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3화 (123/648)

제123장: 여씨 가문의 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두변이 어떻게 해도 여천천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고, 여천천에게 필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두변에게 꿈속 세계가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전투에는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꿈속 세계가 만능은 아니었다.

대종사가 말했다.

“너는 천재 아니더냐. 내가 눈을 딱 감고 미친 추측을 한 번 해보자면, 너는 반년 이내에 7품 무사를 통과할 것이다. 그때가 돼서 여천천과 겨루면 승산이 조금은 있을 것이야.”

두변이 말했다.

“저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저는 꼭 여천천을 지금 죽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이 제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번을 놓치게 된다면, 여천천을 아무리 죽이고 싶다고 해도 죽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여천천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여천천이 저를 찾아내서 죽이고 말 겁니다.”

영종오가 물었다.

“무슨 기회? 왜 여천천이 너를 찾아내서 죽이는 건데?”

“누군가는 여천천이 나타난 것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할 겁니다. 남의 칼을 빌려서 저를 죽일 유일한 기회요. 그들은 동창의 보복이 두려워서 절대로 직접 나서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여씨 가문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서 저를 죽이려는 겁니다. 여천천이라면 무슨 이유를 대도 타당할 테니까요.

곧 치명적인 살극이 벌어질 겁니다. 천하에 많은 세력이 이 살극의 막이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요. 달리 말하자면, 그 누구도 이 살극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 의부인 이문회 대인조차도요. 사실 저는 이 살극의 최종 목표는 제 의부인 이문회 대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도진은 이 틈을 타서 아주 터무니없는 이득을 취하려 할 테고, 그 세력들을 도와서 여천천을 자극할 것입니다. 여천천은 저를 죽일 기회를 항시 엿보고 있었으니, 이번 살극을 몹시 반기겠지요.”

두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저에게도 이번 일이 아주 귀하디귀한 기회입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여천천을 죽이고 싶습니다. 이 판에서 제가 죽는 건 개죽음일 테지만, 여천천이 죽는 것도 개죽음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시기라면, 저는 절대로 여천천을 죽인 뒷감당을 하지 못할 겁니다.”

두변이 아니라, 옥진 군주나 영설 공주가 여천천을 죽인다고 해도 똑같이 뒷감당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이 시기에만 여천천을 죽여도 뒷감당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일의 내막을 몰라서 조금 둔감했던 영종오 대종사는 두변의 말을 듣고 곧바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제가 계산한 게 틀림없다면, 살극은 아주 빠르게 시작할 겁니다. 정말 빨리요. 그러니 사부, 제게는 반년이라는 시간이 없습니다. 어쩌면 아예 시간이 없어서, 제가 무엇을 준비할 틈도 없이 당할 수도 있고요.”

대종사가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말했다.

“사부, 혹시 그런 검법 없을까요? 현기 필요 없이, 온전히 초식으로만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검법이요. 아무리 어려운 초식이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하룻밤이면 그 초식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영종오가 고개를 숙이고 깊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변, 나도 그런 검법이 존재했으면 좋겠구나.

확실히,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고, 밀접한 거리에서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아주 현묘한 검법이 몇 개 있긴 하다. 하지만 여천천은 7품 무사이니, 너와 거리가 2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검기만으로 너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네 검법이 아무리 현묘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영종오의 말이 맞았다. 두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면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극강의 초식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기가 없다면, 모든 건 다 쓸모가 없는 셈이다.

두변의 현기 내력 수준은 여천천의 십 분의 일, 몇십 분의 일에도 못 미칠 뿐이다.

쿠르릉, 쾅쾅!

이때, 밖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용이 헤엄치듯 번개가 내리쳤다.

두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황당하기까지 한 방법을 떠올렸다.

“사부, 혹시 그런 검법 없습니까? 강력한 자기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검법이요. 천둥 번개가 칠 때를 맞춰서 그 검법을 쓰면, 번개가 자기장이 모이는 쪽으로 내리치겠지요. 여천천에게 그 검법을 써서 번개를 맞게 하고, 그 틈을 타서 제가 여천천을 찌르는 겁니다. 그럼 여천천은 필시 죽게 될 겁니다.”

두변의 말을 들은 영종오는 화들짝 놀랐다.

정말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도 충격적인 방법이었다.

계림부, 문산루.

이천 명의 동창 정예 무사가 문산루를 빈틈없이 포위했다.

강라의 명령 하에, 문산루의 몇백 명 무사들도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문산루 문 앞에서 동창 무사들과 대치했다.

검을 뽑아들고, 활시위를 당긴 양측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몇백 명 대 이천 명이었지만, 여씨 가문의 무사들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었다. 광서에서 감히 여씨 가문을 건드릴 만한 위인이 아무도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동창의 전 진무사인 왕인도 순순히 문산루에서 돈을 챙겼고, 강라와 대화를 할 때도 허리를 살짝 굽혀야 했다.

광서 순무 낙문은 이문회가 이런 중요한 시기에 여씨 가문을 향해 칼을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낙문의 말을 듣고는, 이문회가 웃었다.

“내가 미쳤다니요? 낙 대인, 이게 바로 대인들께서 원하시던 결말 아닙니까? 제가 지금 미치지 않고, 대인들께서 두변을 죽인 뒤에야 미치면,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이문회의 말 한마디에 네 개의 거대 세력 집단이 공들여서 만든 살극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이문회! 문산루는 토사 여씨 가문의 가업이다. 토사 여씨 가문은 제국 서남 지역의 기둥이라는 걸 모르느냐? 지금 진남공께서 병마를 이끌고 안남 왕국으로 향하셨으니, 서남 지역의 안위는 여씨 가문의 손에 달려있다. 그런데 네가 어찌 문산루를 공격한단 말이냐? 지금 여씨 가문을 자극해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것이냐? 만에 하나 서남에서 병변이 일어난다면, 넌 열 번 죽어도 모자랄 것이다.”

낙문이 아래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게 바로 대인들께서 원하시던 결과 아닙니까. 여천천의 손을 빌려서 두변을 죽이고, 제가 미쳐 날뛰어서 여씨 가문을 공격하는 것이요. 그 뒤는 안 봐도 뻔하겠지요. 여씨 가문은 몇만 대군을 이끌고 제국의 주부를 위협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황제께서 여씨 가문이 퇴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를 죽일 수밖에 없겠죠.”

이문회는 낙문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네 개 세력이 꾸민 음모를 숨김없이 말했다.

“안 그래도 제가 막 경성에서 의부의 명령을 거역했으니, 그쪽 세력들은 기다릴 틈도 없다는 듯이 이번 기회에 저를 죽이려고 하겠지요. 거기다 두변을 제물로 바치면서요. 그러니 이 판에서는 제가 뭘 해도 죽는 건 똑같습니다.”

낙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 개의 세력이 짜둔 판에서는 이문회가 뭘 해도 죽는 건 맞았다. 이문회가 두변이 죽는 걸 보고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경우엔 예외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이문회가 여태 쌓아온 모든 명망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이다.

이문회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다만,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판이란 건 존재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어찌 됐든 대인들께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판인데, 제가 정말로 죽을지 안 죽을지 궁금해지더군요.”

강라가 이를 부득 갈면서 천천히 말했다.

“대인들, 저는 이제 내려가 보려고 하는데, 동행하실 분이 계십니까?”

낙문과 계동앙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 중 계동앙만 강라를 따라 이문회를 만나러 갔다.

계동앙은 전 태자소부이자 전 내각 대학사로서 낙문보다 더욱 무게감 있고, 신망이 더욱 두텁기 때문이었다.

문산루 장궤 강라가 이문회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너희들이 문관, 무관 집단과 무슨 원수를 졌는지, 무슨 투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절대로 이곳 문산루를 두고 목숨 건 도박을 하진 말아라. 우리를 건드렸다간, 별 볼 일 없는 너는 물론이고, 동창 주인인 이연정이 와도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전 태자소부, 전 내각 대학사 계동앙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외쳤다.

“이문회, 당장 무사들을 데리고 돌아가게. 만에 하나 자네가 토사 여씨 가문을 자극해서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자네만 죽는 게 아니라 동창 전체가 연루될 것이네. 자네는 제국의 죄인이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란 말이네.”

강라가 자신의 짧은 수염을 가볍게 쓸면서 웃었다.

“이문회, 난 네가 이곳에서 뭘 하려는지 알고 있지. 문산루를 건드릴 배짱은 없지만, 이렇게 보여주기식으로 우릴 자극하면 의자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문산루를 인질 삼아 포위한 뒤, 여 소저께 두변을 죽이지 말고 놓아주라는 조건으로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고 조나라를 구한다. 적의 포위망 속에 든 아군을 구할 때 직접적인 방법보다 적의 약점을 찔러 아군 스스로 돌파하도록 함을 의미) 작전을 펼치려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를 어쩌나? 우리 여씨 가문은 절대로 협박에 응하지 않는단 말이지. 우리 여 소저께서 두변을 죽이고자 하시니, 그냥 두변이 죽게 놔두면 된다. 도대체 누구 보라고 그렇게 뭐든 다 내던질 기세로 구는 거냐?”

강라가 비아냥대면서 말을 이었다.

“너는 두변을 구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똑똑히 말해두는데, 문산루에 있는 내 사람을 한 명이라도 건드렸다간, 여씨 가문의 몇만 대군이 내일 즉시 북상하여 경성으로 갈 것이다. 그럼 제국의 토사 연맹 또한 들썩이겠지. 그럼 소식을 듣고 놀라서 벌벌 떠는 황제가 너를 즉시 잡아 죽인 뒤에, 네 시체를 몇백 개로 토막 내서 우리 앞으로 보내줄 것이란 말이다.”

강라가 악독한 눈빛으로 이문회를 쏘아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의자 두변과 지하 세계에서나 상봉할 수 있겠군.”

이문회가 앞으로 한 발 나서서 강라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전 태자소부 계동앙이 재빨리 이문회 앞을 막아섰다.

“이문회, 뭐 하자는 겐가! 강라 선생을 해치고자 한다면, 제국의 대업을 위해, 황제 폐하를 위해, 내 몸을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곧이어 계동앙이 정의롭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강라를 보호하려고 두 팔을 벌렸다.

“그러시든가요.”

이문회가 짧게 대답하고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동앙의 따귀를 쳐서 바닥에 쓰러트렸다.

“으악!”

계동앙은 고통스러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 남지 않은 이빨이 모두 부러졌고, 입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이문회는 정말로 계동앙의 몸 위를 발로 밟아 넘어서고는, 강라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여해의 개새끼 주제에 못하는 말이 없군. 광서에서 네놈을 하도 떠받들어 주니, 정말로 개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건가? 이놈,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

이문회가 강라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툭 쳤다.

강라는 치욕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

“감히 나를 욕보이다니. 두변은 죽은 목숨이다! 내가 네놈을 갈기갈기…….”

순간, 이문회가 성난 사자처럼 포효했다. 그러자 강라가 그의 거센 기운에 몇 척이나 뒤로 밀려 나갔다.

“토사의 졸개 따위가 감히 제국의 동창 진무사 앞에서 거만하게 굴다니. 죽어라.”

이문회가 강라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은 뒤, 손아귀에 힘을 넣고 그를 찢어버렸다.

쩌억.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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