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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70화 (70/648)

제70장: 최연은 머리를 조아렸고 최병정은 피를 토했다.

최연은 자부심이 강한 인물일 뿐 결코 어리석지 않았고, 안목도 충분했다. 진평의 답안지는 본인이 이길 실력이 아니었으며 둘 사이의 실력 차이는 확연했다.

최연은 놀라고 말았다. 진평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듣긴 했으나 이 정도의 수준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두변이 바퀴 달린 나무 의자를 끌고는 최연에게 다가오자, 모든 응시생이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두변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최연,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군. 땅에 엎드려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음탕한 최병정은 남자라면 다 지아비로 섬긴다!’라고 외쳐라.”

최연의 얼굴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최연은 진다는 생각은 정말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진평에게 무릎을 꿇고 저런 말을 외친다면, 그는 가문에서 철저히 버려지게 될 뿐이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최연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한심하기 그지없군.”

그러더니 얼굴을 가리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약속을 파기하려는 거냐?”

“이토록 한심하고도 파렴치한 내기 약속은 서생을 욕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파기한다 해서 문제 될 게 있나? 진평 네놈이 계속 두변을 옹호하는 걸 보니 엄당에게 매수당한 앞잡이인가 보군. 그렇다면 너야말로 나와 같은 서생의 적인 거다.”

최연은 필사적으로 밖으로 몸을 빼면서도 계속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평! 오늘 못다 한 승부는 다음에 다시 내도록 하지. 네놈이 계속 엄당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한 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옆에 있던 응시생들이 최연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고는 대뜸 길을 막아섰다.

“내기를 했으면 결과에 승복해야지.”

최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감히 나를 막아? 네놈들도 엄당에 매수되었구나. 설마 네놈들도 서생의 적이 되고 싶은 거냐?”

최연이 이렇게까지 외치자 감히 더는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다.

최연도 재빨리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무리 밖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목소리를 들은 자라면 누구도 죽을 때까지 잊기 힘들 것 같은 음색이었다.

“내기를 했으면 결과에 승복해야지. 최씨 공자, 이 서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내기 약속을 지키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도 엄당에 들어가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학정 오삼석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옥진 군주를 뵙습니다.”

뒤이어 다른 병사들과 응시생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옥진 군주를 뵙습니다.”

이 여인은 바로 제국 남방의 보물이자 진남공 송결의 적녀로, 황후가 의녀로 받아들여 황제가 책봉한 옥진 군주였다.

또한, 최연이 꿈속에서나 그리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은 후에야 두변은 옥진 군주를 볼 수 있었다.

순간 두변의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더니 무언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듯한 반응이 올라왔다.

환관인 두변조차 강한 성욕을 느끼게 하는 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변은 이 세계에서 혈관음, 최병정, 축옥쌍 등 상당한 미인들을 만나봤다.

혈관음의 잘 다듬어진 몸매도 상당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송옥진 군주의 몸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뭇 남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강탈하면서 남성 호르몬을 마구 분출시키는 그런 몸매였다. 그녀의 몸매를 산과 계곡이 굽이치는 선을 닮았다고 해야 할지, 마의 곡선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176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탄력이 넘치는 저 긴 다리! 저 두 다리로 누군가의 허리를 부러트릴 수도 있겠고, 발차기로 뼈도 부러트릴 수도 있겠구나!

뱀처럼 가늘고 잘록한 허리만으로도 온몸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혼을 쏙 빼놓는 부분은 공격적으로 봉긋 솟아있는 가슴이었다. 그야말로 악마의 가슴이 옷을 찢고 나올 지경이었다.

하필 그녀는 이때 비단뱀으로 만든 경장(勁裝)을 입고 강궁을 멘 채 준마를 타고 있었다.

꼬박 1분이 지나고 나서야 두변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이 정도의 몸매를 가진 여성이면 얼굴이 너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몸매만으로도 이성이든 동성이든 한눈에 반하게 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의 외모는 어떻게 형용해야 한단 말인가?

얼음 같은 눈동자와 새빨간 입술, 그리고 백옥처럼 오똑한 코, 하얀 뺨은 눈과 같았다. 그녀는 냉혹하면서도 화려했고, 매서워 보이면서도 여성스러웠다. 그 모든 모순이 그녀의 얼굴에서 최고의 공존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혼혈이었다. 절세의 미모에는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서양의 입체감이 함께했다.

옥진 군주의 미모는 사람들을 차마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고, 화염처럼 상대방을 집어삼켜서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게 했다.

그래서 최연도 옥진 군주의 눈빛에 온몸이 굳어 미동도 하지 못했다.

옥진 군주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탄 채 그대로 학정 오삼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어찌나 탄력 넘치던지, 땅을 딛자마자 그 몸이 다시 튀어 올라 말에 올라탈 것만 같았다.

“외숙부, 나를 볼 때마다 매번 무릎 꿇지 마세요.”

“군주는 진남공의 여식이기도 하지만 폐하가 친히 책봉하신 군주이니 마땅히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옥진 군주의 말에 오삼석이 대답했다.

군주에게도 급이 존재했다. 번왕의 딸도 군주라고는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신세라서 마냥 좋다고 볼 수만도 없었다.

하지만 옥진 군주는 어렸을 때부터 영설 공주와 같이 자라면서 영종오에게 무공을 배웠기에 무공 수준이 매우 높았고 궁술 실력도 남달랐다. 영설 공주는 병권을 갖는 데 많은 어려이 있었지만 옥진 군주는 오히려 병권을 쉽게 얻었다. 그녀의 부친인 진남공이 문관과 무장 집단에서 뭐라고 떠들건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병마 오천을 옥진 군주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진 군주는 번왕의 여식은 물론 심지어는 황실의 공주보다도 위세가 높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학정 오삼석이 물었다.

“지나가던 길에 외숙부가 보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옥진은 오삼석보다 앞장서서 그의 관저로 들어갔다. 그녀가 손님 입장이니 원래 주인의 뒤를 따라 걸어야 하지만 강직한 성정의 그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고 언제나 남보다 앞장서 걷곤 했다.

몇 걸음 걷던 옥진 공주가 몸을 슬쩍 돌리는데, 가슴에서 엉덩이와 다리로 이어지는 탄력 있는 곡선에 사람들이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할 정도였다.

그녀가 최연을 노려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자들이다. 내가 다시 나왔을 때까지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너를 거세해 환관으로 만들어 주마.”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학정관 관저로 들어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여인은 정말 정의감이 넘치는 데다 동시에 그 기세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옥진 군주가 떠나고 나서야 무릎을 꿇고 있던 응시생들이야 우르르 일어나면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나, 자신들은 눈부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기세가 워낙 매섭고 날카로워서 숨도 편하게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당장은 숨을 쉴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과연 진남공 송결의 여식답게, 딸도 송결과 똑같다 할 만했다.

두변이 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과에 승복해야지.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다.”

최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속으로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최연이 무릎을 꿇고 ‘음탕한 최병정은 남자라면 다 지아비로 섬긴다!’라고 외치는 순간, 그는 최씨 가문의 수치가 되며 출세는 꿈도 못 꾸게 된다.

하지만 만약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잠시 후 옥진 군주가 나와서 그를 직접 거세할 것이다. 그녀가 죽인 남자도 많지만, 그녀에게 거세당한 남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군주의 말이 곧 현실이 될 게 분명했다.

결국 최연은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후 두변에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며 외쳤다.

“음탕한 최병정은 남자라면 다 지아비로 섬긴다!”

이 말을 들은 모두가 놀랐다.

이제 최병정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그녀의 혼삿길도 막히게 되었다.

두변은 최연을 보며 냉소했다.

“이런 한심한 놈을 봤나. 시키는 걸 곧이곧대로 다 하다니. 기개나 절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군.”

최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진평! 너무 기세등등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최연이 몸을 일으켜 원망의 눈초리로 두변을 향해 소리쳤다.

“잊지 마라. 나는 반드시 복수한다. 그리고 우리 가문에서도 곧 움직일 거다. 네놈의 온 가족을 전부 파멸시키고 예쁘장한 네 누이동생 진쌍쌍도 지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주마!”

최연은 그 말만 남기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최병정은 시험장 맞은편의 객잔 맨 위층에서 이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진평이 수석을 차지했고 옥진 군주가 최연을 압박했으며, 제 동생 최연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제 욕을 하는 장면을 전부 목도했다.

최병정은 피를 토할 정도로 화가 치솟았다.

지난번에 사형과 내통하던 장면을 두변에게 발각된 후 이미 평판이 많이 깎인 상태였다. 하지만 문관과 무장 집단 사이의 혼담이었기에 임씨 가문은 애써 모른척하며 그녀를 며느리로 맞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최병정의 평판은 정말 바닥으로 처박혔다. 소문이 금세 광서성 전체로 퍼져나갈 테니, 이번에는 임씨 가문과의 파혼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내 될 여자가 다른 사내와 내통했다는 얘기를 아무도 모른다면 그나마 그냥 비밀로 하면 그만이었으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으니 파혼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 안 돼!”

최병정은 검을 뽑아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두변! 언젠간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줄 테다!”

“최연!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 죽어!”

“진평! 출신도 비천한 놈이 내 이름을 더럽혀? 네놈을 철저히 파멸시켜 장례 치를 곳도 못 찾게 해주지.”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순 최병정은 그제야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가 직접 보복할 거다. 지금 진평이란 녀석을 죽여버리고, 나 최병정과 최씨 가문의 비위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줄 테다!”

“소저! 안 그래도 진평은 얼마 못 버티고 죽게 될 겁니다!”

옆에 있던 시녀가 말렸지만, 최병정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때까지 못 기다려!”

그때 최연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흥분해서 소리쳤다.

“둘째 외숙부를 찾아가서 여경사 무사들을 동원해 진평을 잡으라고 부탁해야겠어.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집어넣어 그곳에서 고통스럽게 죽게 해야 해. 내가 직접 그놈을 산 채로 죽여야겠어.”

최병정이 최연에게 다가가 그의 따귀를 올려쳤다.

“진평이 지금 어디 묵고 있지?”

최연도 어쩔 수 없었단 표정으로 맞은 뺨을 어루만졌다.

“이미 알아놨어. 사해(四海) 객잔에 있어.”

“지금 당장 둘째 숙부를 찾아가! 그리고 여경사 고수들을 데리고 사해 객잔으로 가서 진평 그놈을 당장 감옥에 처넣어 달라고 부탁해. 과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들면 돼.”

최병정의 말에 최연이 오히려 반문했다.

“증거가 없는데 사람을 잡아도 돼?”

“멍청한 놈. 무조건 데리고 와서 물어봐야지! 원시에서 진평은 계속 자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토록 대단한 시문과 시사를 써냈겠어? 부정행위를 저질렀기에 가능한 거지.”

최병정의 목소리가 점점 잔인하게 변했다.

“진평이 일단 여경사의 수중에 떨어지게만 되면, 지금은 증거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결국 만들어지게 되어 있어.”

최연과 최병정의 둘째 외숙부는 백옥경으로, 광서 여경사의 천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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