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장: 최현은 피를 토하고
“잘 들어라! 내 명령이 없이는 먼저 공격해선 안 되고 그 누구도 다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최현이 명령했다.
새카맣게 깔린 이만 명을 보고 있으니 최현도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최씨 가문의 장원 내의 모든 사람을 다 모아도 천 명도 되지 않으니, 이들로 이만 명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현이 담장 위로 올라가 소리쳤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 감히 최씨 가문의 저택을 포위해 공격하다니, 이게 반역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냐! 순무 관아에 사람을 보내두었으니 곧 대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물러나는 게 좋을 것이다!”
서생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당신네 최씨 가문이 원시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누군가 낙방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한데 이보다 더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른 것이 있으니, 바로 최연을 수석으로 만들기 위해 진평에게 독을 썼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을 더럽히고 공자(孔子)를 모독한 당신네 최씨 가문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낙방한 응시생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분노를 마음껏 표출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방금 연설한 서생이 앞장서며 사람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는 계림 서생 신도당으로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으나 천성이 나서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최연과 최병정, 그리고 배후의 주모자들을 모두 넘겨라!”
“최씨 가문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니 최씨 가문 장원에 있던 사람들도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최현이 소리쳤다.
“얼토당토않은 소리! 이 모든 것은 모함이다! 너희들이 지금 동창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느냐! 내 보아하니 이중에 공명을 누리려는 자들이 있고, 심지어 우리 최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자들도 보이는데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 말을 들은 현장에 있던 수재(秀才) 수십 명이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며 군중 속으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앞날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최현은 수재 저들을 설득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분발했다. 만약 저들이 자신의 편이 되어 창을 거꾸로 돌리기만 한다면 수백 명의 서생은 믿고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하고 저들을 모두 매수해 일을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서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남은 군중들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니 병사 몇백 명으로 충분히 제압 가능했다.
“공명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내 너희들이 지금 선동당했다는 것을 고려하여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을뿐더러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 일을 이렇게까지 벌인 자가 누구인지 말하면 내 직접 순무 대인에게 부탁해 상을 내리도록 해주마.”
최현이 의기양양해하며 말하자, 수십 명 수재의 얼굴빛이 바로 변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서생의 이름이 신도당이 맞는가? 내 일찍이 자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으나 이번 원시에서 아깝게 낙방했다고 들었다.
나도 이 사실이 납득이 안 되니 내일 순무 대인께 자네 글을 다시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하마. 우리 계림부에 이런 인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나.”
최현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 말을 듣자 대열 맨앞에서 난동을 부리던 신도당의 두 눈이 번쩍이고 마음이 흔들렸다. 여기서 그만하고 물러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현이 이만 명의 인파를 어르고 달래며 이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있는 그때.
슉!
갑자기 최씨의 장원 쪽에서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푹!
화살은 신도당의 팔을 관통했다.
“안 돼! 뭣들 하는 것이야. 누가 쏜 화살이냐?”
최현이 역정을 냈으나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화살에 맞은 신도당은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그대로 땅으로 꼬꾸라지는 것이 마친 죽은 것만 같았다.
순간, 이만 명이 일제히 격노했다.
“사람을 죽여 입막음하려 들다니? 돌격하자!”
이만 명의 군중이 최씨 가문의 장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단 일각 만에 최씨 가문의 빈약한 수비선은 그대로 무너졌다.
이만 명이 아름답게 꾸며진 최씨 가문의 장원으로 달려들었고, 때리고 부수고 불태우기 시작했다.
장원으로 들이닥친 서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고 있기에 가장 먼저 최연과 최병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온 군중 중에 몇백 명은 이것저것 돈이 되는 것들만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층 민중들은 화려하고도 호화스러운 저택을 넋 놓고 구경하다 더 분노해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인파에 섞여 있던 동창의 밀정들은 혼란을 틈타 여기저기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호화스러운 최씨 가문의 저택은 순식간에 변했다.
최현과 최부 등의 인물들은 몇백 명의 최정예 무사의 보호를 받으며 장원에서 말을 타고 몇 리를 무사히 빠져나온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장원이 짓밟히고 부서지고 불타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증조부께서 기와를 하나하나 직접 쌓아 올리고 나무도 한 그루 한그루 직접 심어가며 만든 저택을 물려주었는데 그 장원이 불에 타고 있었다.
십여 묘에서 시작해 주변의 기름진 논밭을 차근차근 사들였고, 최현 대에 이르러 지금의 규모를 갖게 되었으니 제국 남방에서 그 누가 광서 계림부의 최씨 저택을 모르거나 부러워하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백여 년의 피와 땀이 저들에 의해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최현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어지더니 곧이어 피를 토해냈다.
“아버지!”
최부가 최현을 부축하며 최현의 노기를 진정시켰다.
최현은 눈을 감아 눈앞의 고통스런 장면을 외면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시 냉정해져 있었다.
최현이 말했다.
“장원이 불타 없어지면 다시 세우면 그만이다. 모두가 안전하니 이만하면 다행인 셈이다.
아직 우리가 진 게 아니다. 여경사가 두변을 잡아들이고 최병정과 최연을 다시 찾아온다면 우리가 결국 이긴 것이니 우리의 장원을 두변의 무덤에 순장했다고 여기자꾸나.”
“두변, 그놈의 목숨을 대가로 주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었습니다!”
최부가 차갑게 말했다.
“얼른 순무 관아로 가자. 가서 낙문 대인에게 병력을 요청해 저들을 진압하면 장원의 절반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최정예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장원에서 빠져나온 최현 부자는 광서 순무 관아로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순무 관아에 도착한 최현과 최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된다. 여기에 몰려 있는 군중은 자신들의 장원을 둘러싼 사람보다 그 수가 훨씬 많았다.
족히 수천 명이 되어 보이는 서생 중에는 수재도 백 명이 넘었고, 거인도 족히 열 명은 돼 보였는데, 이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관모와 관복을 벗어 던진 학정 오삼석이었다.
물론 이곳은 조정의 법도를 대표하는 관아였기에 그 어떤 폭력 행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그저 순무 관아를 물샐틈없이 둘러싸고는 질서정연하게 반듯하게 서있었다.
오삼석이 서생 천여 명과 한목소리로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논어>를 다 읽은 후에는 최연의 부정행위 사건과 최병정이 진평을 음해한 진술서를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낭랑한 목소리들이 황혼에 울려 퍼지고, 순무 관아를 포위한 행동에는 신성한 정당성이 가득했다.
낭독을 마친 오삼석은 순무 관아를 향해 허리 숙여 절했다.
“소생 오삼석, 순무 대인께서 진평과 모든 광서 응시생들, 그리고 성인 공자와 황제 폐하께 이번 사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천여 명의 서생들도 무릎을 꿇고 함께 따라 외쳤다.
“순무 대인께서는 진평과 모든 광서 응시생들, 그리고 성인 공자와 황제 폐하께 이번 사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순무 관아 안에 있던 낙문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심지어 반 시진도 안 되는 시간에 머리카락이 죄다 하얗게 센 것처럼 보였다.
낙문이 관직에 나선 후 처음 겪는 최대의 위기였다.
이전에 두변에게 창피를 당한 것은 명성에 흠집이 생긴 게 전부였지만, 오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관복을 벗어야 할지도 몰랐다.
“계 대인, 이미 오삼석을 설득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낙문이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계동앙도 어두운 안색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얘기할 때만 해도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 우리와 함께한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미친놈처럼 나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미 오삼석이 완전히 돌아섰는데,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낙문이 소리치자, 남해 도장 축무애가 말했다.
“병력을 이동시켜 진압해야 합니다. 우리가 즉시 일만 병력을 동원해 저자들을 해산시키겠습니다. 끝까지 버티는 자들은 반역죄로 처단해 버리면 됩니다.”
순무 낙문이 반대하며 나섰다.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서생들이 확실한 증거와 명분을 가지고 시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들은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들을 무슨 수로 진압한단 말입니까?”
계동앙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병력도 파견해선 안 되고 진압도 안 됩니다. 만약 이게 민란으로 이어지거나 서생이 몇이라도 죽어 나가는 날에는 우리는 완전 끝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이 광서 전체가 동요해서 반란이라는 죄목이라도 붙는 날에는 당신이나 내 머리도 모두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방법이 있습니까?”
축무애가 소리치자, 이강 서원의 산장 구양담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버릴 건 버리고 지킬 건 지켜야겠습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몇 명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결백하니 이쯤에서 꼬리를 끊는 게 안전할 듯싶습니다.”
이때 최씨 가주 최현이 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순무 대인! 축무애 대인! 어서 병력을 저희 장원으로 파견해 진압해 주십시오! 그자들이 난동을 피우며 약탈하고 불태우고 있습니다!”
자리에 있던 거물급 인사들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최현을 바라봤다. 동정심과 살기가 뒤섞인 눈빛에, 최현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 이게 무슨 뜻이지?
광서 순무 낙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말했다.
“최현, 아주 큰일을 하셨소이다. 잘난 아들과 딸을 두셨군요.”
순무 대인은 줄곧 최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줄곧 최현과는 호형호제하며 지낸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어서는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최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인,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낙문이 말했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벌인 일은 자신이 수습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나라에 법도가 있으니, 국법에 따라 처벌을 받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소이다.”
자신은 이 일과 상관없으니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낙문 대인은 본인은 친우를 팔아넘겨서라도 이 일에서 확실히 몸을 빼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최현은 온몸이 얼어붙어 손을 내밀어 낙문을 가리킬 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이미 자신이 버려졌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번에 두변을 죽이기로 한 것은 모두가 같이 뜻을 모은 것 아니냐!
게다가 너희들은 광서에 온 후 우리 가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은자를 챙겨갔느냐! 족히 그 자릿수가 여섯 자리를 넘지 않으냐!
상황이 이렇게 되니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최씨 가문을 내치겠다 이거냐!
“이런 천벌을 받을 놈들아!”
크억!
최씨 가주 최현은 검은 피를 뿜고는 바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