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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11화 (211/212)

제211화

“⋯⋯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든 말든 알렌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형이 동생을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고작, 그것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김우진이 아닌 그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는 동생에게 전해졌기를 바라며.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이 너를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는 그저 증언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살려둔 것에 불과하니.”

알렌은 김우진의 충격에 빠진 듯한 모습을 무시하고 품에서 아공간 포켓을 꺼냈다.

그곳에는 알렌이 특별하게 모아 놓은 재료가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혹시 모를 비장의 패로 삼기 위해 베스틀라에게 받았던 물건을.

아공간 포켓에서 나온 건 황금빛의 액체였다.

알렌이 자신의 심장을 용의 노심으로 바꾸고, 거인의 신체로 탈바꿈했을 때 사용한 것이 이 거인의 골수였다.

그때 사용한 것이 정말 적은 양이었음에도 알렌은 인위적으로 거인의 신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것이 검은 신과 하얀 신의 도움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방법 역시 알렌이 그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었으니.

“잘 봐라. 빙의자. 이건 너를 위해서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회귀 직후의 알렌이었다면, 이런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율리우스의 복수. 알렌에게는 그 목적밖에 없었다. 율리우스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면 되찾고, 되찾지 못한다면 동생을 기리기 위해 손수 복수한다.

그 다짐을 잊지 않고자 그를 기리는 작은 돌무덤까지 손수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 그 다짐이 바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니.

‘그 복수의 방향에 다른 것들도 함께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별의 곶에서 겪었던 사건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홀로 계획을 세우고 곁에 있는 이들 역시 알렌의 말에 동조하거나 그를 따라 복수하려는 이들밖에 없었을 때, 알렌은 처음으로 그와 다른 유형의 이들을 마주했다.

윌리엄, 에리엘 그리고 에반.

그들의 죽음은 복수에만 눈에 멀었던 알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벤자민의 건으로 자신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었다면, 그들의 죽음은 알렌의 행동이 진정 옳은지 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쳤던 노아의 원망으로 알렌은 자신의 행동이 빙의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렇기에 알렌은 목표를 바꾸었다.

자신의 목표가 여전히 동생을 구해내거나 그의 몸을 차지한 김우진에게 복수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제외한 이들은 복수를 위해서 죽어도 상관없는 자신과는 달라야 할 것이라고. 알렌 자신이 없어도 그들은 내일의 해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율리우스의, 제 동생의 복수를 위해 그들이 전부 죽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죽는다면, 나여야만 한다.’

나 혼자 죽는 거로 충분한 게 아니라, 율리우스를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

그게, 율리우스의 형이자 가족인 자신이 할 일이었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그 역할을 양보할 수 없다.

“그러니 이건 복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한 목표를 위해 미뤄두는 것이다.”

복수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

알렌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다른 이들의 도움과 조력 덕분이었지, 홀로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한 덕분이 아니었으니.

알렌은 망설임 없이 거인의 골수 전부를 들이켰다.

그의 몸속으로 황금빛 액체가 흡수되며 온몸에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거인의 골수는 평범한 인간을 거인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만큼 귀한 영약이다.

그러나 같은 거인이 복용한다면, 거인의 골수는 다른 역할을 한다고 베스틀라는 말했다.

‘거인의 골수는, 같은 거인의 성장을 돕는다.’

그렇기에 볼토른이 왕이 되기 전에는 서로 거인끼리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했다.

알렌이 거인의 골수를 들이켠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성장하기 위해.

이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 근본적이고, 정말 될지 안 될지 알렌도 미완의 계획으로만 남겨 두었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도시 비다르를 세울 때까지만 해도 훗날의 포석에 불과했으나, 나스트론드 평야에서 베스틀라가 엄청난 양의 거인의 골수를 선물해 준 순간, 그건 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지.

알렌의 몸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며 몸을 키울 정도로 거인의 골수에 담긴 힘은 엄청났다.

아마 이대로 힘을 온전히 흡수해낸다면 초월자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제외하면 알렌을 당해낼 수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으니.

알렌은 최대한 힘의 흡수를 미루며 검에 담긴 룬 문자를 발동시켰다.

검의 표면에 새겨진 24개의 룬 문자. 베스틀라에게 따로 사용법을 배웠음에도 평상시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마법.

아니, 마법이라 불러야 할지도 애매했다.

문자 그 자체에 뜻이 담겨 그 뜻을 알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알렌은 비다르를 세울 때부터 단 하나만을 계획했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상징으로 삼아 마법적 개념을 넓히기 위해.

룬 문자가 검 위에 층층이 떠 오르며 알렌의 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땅이 조금씩 진동했다.

쿠구구궁-

김우진은 다른 이들의 전투 탓에 발생하는 소음이라 생각했으나, 멀리 있는 유적 하나에서 갑자기 빛이 치솟자 흠칫 고개를 돌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쿵- 쿵- 쿵-

서쪽에서. 동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

그가 보지 못하는, 볼 수도 없이 멀리 떨어진 유적에서도 빛이 치솟기 시작했다.

전투를 하고 있던 이들도 이변이 일어나자 잠시 전투를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베스틀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빛줄기를 본 순간, 알렌이 무슨 일을 벌였다 판단하고 즉시 움직였다.

“아, 진짜 알렌-!”

복수나 하라고 자리를 비켜줬더니, 진짜!

그런 그녀의 돌발행동에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 역시 비슷한 감상을 받은 듯 뒤늦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한때, 알렌은 베스틀라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거인이 자라는 것이 성장기가 첫 번째고, 변태기가 두 번째라면, 세 번째는 무엇이냐고.

그때 베스틀라는 확실하지 않은 어조로 세 번째는 우화기라고 말했다.

다른 생명체보다 조금 강한 필멸자에서 벗어나, 더욱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

그것이 거인의 우화기이자.

멸망 때문에 단 한 명도 이루지 못했던 단계라고.

알렌은 자신의 성장이 사실상 거인의 두 번째 단계에서 막혔을 때부터 만약을 대비해 이 계획을 세웠다.

정말 모든 계획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할 패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행동은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거인의 우화기로 향하기 위한 알렌만의 시도이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살리려는 방법이었다.

알렌의 읊조림에 따라 몸 주위를 감도는 룬 문자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와 함께 땅이 진동하며 베스틀라를 숨기기 위해 만들었던 수백, 수천 개의 신화시대 유적에서 빛이 솟구쳤다.

그 빛은 알렌의 도시인 비다르를 거쳐 하나의 빛으로 화해 알렌에게 떨어져 내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알렌은 억지로 저항하던 것을 멈췄다.

거인의 골수는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알렌의 몸을 탐욕스럽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천천히.

흡수되던 거인의 골수는 알렌의 검무에 멈칫하더니, 곧 방향을 틀어 알렌의 검을 향해 나아갔다.

요툰스베르드Jǫtunnsverd 일계一界 마나그람Manngram

“첫 번째 땅은 인간의 분노로 이를 미드가르드라 한다.”

알렌의 선언은 곧 룬어로 치환되어 세계에 선언되었다.

요툰스베르드Jǫtunnsverd 이계二界 이르파스카더스Irfascadus

“두 번째 땅은 검은 피부의 그림자니 스바르트엘프하임이라 한다.”

명멸하는 빛의 세기가 강해지며 알렌의 몸이 더욱 거대해졌다.

요툰스베르드Jǫtunnsverd 삼계三界 료스솔Ljóssól

“세 번째 땅은 빛의 태양이니 알프헤임이라 하겠다.”

명멸하는 빛의 세기가 강해지며 알렌의 몸은 아래에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요툰스베르드Jǫtunnsverd 사계四界 카스니플Kaltnifl

“네 번째 땅은⋯.”

그렇게 오계, 육계, 칠계, 팔계 마지막으로 구계까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며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한다.

알렌의 용의 노심은 흩어져 마력의 원천이자 그 자체가 되었다.

알렌의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어 끝이 없는 빛을 토해냈고.

알렌의 몸에 흐르는 피는 11줄기의 강이 되어 9개의 땅을 관통하는 거대한 바다이자 강이 되었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그 모습을 이어받은 산맥으로 변했으며, 그 위를 뒤덮은 거죽은 거대한 땅이자 숲이 되었다.

알렌의 영역은 선과 악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었고, 운명을 짜내는 베틀이자 인과율이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그 어떤 초월자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그가 아홉 번의 검무를 끝마친 순간, 일순간 세상이 정적으로 변했다.

알렌은 알았다. 이 순간은 그가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유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거인의 우화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거인의 성장은 변태기가 끝이었다. 산이나 바다. 그리고 언덕같이 자신의 근원으로 삼을 것을 골라 함께 성장하고 죽는 것이 그들의 생애였다.

그 이상의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알렌이 이룬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경지를 억지로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거인의 골수를 삼키고 거인의 유적에 새겨진 룬 문자를 도시 비다르를 통해 억지로 개념을 넓혔다.

그 덕분에 존재하지 않는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의 목적도 마찬가지.

현재 알렌의 모습은 거의 알 밖에 존재하는 초월자와 비교할 수는 없어도 땅에 발을 디디면 하늘 끝에 머리가 걸릴 지경이었다.

몸이 반투명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그의 한걸음에 대륙이 진동했을 것이다.

허나,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나는 이곳에서 죽을 테니.’

우화기에 발을 딛고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은 죽어야 한다.

어찌 하나의 세상이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일말의 아쉬움이 생긴다.

그렇지만.

‘한 번이라면.’

움직일 수 있었다.

알렌은 아래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베스틀라와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과 반쯤 금이 간 알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지상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두 쌍의 눈동자 역시.

알렌을 발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검은 신과 하얀 신은 급히 본신을 움직여서라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알렌의 움직임이 더 빨랐고.

콰아앙-!

알이, 깨져 나갔다.

그리고.

『☐☐☐☐☐☐☐☐☐☐☐☐───────』

새로운 생명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우렁찬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알렌은 자신의 의식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몸의 형태를 잃고 하나의 세상으로 변하는 몸을 보았다.

그의 모습을 본 이들이 기겁하며 제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지만⋯.

‘더는 버티지 못하겠군.’

의식을 더 유지할 겨를이 없었다. 율리우스가 이 모습을 본다면, 자랑스러워했을까. 아니면 왜 남들을 위해 목숨까지 위하냐고 타박할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족했다.

알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만족했으며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찾아오는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였다.

알렌 라인하르트 향년 28세.

복수를 포기하고 남들을 구하고자 제 몸을 희생시켜, 죽음을 받아들이다.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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