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두변의 연주가 모두를 사로잡다.
이문회는 두변을 쳐다보며 긴장을 풀고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두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감고 ‘꿈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꿈의 세계에서 두변에게 연주를 가르친 흰옷의 노인이 누군지는 모르나, 그의 수준이 영우를 포함해, 영우의 선생인 금성 고령보다 훨씬 높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눈을 감으니 마치 그 흰옷의 노인이 자신의 곁에서 제 연주를 이끌어 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딩!
그토록 오랫동안 ‘고상하다고’ 여겨져 왔던 중국 제일의 명곡 <광릉산>이 두변의 손끝에서 연주되기 시작했다.
두변은 꿈속과 같은 상황에 빠져들어 자신의 연주를 전혀 듣지 못했고,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했다.
두변이 현을 몇 번 튕기자 이문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문회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으나 두변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엄도 두변의 연주를 듣고 깜짝 놀랐다. 당엄은 원래 두변의 연주를 들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몸을 비스듬히 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두변의 연주를 듣는 순간, 바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두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이처럼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지?’
두변의 연주를 듣고 또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영우였다. 두변의 연주 실력은 영우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두변이 연주한 곡은 생소하긴 하지만, 영우가 연주한 <강월>보다 예술성과 난도가 훨씬 뛰어났다.
장양명과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극도의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새로운 명곡을 듣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옥년 선생의 <강월>을 매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강월>도 좋은 곡이긴 하지만, 사대부들은 이미 500년간 들어와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두변은 계속해서 이 ‘고상한’ <광릉산>을 연주해 나갔다.
1분간 연주를 들은 장양명은 이 곡이 몇십 년 만에 나타날 만한 절묘한 곡이라고 생각했다가, 2분을 듣고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곡이라고 생각했으며, 3분을 듣고는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신곡(神曲)임을 확신했다.
연주가 거의 끝나갈 때쯤 장양명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는 이 곡에서 자신의 일생을 들었다. 현실의 고통, 그리고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몸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슬픔을 들었다. 이 세상에서 은둔할 수는 있어도 적막과 공허함은 채울 수 없음을 알려주는 곡이었다.
다른 세 명의 심사위원들도 장양명만큼 조예가 깊진 않았지만 모두 내로라하는 대학자였다. 그들도 이 곡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월>도 좋긴 했지만 너무 통속적이었다. 이렇게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이 원하는 것은 곡고화과(曲高和寡: 곡조가 높으면 화답和答하는 사람이 적다.)하며, ‘양춘백설(陽春白雪: 초나라에서 가장 고상하다고 알려진 가곡명)’이며, 구천운외(九天雲外) 같은, 범인들 절대다수는 듣고도 이해 못 하는 그런 곡이었다.
현장에 있는 관중들은 처음에는 좋은 노래라 느끼지 못하고는 웅성거리기만 했으나, 장양명, 계동앙 등의 대사들이 감격에 겨워 하는 모습을 보고는 숨죽여 듣기 시작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무튼 대단한 모양인데?
이게 관중들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5분의 시간이 흐르고 두변의 연주도 끝나서, 이제 채점할 시간이 되었다.
심사위원 넷은 평가하기를 난감해하며 침묵을 지켰다.
봉오후 유무환이 말했다.
“내가 먼저 평가하겠소이다. 나는 뭐 맨날 하는 일이라곤 놀고먹는 것이 다이고, 중요한 관직을 맡은 사람도 아니니 설령 내가 잘못 평가했다 해도 큰 타격은 없을 게요.”
유무환은 비록 후야(侯爷)지만 부귀한인(富貴閑人)일 뿐 아무런 권력도 없는, 진남공이 제국 서남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 것처럼 권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먼저, 이 두변 선생의 연주 기술은 영우보다 못한 게 사실이지만, 뭐라 형용하긴 어려운 특색을 가지고 있더군. 왜인진 모르겠는데, 99점을 줘야만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관중들은 두변의 점수가 영우와 같다는 사실에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광서 순무 낙문도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저도 두변의 연주 솜씨가 영우보다 못하다는 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두변의 곡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인데다 <강월>보다 그 깊이가 훨씬 깊고 넓으니 감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곡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으니, 저도 99점을 주겠습니다.”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이 말했다.
“저도 99점입니다. 이 곡은 곧 제국 문화의 보배가 되겠군요.”
장양명은 난처해하며 말했다.
“세 분이 제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셨으니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저는 99.5점을 드리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곡에 패배를 안길 수는 없습니다. 이 곡이 패배하게 된다면 우리는 나중에 역사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겁니다.”
결국 두변은 0.1점의 근소한 차이로 영우를 꺾으면서 금 연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일제히 소리쳤다.
“두변이 연주한 그 곡이 그렇게나 좋았다고? 난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별로 듣기 좋지도 않던데?”
하지만 심사위원 넷은 모두 대가였고, 이들을 매수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점수는 공정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렇게 좋은 곡을 제대로 듣지도 못한 자신의 낮은 수준에 창피함을 느낄 뿐이었다.
반대로 심사위원 넷은 관중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는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런 신곡을 어찌 너희 같은 속인이 이해할 수 있겠냐? 만약 너희들이 다 이해한다면, 우리가 어찌 거들먹거리겠는가!’
이때 두변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이겼다! 이 곡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영우보다 부족한 연주 실력을 가지고도 그를 이길 수 있었단 말인가! 하하하!’
하지만 두변은 <광릉산>을 그 스스로도 이해하면서 연주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다시는 연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어리둥절하면서도 가장 크게 기뻐한 건 이문회였다. 이문회는 이번 대회에 아무런 희망도 걸지 않고 있었는데, 두변이 그에게 승리라는 큰 선물을 가져다 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두변은 정녕 하늘이 내게 보내준, 아니 엄당, 더 나아가서는 대녕 왕조에 보내준 천재란 말인가?’
환관 학원 소속인 환관 넷은 이때까지도 계속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 곡이 그렇게 좋단 말인가?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는데? 이게 영우를 이길 곡이라고?’
하지만 당사자인 영우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들이 나서서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강 서원의 영우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젠장.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영우는 금 연주의 진정한 대가였기에, 이 곡이 얼마나 사대부들을 자극했을지 당연히 알았고, 심지어 자신도 그 곡을 당장 연주해보고 싶다는 갈증을 느낄 정도였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곡을 만나게 되었으니, 두변의 연주실력이 어느 정도만 받쳐준다면 승리는 당연히 그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애초에 해선 안 되는 싸움이었다고!
장양명이 갑자기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 그 곡의 제목이 무언인가?”
두변이 답했다.
“<광릉산>입니다.”
“제목도 좋구나.”
장양명이 책상을 치며 말을 이었다.
“이런 절세의 명곡을 고보(古譜)의 폐허 속에서 꺼내 다시 세상에 내놓다니 정말 큰 공을 세웠구나. 이 곡 때문이라도 네 이름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아무도 이 곡을 두변이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감히 자신이 썼다고 말한다면, 몰매를 맞아 죽을 게 분명했다.
뒤이어 장양명이 3대 학부 대회의 첫 번째 시합이 끝났으며 광서 환관 학원이 1승을 거뒀다고 선언했다.
숙소로 돌아온 이문회는 한동안 술 한 방울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 술 한 병을 비우고는 한껏 흥이 올라서는 정원에서 검무를 췄다.
또 다른 방에서는 수장 두 명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바로 이강 서원의 산장 구양담과 남해 도장의 산장 축무애였다.
이문회가 4~5년을 공들여 길러낸 서생 환관들이 시합에 불참한다고 했으니 환관 학원에겐 일말의 희망도 없으며 이번 3대 학부 대회는 이미 이겼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두변이라는 인물이 불쑥 나타나더니 첫 번째 시합을 승리로 장식할 줄은 꿈에서도 알지 못했다.
축무애가 말했다.
“앞으로의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두어선 안 되네.”
“그럴 리 없지. 오늘 두변이 이긴 것도 순전히 운이 따랐기 때문이지 않은가. 오늘 이길 수 있던 것도 그가 기막힌 연주곡을 발견한 덕이었을 뿐, 연주 실력은 영우에 한참 미치지 못했어.”
축무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하지. 내일 시합하는 바둑은 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그 녀석은 장혁기는 고사하고 적당히 바둑 두는 애들조차 이기지 못할 게야.”
“이번 대회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나와 자네가 그 책임을 져야 해.”
축무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회에는 학전 1,500묘와 엄당의 존엄이 걸렸을 뿐 아니라 이문회의 미래도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문회는 무공도 높고 수법이 매서우며 강인하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이문회는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공적인 마음으로 제국과 황제에 충성했기 때문에, 문관 집단이든 무장 집단이든 엄당 세력 견제를 위해 이문회가 상석에 앉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문회의 진급을 막기 위해 이번 기회에 그를 끌어내리라는 게 윗선에서 떨어진 명령이었다.
두변이 이문회와 밥을 먹고 있을 때, 장양명이 그들을 찾아왔다.
“이미 가망이 없는 대회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줄기 희망이 보일 줄 몰랐군.”
장양명이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내일 시합에서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보게, 두변의 바둑 실력을 보고 싶은데?”
두변이 이문회를 바라봤다.
“한번 두어 보거라.”
이문회가 말했다.
그렇게 두변과 장양명의 바둑 경기가 시작되었으나,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두변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어허!”
두변의 실력을 파악한 장양명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장혁기라는 그 약아빠진 놈을 이기기는커녕 시합에 참가하는 어떤 학생도 이기기 힘들어 보였으니, 꼴찌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문회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괜찮다. 오늘 시합에서 이긴 것만 해도 뜻밖의 호재였으니 더 바랄 것도 없지. 내일 네 기량을 다 펼치기만 하면 된다. 져도 괜찮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산장, 저는 이만 가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라.”
두변은 물러나면서 빨리 잠에 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바둑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니, 빨리 ‘꿈의 세계’로 들어가 벼락치기를 해야 했다.
침상에 누운 두변은 잠이 들었고 그렇게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하지만 꿈속에서 그와 바둑을 두는 건 바둑을 가르쳐주는 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내일 자신과 바둑 경기를 펼칠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기 규칙에 따르면 모든 학원은 각자 선수 세 명을 내일 바둑 경기에 출전시켜 승자전을 진행해야 한다. 세 차례 승자전을 거쳐 남은 마지막 두 명이 결승전을 치르는데 여기서 승리하는 자가 1등이 되는 것이다.
두변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상대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 첫 번째 상대는 두변이 상대해야 할 사람 중에서 가장 실력이 낮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흰옷의 노인이 다시 등장하더니 두변에게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부었고, 어떻게 눈앞의 상대를 이겨야 하는지 천천히 두변을 지도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둑이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지 않은가. ‘꿈의 세계’조차도 두변의 실력을 대폭 향상시키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흰 옷의 노인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두변이 바둑에서 이기긴 힘들 거라 판단했다.
“내가 네 상대와 직접 바둑을 두마. 내가 두는 한 수 한 수를 자세히 관찰하고 외우도록 해라. 내가 두는 기보를 달달 외우기만 하면 내일 이길 수 있을 거다.”
“그들이 내일 지금 연습한 것처럼 바둑을 둘까요?”
“반드시 그럴 게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 너는 그저 내 기보를 외워서 내일 그대로 두기만 하면 된다.”
그래! 바로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