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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07화 (207/212)

제207화

대화를 마친 알렌은 빠르게 공동을 나섰다.

관리자 크바지르가 보여준 세계의 진실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알렌은 빠르게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샘을 나오니 일은 끝나 있었다.

베스틀라가 자신의 몸을 되찾아 아버지와 힘을 합쳐 유지르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흘러갈 대로 흘러간 상황이었다.

「⋯알렌.」

볼토른의 몸이 모래처럼 흘러내린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이 사라지고 계약이 끝나자 그의 생명을 억지로 붙들던 끈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뒤늦게 도착한 알렌을 한 번 쳐다보고는 흐릿하게 웃었다.

「다행이군.」

그리고는 무너지던 몸을 강제로 움직여 베스틀라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쳐다보던 볼토른의 표정은 평온했다. 드디어 의무를 완수했다는 만족감. 그러나 베스틀라의 얼굴 위에 떠오른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

걱정. 슬픔. 희미한 분노와 원망.

그러나 끝내 마지막에 떠오른 건 원망이었다.

「베스틀라.」

「이제 만족했어요? 마음대로 끝내고, 마음대로 해결하면 제가 좋아할 줄 알아요? 볼토른, 당신은 왕으로서 명군일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야.」

「다행이군.」

그러나 그런 그녀의 분노에도 볼토른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 지금 그게 말이라고⋯!」

「앞으로, 네가 거인들의 왕이다. 볼룬드!」

베스틀라의 말을 한차례 끊은 그는 볼룬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몸과 흩날리는 신체는 그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예! 폐하, 신하 볼룬드 여기 있습니다.」

「앞으로 나를 대신하여, 새로운 왕을 따르도록 하라.」

황당해하는 베스틀라를 앞에 두고 볼토른은 형형한 눈빛으로 베스틀라를 보았다.

「우리가 왜 이곳에 자리 잡았는지 아느냐?」

「아니, 갑자기 무슨⋯.」

쿵- 쿵- 쿵-

그때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알렌이 움직이려던 찰나, 용의 감각에 드러난 상대의 모습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건⋯.”

「거인은, 원수를 잊지 않는다.」

지평선의 끝에서부터 수많은 거인 형상을 한 언데드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의지를 네가 잇기를 바라마.」

그 말을 끝으로 볼토른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멍하니 그 잔해를 내려다보는 베스틀라의 옆으로 알렌이 다가왔다. 베스틀라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갑자기 알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베스틀라?”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

“그래.”

알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베스틀라의 등을 쓰다듬었다.

밝았던 하늘이 서서히 어둡게 변해, 총총한 별들의 바다가 둘의 머리맡에 내걸릴 때까지.

* * *

김우진은 볼룬드와 싸우던 도중 도망쳤다고 했다.

그리고 베스틀라는 알렌을 따라가지 않고 남았다. 밝은 금발과 거인치고 크지 않은 키, 베스틀라 말로는 일부러 크기를 줄인 거라는데 자세한 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검에 갇혀 있으면서 검의 능력을 일부 이어받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을 뿐이었다.

“⋯저는 남아서 다른 거인들을 모으고 있을게요.”

그녀는 오랜 시간 사용한 사념파를 벗어나 어색한 얼굴로 직접 입을 열었다.

“그래도 괜찮겠나?”

“어쩌겠어요. 제가 없으면 이제 토벌될 일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인데. ⋯그리고 미우나 고우나 마지막 아버지의 유산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베스틀라의 얼굴에는 조금의 그늘이 있었지만 빠르게 떨쳐 냈다.

저 정도라면 베스틀라 혼자서 이겨낼 수 있을 터.

“그럼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지. 검은 신과 하얀 신 역시 내가 진실을 안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러면⋯ 알렌.”

햇볕이 내리쬐는 삭막한 사막 위로, 나스트론드 평야의 경계선까지 그를 따라오던 베스틀라가 수줍게 웃었다.

“잘 갔다 와요.”

쪽-

순간적으로 용의 감각마저 뚫고 들어오는 속도.

알렌은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른 척하는 베스틀라를 보며,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입에 담았다.

“그래, 다녀오지.”

“⋯네.”

* * *

영지로 빠르게 돌아오는 동안, 김우진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알렌은 알았다.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공자님. 지금 밖에 광휘교의 사제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왔지?”

“아마⋯ 나스트론드 평야가 정화되었기에 그 땅의 소유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것 같습니다.”

광휘교는 이미 전부터 마경을 개척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던 터라 현재 알렌이 나스트론드 평야를 정화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알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알렌을 찾아온 것이 광휘교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벌컥-

뒤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넬리아가 급박한 얼굴로 그에게 하나의 편지를 전하며 소리쳤다.

“공자님! 북방의 핌불베트르 가문이⋯ 멸망했답니다.”

“⋯뭐?”

알렌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편지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단 한 문장만이 고풍스러운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번 대의 대적자 알렌 라인하르트에게.

-북방의 여왕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니⋯ 알렌, 절 만나러 오지 않으실래요?

당신의 선배가.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 흡혈귀의 습격으로 죽은 줄 알았던 선배의 편지였다.

* * *

광휘교와의 분쟁은 아칸더스를 비롯한 가신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알렌은 북방으로 떠나 여왕을 대면했다. 그녀는 몸의 반이 해골로 이루어져 있었다. 볼룬드에게 저주를 내린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녀를 만나는 자리에서 알렌은 죽은 줄 알았던 밀레드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정체를 속여서 미안해.”

“그럼 진짜 정체는⋯.”

“응. 성을 보고 짐작했지? 고대 제국 마지막 황족의 후계⋯ 정도일까. 아하하 사실 나도 잘 몰라. 내가 거둬졌을 때는 이미 여왕님께서 거둬 주신 이후였거든. 이것도 여왕님이 말해 준 거야.”

북방의 여왕.

핌불베트르 가문의 숙적이자 이번에 그들을 멸망시킨 상대는 흥미로운 얼굴로 알렌과 밀레드의 대화를 경청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이쯤이면 됐다는 듯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 시대의 대적자이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인 그대여.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들어보겠나?”

“말씀하십시오.”

나스트론드 평야의 거인들이 해방되고, 광휘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때 그녀가 연락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할 말도 하나밖에 없을 터.

“여와 손을 잡지 않겠나?”

* * *

새로운 동맹을 구한 알렌이 영지로 돌아오던 중, 거대한 인영이 알렌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궁-!

엄청난 속도와 순간적으로 알렌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실력자.

제3의 조직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건가 싶어 경계심을 품기도 잠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알렌은 힘을 풀었다.

“못난 제자야. 때가 되었다. 빠지지는 않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 제법 쓸 만해졌으니 말이야.”

3년 전 아카데미를 습격하여 하이젤을 죽게 만들었던 원인이자, 나스트론드 평야에서 샘을 노리던 유지르의 동맹.

그림자 군도의 흡혈귀를 토벌할 때가 되었다.

* * *

그림자 군도 토벌은 꽤 위협적이었으나 그럼에도 무탈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수인 연합의 협력과 수년간 준비한 가이온의 저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순조롭게 토벌을 끝마치려던 그때, 흡혈귀 진조의 습격에 빠져 마력과 감각이 봉인되어 버렸다.

치열한 혈전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진조를 죽인, 짐승왕은 웃으며 남은 힘을 짜내 공간을 갈라 알렌을 탈출시켰다.

그리고 생의 끝에서.

짐승왕은 하늘에서 강림하는 하얀 신체를 보았다.

저것이 제자가 경계하던 것이겠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저걸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아니, 여기서 얼마나 더 성장하든 조금도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제자에게 못난 꼴을 보일 수 없지.’

못난 제자라도.

뱀파이어 토벌에 도움이 될지 몰라 제자로 삼았던 것이라 하여도.

제자는 제자였다.

그런 제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데 추하게 패배하는 꼴을 보일 수 있겠는가?

짐승왕은 미련을 버렸다.

다른 이명도 아닌 ‘짐승’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이 담긴 이명을 골랐을 때부터, 그는 복수를 꿈꿨다. 그 복수를 이룬 이 순간, 미련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아니.’

따지자면 정은 조금 들었나.

그렇기에 마지막에 자신이 아닌 제자를 탈출시켰겠지.

그게 마음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짐승인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었기에.

그는 검을 휘둘렀다.

빛이 갈라지고.

『☐☐☐☐☐☐☐☐☐☐☐☐───────』

끔찍한 비명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 * *

“우리는 당신을 새로운 팔강으로 추대하겠소.”

“우리도 짐승왕의 의지에 따라 당신을 따르지.”

“우리 부족도 빠지지 않겠다. 그가 골랐다면, 따를 이유는 충분하지.”

모든 토벌전이 끝난 다음 날, 알렌은 수인 부족들의 지지에 따라 새로운 팔강이 되었다.

“⋯일리아나, 괜찮나?”

“좋은 할아버지는 아니었어도⋯ 그래도 염원은 이루셨으니 크흥, 괘, 괜찮아요⋯⋯.”

일리아나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알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듯 옷자락을 붙잡은 그녀를 뿌리치지 않고, 잠시, 아주 잠시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제국에서 알렌과의 약속에 따라 그에게 지지 선언을 보내는 가운데.

김우진은 광휘교의 전력을 이끌고 남부에 쳐들어가 팔강의 끝자락, 남부를 관할하는 뱀신 갈루아의 목을 베고 스스로가 팔강임을 증명했다.

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대립의 시작이었다.

* * *

알렌이 팔강으로 증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상처투성이로 서 있는 린벨을 바라보았다.

“어머, 린벨. 알렌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가만있을 수는 없겠지?”

그녀가 바라보는 발코니 아래엔, 수많은 엘프가 침묵한 채 연무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년째, 자신을 구해준 공자님께 보답하기 위해 단 하나의 일념으로 단련한 검사가 세계수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검귀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그들도 검귀가 가지고 있던 팔강의 이름을 거래하기로 찬성했다.

세계수에 대한 신앙으로 신성력을 쓸 수 있다면 팔강의 자리를 내어준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으니.

다만, 그 거래는 모두 린벨이 검귀와 싸워 그를 패배시키거나 죽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저벅저벅-

린벨은 고요한 얼굴로 절그럭거리는 쇠사슬을 휘감은 검귀를 마주했다.

몇 년간 알렌의 곁에서 떠나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것은, 가만히 있다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었다.

알렌은 말해 주었다.

자신이 팔강에 닿을 만한 재능이 있다고.

그녀가 얼마나 고절한 재능을 가졌는지를, 그녀 자신보다 알렌이 더 확고하게 믿었다.

그러니 그녀는 할 수 있었다.

그의 전속 시녀가 되는 것을 선택했을 때부터.

린벨은 단 하나의 소망이 있었으니까.

“그럼, 가겠습니다.”

이윽고, 새로운 팔강을 결정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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