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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05화 (205/212)

제205화

꽈릉-

전류의 파도가 좁은 복도를 타고 거세게 몰아쳤다. 평범한 언데드였다면 이 공격 한 번으로 정리될 정도로 강력한 공격.

자신의 번개는 특별하다.

여러 영약과 기연 덕에 삿된 것을 상대하기 최적화되어있으니까.

어두운 복도를 가득 채운 전류의 파도는 언데드라면 쉽게 견뎌낼 수 없음이 자명했다.

그래, 상대가 저 바깥의 평범한 언데드와 다를 바 없었다면 말이다.

“좀, 비켜라-!”

김우진은 짜증을 감추지 않고 전력을 쏟아냈다.

그러지 않으면 늦고 말 테니까.

그는 끝없이 뇌전을 끌어올리면서도 힐끔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나트스론드 평야,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보물을 탈취하라. 제한 시간 : 0 : 14 : 11]

[보상 : 스킬 합성권(-)]

통로에 들어간 후부터는 자신을 가로막는 건 없었다.

거리가 제법 되긴 했으나 뇌신화까지 발동시킨 그가 늦을 리 있겠는가. 어두운 통로의 끝에 자리한 공동의 출입구를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뿐이었다. 어떤 스킬을 합성시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나 통로에 다다르기 직전, 공동의 입구가 닫힘과 동시에 이상한 언데드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처음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보물을 지키는 이가 없을 리 없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원작에도 나오지 않았던 기연과 더불어 얻을 스킬 합성권뿐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앙-

자신을 막아 세운 이는 평범한 언데드라기에는 지나치게 강했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뇌전의 파도가 그치자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넌.”

뭐지?

엘프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미남자. 그러나 하반신은 멀쩡한 상반신과 다르게 뼈밖에 없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모습에 김우진은 멈칫했다.

「불청객 주제에 집주인을 쫓아내려 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보시오?」

볼룬드는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그를 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는 웃을 수 없었다.

‘왜?’

그의 이름이 뭔지, 정체가 무엇인지, 왜 여기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원작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사실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원작이 틀어진 지 오래인데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놈이 적어도 팔강급에 달했다 여겼던 자신을 가볍게 막아섰단 사실이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내가,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따위한테 발목이 붙잡혔다고?”

김우진은 그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유지르에게 도망친 신세지만 그게 짜증은 났을지언정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뒤의 전투에도 마찬가지.

거대한 거인의 정체는 몰랐지만 퀘스트에서도 ‘괴물’이라 표시했으니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통로에 들어왔다.

애초에 퀘스트에서도 유지르와 그 거인을 상잔시키라고 했지 직접 상대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거인의 정체 역시 원작에서 은근히 나스트론드 평야에 무언가 있다, 정도로 떡밥을 뿌렸기에 억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조금 억지일지라도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언데드는 아니었다.

퀘스트에도 따로 나오지 않았다. 원작에 언급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엑스트라 따위가.

“나를 막아선다고? 개나 소나⋯!”

김우진은 분노를 참지 않았다.

어쩌면 열등감일지 모른다. 무려 3년이다.

살해당하는 하이젤을 외면하는 그 순간부터, 김우진은 자신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이 무엇인지 자각했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엑스트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었고, 주위의 칭송을 받고 싶었다. 전생의 쓸모없던 방구석 히키코모리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 탓에 원작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알렌에게 열등감을 품었다.

자신은 원작의 기연과 퀘스트 보상 덕에 겨우 얻은 것들을 그는 간단히 얻은 것으로 보였으니까.

광휘교에 성자로 추대되고, 알렌과 멀어지며 겨우 열등감을 떨쳐 냈다고 생각했지만⋯.

“아.”

그의 생각과 달리 그의 열등감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득하게 가슴 밑바닥에서 썩어갔지. 김우진의 눈이 무지개색으로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분노로 뜨거워졌던 머리가 차갑게 식혀졌다.

제삼자가 보기에 기이할 정도의 빠른 감정변화.

「⋯이미 늦을 대로 늦었군.」

이미 짐작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침식되었다. 볼룬드는 이마를 찌푸리며 그를 응시했다.

김우진은 그런 볼룬드의 생각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 뒤에, 형님이 있지?”

「없다고 해도 믿을 건가?」

“아니, 나는 느껴져. 형님이 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아하, 형님이 ‘내’ 기연을 빼앗는 중이구나? 알렌 형님도 참.”

평탄한 어조로 중얼거리던 김우진은 모로 고개를 기울이며 벽 너머를 응시했다.

“⋯뺏을 게 없어서 감히 내 기연을 빼앗아?”

가느다란 입술이 비틀렸다.

그리고 그의 몸에 각인된 뇌신의 각인이 번쩍이며 거대한 상반신을 드러낸 인공 정령이 등장했다.

“이 방법은 안 쓰려고 했는데.”

김우진은 아쉬운 눈으로 인공 정령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지.”

그는 인공 정령과 연결된 뇌신의 각인에 집중했다.

위험하다.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볼룬드는 이미 반쯤 죽은 몸임에도 경종을 울리는 본능을 무시하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나?」

그가 손을 휘젓자, 어두운 통로의 위로 마법진이 번쩍이며 빛을 토해냈다.

대장장이인 볼룬드는 직접적인 전투력이 약하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수천 년간 이어진 시간 동안 만약을 대비했다. 그 어떤 상대라도, 설령 하늘의 두 초월자가 강림하더라도 잠시간 막아 낼 준비를.

비록 신역을 이뤄내지는 못했으나, 비슷한 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이곳은 그의 마법사 공방이자 수천 년간 직접 설계한 걸작이었으니!

유사 신역.

“글라드스헤임(Glaðsheimr).”

신화의 거인들이 회의를 주관했던 궁전이자, 왕이 직접 머무른 장소.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궁전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대장장이의 손 아래 두 초월자마저 잠시 막아 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볼룬드의 명령 아래, 통로에서 그가 새긴 수없이 많은 마법이 끝없이 토해졌다.

그러나.

“⋯정령 포식.”

이번에는 김우진이 한 발자국 빨랐다.

인공 정령이 거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주인을 거스를 수 없는 노릇. 인공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정령계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인공 정령은 잠시간의 반항이 무색하게 율리우스의 몸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참했는지 하이엘프의 혈통을 타고난 볼룬드조차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뒤늦게 통로에서 수백, 수천의 마법이 김우진을 덮쳤다. 그러나 수많은 종류의 마법 폭격 사이로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긋이.

한층 느려진 시간 속에서, 기이하게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귓가에 박혔다.

“아깝네.”

김우진은 작게 속삭였다.

본래는 며칠 전 얻은 이름 없는 검집에 몇 년 강화시키고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안타까움도 잠시, 몸을 채우는 충만한 감각에 그는 곧장 아쉬움을 뒤로했다. 이 힘이라면 강화된 인공 정령을 ‘따위’로 만들 기연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율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파지직-

시선을 향한 것만으로 눈에서 뇌전이 튀었다.

그리고 그를 덮쳤던 모든 마법이 뇌전의 폭풍에 밀려 사라졌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볼룬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끝이 가까워졌다지만 벌써 이 정도 성장세라고?

‘미친 초월자 놈들.’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로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운명을 희롱했을까.

이렇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자행했을까. 저게 정상적인 사람인가? 볼룬드의 눈에 율리우스는 이미 비틀리고 비틀려 어디서부터 손댈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고대 제국 시대의 대적자인 마왕보다, 그 전의 다른 대적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망가졌다.

그만큼 초월자들도 급해졌다는 뜻이겠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겠군.’

아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빨리 끝이 찾아올지 모르겠다.

볼룬드는 생각을 미뤄두며 손을 휘저었다. 비록 그가 안타까운 희생자나 꼭두각시에 불과한들 이대로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있어 공주님과 그의 동반자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

볼룬드는 망설이지 않고 손끝을 튕겼다.

딱-

「아무래도 대접이 조금 부족했나 보오. 걱정하지 마시오. 이번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을 테니.

그가 전력으로 유사 신역, 글라드스헤임을 발동시켰다. 나스트론드 평야 전역에서 마나가 궁전을 향해 모여들었다. 곧이어 수백, 수천의 마법이 어두운 지하를 총천연색으로 밝혔다.

율리우스는 피식 웃으며 같잖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A급 특성 - 아스트라(अस्त्र)]

[A급 특성 - 아스트라페(αστραπή)]

[A급 특성 - 뮬니르(Mjǫllnir)]

신화 속 이름을 딴 여러 무기가 조금의 시차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 쉬는 공기마저 뇌전이 섞인 가운데, 뇌신화 스킬이 패시브로 발동하며 율리우스의 몸을 전깃불로 물들였다.

“그래? 그럼.”

그가 할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죽어.”

* * *

“많은 것이 궁금할 걸세. 하지만 시간이 없으⋯.”

알렌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던 이름 없는 자, 노네임드의 몸이 멈췄다. 그는 허공 한구석을 바라보더니 짧게 중얼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부족하겠어.”

“⋯바깥에 무슨 일이 생겼군.”

알렌은 그의 한마디만으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짐작했다.

지혜의 샘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 이곳으로 달려오는 율리우스였다. 필시 그와 관련된 문제일터. 아니면 볼토른과 관련된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알렌은 이 일이 율리우스와 관련돼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증은 없다.

그저 감에 불과할 뿐.

허나⋯, 세상에서 제일 율리우스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알렌이었기에 오히려 물증 하나 없음에도 율리우스가 벌인 일이라 확신했다.

그는 언제나 예상외의 일을 일으켰다.

이상할 정도로 지나친 행운, 세계의 가호를 받는다고 느껴질 정도의 우연 혹은 운명이라 불러야 할 도움이 늘 율리우스를 따라다녔으니.

검은 신과 하얀 신과 함께 하는 한, 그를 다른 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으리라.

그러나 작은 의문도 들었다.

‘율리우스가 그렇게 강해졌나?’

겨뤄보지는 않았으나 볼룬드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느꼈다.

그의 실력이면 율리우스를 죽이는 거면 몰라도 발목을 붙잡기엔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알렌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역시 검은 신과 하얀 신의 가호를 잃어 정체된 그와 달리 율리우스는 정체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보였으니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디까지 성장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거인의 힘과 용의 노심 그리고 용의 감각을 비롯한 운명 마법까지 있기에 그리 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만일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알렌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의 문답을 할 시간은 있겠지?”

율리우스가 강해졌다고? 그래서, 그게 그리 큰 변수가 되는가?

‘아니지.’

이미 지혜의 샘물은 알렌이 마셨다. 이미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샘물을 빼앗길 걱정은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두 초월자 역시 어떤 수를 써서 지혜의 샘을 율리우스에게 사용하게 만들 수도 있으나⋯.

‘글쎄.’

지금의 알렌은 물론, 팔강보다 한층 더 강한 볼토른마저 눈 한 짝을 바쳐 겨우 준비한 기회다. 샘을 관리했다는 샘 지기 역시 흙으로 돌아간 것을 두 눈으로 보았고.

검은 신이나 하얀 신이라고 해도 지혜의 샘을 쉽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다 볼룬드 역시 두 초월자의 눈을 피해 수천 년을 숨어 반격을 준비한 존재.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손이 닿지 않는 것까지 모두 신경 쓸 필요 없다.’

진정으로 운명을 농락하고 조정하는 두 초월자에 비해 어떤 준비를 한다고 한들 알렌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떤 수를 선보이든 간에 대응하는 것.

김우진이 이곳으로 온다고?

시간이 적다면 그 안에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으면 그만.

그 때문에 당황하거나 동요할 시기는 지났다.

이미, 3년 전에.

그러니⋯.

“시간이 없으니 제일 중요한 걸 묻지.”

알렌은 꾸며낸 여유가 아닌, 준비된 자의 여유를 선보이며 저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름 없는 자와 눈을 마주쳤다.

“잿빛 끝, 회색 재앙은 무엇을 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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