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8화 (18/648)

제18장: 두변의 놀라운 연출

이문회 대신 화살을 맞은 두변을 유모는 며칠 동안 밤낮으로 간호했고, 두변이 완치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유모는 조금 초췌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활기 넘쳐 보였고 몸도 크게 불편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병으로 위독해질 수가 있을까.

두변이 현대 지구에서 이곳으로 넘어오긴 했지만, 몸의 원래 주인이 가지고 있던 상당 부분의 정신과 감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터라 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속이 타들어갈 정도로 조급해졌다. 하지만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두충에게 물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지금 유모의 상황이 어떤데?”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아내가 며칠 뒤면 칠석날이니까 소주인이 오시면 끓이려고 장에 나가서 닭 한 마리를 사 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여랑이 혼절했다고 하지 뭡니까. 급하게 가봤더니, 여랑은 이미 인사불성이었고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건 병이 아니야. 분명 누군가 유모를 해친 거야!

“구체적으로 지금 어떤 상태지?”

“입술이 까맣고 눈 흰자위가 붉었습니다.”

“의원은 불렀고?”

“불렀죠! 불렀습니다. 돈을 빌려서 의원 세 명을 불렀는데 다 무슨 병인지 몰라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곧 여랑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말을 마친 두충이 서글프게 울었다.

두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모를 구하기로 했다. 유모가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둔다면 자신은 금수만도 못한 놈이지 않은가.

“여기서 기다려. 학원의 의원을 모시고 유모를 구하러 갈게.”

그 말에 두충도 안심이 되는지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문회가 없으니 다시 이위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위도 학원에 없었다. 백천이 오늘 아침에 학원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위험을 직감한 이위는 수업을 포기하고 학원을 떠났다. 두변에게 생길 수 있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계림부의 동창 만호소(萬戶所)로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두변은 혼자서 환관 학원의 연단사(煉丹師)를 찾아가야 했다.

이 세계에서 좋은 의원이 모두 연단사인 건 아니지만, 연단사는 모두 훌륭한 의원이었다. 평범한 의원이 유모를 구해 내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연단사마저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환관 학원 연단사의 이름은 좌명(左鳴)으로 이미 60대 중반이었다. 그는 엄당 내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문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상대할 자가 없었다.

좌명은 제자들에게 수업을 넘겨준 후 직접 수업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두변이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호화로운 집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고, 옆에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이 차를 끓이고 있었다.

두변이 곧장 좌명의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연단사가 불쾌해했다.

좌명이 두변의 말을 듣고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더러 네 유모를 구해달라니, 당돌하기 그지없구나. 꿈 깨거라. 썩 나가지 못해? 아니면 쫓아낼 것이다.”

“저는 산장 대인의 의자입니다.”

“헛소리! 이문회의 의자는 한 명뿐이다. 지금 계왕부에서 부총관을 맡고 있지.”

“이문회 대인이 얼마 전에 저를 의자로 삼았습니다.”

“왜 나는 모르는 사실이지? 그런데 네가 이문회의 의자라 한들 그게 어떻단 말이냐?”

두변은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좌명은 이문회조차 한때는 그의 제자였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연단사는 의원으로서의 사명감이란 게 없기에, 누군가의 유모라는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 한다 한들 그를 움직이게 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두변이라는 놈이 어디서 굴러먹던 애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 않은가.

두변은 좌명을 자극해 보기로 했다.

“제 유모가 줄곧 건강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혼절하며 쓰러졌습니다. 입술이 검어지고 눈 흰자위가 붉어졌으며 호흡은 점점 가늘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리러 왔나 보네요. 의원들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병인데, 연단사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좌명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수법은 통하지 않아. 한낱 평민 아낙 때문에 내가 움직이지는 않거든.”

두변이 계속해서 부탁했지만, 좌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매정한 연단사에게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쓸데없는 희망이었다.

그러다 두변은 갑자기 어제저녁에 공부했던 <연단학 기초 이론>의 내용이 떠올랐다. 책에는 단약의 재료인 은모(銀蝥)라는 독충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이 벌레는 독성이 강하지 않아서 물린 사람은 몇 시진이 지나서야 죽게 되는데, 물린 후의 증상이 입술이 검어지고 눈 흰자위가 붉어지는 것이었다.

두변이 급히 물었다.

“좌 선생님, 제 유모가 은모에 물린 것입니까?”

좌명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서는 두 눈을 비비며 두변을 다시 쳐다보았다.

은모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충으로, 몇몇 단약에만 쓰이는 재료였고 심지어 그에 대한 설명도 몇십 글자가 전부였다. 대부분 은모가 연단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만 설명했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독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간단히 다루어졌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은모를 두변이 알 줄이야!

‘이거 정말 희한한 일인데?’

좌명이 질문을 시작했다.

“좋다. 몇 가지 물어보도록 하지. 은모에 중독되면 어떻게 해독해야 하지?”

두변은 자신이 외웠던 <연단학 기초 이론> 제1권에 이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으면 그냥 돌아가거라. 네가 구할 수 있으면 살려 보고, 네가 할 수 없다고 나한테 헛된 기대하지 말아라! 한낱 민부를 살리느라 내가 그동안 고수해온 원칙을 깨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두변은 머리를 쥐어 짜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은모에 중독된 후 첫 번째 증상은 입술이 검어지고 눈 흰자위가 붉어지는 것이었고 두 번째 증상은 피부가 차가운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증상은 은두사(銀頭蛇)에 물렀을 때와 비슷한데, 은두사는 독성이 더 강해서 중독되면 반 시진 안에 목숨을 잃었다.

두 가지의 독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속성이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은두사 독에 중독된다면 재빨리 백두단(白頭丹)을 먹어야 한다.

백두단 제조법은 쉬운 편으로, 백두호(白頭蒿)라는 약초를 채취해서 추출하면 된다. 하지만 백두단의 값이 엄청 비싼 이유는, 백두호 300근으로 겨우 백두단 1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답을 생각해낸 두변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독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백두단 10분의 1알만 먹으면 됩니다.”

너무 놀란 좌명이 감탄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는 모양새가, 두변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것도 같았다. 전문 연단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내용이지만, 고작 환관 학원의 학생인 두변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고작 부전공 과목으로 연단학을 공부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가장 놀라운 점은 은모의 독을 어떻게 해독하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안 것이냐?”

좌명이 흥분한 말투로 물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연단학 기초 이론> 349쪽에 은모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593쪽에는 은두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두 개의 독에 중독되면 매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둘 다 이름에 은(銀)자가 있기 때문에, 두 가지의 독은 강도만 다를 뿐 성질은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백두단으로 은두사의 독을 해독할 수 있으니 당연히 은모의 독도 백두단을 1/10 정도만 복용하면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다! 배운 것들을 잘 응용하는구나.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군! 연단학의 보기 드문 귀재로구나!”

좌명이 크게 외쳤다.

좌명은 두변을 차갑게 대하는 대신, 매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내가 가서 네 유모를 구해주겠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학원을 그만두고 내 조수가 되는 것이다. 너는 연단학의 천재야. 그러니 국학이나 무학 같은 것에 시간 낭비하지 말아라. 네가 내 조수가 되겠다고 대답만 하면, 그 즉시 네 유모를 구하러 가겠다.”

두변은 정말 난처했다. 자신에게 연단은 매우 무미건조한 일이었으며, 연단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권세를 잡기란 불가능했다. 두변의 목표는 동창으로 가서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엄당의 거두가 되는 것이지, 실험실에 갇혀서 연구만 하는 연단사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변이 첫 번째로 달성해야 할 목표는 졸업시험에서 1등을 해 동창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꿈의 세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않겠는가.

“왜? 싫으냐? 만약 네가 길게는 10년 정도만 나를 따라다닌다면, 내 수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학원 연단학의 총도사(總導師)가 되지. 이는 부산장과 비슷한 위치이니, 상당히 존귀한 신분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

제가 어떻게 그런 고리타분한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동창으로 가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막강한 권세를 누려야 한단 말입니다!

두변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좌 선생님, 제 꿈은 엄당과 제국을 진흥시키는 것입니다.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다 허울 좋은 소리지. 그저 권세에 눈이 멀었을 뿐이로군. 네가 응하지 않겠다니 두말할 것 없구나. 나는 개입하지 않을 테니 어서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혹시 여기 백두단이 있습니까? 사고 싶습니다.”

두변의 말에 좌명이 냉소했다.

“산다고? 돈은 있고?”

“얼마입니까?”

“은자 100냥이다.”

“네?”

두변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백두단이 비싼 건 맞으나 은자 100냥까지는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는 5인 가족이 한 달 생활비로 은자 1, 2냥만 있으면 풍족하게 살 수 있는데, 백두단은 은자 10냥 정도였다. 그리고 사실 절대다수의 가정에서는 한평생 은자 100냥을 모으지도 못한다.

좌명이 냉소를 지었다.

“은자 100냥이다. 사든지 말든지.”

‘일이 정말 꼬이는군. 지금 유모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가 백두단을 구할 시간이 없는데.

“알겠습니다. 사겠습니다.”

“돈을 줘야지?”

두변은 당연히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합쳐봐야 은자 1냥도 되지 않았다.

“차용증을 써도 됩니까?”

“차용증? 너를 갖다 팔아도 은자 20냥이 안 나올 텐데 100냥을 꾸겠다고? 어림없지!”

“제 이름은 은자 100냥의 값어치가 없지만, 이문회 대인 의자의 이름은 100냥의 값어치가 나간다고 봅니다.”

“네가 진짜 의자인지 아닌지 내가 어찌 알고?”

“만약 이 돈을 제가 갚지 못한다면 평생 선생님의 조수로 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좋다.”

좌명이 대답을 하고는 옆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말했다.

“가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거라. 차용증을 써야겠다.”

“알겠습니다.”

여인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른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이렇게 못된 환관의 소첩이 되어 그 시중이나 들고 있다니! 소똥 위의 예쁜 꽃이란 비유가 너무 적절하지 않은가!

소첩이 종이와 붓을 꺼내서는 은자 100냥에 대한 차용증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이자는 매월 5푼이다. 만약 한 달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평생 내 조수가 되어야 한다.”

좌명이 말했다.

‘월 이자가 5푼이라니. 고리대금 업자보다 더 악독하네.’

두변은 이를 악물면서 완성된 차용증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글씨를 제법 잘 쓰는구나.”

좌명이 차용증을 챙긴 후 백두단을 꺼내러 뒷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단약을 보물처럼 굳게 잠긴 서랍에 보관하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여인을 시키지 않았다.

좌명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두변은 그의 소첩을 껴안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좌명의 소첩은 너무 놀라 사내를 밀쳐야 한다는 것도 잊은 듯했다.

“저 노인네가 나를 협박했으니 당신이 보상한다고 칩시다.”

두변이 거침없이 말하며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여인은 차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호흡이 빨라지며 얼굴이 붉어졌고 수줍어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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