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화 (42/648)

제42장: 두변의 복수.

부산장인 낭정이 이문회 앞으로 다가와 절을 했다.

“산장, 축하드립니다. 현명하신 산장 덕에 광서 환관 학원이 이토록 큰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은. 자네도 이곳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네.”

낭정이 두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변 학생은 역시 경성의 명문가의 제자답게 각종 금기서화에 정통하구나. 두변이 학원을 위해 이토록 큰 공을 세웠으니 졸업시험을 볼 필요도 없이 두변에게 좋은 직무를 선택하도록 상을 내려주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다. 염운사, 광무사, 직조국, 시박사(市舶司: 지금의 세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 관아) 등의 문직(文職)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보도록 말이다.”

이 기관들은 모두 권세를 누리며 많은 부를 누릴 수 있는 곳들이기에 모두가 두변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문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며 두변에게 알아서 결정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두변은 이 여우같이 교활한 자와 기 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호기로운 척 패기 있게 말했다.

“저는 동창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낭정은 두변이 겸손하게 몇 마디 건넬 줄 알았지, 이토록 거침없이 대답할 것이라 생각을 못 했기에 당황했다.

낭정이 말했다.

“동창은 규칙이 매우 엄격해서, 동창에 들어가려면 상당한 무학 수준을 갖춰야 한다. 네가 가학(家學)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금기서화에 정통하다는 것은 알지만 무학에서는 초보 수준이 아니더냐. 너에겐 아무래도 문직이 더 어울릴 것 같다만.”

낭정은 말끝마다 두변이 출신 덕에 문예가 훌륭했음을 언급하면서 두변이 이뤄낸 성과가 필연적이었음을 강조했다. 환관 학원을 대표해 얻은 승리는 두변이 명문가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지, 단기간의 실력향상으로 이뤄낸 기적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그를 문직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물론 특수한 상황인 만큼 특별대우를 해줘야겠지요. 규칙에는 어긋나지만 두변이 큰 공을 세웠으니 동창에 들어가는 것도 크게 무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동창 내부에 문직 자리를 하나 만드실 계획이라면 산장께서 그리 결정해 주시지요.”

모든 엄당 학생들이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비록 문직이긴 했지만 두변이 이토록 빨리 동창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모두의 시기심을 자극하게 된 셈이다.

이문회가 물었다.

“두변, 네 생각은 어떠하냐?”

두변이 정당한 이치를 따져가며 대답했다.

“동창에 들어가고 싶지만, 특별대우를 받고 싶진 않습니다. 오로지 제 실력으로, 제 졸업시험 성적이 충분하다면 그때 동창에 들어가겠습니다. 특별대우는 사양하겠습니다.”

“좋군. 두변 학생이 이렇게 대의를 잘 아니 모든 학생의 귀감이 될 만하군. 그럼 우리 모두 자네의 졸업시험 성적을 기대하도록 하겠네. 다시 한번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길 바라네.”

부산장 낭정의 목적은 단 하나, 두변의 입에서 졸업시험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그러니 모두 앞에서 이문회와 두변에게 보기 좋게 한 방씩 먹인 셈이었다.

낭정은 두변의 기초가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졸업시험에서 엄청난 실력향상을 끌어내긴 힘들 것이라 자신했다. 특히 무학과 연단학은 장기간에 걸친 수련이 필요한 것들이라서 소위 천재라는 자들도 2~3년의 세월을 쏟아부어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두변에게 주어진 시간은 5개월 남짓인데, 무슨 수로 좋은 점수를 받겠는가. 두변이 졸업시험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게 된다면 두변이 3대 학부 대회에서 이뤄냈던 기적들도 평가절하되고,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낭정은 이문회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았으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미 당엄도 이 전장에 뛰어들기로 한 이상 낭정은 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문회가 학원에 이토록 큰 영예를 가져다준 상황에서 낭정 자신이 어찌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이문회가 고개를 들자 주변이 조용해지며 모두 산장의 말을 기다렸다.

“먼저, 당엄이 우리 광서 환관 학원으로 전학 오게 될 것이다.”

이 소식이 공표되자 모두 놀라며 희비가 엇갈렸다. 기뻐할 만한 점은 미래 엄당의 수장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 가까이 있는 누대에서 달빛을 먼저 받는다고, 학원 학생들이 당엄에게 아부할 시간과 기회가 더 많이 생기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두변은 환관 학원에 큰 공로를 세웠지만 두변에게 어떤 특별대우도 해주지 않겠다. 다섯 달 후에 두변은 졸업시험에 참가해야 하며 졸업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임무를 분담받을 것이다.”

모두 이 말을 듣고 탄복했다. 광서 환관 학원에서 이문회의 말은 곧 법이니, 그가 내뱉은 말은 그 누구도 다시 바꿀 수 없었다.

“해산!”

이문회가 명령하자 환영식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두변이 숙소에 돌아와 문을 열려는 찰나 먼저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염세가 서 있었다.

“두변, 돌아왔구나! 어디 보자. 우리 환관 학원과 형제들의 영예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어서 그런지 많이 야위었네.”

염세는 몸을 조금 굽힌 상태로 활짝 웃으며 살가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살가움이 왜 눈앞에 있는 염세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 것일까? 과거에 두변을 업신여기며 조롱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일삼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 아닌가. 겨울에 두변의 침상에 물을 뿌리고 여름에 두변의 이불에 똥을 묻히던 사람은 그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는 명령만 했을 뿐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은 그의 부하 전봉이었지만 말이다.

두변이 이문회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염세는 두변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문회가 두변을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이전처럼 두변을 계속 멸시하고 괴롭혔다.

만약 두변이 3대 학부 대회에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뤄내지 않았다면 염세는 이미 두변에게 해코지를 했을 것이고 심한 경우 어디든 뼈 한 곳은 부러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염세는 모든 망상은 뒤로하고 두변과 친해지기로 했다. 졸업시험까지 잘 버티다가 두변이 시험을 망치고 이문회가 진급해서 학원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두변을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염세는 어느 정도 친절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변은 명문가에서 버린 자식이니 각종 금기서화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만, 졸업시험에서는 금기서화를 다루지 않았고, 두변은 금기서화 이외의 방면인 무학과 연단학에 특히 취약했기 때문에 졸업시험에서는 성적이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될 것이며, 졸업 후 좋은 임무를 배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두변과 필요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염세의 의부인 낭정이 방금 두변을 자극해 이문회의 입에서 두변에게 어떠한 특혜도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공언을 받아냈으니 졸업시험이 끝나면 두변은 미래가 없는 하급 환관으로 전락할 것이 아니겠는가.

두변은 염세를 외면한 채 염세의 부하인 전봉을 바라보았다. 전봉은 과거에 가장 악랄하게 두변을 괴롭힌 인물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두변을 때렸다. 언젠가는 전봉에게 맞아 피를 토한 적도 있었다.

“전봉, 나를 괴롭히면서 그동안 많이 즐겼겠네?”

두변이 차갑게 말하면서 의자 하나를 잡고 앉으려고 하자, 옆에 있던 학생이 바로 의자를 가져와 과장된 몸짓으로 옷소매로 의자를 훔치며 말했다.

“두 사형, 여기 앉아.”

넌 염치라는 게 있니? 나보다 한 살이나 더 먹었으면서 날 사형이라고 불러?

전봉은 환관답지 않게 너무 흉악하게 생긴 곰보 같은 얼굴로 두변의 말에 바로 염세를 돌아봤다.

“나를 왜 쳐다봐? 두변이 너한테 물었잖아!”

염세가 바로 냉담하게 소리치자, 전봉이 바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두 사형,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어. 용서해줘.”

“먼저 자기 따귀를 백 대 때리면 그때 용서라는 걸 한 번 생각해보지.”

두변이 차갑게 말했다.

전봉은 표정 관리가 안 되어서는, 제 편을 들어달라는 눈빛으로 염세를 쳐다봤다.

“뭘 꾸물대?”

하지만 염세는 냉정하게 말할 뿐이었다.

과거에 두변을 가장 심하게 괴롭히던 전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촥! 촥! 촥!

한 대, 그리고 한 대,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따귀를 올려치기 시작했다.

“약해.”

두변이 말했다.

전봉이 힘을 좀더 실어 따귀를 때리자, 얼굴 전체가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옆에 있던 다른 환관 몇 명은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발등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 각자 30대씩 서로의 따귀를 때려.”

두변의 말에 염세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환관 학생들은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네 명은 서로의 따귀를 때렸고 한 명은 스스로 자신의 따귀를 때렸다.

순간 염세의 표정이 굳었다.

때리더라도 주인에게 때리라고 해야지, 서로 따귀를 때리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이지? 나 염세는 안중에도 없어?

두변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흥미롭다는 듯 이 장면을 지켜봤다.

족히 일각이 지나고 나서야 따귀를 다 때렸는데, 전봉은 얼굴 전체가 돼지처럼 부어올랐다.

염세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두변, 이제 화가 좀 풀렸어?”

“화가 풀렸냐고? 나를 가장 심하게 괴롭힌 게 염세 너인데, 지금 이 정도로 내가 화가 풀렸겠어?”

두변이 냉소했지만, 염세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어떻게 해야 두변 형님의 화를 풀 수 있을까?”

“운 좋게도 간단한 방법이 있지. 지금 다리가 피곤한 상태니까 누가 내 발을 씻기고 발바닥을 시원하게 눌러주면 될 거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세가 외쳤다.

“뭣들하고 있어! 얼른 두변의 발을 씻겨주면서 발바닥 안마도 같이 진행해!”

하지만 두변이 염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가 직접 내 발을 씻겨주면서 발 안마를 해줬으면 좋겠어.”

두변이 백천을 죽였을 때 부산장인 낭정은 남들에게 말 못 할 속앓이를 했었고, 오늘 두변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그 복수를 하려 했다.

낭정의 이런 수법들을 두변이 개의치 않는다고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러니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지난번에는 그의 학생인 백천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그의 후계자를 파멸시켜서 오른팔이 잘리는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안겨줘 볼까?

두변의 말을 들은 염세는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정도를 모르고 정말 갈 데까지 가는구나!

나 염세가 누구인가? 환관 학원에서 상위 10위에 드는 인재로 졸업 후에 동창에 들어가진 못해도 어마사 정도는 갈 수 있는데, 감히 이런 나에게 네 발을 씻으라고? 운이 좋아서 지금 이렇게 관심을 받을 뿐이지 졸업시험이 끝나고 임무를 배정받을 때가 되면 네놈 세상도 끝이거늘!

염세가 왜 두변과 친해지려 했는가? 두변이 이문회에게 자신의 험담을 해 자신의 앞날을 해칠 것을 걱정해서 아니었는가. 염세는 사실 두변이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염세는 굳은 표정으로 두변에게 말했다.

“두변, 적당히 하자. 보기 안 좋다.”

“내 발을 씻기 싫다는 말인가?”

“미안한데 못하겠다.”

“나랑 화해할 생각이 없고 나를 계속 적으로 두겠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내 방식대로 나갈 수밖에.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해왔던 일을 잊은 건 아니겠지?”

두변은 사소한 것까지 반드시 복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염세뿐만 아니라 부산장인 낭정도 그의 복수의 대상이었다.

염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는 이 치욕을 감내하고라도 두변의 발을 씻겨주는 게 맞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한 염세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두변이 한창 물오른 시기였기 때문에 만약 두변이 이문회에게 고자질한다면 자신의 앞날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두변, 이 소인배 같으니라고. 내가 발을 씻겨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

염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발을 씻겨줄 물을 뜨러 갔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염세가 물을 뜨러 가는 모습을 보자 다른 환관 여섯 명이 물통을 들고 염세를 도우려 했다.

“누가 움직이라고 했지?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

두변이 말했다.

관용은 상대방에게 약하게 보일 뿐이다. 대다수 사람이 억압적인 분위기에 복종하는 엄당에서 관용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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