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1화 (121/648)

제121장: 도륙의 밤 一

‘비옥한 농토 삼천구백 묘라니. 두변의 목숨값이 꽤 나가는군.’

이 거래는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두변의 목숨값이 삼천구백 묘보다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삼천구백 묘는 실로 큰 숫자였고, 이도진은 상대방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검마 이도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반 시진 뒤.

이도진에게 또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가면을 쓴 문사(文士) 차림의 사자였다.

“이 종사, 거래를 하나 하는 게 어떻습니까? 종사의 손을 빌려 두변의 숨통을 끊어버리고자 하는데.”

가면을 쓴 사자(使者)가 말했다.

이도진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대꾸했다.

“나와 여천천이 꽤 몸값 나가는 놈을 데리고 있나 보군.”

“제국의 세력이 약해져 가는데, 누가 감히 토사 여씨 가문을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두변이 여천천의 손에 죽는다면 그저 그렇게 죽는 것이지요. 이렇게 오기 힘든 절호의 기회를 어찌 그냥 놓치겠습니까.”

“두변 그놈 하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큰 지출을 할 필요가 있소?”

“이문회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그물망 한 번 크게 짰군. 이문회까지 죽이고 싶다고?”

“물론이지요. 운이 좋아 두 기회가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두변을 죽이기에 절호인 기회일 뿐만 아니라, 이문회를 죽일 수 있는 천년에 한 번 올 법한 귀한 기회까지 왔습니다. 이문회는 동창의 주인인 이연정의 말을 거역했고, 두변의 죽음은 이문회를 미치광이로 만들 것입니다. 사람이 미친다는 건, 곧 파멸을 뜻하지요.”

“값을 말하시오.”

“비금 광산 하나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부족하오. 그건 두변 하나의 목숨값이오. 그런데 이문회까지 죽이고 싶다 하지 않았소? 그럼 당연히 값을 더 올려야지. 회시(會試)에 참가할 수 있는 자리 9개를 더 얹으시오.”

가면을 쓴 사자는 너무 큰 대가에 가면 뒤 얼굴을 움찔하고는 말했다.

“이문회를 죽이는 건, 저희 쪽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저희는 이미 엄당의 한 파벌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이익을 이미 줬습니다. 곧 죽을 놈에게 엄청난 이익을 준 것이지요. 그러니 이 일에 더 이상의 값을 요구하시는 건 무리입니다.”

이도진이 딱 잘라 말했다.

“회시에 참가할 수 있는 자리 9개.”

가면을 쓴 사자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종사, 저희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세력에서도 사람을 보내올 것이고, 종사께서는 똑같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가 굳이 종사께 이런 이득을 드리지 않는다 해도, 두변이 죽는 것은 매한가지겠지요.”

이도진은 변함없는 태도로 천천히 말했다.

“그럼 한 번 두고 보게나. 하지만 회시 참가 자격 9개는 변함없을 것이오.”

가면을 쓴 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 받아들이지요.”

또 반 시진이 지난 뒤, 또 다른 손님이 검마 이도진을 찾아왔다.

이번 손님은 목소리가 얇았던 터라, 누가 봐도 그가 엄당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종사와 거래 하나를 하고자 왔습니다.”

엄당의 사자가 말했다.

이도진이 말했다.

“나와 여천천의 손을 빌려서 두변을 죽여달라는 거래인가?”

“맞습니다. 역시 이 종사께서는 지혜로우십니다.”

“두변을 죽이는 건 쉽다. 매년 6천 석의 소금을 주시오. 꼭, 매년이어야 하오.”

이도진의 조건을 들은 사자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년 6천 석의 소금이라면, 매년 4만 냥 은자를 달라는 것과 같았다.

엄당의 사자가 조금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두변이라는 놈이 금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해도 그 정도 값어치는 안 될 겁니다.”

이도진이 말했다.

“두변은 그만한 가치가 없겠지. 하지만 이문회까지 얹으면 그 정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값지지 않나? 당신들도 이문회가 죽도록 싫지 않소. 그는 최근에 동창의 주인인 이연정의 명령조차 거역했소. 그러니 당신들 세 세력이 힘을 합쳐서 큰 판을 만들어서 그를 죽이려는 게지. 아, 네 개의 세력이군.”

또 하나의 세력은 건로였다. 그들은 비밀 첩자를 동원해서 이도진에게 똑같은 거래를 제안해왔다.

이번이 바로 이문회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세력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문회를 죽이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이문회의 존재를 두려워하기도 증오하기도 했다. 그런데 때마침 이문회가 이연정의 명령까지 거역했으니, 이참에 진짜로 그를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이문회가 장차 동창 대도독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의 돈줄이 위협받을 것이고, 여태 취해왔던 이득에 걸림돌이 생겨서 발 뻗고 잘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두변을 죽이는 게 바로 이문회를 완전히 파멸시킬 열쇠라고 생각했다.

이도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문회가 죽는다면, 엄당에서 이익을 가장 많이 챙겨갈 사람들이 돈 쓰기를 아까워하다니, 쯧쯧.”

엄당의 사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종사의 조건에 응하겠습니다.”

이도진이 말했다.

“두변이 죽었다는 소식을 곧 듣게 될 걸세.”

이도진이 자신을 찾아올 만한 손님들이 모두 왔다 갔다고 생각했을 때, 예상치도 못하게 다른 엄당 사람이 이도진의 방문을 두드렸다.

거래의 내용은 두변을 죽이라는 동일한 내용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 엄당 사자가 제시한 대가는 이전 손님들의 몇 분의 일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사자는 두변 얘기만 할 뿐, 이문회의 이 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도진은 몹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엄당 사람들은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로군. 두변이 죽었으면 하는 파벌이 하나만은 아닌가 보군.”

대녕 제국의 투쟁은 언제나 잔혹했다.

동창의 주인 이연정이 의자 이문회를 대도독부에서 내쫓자마자, 다른 세력들은 곧장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도진과 여천천에게 무관, 무장, 엄당, 건로, 네 세력이 함께 찾아와서 이문회를 죽이기 위해 거대한 판을 짜게 된 것이다.

여천천이 두변을 죽이면, 이문회는 자극을 견디지 못하여 미쳐 날뛸 것이고, 결국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때 네 개의 세력이 미리 짜둔 그물망으로 이문회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뒤,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두변이 죽지도 않고 독에 중독되었을 뿐이며, 이문회가 벌써 미친 짓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문회의 신조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할 때, 절대로 방어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먼저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자, 가장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순간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두변이 자신들이 짠 판을 역이용하여 여천천을 죽일 것이라고는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광서 계림부.

늦은 밤. 여씨 가문의 각 거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동창 무사들의 급습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가 계림부의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이문회는 여씨 가문의 사람들을 생포할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각 거점을 지키는 여씨 가문의 호위와 무사들은 너무도 기고만장해서 동창 정예 무사들을 보자마자 삿대질하면서 호통부터 치려고 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무기를 집어 들려고 할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동창 무사들이 인정사정없이 그들을 향해 화살을 쐈기 때문이다.

슉, 슉, 슉.

동창 무사들은 각 거점에 있는 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끌고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동창 무사들의 뇌리에는 모조리 죽여버리라는 이문회의 명령밖에 없었다. 광서 여씨 가문의 거점에 잠입한 자라면, 무장한 무사든, 민간인 차림의 장궤나 사환이든,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 말이다.

이자들이 비밀리에 주고받는 정보 하나하나, 그들이 버는 돈 한 푼 한 푼에, 모두 대녕 제국 백성들의 피눈물이 섞여 있었다.

이문회는 여씨 가문이 행해오던 모든 불법적인 일의 증거를 수집하고, 모든 불법적인 수익을 몰수하고자 했다.

계림이 광서의 수부(首府:부의 성도省都가 있는 부)이기에 온갖 사업과 비밀 거점을 많이 만들어 두어서, 그 수가 무려 서른 몇 곳에 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문산루였다.

문산루와 염주부의 여씨 가문 별원은 그들의 광서 지역 요충지였다. 현대로 치자면 두 곳은 거의 문산 토사부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인 셈이었다.

금산은해(金山銀海)와 천문학적인 숫자들이 오가는 증거가 모두 이곳 문산루에 있었다. 여씨 가문의 광서 거점을 뿌리째 없애버리고 싶다면, 문산루를 뚫는 게 관건이었다.

문산루는 오주부의 표묘루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곳으로, 단순한 주루나 청루가 아니라, 광서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력 핵심지였다.

광서의 대물급 행정 관리들이 다 이곳에서 연회를 열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중요한 결정과 비밀 거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어떨 땐, 광서 순무 관아에서, 포정사 관아에서, 여경사 진무사 관아, 심지어 동창 진무사 관아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문산루에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문산 토사부이자, 홍하 후작부이자, 서남 토호의 최대 거점이기 때문이었다.

단편적으로 건로에게 철을 밀매하는 거래를 얘기해보자면, 매년 문산루에서 성사되고 오가는 거래액이 백만 냥을 넘었다. 문산 토사부에도 철광이 여러 개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없는 식재료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그 흔한 배추 요리 하나조차 은자를 삼 냥씩이나 받았다.

순무 대인, 포정사 대인, 진무사 대인, 축무애 대인, 계동앙 대인 등, 광서의 거의 모든 거물이 사나흘에 한 번 들러서 이곳에서 식사하며 중요한 사안들을 상의하거나 결정했다.

문산루를 장관하는 사람은 서남 토호 여여해의 심복인 강라였다. 그에겐 또 다른 신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두변을 거의 죽일 뻔했던 명사수 강현의 친형이었다.

강라는 문산루라는 주루의 장궤일 뿐이지만, 순무 대인, 진무사 대인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고, 더 나아가서 감히 강산을 논하는 자이기도 했다.

그는 계림에 있는 여씨 가문의 대표 인물이었고, 어떤 거래나 중요한 사안은 모두 그를 통해서 진행해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라, 광서의 웬만한 거물급 인물들은 모두 그에게서 돈을 받았다.

문산루는 날마다 금산은해이긴 하지만, 광서 거물급 인물들의 지분도 꽤 있었다.

그래서 강라는 4품 이하의 관리들을 보기도 귀찮아했고, 보게 된다 하더라도 곁눈질로 슬쩍 보는 수준이었다.

왕인도 매년 강라에게서 일만 냥 넘는 은자를 받아 갔지만, 강라가 직접 그를 접대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곁들여 말하자면, 이번에 광서 동창 진무사에 진급한 이문회가 딱 4품이었다.

지금, 문산루의 장궤인 강라는 상석에 앉아서 광서 순무 낙문과 전 태자소부 계동앙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강라는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준수한 외모에 영민한 두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나는 훤한 인물이라 그런지, 그는 순무 대인 앞인데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순무 대인, 대인들의 눈에는 이문회가 한 인물 하는 사람이겠지만, 저희 여씨 가문의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광서 동창 진무사는 고작해야 4품 관리 아닙니까? 계림 지부(知府)도 4품입니다. 그런데 어제 계림 지부가 문산루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제게 한잔 올리겠다고 절 찾아왔더군요. 제가 시종에게 시간이 없다고 대충 얼버무려서 보내버리라고 했는데, 아니 글쎄, 지부가 제 방문 앞에서 술잔을 비우는 것 아닙니까.그리고 자기는 술잔을 비웠으니까, 자기 신경 쓰지 말고 저더러 편히 일 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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