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0화 (40/648)

제40장: 권모술수 그리고 진남공의 전율.

축무애의 딸인 축옥쌍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대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줄곧 엄당을 멸시해왔고,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문관 집단이 제일 광명정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틀간 벌어진 모든 일은 그녀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총명한 건 아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기에 최부가 두소창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사실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동앙과 낙문이 억지를 부리고 있으며 무관과 무장 집단이 유무환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유무환을 위협하고 있는 게 사실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과 자신이 짝사랑했던 최부를 생각하면 축옥쌍은 자기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천재인 두변이 이겨야 되는 상황에서 문관과 무장 집단의 흑백전도 때문에 승패가 뒤바뀐다는 사실이 축옥쌍을 슬프게 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되는 거잖아!

축옥쌍은 엄청난 슬픔을 느끼면서 그럼에도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두변에게 정의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안색이 창백해지고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두변이 일당백의 기세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기적을 써 내려가자 관중들도 두변을 인정하고 응원하면서 그를 영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두변이 지금 파렴치한 적들에게 패배할 위기에 직면했으니, 관중들도 지금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관중 역시 문관, 무장 집단과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있기에, 누군가가 엄당을 위해 직접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모두 화를 삭이며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잠자코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두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동정뿐이었다.

구양담이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

“이문회 대인, 결과에 승복하셔야겠습니다. 학전 4,000묘를 이양하겠다는 문서를 건네주시지요.”

축무애도 몸을 일으켰다.

“몇 년 동안 환관 학원과 교류를 했지만, 문회 형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앞으로 이런 기회가 없을 듯하니 오늘 자리를 만들어 회포를 푸는 게 어떻습니까? 며칠 후면 문회 형님은 경성으로 끌려갈 텐데 앞으로 엄당이 잘 유지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그려.”

말을 마친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의 산장은 3대 학부 대회의 판정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문회는 계속 자리를 지키며 빙긋 웃었다.

“뭐가 그리들 급하신가?”

이문회가 문밖을 향해 말을 이었다.

“진남공, 실컷 즐기셨으면 이제 모습을 드러내 주시지요.”

갑자기 대청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소나무처럼 곧은 자세로 걸어들어왔다. 장내가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제국 남방의 핵심 인물이자 대녕 왕조의 초고수인 진남공 송결이었다.

몇십 년 동안 광서, 운남, 해남, 광동 지역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건 모두 진남공 덕분이라 할 수 있었는데, 해남 이족의 반란, 그리고 운남과 광서의 토사의 반란, 남해의 해적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모두 진남공이 진압해왔기 때문이다.

진남공의 수중에 있는 모든 병사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으나 그가 직접 이끄는 병사는 고작 4, 5만 명 정예군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남방의 여러 성들이 보유한 20여만 명의 대군도 통솔했다. 그리고 이 몇십만 대군의 군량과 봉록은 진남공이 스스로 갖은 방법을 강구하여 어렵게 조달했다.

만약 진남공이 없었다면 남방의 몇십만의 대군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을 것이다.

황제가 여러 차례 진남공을 북방으로 파견해 달단족과 건로를 토벌하려고 했지만, 무장 집단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첫째, 남방이 계속해서 진남공의 통솔을 필요로 했고, 둘째, 북방 군단이 진남공이 북방의 군사에 개입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남방에서 문관, 무장, 엄당 집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진남공이었다.

그는 거대한 몸을 이끌며 서서히 들어왔고, 모든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 숙여 절했다. 축무애를 위시한 무장들도 모두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수(大帥)를 뵙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무장들은 바로 진남공의 부하인 셈이었다.

송결은 축무애를 힐긋 훑어보고는 외면한 채 대청 중앙으로 가서 최부의 <명월추향도>를 집어 들어 구겨 말더니 쓰레기 버리듯 내던졌다.

“이 쓰레기는 뭐냐? 50점!”

뒤이어 그는 두변이 그린 <대녕 제국 지도>를 들고는 몇 분 동안이나 살펴봤다.

진남공이 처음으로 대녕 왕조의 온전한 강역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이었으며, 동아주(亞洲) 수만 리 강산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잘생긴 얼굴, 장대한 체구가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이 울렁거리고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진남공 송결은 지도에 정신이 팔려서, 만약 이곳이 자신의 집이었다면 이 자세로 꼼짝을 하지 않고 온종일이라도 지도를 감상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수호하고 있는 대녕 제국이구나!

이것이 내가 지키고 잇는 만리강산이구나!

이 지도에 비한다면, 기존의 것들은 차마 지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 수준이고, 이 지도야말로 최소 수만 대군의 값어치를 지닌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진남공 송결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지도를 가지고 가 황제께 바쳐야겠다. 그리고 너는 두 번 다시 지도를 그려선 안 된다.”

“이미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진남공 송결이 갑자기 두변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간사한 녀석 같으니라고. 네놈이 우리 관음을 능멸했더구나. 우리 관음이 괴롭힘을 당한 건 네가 처음이지. 감히 나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진남공의 힘이 너무 엄청나서, 두변은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기분이었고 자칫 넘어질 뻔했다.

두변의 키도 176cm가 넘지만 송결의 어깨 정도였다. 진남공은 키가 190cm가 넘는 데다가, 검집에서 뽑힌 날카로운 검처럼 매서운 위압감에 주위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래도 네가 그린 이 지도의 값어치는 상당하구나. 원래 여기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이 지도를 얻었으니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수만 대군에 비견할 만한 지도를 그려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진남공이 곧 큰 소리로 외쳤다.

“환관 학원 두변의 작품에 100점을 주겠다.”

구양담, 축무애 등의 얼굴이 삽시간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울상을 지었다.

진남공 송결은 지도를 말아 쥔 채 장내를 천천히 훑으며 물었다.

“내 결정은 이러한데, 누가 내 의견에 반대하지?”

이 순간, 진남공의 오만무도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받들겠습니다!”

장양명과 유무환이 즉시 허리를 굽혀 절했다.

구양담과 축무애는 엄청난 원망과 씁쓸함에 가슴이 사무쳤지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사실 3대 학부 대회의 진정한 최고 심사위원은 3대 학부에서 공동으로 추대한 진남공이었기에 누구도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동안 송결이 대회를 애들 소꿉장난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이렇게 그가 등장한 이상 그 누구도 그와 대척점에 설 수는 없었다.

진남공이 유무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무환의 쌍둥이를 납치한 자는 알아서 풀어주도록 해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어물쩍거리며 대답했다.

유무환이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진남공께 감사드립니다.”

진남공은 그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사람들한테 얼마나 우습게 보였던 것이냐. 훈귀(勳貴: 공훈 귀족) 집단에 망신이나 입히고!”

이번엔 진남공이 장양명에게 말했다.

“양명 공, 나중에 술 생각이 나면 찾아가겠소.”

“이 늙은이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진남공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가다가, 앞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축무애와 무장들을 보고는 소리쳤다.

“비켜라, 길 막지 말고!”

축무애와 무장들이 즉시 한쪽으로 물러났다.

진남공의 거대한 뒷모습이 대문 뒤로 사라지더니, 그는 곧 군마를 타고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사라졌다.

진남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리를 떠나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현장의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으며 대회의 결과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야말로 영웅 대장부가 아니고 무엇이더냐!

축무애 등이 몸을 일으키고는 구양담과 시선을 나누었지만, 이미 서로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다 이겨놓은 경기였는데, 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다니!

학전 6,000묘, 은자 10만 냥, 비철 광산을 잃었을 뿐 아니라, 이문회의 위상도 점점 높아져 머지않아 동창 수장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말았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이문회를 막을 방법이 더욱 없게 된다.

그들은 막대한 손실에 가슴이 쓰라렸다.

낙문, 계동앙, 구양담, 축무애 등 네 명은 별다른 말 없이 눈빛만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생각은 굉장히 끔찍하고도 위험한 내용이었다.

‘진남공의 결정에 따를 겁니까? 진남공과 맞서야 할 때가 오지 않았습니까?’

진남공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무릎까지 꿇으며 더없이 공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진남공이 떠나자 곧바로 그들의 눈빛은 싸늘해졌고 심지어 살기까지 느껴졌다.

지금, 문무 집단이 서로 결탁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진남공을 포함해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제국에서 부와 무력의 대부분을 차지한 가장 큰 이익집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위와 명성만 보자면 당연히 진남공이 훨씬 크지만, 이들의 얽히고설킨 이익집단에 비해서는 진남공은 그저 가난뱅이에 불과했다. 물론 진남공이 뒷돈을 챙기려 했다면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을뿐더러 모든 방법을 동원해 몇십만 대군의 군비를 충당할 방법만 생각하느라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상태였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에 돈을 보태기 위해 해적 우두머리를 의자와 의녀로 삼아 약탈과 밀수를 돕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낙문, 계동앙, 축무애, 구양담 이 네 명이 뜻을 모은다면 진남공과 맞서 그의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의 문제에 대한 답은 ‘그렇게 할 수 없다’였다.

문무 이익 집단은 진남공의 비호가 있어야만 제국의 부를 착취할 수 있었고, 마음 편하게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릴 수 있었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진남공이 없다면 광서, 해남, 운남 등 여러 성에서 즉시 반란이 일어날 것이며, 군대는 정변을 일으킬 것이고, 토사들도 모반을 꾀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전쟁이 불붙으면 문무 이익 집단의 토지, 상점, 재물 등은 순식간에 다 불에 타버린다.

이때 밖에서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수천 명에 달하는 동창 무사와 어마사 병마들이 남해 도장으로 몰려들면서, 일촉즉발의 형국이 되었다.

축무애가 격노했다.

“엄당의 병마가 어찌 남해 도장으로 들어온단 말인가?”

한 무장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방금 진남공께서 남해 도장에 들어오실 때 몇백 명의 호위대가 같이 들어왔는데 이때 동창의 무장들도 같이 들어왔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문회,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구양담이 소리치자, 이문회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우리 엄당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축무애가 냉소를 지었다.

“설마 남해 도장에서 감히 무력을 사용하려는 건가? 이건 반란이나 마찬가지지.”

이문회가 말했다.

“두변이 이겼고,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억지를 부리거나 진남공의 말을 거역하려 한다면 나 이문회가 죽음을 불사하고 모두를 죽일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겠습니까? 뭐, 일이 끝난 뒤에 저도 뒤따라 자결하면 그만이지요!”

그 누구도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이문회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관과 무장 집단에서 죽기 살기로 이문회를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계동앙, 낙문, 구양담, 축무애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마침내 계동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 서원 산장 구양담, 남해 도장 축무애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이문회 대인, 축하합니다!”

드디어 결말이 났구나!

장양명이 숨을 크게 내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제4차 광서성 3대 학부 대회가 종료되었고, 승자는 광서 환관 학원임을 선포한다!”

순간 모두가 기립하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보냈다.

엄당 일원뿐만 아니라 관중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두변이 첫날부터 기적을 거듭하더니 1대 10으로 대승을 거뒀다.

참으로 쉽지 않은 대결이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정의가 찾아오자, 승부를 지켜본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순간 두변은 모든 관중의 마음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이자 위대한 영웅으로 자리를 잡았다.

엄당의 일원들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더욱 온몸을 떨면서 북받치는 감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문회는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기쁨이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문회는 두변의 모습에서 10년 후 엄당의 강대함을 엿보았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제국이 중흥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두변은 하늘이 보내준 천재이니, 우리 대녕 왕조가 중흥을 반드시 이룰 수밖에 없지!

이문회는 두변을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진중하게 말했다.

“두변, 오늘 이후로 내 사명은 단 한 가지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좋은 조건을 만들어 네가 훨훨 날아오르도록 도와주겠다. 내가 하는 모든 일도 네가 엄당의 일인자가 되도록 길을 닦아주는 것일 뿐이다. 이 목표를 최우선으로 두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 누구와도 척을 질 것이며 필요하다면 서슴지 않고 방해하는 자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감사합니다.”

두변이 허리 숙여 절했다.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겠으나 하늘이 내게 10년이란 시간만 주었으면 좋겠구나. 10년 후면 네가 엄당을 통일하고 천하를 호령하며 대녕 제국을 중흥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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