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화 (3/648)

제3장: 환관 학원의 수장 이문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바깥의 수위가 소리쳤다.

“날이 밝았으니 일어나라. 황천길에 오르더라도 마지막 식사는 하고 가야지.”

눈을 뜨자, 수위가 감옥의 철문 한 칸을 열더니 찬합을 밀어 넣었다. 열어보니 비싼 버섯과 사슴고기, 그리고 은자 열 냥이나 하는 북해춘(北海春) 한 주전자, 그리고 진주미(珍珠米)로 만든 밥이 찬합에 들어있었다.

이 정도 식사는 적어도 은자 스무 냥 정도는 써야 준비할 수 있는 것으로, 비록 마지막 식사이긴 하지만 매우 풍성했다. 환관 학원은 비록 그를 버리긴 했으나, 이렇게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변은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억울해 죽겠고, 곧 정말로 죽으러 가는데 어떻게 입맛이 있겠나.

그는 밥 먹을 시간을 이용해 머리를 쥐어짰지만 살 방도를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각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갈 시간이다.”

수위가 문을 열었고 학원의 무사 두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거의 건드리지도 않은 마지막 식사를 보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무사들은 안으로 들어와서 두변을 양쪽에서 번쩍 들어올리다시피 하며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제 정말 죽으러 가는 건가.

마침내 감옥에서 나오게 된 두변은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지하 감옥에서 환관 학원까지 호송된 후, 최씨 가문의 무사들에게 넘겨지는 순서일 것이다.

환관 학원의 수많은 학생이 밖에 서서 그가 떠나는 길을 배웅해줬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동정,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1리(里)쯤 걸어가니 환관 학원의 대문에 도착했다. 바깥에는 최씨 가문의 무사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완전무장한 상태로 차가운 표정에 잔인한 눈빛으로, 두변을 넘겨받으면 가장 잔인하게 죽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때, 두변의 시야에 대문 밖에 부부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술과 음식이 놓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목놓아 울고 있었다. 두변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절망의 슬픔, 그리고 결연함이 묻어났다.

순간 두변의 마음이 아려왔다.

두변은 이 부부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아름다우면서 온화한 얼굴을 가진 여인은 두변의 유모로 어릴 때부터 그를 돌봐줬다. 당시 경성 두씨 가문에서는 고자인 두변을 모두 업신여겼으나, 오직 이 유모만이 그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중년 남성은 두씨 가문의 마부로 유모보다 열 살가량이 더 많았다. 그는 두씨 가문에서 지위가 낮았으나, 성실하고 두변에게도 잘해주었기 때문에 유모의 남편이 될 수 있었다.

두변은 유모의 과거를 생각해 냈다. 유모는 매우 아름다웠다. 스무 살 초반에 과부가 되었을 당시 두씨 가문의 이노야가 그녀를 매우 총애해 첩으로 들이고 싶어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으나 두변을 위해 이를 고사하고 마부에게 시집을 갔다. 이노야의 아들이 그렇게 두변을 괴롭혔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두변이 고자라는 소식이 퍼지자 두가에서는 그를 없애려고 했다. 원래는 직접 손을 써 죽이려고 했으나, 유모가 대노야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이노야와 모종의 거래를 맺고 나서야 두변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다. 유모와 그녀의 남편은 긴 여정을 떠나 두변을 광서의 환관 학원에 보낸 후, 그들도 광서에 남아 두변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이 부부에게 두변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이며, 친자식과 다를 바 없었다. 헌데 그런 두변이 죽게 생겼으니 유모도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해 곧 두변을 뒤따라갈 생각 중이었다.

지금 이 세계에 속한 두변은 이 몸의 감정을 비롯한 모든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 어떤 거부감도 없이 이 둘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통곡하는 유모를 보면서 두변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난 살아야만 해.

바로 이때, 등 뒤에서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변, 이 세상은 참혹하다.”

목소리를 들은 환관 학원의 모든 무사와 사람들이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저벅. 저벅.

선명한 발걸음 소리가 땅을 타고 두변의 귓가에 닿았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금포(錦袍)를 입고 은관(銀冠)을 쓴 환관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비록 위엄을 드러내는 수염은 없었지만, 그의 온몸에서 위압감과 동시에 음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세상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주위에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했다.

그는 이곳의 최고 지배자이자 광서 환관 학원의 산장이며, 대녕 왕조 동창의 만호를 겸임하는 이문회였다!

평소 같으면 두변은 대화는커녕 만나볼 자격조차 없는 이였다.

“네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만, 살려줄 가치는 없는 것 같구나. 엄당이 네게 미안하게 되었다. 잘 가거라.”

이문회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손을 살짝 젓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두변에게 최종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사 둘이 두변을 끌고 가려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바깥의 군중 속에서 서늘한 빛이 번쩍이더니, 화살 하나가 이문회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날아온 화살에 너무도 놀란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소리쳤다.

“자객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은 이미 산장 이문회의 등에 정확히 꽂혔다.

푹!

화살은 이문회의 살을 뚫고 3촌 깊이로 박혔다.

수많은 무사들이 이문회에게 달려갔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살을 맞은 이문회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화살을 손으로 뽑아냈다. 그가 몸을 돌리자, 분노로 가득 찬, 당장이라도 사람을 씹어 먹을 듯한 맹수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최씨 가문이 대담해졌구나. 이미 두변을 넘겨줬는데도 이렇게 암살을 기도하다니. 우리 엄당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더냐? 광서 전체를 피로 물들이지 않으면, 나 이문회, 경성으로 돌아가 창독(廠督) 대인을 뵐 낯이 없다!”

이문회가 매섭게 소리쳤다.

“여봐라. 두변을 죽여 그 머리를 최가에게 건네줘라. 그리고 그들에게 선전포고해라!”

“예!”

무사 하나가 곧장 두변에게 다가와,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피가 솟구쳤다.

두변은 목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지옥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니야, 안 돼!”

두변은 필사적으로 소리쳤으나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고 갑자기 눈을 뜨며 놀라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후 그는 자신의 목을 만져봤다. 다행히도 머리는 아직 목에 제대로 붙어있었다.

방금 그 장면이 꿈이었다고? 이런 미친. 꿈이라기엔 모든 게 다 너무 생생했는데?

자신이 정말 참수당하는 줄만 알았던 두변은 죄수복을 땀으로 흠뻑 적신 상태였다.

두변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방금 그 꿈은 뭐지? 너무 걱정하다 보니, 꿈으로 나타난 건가?

이때, 바깥의 수위가 소리쳤다.

“날이 밝았으니 일어나라. 황천길에 오르더라도 마지막 식사는 하고 가야지.”

수위가 감옥의 철문 한 칸을 열더니 찬합을 밀어 넣었다. 찬합을 열어보니 비싼 버섯과 사슴고기, 그리고 은자 열 냥이나 하는 북해춘 한 주전자, 그리고 진주미로 만든 밥이 들어있었다.

두변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뜻밖이었지만 이건 분명 행운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한번 꼬집어는 보고는 극심한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금은 꿈이 아니야.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 장면이 꿈속의 장면과 똑같은 거지?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야!

밖의 수위가 한 말도 그렇고 지금 이 식사도 그렇고. 심지어 놓인 위치, 색과 광택까지 모두 꿈속에서 보고 들은 것과 똑같아.

이게 무슨 의미인 걸까?

설마, 내가 예지몽을 꾼 건가? 이게 대단한 능력인데? 이게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얻게 된 능력인가?

두변은 무척 놀라긴 했지만, 당장 이걸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다음으론 무슨 일이 일어났었지?

꿈속 장면에 따르면 자신은 이 마지막 만찬을 즐길 입맛이 없었다. 30분 정도 후에는 학원 무사 둘이 최씨 가문 무사에게 넘겨주기 위해 자신을 끌고 간다. 학원 대문 앞에서 환관 학원의 산장인 이문회가 자신에게 최후의 말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곧 자객이 이문회를 암살하기 위해 군중 속에서 화살을 쏠 것이고.

화살은 이문회의 등을 명중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이에 분노한 이문회는 두변을 죽이라 명령하고 최씨 가문에 선전포고를 할 것이다.

두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 암살은 뭔가 이상했다.

먼저 이문회의 무공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그렇게 느린 화살로는 그를 맞출 수 없고, 애당초 암살 작전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둘째, 정말로 이문회를 죽일 작정으로 화살을 쏜 거라면, 화살촉에 치명적인 독을 발라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문회가 등에서 화살을 뽑아냈을 때, 그의 등에서 흐르는 피는 독에 중독된 혈색이 아닌, 일반적인 찰과상에서 보이는 빨간 피였다. 즉, 화살촉에 독이 발라져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암살 작전은 단지 이문회의 고육책이며 자작극이라는 의미!

두변의 생사는 이문회와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 이 자작극의 목적은 두변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바로 엄당과 학원의 체면을 바로 세우기 위해 최씨 가문을 공격할 명분을 찾는 데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변을 넘기게 된 상황이 되면서 엄당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 최씨 가문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이문회의 고육책이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될 테지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엄당에게 필요한 건 복수의 빌미일 뿐이고, 엄당은 최씨 가문 수십 명의 목을 베고 체면을 바로 세우려고 할 테니.

게다가 엄당은 두변을 온전한 상태로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두변의 목을 벤 다음에 그 머리를 최씨 가문에 건네준다는 것은, 엄당이 패배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두변의 목을 선전포고의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었다.

엄당의 체면을 지키겠다는 이문회의 태도가 너무나 결연하지 않은가. 아무 거리낌 없이 두변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희생해 직접 화살을 맞기까지 하다니!

이런 상황에서 두변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변은 이문회와 협상할 만한 패가 없었다. 이문회에게 두변의 목숨은 그저 보잘것없는 파리목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변의 유일한 선택지는 감정에 호소하고 충성심을 보여 이문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뿐.

두변이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암살이 이뤄지는 바로 그때 두변이 재빨리 이문회 대신 화살을 맞는 것이다. 그 날카로운 화살이 두변의 어깨를 관통할지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산장의 목숨을 구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연극이 완성되는 게 아닌가.

두변의 성적이 아무리 처참할지라도, 산장 대인에 대한 절대적인 충심과 경외심뿐 아니라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래. 말로 목숨을 구걸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백배 천배는 더 낫지!

이건 두변의 고육책이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챌 리가 없다. 이문회가 화살을 맞는 상황을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두변의 고육책을 의심하고, 그의 충심을 의심할까.

두변은 목숨을 바쳐 성공적으로 이문회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

두변의 앞에는 이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이문회의 계획대로 자객의 제물이 되는 것.

혹은 목숨을 건질 뿐 아니라, 산장 대인인 이문회 심복의 자리를 단숨에 꿰차는 것.

두변은 이런 식의 자구책이 몹시 위험하고 극단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인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한 번 도전해야 하지 않겠나.

두변은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사내였다. 목숨을 중시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변은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을 건 도박을 결정했다. 그러자 그의 두려움은 사라졌고, 그를 위해 차려진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한 그는 값비싼 요리와 진주미로 만든 밥을 깨끗하게 비웠다. 마지막 만찬에 올라온 술은 귀하디귀한 술이었지만, 그는 몇 모금만 마셨다. 살짝 취기가 올라 흥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계획에 차질을 줄 수준은 아닌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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