산루를 공격한 것은, 축무애도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이문회가 이도진을 죽이고, 여천천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여여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여여해가 날뛰기 시작한다면 축무애도 같이 휘말리게 되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축무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천천을 구해내야만 했다.

축무애의 일천 기마병은 금방이라도 이문회의 동창 무사들을 덮칠 기세로 돌진 대형을 갖추고 멈춰 섰다.

기마병과 보병의 싸움이라면, 보병이 크게 불리하지 않겠나!

전 광서 총병관, 남해도장 산장 축무애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문회, 지금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걸 아느냐? 당장 말에서 내려와 투항하고, 여천천 소저를 이리로 모셔라.”

이문회는 축무애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축무애가 호통쳤다.

“이문회, 정녕 여씨 토사가 반란을 일으키길 바라는 것이냐! 제국의 서남이 완전히 붕괴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야! 이대로 천고의 죄인이 되자고 하는 것이냔 말이다!”

여천천이 냉랭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 입 아프게 뭐 하는 겁니까? 어서 저 엄당 개자식을 없애버려요. 버러지 같은 동창 놈들을 쓸어버리라고요!”

여천천은 지원 온 축무애를 마음대로 부려도 되는 사람인 양 명령했다.

이는 여천천이 멍청해서거나 버르장머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축무애 같은 무장들이 여씨 가문에게서 매년 십만 냥 넘는 은자를 받아먹은 지가 오래된 이유에서였다. 무장들이 여씨 가문에서 여천천을 보게 되면 항상 허리를 숙이며 웃는 얼굴로 그녀를 대했고, 그래서 여천천이 광서 총병관인 축무애를 아랫사람 대하듯 대하는 것이다.

축무애의 등장으로 이문회는 만회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축무애가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이문회, 마지막으로 다섯을 셀 테니, 어서 무사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모든 동창을 죽이겠다.” “다섯!”

“넷!”

이문회가 혈관음과 송옥견 앞으로 가서 말했다.

“소공야, 관음, 두 사람은 이곳을 벗어나거라. 축무애는 너희의 앞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혈관음의 안색이 변해서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의부,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혈관음이 이문회를 의부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런 호칭에 민망할 겨를도 없었다.

이문회는 혈관음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살짝 멈칫하더니, 무척 아끼는 표정으로 혈관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낭자, 우리 두변이 복이 많구나.”

이미 만회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지만, 이문회는 절대로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정말로 적과 함께 죽는 결말만이 남았다.

“대열을 변경하라!”

이문회가 명령을 내렸다.

이문회의 명령이 떨어지게 무섭게 삼천 동창 무사가 반으로 갈라졌다.

일천오백 명은 축무애의 기마병을 방어하는 방어진을 쳤고, 나머지 일천오백 명은 검을 뽑아 들고 이도진과 여천천을 향해 공격진 대열로 섰다.

“이도진, 자네가 종사로서 대단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내가 일천오백 명의 목숨으로 자네와 여천천의 목숨을 맞바꾸고자 하네.”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일천오백 명이 죽을 각오로 이도진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게 된다면, 이도진은 아무리 많아도 수백 명을 죽이는 데 그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 수백 명이 개미떼가 죽은 코끼리를 물어뜯듯이 이도진과 여천천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이문회를 죽인다고 한들, 뭐가 남을까.’

이도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미쳤군, 이문회, 정말로 미쳤어!” 이문회가 보검을 뽑아서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이다! 이도진과 여천천을 죽여라!”

이문회가 천여 명의 동창 무사들을 이끌고 이도진을 향해 돌진했다.

축무애는 이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가 황급히 명령을 내렸다.

“돌격하라.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일천 기마병이 일천오백 명의 동창 무사들을 짓밟아버릴 기세로 무섭게 돌진했다.

이문회가 동귀어진 작전을 펼칠 거라는 걸 직감한 혈관음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문회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검을 뽑고,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가면서 선봉을 달렸다.

이도진의 시야 안에는 이문회 한 사람만 들어왔다. 이도진이 이를 부득 갈면서 소리쳤다.

“어디 한 번 목숨 걸고 싸워 보시지. 죽어라!”

이도진은 일격필살을 위해 자신의 몸에 남은 모든 현기를 끌어모았다.

동귀어진, 동귀어진!

“멈추시오! 당장 멈추라고!”

멀리서 대종사 영종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는 눈 깜빡할 사이에 허공을 가르고 사람들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이도진, 오늘은 우리가 10년에 한 번 무예를 겨루는 날이다. 감히 나와 겨뤄볼 수 있겠는가?”

곧이어 다른 사람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영종오의 옆에 나타난 두변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천천. 네년은 이도진의 제자이고 나는 영종오 대종사의 제자이니, 각자의 사부를 대신해서 결전을 치르는 건 어떠냐? 그럴 배짱이나 있을까?”

두변이 나타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이문회가 속에 불이 난 듯 단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여씨 가문을 박살 내려는 이유는 단 하나, 두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문회는 수하들에게 두변에게 이 사실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문회는 두변이 이 일에 휘말리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두변을 보호하기 위해 이문회는 이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두변을 이 일에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이문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고, 칼끝에 피가 마를 새도 없이 사람을 죽이면서 여기까지 와야 했다. 심지어 그는 이 시국에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제국의 서남 하늘을 들쑤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두변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이 일에 온몸을 내던지겠다고 하니, 이문회가 어찌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문회와 반대로, 두변이 나타난 덕에 무척 기뻐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도진과 축무애였다.

두 사람은 속으로 웃었다.

‘동귀어진할 필요가 없어졌군.

두변이 나타난 덕에 아주 만족스럽고 완벽한 결말을 볼 수 있겠어.

두변 저 미련한 놈이 제 발로 찾아와서 죽음을 자초하다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멍청한 건 부전자전인가 보군.’

두변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이문회는 정말로 혼절할 지경이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이자, 엄당의 미래인 내 의자가 오늘 이 자리에서 무너진다고? 어젯밤에 내가 한 모든 일이 다 수포가 되다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 이문회의 앞으로 두변이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소자, 부친을 뵙습니다.”

이문회는 온몸이 떨려와서는,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두변이 이문회의 손을 맞잡고 조용히 말했다.

“의부, 저를 믿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이문회는 거짓말처럼 안심이 되었다.

두변이 이문회를 믿는 만큼, 이문회 또한 두변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두변이 이 말을 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이문회는 자신의 손으로 이 국면을 만회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겉으로 내색을 하진 않지만, 두변도 속으로 이 상황이 무척 두려웠다.

자신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의부와 혈관음, 그리고 수천 명의 사람이 이도진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히 제때 이곳에 도착했다. 만에 하나 자신이 늦었다면, 오늘 일은 평생 만회하지 못할 크나큰 업보로 남았으리라.

두변이 여천천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어이, 오늘 일은 다 너랑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우리끼리 종지부를 찍자고. 20년 전, 이도진과 영종오 대종사께서 오지도에서 무공을 겨뤘는데, 이도진이 거기서 졌다는군. 그러니까 우리도 오늘 거기서 결전을 치르자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결전 말이야. 어때?”

여천천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원래 너 같은 엄당 개새끼는 나랑 무공을 겨룰 급도 안 돼. 내가 널 죽이는 건, 하찮은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도 쉬울 테니까. 하지만 네 의부가 여씨 가문 사람을 내 눈앞에서 죽였으니, 네놈이 내 손에서 정당하게 죽을 기회를 주지.”

두변이 말했다.

“공평한 결투를 치러야겠지? 이긴 사람은 살고, 진 사람은 죽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하늘도 탓하지 말고 사람도 탓하지 마.”

여천천이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개새끼가 말도 많네.”

두변이 결전지서(決戰之書)를 펼치고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자신의 엄지를 깨물어 지장을 찍었다.

여천천도 대충 손톱으로 자신의 이름을 휘갈겨 쓴 뒤, 종이 위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두변의 피를 묻혀서 지장을 찍었다.

두변이 말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 당장 바다로 가서 결전을 펼치자.”

“그래. 네놈을 한시라도 빨리 죽여야 내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서 목욕하고 쉬지. 네놈의 악취 때문에 토가 나올 지경이니까.”

두 사람은 곧바로 배를 타고 오지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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