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3화 (23/648)

제23장: 추가점수 내가 받는다!

“그래서 산장이 급하게 남녕부와 광서 순무(巡抚: 지방 행정 장관)와 협상을 하러 가셨다. 그 대회를 공식적으로 취소하기를 바랬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어쩔 수 없이 광주부에까지 도움을 청하러 가셨다. 광동 환관 학원의 가장 우수한 학생을 광서로 전학시켜 이번 대회에 참가시키기 위해서지.”

“우리 환관 학원과 이강 서원, 그리고 남해 도장의 격차는 얼마나 큰 겁니까? 왜 매번 지는 건가요?”

“진정으로 무예를 겨루는 거라면 우리도 밀리지 않는다. 국학, 팔고문(八股文), 산술, 연단 어느 하나 우리가 뒤지지 않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회에서 겨루는 것 중에는 우리 졸업시험 과목이 하나도 없구나.”

“그렇다면 3대 학부 대회에서 도대체 무엇을 겨루는 겁니까?”

“금기서화다.”

이놈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환관들과 금기서화를 겨룬다고? 차라리 오줌 멀리 싸기나 오래 싸기를 하는 게 낫겠다!

두변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의 제자들 중 상당수는 명문가 자제들이니 어려서부터 금기서화를 배우며 자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환관 학원의 학생들 중에 명문가 자제가 누가 있겠는가? 그럭저럭 살 만하다 싶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자식을 거세시키면서까지 환관으로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학원의 학생 중에 그 누구도 금기서화를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학원에 들어와 무학과 국학 등을 배우는 데 급급했고 또 졸업시험도 통과해야 했기에 금기서화를 즐길 겨를도 없었다. 현대 지구의 가난한 시골집 아이들이 어디 도시의 아이들처럼 피아노니 그림을 배울 여력이 있을까.

환관 학원은 졸업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업무를 배정했기에 철저히 절대적인 입시 교육 방식이었다. 금기서화는 사실 교양을 쌓아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니, 환관 학원 입장으로는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고 매번 대회에서 지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산장께서 데리고 오려 한다는 지원군은 능력이 출중하답니까?”

“출중하지. 남방 전체에 이름을 널리 떨친 인재이자 명문가의 자제다. 열일곱에 이미 광동성에서 수석으로 향시(鄕試)에 급제했다.”

“해원(解元: 향시의 수석 합격자)이면 정말 대단한 인재네요. 그런 인재는 앞길이 창창할 텐데 왜 굳이 우리 엄당으로 오는 겁니까? 혹시 그 사람도 선천적 고자랍니까?”

이위가 두변을 슬쩍 쳐다봤다.

“아니다. 그는 제국이 현재 처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다. 거대한 두 기둥인 무장 집단과 문관 집단이 왕조를 갉아먹고 있으니 분노를 참지 못해 거세하고 엄당에 가입을 한 것이지. 대녕 왕조를 바로잡겠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말 지독한 사람이군. 정말 대단해!

두변이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엄당에서 지위가 높습니까?”

“당엄(唐嚴)이라고 한다. 그는 제국 전체, 그리고 모든 환관 학원의 우상이자 귀감으로 모두가 차기 엄당 수령 1순위로 인정하고 있다.”

두변은 그 말을 들자 순식간에 존경심이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젠장. 엄당의 차기 수령은 바로 나라고! 전국의 환관 학원에서 나보다 더 출중하고 잘생긴 인물이 있어서는 안 돼! 만약 있다면 전부 사라져야 해!

두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고, 그럴 능력만 있으면 충분히 그럴 생각이었다.

“산장께서 당엄을 데려오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셨지. 당엄 덕분에 우리가 대회에서 이긴다면 졸업시험에서 50점을 추가로 더 주고 은자 천 냥도 하사하기로 하셨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들이고 실질적인 사항들은 광동 환관 학원과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거다.”

“졸업시험에서 50점을 더 준다고요?”

이 대목에서 두변의 두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니냔 말이다.

두변은 이번 졸업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하면 바로 죽게 될 테니 남은 5개월이 매 순간 정말 귀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50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면 1등을 하기가 한결 쉬워지지 않겠는가.

“선생님, 저도 학원을 대표해서 이번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이위는 조금 당황했다.

“네가 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힘들게 자라지 않았느냐. 금기서화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을 테니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봤을 때 강점이 없을 것 같구나.”

두변은 금 연주와 바둑, 서예, 회화 등 금기서화를 모두 배우긴 했으나 아쉽게도 무엇하나 특출난 것이 없었다. 두변은 원래 새로운 것에 흥미를 쉽게 느꼈기 때문에 여자에게 그러했듯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했다.

“두변, 네가 천재인 건 알겠다. 하지만 금기서화는 10년 혹은 20년의 세월을 들여 연습해야 조예가 깊어질 수 있다.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에 있는 명문가의 자제들은 모두 20여 년 가까이 금기서화를 가까이해왔기에 그들의 수준이 높은 거다. 산장께서 너를 아끼시지만, 이번 대회는 1,500묘의 학전뿐 아니라 산장의 앞길까지 달려있으니 너무나도 중요하지. 만약 산장께서 우리에게 남은 학전 4,000묘마저 잃게 된다면 크나큰 오점이 될 테고, 동창 대도독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엄당 내부의 투쟁도 격렬해지게 되겠지.”

두변은 이 말을 듣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사실 학전 1,500묘는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할 수 있지만, 이문회의 앞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되었다.

두변과 이문회는 이미 한배를 탄 상태여서 이문회의 지위가 높아지면 두변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엄당 내부에 계파가 분명하기에, 두변은 아무런 기회도 잡지 못할 수 있다.

두변의 금기서화 수준은 친구들에게 허세를 부리는 용도로는 손색이 없겠지만, 이강 서원의 명문가 자제들을 이길 수준은 아니었다.

자타공인 최고 수준을 가진 데다 자발적으로 거세까지 한 해원랑이 출전한다면 5할에서 6할 정도의 승산이 있을 테니, 의부 이문회의 미래를 위해 잠시 그에게 이름을 떨칠 기회를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이위는 계속해서 당엄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지 두변에게 얘기해주었다.

어쨌든 당엄이 도착하고 나면 엄당을 하찮게 바라보던 경멸의 눈빛들도 어느 정도 없어질 것이다.

두변은 당엄이 엄당을 대표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 엄당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그를 추켜세우고 있었고 이위조차도 당엄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며 그를 미래의 수령으로 보기도 했다.

두변은 자신이 속이 좁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같이 호응해주며 당엄을 칭찬하기까지 했지만, 속으로는 이 하늘의 총아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해원씩이나 한 놈이면 그냥 문관 집단에서 조용히 지낼 것이지, 엄당까지 와서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 해? 혹시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두변은 당엄이 첩자일 수도 있다는 음모론까지 품기 시작했다.

증거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정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그게 사실인 거지.

두변은 적당한 시기에 이문회에게 참언해서, 당엄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에둘러 표현하기로 결심했다.

의심하고 대비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바로 내가 엄당 수령 후계자의 적임자인데, 문관 집단에서 굴러들어온 놈이 넘볼 자리가 아니지!

그렇게 두변은 무사 몇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학원으로 돌아왔다.

“먼저 들어가 쉬어라. 무슨 일이 있으면 산장께서 돌아오신 후에 얘기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선생님.”

두변은 아주 오랜만에 꿈 한번 꾸지 못하고 아홉 시간을 내리 잤다.

다음날 두변은 잠에서 깨자마자 좌명을 찾아가 원리금까지 모두 갚았다.

“에이, 아쉽군.”

노환관은 두변이 돈을 못 갚으면 자신이 마음대로 부리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탄식했다.

두변은 좌명이 은자를 숨기러 들어간 틈을 타 소첩의 허리를 감싸 안았는데, 여인은 두변의 발을 세게 밟더니 교태를 부리며 두변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이 여인은 건드리면 안 되겠다! 더 자극했다간 오히려 달려들어서 큰 사달이 날 게 분명해!

두변은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그녀의 몸을 몇 번 더듬고는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호흡이 거칠어졌다.

여인이 그를 흘깃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맛있는 거 해줄 테니 저녁에 다시 와요.”

그녀는 뜻밖에 두변의 얼굴에 먼저 입을 맞추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아쉽네. 독이 든 성배만 아니었어도 마음껏 마시는 건데.”

두변은 뒤도 안 돌아보고 좌명의 집을 빠져나왔으며 혹여 사달이 벌어질까 염려되어 다시는 그 집으로 가지 않았다.

산장 이문회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백천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학원에서는 큰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내일이 되면 혈관음이 다시 금단증세를 보일 것이기에 두변은 아편중독을 치료하는 약제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두변이 아편을 끊기 위한 처방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아주 간단했다. 두변은 유흥업소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특히나 그런 곳에는 법에 저촉되는 물건들이 워낙 많았다.

아는 여인 하나가 아편을 하다가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 가기 싫다면서 두변에게 아편을 끊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 과정에서 마약을 끊는 약물과 관련해서 양약이니 중약 할 것 없이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었다.

현대 세계에서 아편중독을 치료하는 처방전은 굳이 비밀이 아닌지라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손에 넣기도 쉬웠다. 치료 방법으로는 보양하는 방법도 있고, 독으로 독을 다스리는 방법도 있어서 임문충공연환(林文忠公煙丸), 단연십칠미(斷煙十七味), 본국혁연환(本局革煙丸)과 같은 것을 처방했다.

하지만 두변도 그 내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처방전을 완전히 이해한 게 아니었기에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약제 재료는 은자 10냥으로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최고급 백삼까지 적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걸 보면, 은자가 이 세계에서는 꽤 값어치가 나가는 셈이었다.

두변은 <연단학 기초 이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를 토대로 처방전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부족할 수도 있는 약효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 두꺼비에서 분비되는 신경 약제를 첨가했다. 이 처방은 독으로 독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복용하면 강력한 작용이 일어나면서 신경을 차단해 발작할 때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지만, 신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이나 위험을 끼치지는 않는다.

두변은 보상으로 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다는 말에 더 큰 기대를 걸며, 내일 이 약의 효능이 잘 나타나기만을 바랐다.

과연, 그가 품을 미인은 누구일까? 혈관음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