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6화 (126/648)

제126장: 금산은해

계림부, 문산루.

“대인, 이곳이 바로 문산루의 밀실입니다.”

비밀 첩자가 허리를 숙여서 이문회에게 보고했다.

문산루의 밀실은 극비인지라, 낙문 등도 밀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오직 강라와 여씨 가문의 고위 관리자들뿐이었다.

그런데 이 밀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강라가 가장 총애하는 아름다운 사내였고, 그 사내는 바로 몇 년 전 동창에서 심어둔, 환관이 아닌 비밀 첩자였다.

이문회가 몸을 돌려서 첩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문산루에서 강라의 노예로 지내느라 온갖 설움을 당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다만, 집이 좀 그립습니다.”

첩자의 얼굴이 살짝 떨렸다.

강라는 남색을 즐기는 자였기에, 곱고 예쁘게 생긴 첩자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덕에 첩자가 강라의 심복이 될 수 있었다.

쿠쿵.

문산루의 수중 지하 밀실의 문이 열렸다.

이문회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들은 무엇이 진정한 금산은해인지 알게 되었다. 이곳은 여씨 가문의 광서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여씨 가문의 금고였다.

거대한 밀실 안, 눈부신 금덩이와 은덩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본 사람들은 시각적인 충격에 휩싸였다. 이곳의 은덩이는 하나당 최소 10근 이상, 금덩이는 하나당 30근 이상은 되어 보였다. 밀실은 말 그대로 금덩이와 은덩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문회의 심복인 동창 주부(主簿)가 엄청난 의지를 보이면서 이곳에 있는 모든 금덩이와 은덩이를 계산했다.

총 190만 냥의 은자, 11만 냥의 금자였다.

이는 광서성의 2년 치 세금보다도 많은 금액이었으니, 실로 굉장한 재산이었다.

이 재산은 여씨 가문의 무역 자금으로, 아직 문산 토사부로 운반하지 못한 것이거나, 이곳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매하기 위한 자금일 것이다.

동영 제국이 해상 무역에서 대량의 은을 풀어버린 터라, 대녕 제국의 시세는 금이 비싸고 은이 쌌다.

주부가 정산한 모든 값을 합치면 무려 300만 냥 은자가 넘었다.

물론 이건 여씨 가문의 재산 중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몇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어찌 키워낼 수 있을까.

“하하하하!”

이문회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천문학적인 숫자에 해당하는 은자를 얻었으니, 이문회가 네 개 세력이 짜둔 판의 절반은 이긴 셈이다.

어느 세상이나 그렇듯, 많은 것들이 거짓이지만, 금과 은만큼은 진실이었다.

이문회가 죽을 각오로 문산루라는 벌집을 들쑤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재물 때문이었다.

“대인, 여기 장부가 많이 있습니다. 이 상자 하나가 통째로 장부로 채워져 있습니다. 동영 제국과의 거래내역도 있고, 안남 역적, 건로, 그리고 문무백관이 여씨 가문의 가업에 얼마나 지분이 있는 것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뇌물 내역까지 있습니다.”

동창 주부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수하 하나가 이문회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대인, 문산루에서 저희가 몇 명을 잡았는데 그중 건로의 사자와 동영 제국의 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씨 가문과 전략 물자를 매매하는 불법적인 거래를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중년 환관 고수 이륜이 말했다.

“사제, 여씨 가문이 적국과 내통했다는 증거가 이렇게 명백히 있으니, 이 장부들 덕에 우리가 이기겠구나.”

이문회가 고개를 저었다.

“이 장부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토사 여씨 가문이 문무백관에게 뇌물을 주면서 적국과 불법 매매를 한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이를 알고 계시지만, 알면서 모른 척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판국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이 300만 냥 은자입니다.”

이문회가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를 불렀다.

“이위!”

이위가 이문회에게 다가와 예를 올렸다.

“예, 대인.”

이문회가 말했다.

“중요한 장부만 몇 개 추려서 즉시 내 의부인 이연정 대인께 달려가거라. 그다음엔 영설 공주께 보여드리고, 마지막으로 그 장부들을 폐하께 바치거라. 그리고 의부께 전해드리거라. 백만 냥 은자를 이연정 대인의 명의로 폐하께 올리시라고.”

이위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문회가 이륜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형.”

“그래.”

“사형께서 하셔야 할 임무가 제일 중요합니다. 사륭 토사부에 한 번 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오십만 냥 은자를 주면서 두 가지 일을 사주하고자 한다고요. 첫 번째는 아들 한 명을 경성으로 보내서 폐하를 알현하고, 국자감에 보내서 공부를 시키라고 해주십시오. 조정에 우호적이라는 태도를 취하라고요. 두 번째 일은 그에게 2만 대군을 잠시 움직여달라고 해주십시오. 되도록 문산 토사부와 마찰이 조금 생기도록요.”

사륭 토사부는 제국의 가장 남서쪽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인구도 많지 않아 생활 환경이 몹시 열악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이곳의 사람들은 몹시 야만적이었고, 전투력이 엄청났다.

게다가 사륭 토사부는 제국의 중원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유명무실한 토사가 되고 말았다. 사실상 사륭 토사부는 백 년이 넘도록 대녕 제국의 중원지역과 교류가 없었고, 어떻게 보면 완전히 독립적인 세력이었다.

지난 몇십 년간, 사륭 토사부는 여씨 가문의 음모에 휘말리면서 거의 갈기갈기 찢어졌고, 모래알처럼 세력이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몇 년 전, 사륭 가문의 사륭석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조정과 서남 토사 연맹군이 대전하는 틈을 타서 사륭 토사부에 있던 십여 개 부족 우두머리를 격패했고, 수십 년 만에 사륭 토사부를 다시 통일했다. 그 덕에 사륭 가문은 다시 제국 서남 끝단의 주인이 되었다.

비록 사륭 토사부의 인구, 영지, 병마와 재산이 토사 여씨 가문보다 훨씬 부족했지만, 사륭 토사부의 모든 사람이 병사로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토사 여씨 가문의 등 뒤에서 여여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다른 토사라면, 고작 오십만 냥 은자를 벌자고 여씨 가문과 마찰을 일으키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륭 토사부는 그럴 배짱이 있었다. 그리고 사륭 토사부에게 오십만 냥의 은자는 횡재에 가까웠다.

이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문회가 말했다.

“허광창.”

“예, 대인.”

동창 백호 허광창이 대답했다.

이문회가 명령했다.

“안륭 토사부로 가서 저홍엽 장군을 뵈어라. 장군께 안륭 토사부에 남아있는 모든 낭군을 이끌고 여씨 토사부에 바짝 접근해달라고 부탁하거라. 하지만 경계 지역을 넘지도 말고, 어떠한 충돌도 일으키지 말라고 하거라.”

“알겠습니다.” 허광창이 대답했다.

“계동앙은 이미 죽었을 것이고, 그 죄를 내게 뒤집어씌울 것이다. 계동앙이 뇌물을 받고 뒷돈을 챙긴 모든 장부 기록을 발췌하여라. 그리고 그 내역을 몇만 부로 복제하여서 전국에 퍼트리거라.”

이문회가 명령했다.

동창 주부가 말했다.

“그것참 재밌겠습니다. 계동앙 대인께서 받으신 뇌물은 금은뿐만이 아니라, 여인도 있고, 고운 사내들도 있습니다.”

이문회는 순식간에 여씨 가문이 광서 금고에 보관해둔 300만 냥 은자 중 절반을 써버렸다.

이문회는 나머지 절반을 더욱 중요한 곳에 쓸 예정이었다.

뒤이어 이문회는 붓을 들고 서신 한 통을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여봐라. 제일 빠른 속도로 이 서신을 강라의 머리와 함께 염주부 여씨 별원으로 보내거라. 꼭 여천천이 직접 이 서신과 강라의 머리를 받게 해야 한다. 날이 밝기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 이문회가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이문회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산루를 시작으로, 이문회는 바둑알을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두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사자들이 말을 타고 광서 순무 관아를 떠나 제국의 사면팔방을 향해 달려나갔다.

전서구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댓 마리였지만, 순식간에 몇백 마리가 되어 제국의 하늘을 뒤덮었다.

천하가 일제히 동창을 공격하고, 이문회를 죽이는 결전이 시작되었다.

또 같은 시각.

염주부 주위의 동창 무사들은 여씨 별원을 공격하기 위해 곳곳에서 염주부를 향해 달려왔고, 신속하게 집합했다.

여씨 별원 안.

여천천은 아직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가슴이 워낙 커서 그런지, 여천천은 옆으로 누워서 자는 자세를 선호했다.

꿈을 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천천의 미간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꼭 눈을 뜨자마자 두변을 죽이러 가려는 사람 같았다. 두변을 죽이는 것만으로 부족할 판이었고, 그의 사지를 찢고 뼛가루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없애고 싶었다.

바로 이때, 여천천의 심복 여가장이 다급하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여천천을 깨웠다.

“소저,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다고요!”

혈관음의 저택 안.

두변은 여전히 시간과 죽음의 신과 달리기 시합을 벌이면서, 미친 듯이 선와 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 사이 혈교방의 방주인 혈관음이 비밀 손님을 맞이했다. 비밀 손님의 정체는 오주부 동창 천호 종정(鍾亭)이었다.

“누군가가 여천천을 이용해서 소주인 두변을 죽이려고 합니다.”

종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혈관음이 물었다.

“누가 감히?”

“문관 집단, 무장 집단, 엄당 등입니다.”

혈관음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두변은 아직 어리고, 엄당 학원의 학생일 뿐인데?”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문회 대인을 제거하기 위함이고, 동창을 공격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이문회 대인께서 두변 소주인을 위해서 동창 주인 이연정 대인의 명령을 거역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 때문에 이문회 대인께서 이연정 대인의 총애를 잃었다고 판단했고 이번 기회에 대인을 제거할 속셈입니다. 그들은 소주인을 주인어른의 약점이자, 주인어른을 제거할 수 있는 열쇠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지?”

“검마 이도진과 영종오 대종사는 30년 넘게 무예를 겨뤄오셨습니다. 매 10년에 한 번 대결을 펼치시는데, 곧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종오 대종사께서 중상을 입으신 터라, 무공이 평소의 4할도 못 미치십니다. 만에 하나 이도진이 직접 나서게 된다면, 영종오 대종사께서는 죽음을 면치 못하실 겁니다.”

“그 일은 나도 알고 있다. 대종사께서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계시지. 대종사께서 두변에게는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직도 두변에게 검법을 가르쳐주고 계시다.”

“이도진은 중상을 입은 영종오 대종사와 대결을 펼치기 비겁하니, 제자들끼리 펼치는 대결로 바꾸자고 할 겁니다. 그럼 소주인과 여천천의 결전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종사께서 동의하시지 않을 텐데? 이도진의 검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변이 결전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실 분이다.”

“영종오 대종사께서 동의하지 않으셔도, 여천천은 갖은 이유로 소주인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일단 소주인을 죽인 뒤에 그건 사부들 간의 대결을 대신 치른 거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요.”

혈관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씨 가문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 이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여천천은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두변을 죽일 것이다.

혈관음이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두변을 구할 수 있지?”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모든 거점을 뿌리째 뽑고, 그곳에 있는 여씨 가문의 사람을 몰살할 겁니다. 죽이는 것으로 죽임을 멈추는 방법이지요.”

“염주부에 있는 여씨 별원도 포함한다는 말인가? 거기에서 사는 여천천까지?”

혈관음이 또 물었다.

“예, 여씨 별원과 여천천을 포함합니다.”

혈관음은 두피가 저릿해지면서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도의 통쾌함과 함께, 이문회를 향한 무한한 경외감을 느꼈다.

‘그래 맞아. 이게 바로 이문회 대인이시고, 이문회 대인이야말로 진정한 영웅호걸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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