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여주인공의 등장
“자네 말은 다른 사람들이 5년 걸려서 배울 것을 두변에게 5개월 만에 가르쳐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하게 하라는 말인가?”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게. 이문회. 순수 무도만 봤을 때 환관 학원에서 5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하려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지 아는가?”
“7품 무사입니다.”
“그래. 7품 무사네. 자네가 무도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7품 무사가 되었는가?”
“4년 반입니다.”
“그때 졸업시험에서 자네는 몇 등을 했지?”
“1등입니다.”
“자네처럼 뛰어난 인재도 4년 반의 시간이 걸리지. 그리고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세상에 명성이 자자한 대종사인 나조차 7품 무사까지 얼마간의 세월이 걸렸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3년이네. 자그마치 3년이야. 무술 연마에 있어 천재라고 자부하는 나도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단 말이네. 그런데 두변을 다섯 달 만에 7품 무사로 만들어 놓으라고? 자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날도 이렇게 밝은데 잠꼬대는 집어치우게.”
영종오가 보기에 이건 두변이 천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문회의 머리가 문제였다.
게다가 방금 두변도 오늘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건 신선이 꿈에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무도 수련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실력을 향상해야 하는 것이다.
두변이 학문에 있어서 천재라고는 하나 무도에서도 천재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비록 천재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목표였다.
다른 사람들이 5년 동안 배우는 걸 다섯 달 만에 끝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며 태양이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종오가 말했다.
“이문회,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이런 헛소리나 늘어놓다니.”
이문회는 본인도 자신의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걸 알기에 난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종오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영종오가 탄식했다.
“몇 년 안에 두변을 제일가는 무도 고수로 만들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 있네.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시간은 너무 촉박하군. 다섯 달 만에 보통 사람을 7품 무사로 만들어 달라니. 난 못하네. 아니 이 세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거야. 돌아가게나.”
영종오는 매우 화가 났고 이문회가 무도 정신을 폄훼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이문회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어떻게, 해보지도 않으시고 안 된다고 하십니까?”
“해볼 필요도 없네. 이건 시간 낭비야.”
“이미 승낙하시지 않았습니까. 설마 번복하시려는 겁니까?”
졸업시험까지 5개월 남은 시점에서 이문회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영종오가 시름에 잠기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무도 시험의 첫 번째 과목이 무엇인가?”
“근력과 민첩성으로 각각 10점입니다.”
졸업시험에서 무도는 총 150점인데, 그중 연력과 민첩성이 합쳐서 20점, 궁술이 30점, 무공이 100점이었다.
연력은 이미 두변이 만점을 받을 수 있으니, 두 번째 과목인 민첩성 수업을 배워야 했다.
영종오가 물었다.
“현재 두변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500근 연력은 이미 만점이지만 민첩성은 기초부터 배워야 합니다.”
환관 학원의 무도 시험에서 연력에 대한 요구치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양팔 근력이 500근만 넘으면 된다.
환관 학원의 민첩성 시험에 대한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초 안에 검을 열 번 내질러 하늘에서 무작위로 떨어지는 돌들을 정확히 맞힐 것.’
시간이 1초로 제한된 이유는 돌을 하늘로 던진 후 1초면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연력은 무도의 첫 번째 과목이고 민첩성은 무도의 두 번째 과목이었다.
일반적으로 민첩성 과목은 근맥과 정신 수련을 수반하기 때문에, 환관 학원에서는 족히 반년 동안 민첩성 과목을 가르쳤다.
연력과 비교해보면 민첩성이 훨씬 어려웠다. 민첩성과 현기 각성이 무도 수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턱이라고 할 만했다.
환관들은 양기가 부족해서 천성적으로 근력이 약했다. 근력이 약한 만큼 민첩성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심지어 민첩성은 환관들의 무공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연근(煉筋)과 연력(煉力)을 합쳐서 3개월밖에 안 되는데, 민첩성 수업이 한 학기는 족히 걸리는 이유였다.
“두변, 이리 와보거라.”
영종오가 소리치자, 두변이 숲에서 달려왔다.
영종오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더니 손으로 가볍게 훑자 나무 부스러기들이 사방으로 튀더니 금세 목검으로 변했다.
‘이 노인의 무공이 정말 대단하구나!’
“가장 빠른 속도로 공중에 떠오르는 돌들을 찌르거라. 네 민첩성을 시험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두변은 손에 목검을 쥐고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며 언제든 손을 쓸 준비를 했다.
영종오의 발이 지면을 가볍게 차니 돌멩이 백여 개가 날아올라 무려 4미터 높이까지 튀어 올랐다.
“시작!”
영종오가 소리쳤고, 두변은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끝!”
1초라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두변의 성적이 나왔다. 두변은 1초 동안 검을 2회 내질렀으나 돌을 맞추지는 못했다.
이건 뭐 완전히 초보적인 수준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보다도 못하잖아!
날카로운 영종오 대종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영종오가 말했다.
“보통 사람들도 민첩성 수업을 마치려면 정신력과 근맥의 보충 수련이 필요하니 족히 반년의 시간이 걸리지. 자네가 다른 사람들은 5년 동안 수련할 과정을 두변에게 5달 만에 완성해 달라고 요구했으니, 다른 사람들의 수업 속도보다 열 배 빠르게 진행하겠다. 그럼 민첩성 수업을 열여드레 만에 마치게 되는 거다. 이게 맞나?”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두변에게 열여드레 동안 시간을 주도록 하겠네. 열여드레가 지났을 때 민첩성 수업을 만점으로 통과한다면 내 전력을 다해 두변을 가르쳐 자네의 백일몽을 이루는 데 일조하도록 하지. 하지만 두변이 만점을 받지 못한다면 그를 여기서 내쫓을 수밖에 없네. 서로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말일세.”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도 최대한 빨리 왕회수 모자를 구해내겠습니다.”
“그럼 자네는 돌아가도록 하게. 두변은 나를 따라오거라. 네 사형들을 보러 가자.”
말을 마친 영종오는 연화사로 향했다. 첫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이문회는 사찰의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문회는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두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졸업시험이 시작될 때 너를 데리러 오마.”
“의부, 항상 조심하십시오.”
이문회는 몸을 돌려 떠났고, 두변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사찰 문을 통과해 연화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아이는 두변이라고 한다. 한동안 내 밑에서 수련할 것이니, 그동안은 이 아이가 너희 사제(師弟)인 셈이다.”
영종오가 두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찰 안에서는 남자 셋이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보기 드문 미남이었고 다른 한 명은 용맹스럽게 생겼고, 나머지 한 명은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두변? 아직 살아있네?”
그 극도로 잘생긴 사내가 검을 내리고는 두변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변은 재빨리 기억에서 이 사람이 누군지 끄집어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질투가 날 정도로 잘생긴 이 사내는 방검지라는 자로, 한때 두변의 큰처남, 즉 두변의 정혼녀의 오라비였다.
방검지야말로 진정한 하늘의 총아라고 할 만했다.
이천 년 동안 이 세계의 왕조들은 흥망성쇠를 겪었고 자그마치 왕조 열세 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왕조가 바뀌었음에도 몇몇 가문은 그 시기를 꿋꿋하게 견뎌내며 줄곧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는데, 하북의 방씨가 바로 천 년 역사를 지난 명문가였고, 여기 있는 방검지는 방씨 가문의 적자 중 한 명이었다.
최부도 광서성에서 가세가 혁혁한 편이지만, 방검지 앞에서는 그까짓 가세는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두변의 부친인 두회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후에 방씨 가문과 성공적으로 사돈을 맺었고, 덕분에 두씨 가문은 대녕 왕조의 제일가는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한때 두변은 대녕 왕조의 모든 사내가 질투해 마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바로 천 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 방씨 가문의 사위가 될 것이고, 그의 정혼녀가 경성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방청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영광이 그의 서출 동생 차지가 되어 버렸다.
과거에 두변이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도 천 년 역사를 지닌 방씨 가문 때문이었다. 방씨 가문은 방청의의 정혼자인 두변이 이 세상에 생존하는 것을 두씨 가문보다 더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 아이가 선천적으로 고자라는 두변이냐?”
그 용맹스럽게 보이던 청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용맹스러운 청년의 배경도 엄청났는데, 그는 오늘날 제국 북방군단의 제일 통수권자이며 진북공 원등의 아들 원정이었다. 당시 이위의 아내를 뺏은 그 귀족 자제가 바로 원정의 사촌 형이었다.
진남공이 제국의 남방을 지탱해주고 있다면 진북공은 북변을 안정시키는 거대한 기둥이라 볼 수 있었고, 병권, 권세, 재화 등 모든 부분에서 진북공은 진남공인 송결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방검지와 원정 이 두 명 공자는 대녕 제국의 꼭대기에 자리한 명문가 자제인 셈이었다.
“맞아. 이 아이가 바로 그 선천적인 고자, 두변이지.”
방검지가 말했다.
원정이 코를 막으며 두변에게 말했다.
“나한테서 좀 떨어져라.”
말단 환관 중에는 소변을 누는 데 결함이 있어서 몸에서 지린내가 나기도 한다. 물론 두변은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고 전립선 또한 튼튼했다.
하지만 방검지와 원정의 눈에 두변은 그저 천생이 불길한 존재였다.
이때 사찰의 가운데 있는 화려한 누각의 창문이 조금 열리더니 총기가 가득한 눈동자가 두변을 힐끔 쳐다봤다.
“공주, 대종사가 새로운 제자를 거두신 모양이에요.”
귀여운 시녀가 말했다.
“응.”
누각 안에 있는 여인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책을 쳐다보며 대충 대답했다.
그녀의 옆모습은 가히 절색이라 할 만했다.
순진하면서 귀엽게 생긴 시녀가 말했다.
“아 참, 공주 전하. 방금 들어온 분은 환관 학원 옷을 입은 것으로 보니 환관인 모양이에요. 방금 대종사가 두변은 이문회 공공의 의자라고 말한 걸 들었어요. 나름 우리랑 같은 편인 거 같은데, 한 번 만나 보시겠어요?”
“이 공공의 의자라고?”
여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안 보는 게 나을 거 같다. 내가 그를 만났다간, 괜히 그에게 귀찮은 일만 생길 수 있다.”
“아. 그렇네요. 방검지와 원정 두 분이 대종사 밑에 들어와 있는 건 오로지 공주 전하를 위해서잖아요. 저 두 분은 공주를 지극히 아끼며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공주께서 소환관을 따로 만나신다면 저 두 분의 질투심이 폭발해 새로 들어온 환관을 가만두지 않겠네요.
저 소환관이 두변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름이 왜 귀에 익는지 잘 모르겠어요.”
“두변? 두씨 가문의 그 가엾은 적자 말이냐? 살해당한 거나 다를 바 없이 버려졌다던?”
“아, 생각났어요. 태생이 고자였던 그 사람이네요. 그때 경성에서 이것 때문에 한창 시끄러웠어요. 제가 듣기에 방청의가 집에서 칼을 목에 대고 자기 아버지를 위협했대요.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긴 싫으니 고자로 태어난 두변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말이에요. 두변과 자기 둘 중에 한 명은 꼭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나요. 그 이후로 두변은 종적을 감추었기 때문에 저도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자가 아직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구나. 게다가 환관 학원에 들어갔을 줄이야.”
“엄청 가엾죠. 방검지는 분명 두변을 괴롭힐 거고, 심하면 죽이려 들겠죠. 제가 두변에게 가서 차라리 도망치라고 일러둘까요?”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방검지는 두변을 하찮게 보기 때문에 괴롭히려고 하지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