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장: 파란을 일으키다.
백옥경으로서는 그럴 만한 권한이 없었기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두변이 냉혹하게 말을 이었다.
“동창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개새끼라고 불러야지 않겠습니까?
또 누가 나를 막아서고 최연을 데려갈 사람이 있습니까?”
주변은 조용해졌고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백옥경 외의 다른 여경사 무사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천재 소년 진평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몸은 안 좋은 상태였지만 이 광경을 지켜본 그는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지면서 더없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대장부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구나!’
하지만 두변이 최연을 잡아가는 것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백옥경이 소리쳤다.
“이삼, 이사? 계림 동창의 이 백호, 장 백호! 두변이 이렇게 날뛰도록 내버려 둘 것이냐? 동창이랑 여경사가 전쟁을 시작하면 네놈들도 목숨을 보전하긴 힘들 것인데!”
계림 동창의 백호인 이삼과 이사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는 주인의 명령만 따를 뿐이다.”
그 태도를 본 백옥경은 당황했다.
두변에 대한 이문회의 신뢰가 가히 놀랍지 않은가!
이문회가 계림을 떠날 때 계림 동창의 모든 천호와 백호들을 불러 모아 두변을 가리키며 ‘이 아이가 내 아들이니, 이 아이의 뜻이 곧 내 뜻이다.’라고 일러두었는데, 이 때문에 두변이 계림 동창의 천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백옥경. 말은 똑바로 해야지요. 세상모르고 날뛰고 있는 것은 당신들 여경사 아닙니까. 나는 단지 정당방위로 반격했을 뿐인데요.
첫째, 내가 시험관 셋과 최야를 잡아들인 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당신네들이 여경사를 동원해 진평을 잡으러 오지 않았다면 최연의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도 그냥 덮어두려고 했습니다. 당신네 문관 집단의 문제에 쓸데없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죠.”
두변이 냉소하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당신네 여경사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우리 동창이 순순히 당해줄 줄 알았습니까? 내가 만약 그토록 무능한 인간이라면 의부가 경성에서 돌아오신 후 나를 용서치 않으시겠지요.
‘이치에 맞으면 천하를 누빌 수 있지만,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는 옛말은 들어봤겠지요? 내가 당신네 여경사 진무사 앞에 서게 되더라도 나는 ‘증거를 확보했으니 최연을 잡아 절차에 맞게 일을 처리하려는 게 잘못된 겁니까?’ 이렇게 물을 겁니다.”
백옥경은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명분이나 돌아가는 상황 모두 저놈에게 유리하군.’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사적인 원한을 동창은 정당방위로 반격했을 뿐이고, 이치를 따졌을 때도 동창의 행동은 대녕 왕조의 율법에 딱 들어맞지만, 오히려 여경사가 공권력을 동원해 사사로이 보복을 하려 했다고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내가 최연을 잡아가는 걸 막아선다면 동창이 전부 죽일 수밖에 없지요.
이미 백호를 죽였는데 어찌 천호를 못 죽일까요. 어쨌든 백옥경 당신은 여경사 진무사에게 별로 중요한 인물도 아니니 못 죽일 것도 없지요.”
두변이 백옥경의 앞으로 다가갔다.
“백 천호, 충고도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나를 막아서고 싶다면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두변이 다시 한번 명령했다.
“저 머저리 같은 놈을 끌어내라.”
동창 무사 둘이 다가가서는 최연을 병아리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두변이 말했다.
“백 천호. 왜 더 막지 않고요? 더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최연을 데려갈 텐데요?”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백옥경은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앞뒤 재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막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변은 아무리 큰 화를 자초해도 이문회가 막아줄 테니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백옥경 자신이 사건을 일으킨다면 오히려 여경사 수령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을 게 분명했다.
백옥경은 원망과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두변,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였으니 기다려라. 여경사의 진무사 대인을 뵙고 이 사실을 알리면 분노한 우리 여경사가 움직여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줄 테다. 가자!”
백옥경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뒤로한 채로 사해 객잔을 떠났다.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줄 알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두변을 나락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여경사의 동료들 앞에서 영영 고개도 들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는 여경사 진무사와 최씨 가문, 낙문 같은 문관 수령 등 모든 자원과 세력을 동원해 두변을 사지로 몰아넣으리라 다짐했다.
이문회가 없는 지금, 그 사람들이 지금이야말로 두변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두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백옥경이 중얼거렸다.
문득 동창 광서 진무사 왕인도 이문회의 후계자를 죽이고 싶어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변이 무릎을 꿇고 있는 최연 앞에 다가가 웅크려 앉았다.
“듣자 하니 나를 짓밟겠다고 떠들고 다녔다는데?”
최연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하려는 거냐? 나는 최씨 가문의 적자다! 내 숙부는 양주 지부이고 내 어머니는 북명검파 장로의 따님이시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놓아주는 게 좋을 거다!”
“너? 네놈이 뭐 별거라고.
나한테 특별한 취미가 있는 건 아냐? 우리 엄당의 복지가 너무 좋아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엄당을 추천해주고 엄당에 들어오게 하는데, 너도 예외는 아니다. 엄당은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집단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한번 직접 경험해보는 건 어때?”
차갑게 말을 마친 두변이 최연의 아랫도리를 겨누고 힘껏 걷어찼다.
“으악!”
최연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면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움츠리더니, 정확히 30초 후에 고통으로 기절해버렸다.
흔히들 남자들이 아랫도리를 걷어차였을 때의 고통이 여인들이 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고통의 열 배라던가.
옆에 있던 이삼과 이사는 그 장면을 보고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양다리에 힘을 주며 힘껏 모았다.
“왜 있지도 않을 걸 보호하려고 그래?
우리 엄당의 가장 큰 장점은 불알을 걷어차일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거지.”
두변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삼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하하, 소주인의 농담이 정말 재밌습니다.”
이삼은 어색하게 두변의 농을 맞받아주고는 이내 표정이 진지해졌다.
“소주인, 이제 우리가 폭풍우를 맞이할 겁니다. 모두가 우리를 미친 듯이 공격하면서 주인이 안 계신 틈을 타 소주인을 사지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최씨 가문, 축무애, 낙문, 여경사, 심지어 우리 광서 동창의 진무사 대인까지 모두 나를 노리고 달려들겠지.”
“주인이 경성에서 돌아오시면 우리도 두려울 게 없으니, 그때까지 소주인은 당분간 몸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더러 숨으라는 건가?”
“맞습니다. 숨으셔야 합니다. 만약 여경사 한 곳이라면 우리가 막아낼 수 있겠지만 여러 세력이 연합해 온다면 그 거센 공격은 우리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게다가 동창 진무사 왕 공공이 적과 내통하는 자인데, 그가 여러 세력과 연합해서 안팎으로 공격한다면 소주인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아직 연합을 맺지 않은 지금, 시간을 벌기 위해 숨으셔야 합니다. 주인을 찾아 경성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삼의 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적들이 연합하기 전에 도주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긴 했다.
하지만 두변은 냉소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볼 줄도 알아야지. 내가 여경사 사람들을 죽이고 최연을 붙잡은 건 일시적으로 기세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나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테지.”
“무슨 계책이 있습니까?”
이삼이 물었다.
“최고의 방어가 무어냐?”
“가르침을 주십시오.”
“최고의 방어는 바로 공격이다. 먼저 움직여야지, 적들이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려선 안 되지.”
두변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백호,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학정 대인의 관저로 가서 시험 문제를 빼돌린 그 가복을 잡아와라. 오삼석 대인에게 반드시 예를 갖춰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분을 우리 편으로 모셔와서 대의멸친하게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계림 동창 이 백호가 대답했다.
두변이 다시 침착하게 명령했다.
“장 백호, 너는 당장 모든 응시생, 나아가 일반 백성들을 선동해서 거리로 끌고 나가 행진하도록 해라. 목표는 최씨 가문 저택과 광서 순무 관아를 포위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 백호가 대답했다.
“기억하라! 반드시 광서 전체를 뒤흔들어 응시생을 포함한 일반 백성 모두가 최씨 가문을 때려 죽이라고 소리치며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씨 가문이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강력하게 민심을 움직여야 해. 그렇게 해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려 하는 건, 시험 부정행위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것과 같고 광서 백성과 맞서는 것이며, 또한 정의에 대적하는 행위라는 걸 느끼게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적들이 연합하기 전에 이 모든 걸 완성해야 하니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의 성공 여부는 서생 수천 명의 시위, 백성 수만 명이 최씨 가문과 광서 순무 관아를 거세게 압박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일단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기만 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지며 누구도 우리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백호 두 명이 크게 소리쳤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가서 최연에게 찬물 좀 끼얹어라.”
최연의 몸에 얼음물 한 바가지를 끼얹으니 최연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흠칫 놀라 깨어났다. 최연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아프지 않고 대신 작열감과 얼얼함이 느껴짐을 깨달았다.
“이삼, 너는 나와 함께 약룡 객잔으로 가서 최병정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우리 동창의 관리를 해하려 했던 사건에 대해 심문하도록 한다.”
두변이 명령했다.
이 말을 들은 최연은 놀라서 넋을 잃었다.
‘저놈,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최연을 붙잡고 여경사 인원을 죽인 것만으로도 이미 사건을 크게 만든 것인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세를 몰아 최병정까지 잡으러 가겠다고?
계림 동창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학정 대인 오삼석의 가복을 잡으러 갔고, 다른 조는 최병정을 잡으러 갔다.
두변은 아직 정식 관직이 없어서 학정 대인이 있는 곳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만약 오삼석이 한낱 소환관이 호들갑을 떠는 걸 본다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었다.
오삼석처럼 정직한 관원은 절차에 맞춰서 일을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약룡 객잔의 맨 위층에 있던 최병정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백옥경이랑 최연은 뭐하길래 아직 진평 하나 잡아 오지 못하고 있어! 소민, 한번 내려가 보거라. 만약 진평이 도착한다면 제일 먼저 이곳으로 끌고 와야 해. 내가 그놈의 이를 다 부수고 손을 망가트려 놓을 테니까.”
사실 최병정은 진평에게 화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물론 두변이지만, 지금 당장 두변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두변, 언젠가는 네놈을 가루로 만들어 주마.”
바로 이때 계단을 재빨리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날아갔다.
두변이 이삼과 이사, 그리고 동창 무사 십여 명을 데리고 들어오더니 최병정에게 말했다.
“최 소저, 그간 안녕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