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76화 (76/648)

제76장: 예고된 대소동 속에서 승기가 기울다.

가슴의 상처가 너무 작아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을 정도였지만, 최병정은 여전히 혼미한 상태로 맥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두변은 최병정에게 다가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했다.

“두변, 감히 이렇게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 하다니.”

정신을 조금 차린 최병정이 독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두변은 최병정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너는 그저 도구일 뿐이야. 내가 너희 최씨 가문을 파멸시키는 데 사용하는 도구 말이다.”

이어서 두변이 명령했다.

“최병정을 데리고 가서 동창 감옥에 가두고, 시녀 소민도 같이 데리고 간다. 괜찮은 곳에 따로 넣고 잘 보호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두변이 최병정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한 뒤 말했다.

“앞으로 고분고분하게 굴어라.”

말을 마친 두변은 맞은편에 있는 학정 관아를 바라봤다.

광서 최대의 권력 집단과의 결전이 시작되었는데, 이 결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이 바로 학정 오삼석이었다.

결국 오삼석이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볼 수 있었다.

광서 학정 오삼석의 관저.

“옥진, 계림엔 무슨 일 때문에 온 것이냐?”

오삼석이 물었다.

옥진 군주는 매끈하게 빠진 두 다리를 호탕하게 벌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이 사람의 욕정을 자극할 정도로 매혹적이었으나 아직 혼인 전인 그녀는 자세를 조신하게 가눌 생각이 없었다.

오삼석은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라 미간을 찌푸렸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대종사에게 중요한 부탁을 드리려고 왔어요. 잠시 머물다 곧 오주부로 가야 하거든요.”

“영종오를 말하는 게냐? 그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서 말씀드리기 좀 그래요.”

이때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어른, 계림 동창의 장 백호가 뵙기를 청합니다.”

오삼석은 동창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으나 마지못해 만남을 승낙했다.

“안으로 들이거라.”

옥진 군주는 외부인을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오삼석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기 위한 이유로 자리를 비켰고, 잠시 후 계림 동창 장 백호가 들어와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오 대인을 뵙습니다.”

“말하시오.”

오삼석은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마실 차조차도 내어주지 않았다.

장 백호가 두툼한 진술서를 올리며 말했다.

“최연이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시험 감독관 셋이 최씨 가문에 매수된 상태로, 이 문서들은 전부 진술서이며 증거도 충분합니다. 게다가 대인의 가복인 오전도 최씨 가문으로부터 은자 이천 냥을 받고 시험 문제를 빼돌렸습니다.”

“뭣이라?”

학정 오삼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 백호가 말을 이었다.

“진술서를 한번 봐주십시오. 저희가 대인의 노복인 오전을 데리고 가서 조사하려고 합니다.”

오삼석은 빠르게 진술서를 훑어보았고 곧바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시험 감독관 셋은 시험이 종료된 후 가장 먼저 최연의 시험지를 찾아 강력하게 그의 수석을 주장하던 인물들이었다.

게다가 오삼석은 자신이 왜 그토록 최연의 시험지가 기이하다고 여겼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최연의 답안지는 정교하고 치밀하며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글의 풍격이 일관되지 않았는데,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최연이 사전에 시험 문제를 손에 넣은 뒤 유능한 진사와 거인들에게 시문과 시사를 대신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오삼석은 거의 찰나의 순간에 최연이 부정행위를 저질렀음을 확신했다.

장 백호가 말했다.

“저희는 대인의 품성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저희가 가복 오전을 동창으로 데리고 가 심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때, 오삼석의 막료 하나가 작은 문을 통해 오삼석을 불렀다.

“대인!”

목소리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오삼석이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계동앙 대인께서 지금 서재에 와 계신데 뵙자고 하십니다.”

막료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삼석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밖으로 나가며 동창의 장 백호를 향해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말을 마친 오삼석은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을 만나기 위해 곧장 서재로 향했다.

“제자, 선생을 뵙습니다.”

오삼석이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갖췄다.

“일어나거라.”

계동앙은 호탕하게 웃으며 오삼석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눈빛은 도리어 차가웠다.

“삼석, 누군가 네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도 모자라 네 벼슬길마저 망치려 들고 있다는군.”

“그게 누구입니까?”

“엄당에 두변이라는 몹쓸 놈이 하나 있다.”

“저를 어떻게 해친다는 말씀이십니까?”

“과거시험과 관련된 사람들을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낸 후 최씨 가문 자제인 최연에게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죄명을 씌워버렸다. 게다가 네 가복인 오전이 뇌물을 받고 시험문제를 빼돌려 최연에게 건네주었다는구나. 무슨 속셈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 네 종복을 잡는 것보다 네 앞날에 훼방을 놓으려는 속셈 같구나.”

오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 두겠습니다.”

말을 마친 오삼석은 자리를 떠났다.

오삼석이 객청으로 돌아올 때까지 동창 장 백호는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옆에 한 명이 더 있는데, 바퀴가 달린 의자에 진평이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진평, 얼굴이 어찌 그리되었느냐?”

오삼석은 진평의 천재성을 끔찍이 아꼈던 터라 바로 물었다.

진평이 허리 숙여 말했다.

“중독되었습니다.”

오삼석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누구 짓이더냐?”

진평이 대답했다.

“최병정은 제가 최연의 원시 수석 자리를 뺏을까 봐 불안한 나머지 독으로 저를 해치려 했습니다. 만약 영종오 대종사께서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소생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무엄하다, 무엄해! 세상에 어찌 이토록 저열하고 파렴치한 일이 있단 말이냐.”

오삼석이 격노하여 소리쳤다.

그러자 안에 있던 옥진 군주가 직접 나와 진평을 한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말 독에 중독되었군. 대종사를 잘 아느냐?”

진평이 대답했다.

“대종사께서 일찍이 누추한 저의 집에 묵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독되고 나니 부모님께서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하시고 저를 영종오 대종사의 집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자 어르신께서 지난날에 대접을 잘 받았다며 열과 성을 다해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옥진 군주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생각났다. 네가 바로 그 책벌레였구나.”

얼굴이 붉어진 진평은 옥진 군주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 한 번 뵌 것뿐인데 저를 기억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당시에 진평도 옥진 군주를 보고 매우 놀랐더래서 감히 쳐다볼 용기도, 말을 붙여볼 용기도 없이 애꿎은 책만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물론 책장 한 쪽도 넘기지 못했지만.

옥진 군주도 그런 진평이 매우 흥미로워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인제 보니 우리가 일면식이 있던 사이였군. 게다가 대종사께서 너를 직접 가르쳐주신 적도 있다 하시니 내가 이 일을 못 본 척 넘어갈 수가 없겠군. 너에게 독을 쓴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진평이 말했다.

“계림 동창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만, 여경사가 다시 그자를 데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옥진 군주가 말채찍을 꺼내 들고는 밖으로 나가더니 자신의 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계림 동창 감옥으로 간다! 모두 말에 올라타라!”

“알겠습니다!”

무사 백 명이 일제히 소리치더니, 곧장 계림 동창을 향해 밀물처럼 달려나갔다.

미모도 아름답고 몸매도 빼어난 군주는 정말 불의에 참지 못하는 성정이구나!

옥진 군주가 떠난 후 오삼석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여봐라. 짐승만도 못한 오전을 당장 잡아 오거라.”

잠시 후 오전이 오삼석 앞으로 끌려왔다.

오삼석이 무섭게 소리쳤다.

“오전! 네놈이 내 곁에 있던 세월이 절대 짧지 않으니 사실대로 말한다면 네 목숨은 살려줄 것이나 거짓을 고하고 또 그것이 들통난다면 동창이 개입할 필요도 없이 내 친히 네놈을 죽여주마.”

오전이 즉시 무릎을 꿇었다.

“저는, 저는…….”

오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저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들은 제게 도박를 하도록 종용했고, 얼마 후 예쁘장한 과부와 눈이 맞도록 판을 짜서 저를 속여 은자 삼천 냥을 잃게 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저는 시험지를 몰래 빼돌려 최씨 가문에 바쳤고, 그 대가로 은자 이천 냥을 받았습니다. 소인이 돈에 눈이 멀어 저뿐만 아니라 주인까지도 이 일에 휘말려 들게 했습니다.”

오전은 요 며칠 동안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주인인 오삼석에게도 죄스러운 마음뿐이라, 말을 마치고서는 그저 오삼석의 다리를 끌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양심은 있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오삼석이 한숨을 내쉬며 동창 장 백호에게 말했다.

“이자를 너희들에게 넘기겠다. 다만 목숨만은 살려주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 백호가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이어서 학정 오삼석이 관모와 관복을 벗은 뒤 진평에게 말했다.

“진평, 우리도 이만 가도록 하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너와, 신성한 과거시험,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진실을 꼭 밝히겠다고 약속하마.”

장 백호와 진평은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두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오삼석이 고상한 품성에 절개가 굳은 인물임을 두변이 잘 파악한 것이다.

잠시 후 흰 옷으로 갈아입은 오삼석은 진평과 함께 관저를 빠져나와 과거시험장으로 향했다.

과거시험장 밖에는 이미 천여 명에 달하는 응시생과 몇천 명의 서생, 그리고 구경꾼까지 몰려 격앙된 분위기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시험장 밖에는 몇십 장의 진술서가 붙어 있고, 최씨 가문이 어떻게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는지, 최씨 가문이 최연을 위해 어떻게 진평을 음해하려 했는지 낱낱이 쓰여 있었다.

낙방한 응시생들이 안 그래도 분노가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이런 불공평한 일까지 알게 되었으니 이들의 울화는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몇십 명이 최연의 부정행위와 최병정이 진평을 모해하려 했던 내용을 소리 내 읽었고, 이를 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의 분노가 점점 극에 달하면서 이성을 잃어갔다.

학정 대인 오삼석이 진평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밖에 있던 수천 명의 서생들이 물밀 듯이 달려들었다.

“원시는 불공정했다! 원시는 불공정했다!”

“관리들이 서로 감싸주고 있으니, 비리를 밝히자!”

“과거시험을 더럽힌 최씨 가문을 처단하자!”

서생 수천 명의 분노가 학정 오삼석을 향해 쏟아지려 할 때, 오삼석이 손을 들고는 크게 소리쳤다.

“누군가 은자 이천 냥으로 내 시종을 매수해 시험 문제를 빼돌렸고, 구천 냥으로는 시험 감독관 세 명을 매수했네. 심지어 수석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수를 모살하는 것을 서슴지 않은 것이 맞네. 이번 과거 원시에서 부정행위가 자행됐고, 죄를 저지른 자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이네.”

오삼석의 말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오삼석이 이어 말했다.

“나는 이미 관모와 관복을 벗어 던진 일반 서생에 불과하네. 지금 나는 광서 순무 관아로 가서 진평과 모든 응시생,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신성한 과거시험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데 나와 뜻을 같이할 자가 있겠는가?”

“제가 같이 하겠습니다!”

“제가 같이 하겠습니다!”

수천 명의 서생이 미친 듯이 열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삼석을 향한 무한한 숭배로 가득 찼다.

이분이 우리의 학정 대인이시구나!

이분이 진정한 공자(孔子)의 제자로구나!

이분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철골(鉄骨)이구나!

“가자.”

오삼석의 한마디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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