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68화 (68/648)

제68장: 걸작이로다!

그때 감독을 하던 시험관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입 모양으로 말을 건넸다.

‘그놈이 아직 한 글자도 써내지 못한 채로 엎드려 잠만 잡니다.’

두변이 답을 작성한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에 시험관이 두변 옆을 세 번째 지나가던 순간에는 이미 두변이 다시 엎드려 자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시험관은 두변이 내리 잠만 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 소년은 무슨. 그냥 버러지였군.

최연은 진평을 철저히 무시했다.

최연은 향후 원시의 1등이 되어서 소삼원의 영광을 움켜쥘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최부도 참, 고자인 두변에게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정말 못난 게지. 다음에는 내가 두변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줄 테니 잘 지켜보기나 하라고.’

최연은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안하무인의 지경에 이르렀다.

한 시진 남짓이 지난 후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도 하나둘씩 답안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최연은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으로 답안을 제출했고, 두변은 이와 대비되는 다 죽어가는 몰골을 하고선 답안지를 제출했다.

시험장 입구에서 최연이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두변의 앞으로 다가와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진평, 우리 둘의 약속을 잊지 마라. 내일 벽보가 붙을 텐데 설령 죽으러 간다고 해도 오늘 저녁에는 말고 내일 내가 1등을 차지한 다음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죽든지 해라.”

두변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히죽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저녁이 되자 광서성 학정 대인이자 주임 시험관인 오삼석은 몇몇 시험관들과 함께 답안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시험관 다섯 명 중 세 명은 이미 최씨 가문에 매수된 상태였다. 그들은 최연의 필적을 구별해 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최연의 시험지에 적힌 특별한 표시도 기억하고 있었다.

채점을 시작한 지 한 시진이 지났다.

시험관 하나가 최연의 답안지를 펼쳐 들었고 그는 한눈에 그 답안지가 최연의 것임을 알아차렸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책상을 내리쳤다.

“잘 썼구나. 주제에 딱 맞는 좋은 글이로군.”

옆에 있던 몇 명의 시험관들도 다가가 최연의 답안지를 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좋군요.”

“주제에도 딱 맞는 길이입니다. 정말 엄청난 글이군요.”

“학정 대인이 이번에 낸 문제가 난도가 상당해서 좋은 답안을 써낸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응시생은 주제에 부합하는 뛰어난 명문을 써냈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글은 원시뿐만 아니라 향시와 회시에서도 보기 흔치 않은 글입니다. 이 정도 글이면 거인(舉人)과 해원을 차지하기에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학생의 시는 몇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명문이로군요. 산, 수(水), 해, 달, 봄, 가을. 이 여섯 글자를 잘 연계해 나가면서도 읽는 내내 사람을 황홀하게 만듭니다.”

“맞습니다. 이런 학생에게 수석을 주지 않는다면 심사를 엉망으로 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몇 명의 시험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최연의 답안지를 원시의 수석으로 꼽았다.

주임 시험관인 오삼석도 이 글에 흥미가 생긴 듯했다.

“그러한가? 어디 한번 보세.”

바로 그때 매수당하지 않은, 나이가 지긋하면서 성품이 정직한 시험관이 마침 두변의 답안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 시험 문제가 워낙 어려웠기에 천 명 학생의 답안지가 죄다 만족스럽지 못했고 채점하면서도 실제로 조금 졸기까지 하던 차였다.

그는 두변의 답안지를 집어 들고 빠르게 답안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러나 단 십여 초 만에 이 나이가 지긋한 시험관은 놀라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머리카락이 죄다 곤두서면서 온몸의 털이 송연해졌다.

이 학생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토록 화려하면서도 감동적인 글을 써내다니, 도대체 광서에서 언제 이런 천재가 나왔단 말인가?

만약 이자를 수석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면, 현장에 있는 모두가 광서의 역사적 죄인이 될 것이다!

시험관은 보물을 받아든 것처럼 두변의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읽어나갔다.

걸작이로다. 비할 바 없는 걸작이로다!

이전까지 무미건조했던 글들은 마치 이 순간을 위함인 것 같았다.

이런 글이 원시에 나온 것은 봉황의 알이 닭장에 떨어진 것이라 비유할 수 있지 않겠나!

이 글은 강소성처럼 과거시험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해원을 차지하고도 남을 글이었다.

정말 모든 것이 아름답고, 정말 황홀하지 않을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글을 읽는 그의 입안에서까지 잔향이 계속 남는 듯했다.

마침내 천 글자가 채 안 되는 글을 다 읽은 시험관은 눈을 감고 글을 여러 번 되뇌었다.

그런 다음 그는 조바심을 내며 두 번째 문제인 산, 수(水), 해, 달, 봄, 가을, 이 여섯 글자를 활용하는 답안을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먼저 읽었던 시문이 너무 뛰어났기에 그 다음 문제의 답안이 혹여나 그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앞 시문의 수준에 걸맞은 시사를 읽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시문이 한 사람의 학식이 차근차근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시사는 순간 찾아온 영감에 의해 쓰이는 글이기 때문이었다. 시험관은 두변(진평)이 시사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답안지를 살펴본 시험관은 온몸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 이상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심오하며 대범하고도 슬픈 글이란 말인가!

이런 시사는 오랜 배움으로 써낸 글이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으로 깊은 정서를 표현해낸 글이로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수백 년 동안 나타나지 않을 걸작이었다.

시험관은 자신이 이러한 시문과 시사를 채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하늘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자신은 이 작품을 감상만 해야지 감히 평가할 자격이 없음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때 최씨 가문에 매수된 시험관 셋이서 최연의 답안지를 수석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주임 시험관인 오삼석은 최연의 답안지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좋은 글일세. 과연 최고의 시문이라 할 만하군.”

비록 이 시문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쫓은 감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의 작품을 읽었는데, 이 또한 시선을 확 사로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과도하게 화려한 문체를 사용하긴 했으나 모든 글자를 적절하게 사용했기에 제시된 글자를 가장 잘 활용해 사를 지었다고 평가할 만했다.

물론 학장 오삼석도 최연의 필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삼석은 최씨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번 시험에서 최연의 답이 다른 학생들보다 월등히 우수하며, 그를 수석으로 공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깊게 탄식했다.

이 답안지에 쓰인 답이 유능한 거인(舉人)들과 진사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인데, 어찌 뛰어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하하, 광서에서 또 한 명의 천재 소년이 나왔습니다그려. 이자가 아니고서는 수석을 차지할 만한 인물이 없겠습니다.”

이미 매수당한 시험관 셋이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때 두변의 시험지에 심취해 있던 나이 지긋한 시험관이 그 말을 듣고는 가볍게 실소했다.

“자네들이 보고 있는 시험지가 누구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자를 수석으로 삼기 전에 내 동의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매수당한 시험관 셋도 냉소했다. 최씨 가문에서도 저 노인을 매수하려고 시도했으나 제 신념이 확고한 그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저 노인과 맞서는 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첫째는 자신들의 인원수가 더 많았고, 둘째는 최연의 답은 유능한 거인과 진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문장이었으므로 다른 답안지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최연의 1등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다.

“서 대인, 제가 손에 들고 있는 답안지가 수석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어떤 답안지가 수석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매수당한 시험관 하나가 물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정직한 품성의 서 대인이 냉소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답안지라네.”

“서 대인께서는 좋은 글이 무엇인지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눈이 침침해져 글을 읽지 못하는 것입니까? 제 손에 있는 답안지를 읽지도 않으시고 어떻게 대인이 손에 들고 있는 답안지가 더 뛰어나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 글을 볼 필요도 없네. 다른 답안지들이 제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내 손에 들고 있는 답안지에 비하면 전부 쓰레기일 뿐이지.”

시험관 셋은 분노했고, 심지어 학정 오삼석도 저 노인이 나이를 앞세워 억지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여겨 심기가 불편해졌다.

최연의 답안지는 대단히 뛰어난 편이었다. 이보다 뛰어난 작품은커녕 이와 비견할 만한 작품도 찾기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서 대인이 그런 의견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그대들이 직접 읽어보시게.”

서 대인이 두변의 답안지를 사람들에게 직접 건넸다.

주임 시험관인 학정 오삼석이 제일 먼저 두변의 답안지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속으로 이 글이 최연의 글보다 뛰어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서.

그런데…….

겨우 30초만 보고도 오삼석은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이, 이런 놀라운 글이 왜 광서의 원시에 나온 거지?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이 정도 글은 남경이나 경성의 향시, 아니 회시에 나왔어야 하는 수준의 글이었다.

더없이 유려하고 아름다우며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으면서 짜릿하게 만드는 문장이 느닷없이 오삼석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충격이었다.

오삼석은 한 호흡에 글을 전부 읽어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맛있는 음식을 맛본 것처럼 조용히 얼마간 글을 음미했다.

그리고 뒤이어 두변(진평)의 두 번째 답안지를 읽기 시작했다.

글을 다 읽은 오삼석은 고개를 들어 창밖의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감정에 완전히 심취해 눈을 스스르 감았다.

역사에 오래도록 길이 남을 명문이 바로 이번 시험장에서 나오다니, 이 얼마나 기뻐할 만한 일일까.

아름답고 절묘한 글이 정말 좋은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버렸구나.

그렇게 몇 분 동안 흠뻑 심취해 있던 주임 시험관 오삼석은 최연의 시험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오삼석은 최연의 시문이 매우 유려하며, 시사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단점투성이에 쓰레기가 따로 없었다.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지 않은가!

아니 수준 차이라는 단어보다 비교 불가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급이 아니었다. 최연의 답안지는 한 줌 재로 타서 가루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두 사람의 답안지를 이렇게 비유하는 게 적절할까.

하나는 미켈란젤로가 영혼을 불어넣어 만든 조각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나름 정교하지만 무뚝뚝하며 영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석고상이었다.

매수당한 시험관 셋은 계속해서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학정 대인, 저희가 추천한 이 답안 작성자를 수석으로 공표하는 데 동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임 시험관인 오삼석이 최연의 답안지를 집어던졌다.

“이런 쓰레기가 1등을 해선 안 되지.”

매수당한 시험관들이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학정 대인, 우리 시험관은 공평하며 공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뛰어난 답안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공정하게 심사하지 않으시겠다면 경성 예부로 가서 이 일을 문제 삼더라도 우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시험관 셋은 최연과 비견할 만한 답안지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문제점을 파고들어 반드시 2등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그들은 최연의 답보다 더 우수한 글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았다. 천재 소년 진평이 몸이 좋고 맑은 정신의 상태로 글을 썼다 할지라도 최연의 답안은 진사와 거인 등의 인재들이 모여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시문과 시사를 적어 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이 가려진 두변의 시험지를 들고 실수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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