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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97화 (197/212)

제197화

“⋯⋯⋯⋯!”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

“⋯⋯⋯⋯⋯⋯.”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작았다.

알렌은 부유하는 의식 가운데서 눈을 떴다.

꿈이군.

이런 감각이 익숙하지는 않았으나 낯선 것만도 아니었다. 이렇게 꿈을 꾸는 것도 오랜만이다. 특히 마법사는 성장할수록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알렌 자신도 인간이다. 그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꿈을 꿨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꿈의 이유라면⋯ 계획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압박감일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렌 역시 모두 알지 못하기에.

“⋯⋯⋯⋯?”

“⋯⋯! ⋯⋯⋯⋯!!”

나스트론드 평야에서는 세간에서 말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마주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베스틀라와 관련되어 있는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가령⋯, 그녀가 숨긴 과거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

“⋯⋯. ⋯⋯⋯⋯⋯.”

“⋯⋯⋯⋯⋯.”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에도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속삭이는 듯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어떤 말을 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고, 그저 가까운 듯 멀게 들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렌은 문득 정신이 갈수록 명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곧이어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 ⋯⋯⋯니다!”

그렇게 꿈의 끝이 다가오자, 목소리가 조금은 알아듣게 변했다.

“저⋯! ⋯⋯⋯⋯⋯.”

목소리는 갈수록 명확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몇 개의 단어만 들리던 것이, 정신이 수면으로 부상할수록 뚜렷하게 들려왔다.

“⋯⋯⋯란 말입니다.”

그렇게 의식을 차리기 직전, 완전한 한 마디가 들렸다.

“저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맞서 싸우겠습니다!”

분노로 물든⋯.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 * *

“저희가 모셔다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 앞은 저희의 실력으로 각자의 목숨조차 챙기기 버거우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알렉시우스는 말하는 와중에도 주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로 충분하다.”

알렌도 이것 이상을 원하지는 않았다.

직접 평원을 탐사한 결과를 확인했고, 알렉시우스에게 예언⋯ 비스무리한 것까지 들었다.

자신과 저들은 일종의 주고받는 관계.

그들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자신은 차후에 그들이 자신의 영지 근처에 자리 잡을 때 편의를 봐주는 것.

그러니 이 이상 요구하는 건 옳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겪은 일은 새어 나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돌아오실 때까지는 계속 기다릴 테니 원하는 것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몸을 돌려 나스트론드 평야의 외곽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고 하얀 옷을 입은 부족원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혼자 움직이는 것도 베스틀라를 얻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얕은 감상에서 빠져나온 그는 돌연 인상을 찡그렸다.

악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시체의 사취가 바람에 섞여 흘러왔다.

그 바람을 맞고 있자면 죽은 이가 내뱉은 입김을 맞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독했다.

하지만, 고약한 냄새와는 다르게 언데드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언데드가 완전히 가득 채우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언데드는 몇 마리만이 평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언데드를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고 했었나?”

그는 아칸더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칸더스는 알렌에게 나스트론드 평야는 세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공자님, 보통 세간에서 도는 소문처럼 언데드가 끝없이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땅은 오염돼 있으나 간간이 언데드를 마주치는 외곽.

종족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언데드가 득실거리는 평야 내부.

그리고 궁전이 발견된 중앙 지역.

이렇게 크게 세 곳으로 나누어진다.

‘그렇게 언데드가 가득하다면 지옥이나 마찬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소문과는 다르다는 말이군.’

‘⋯다르다기보다는, 겉만 봤다고 해야겠지요.’

나스트론드 평야가 유명한 이유는, 대륙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유형의 마경이라는 것도 있으나 평야 내부 언데드들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배되지 않습니다. 에스테도르의 술사들이 이곳을 건드리지 않는 것도 그 탓입니다.’

정확히는,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말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나스트론드 평야의 언데드들은 지배되지 않는다.

어떤 실력의 사령 술사든, 평야 내부에서 되살아난 언데드를 지배할 수 없었다.

그건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나스트론드 평야의 비밀 중 하나였다.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 시체든, 겁 없이 탐험하다 죽은 이들이든 이 지역 내부에서 죽은 이들은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들은 내부의 다른 언데드들과 끝없이 전부를 벌인다.

이로 물어뜯으며, 몸에 남은 기술들을 휘둘러 가며 그렇게, 형체 없는 육편으로 변할 때까지.

아니, 그렇게 변해 백골의 스켈레톤이 되어서도 계속.

부활하고, 또 부활하며 끝없는 전투를 이어 나간다.

그렇기에 나스트론드 평야는 시체의 해안, 끝나지 않는 전쟁을 벌이는 지옥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닐 텐데?’

‘예, 제가 이곳에 언데드를 지배하는 왕이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알렌은 상념에서 깨어나 손끝을 튕겼다.

“캬아아아아악!”

별다른 수식을 짤 필요조차 없는 조무래기.

파앙-

충격파가 언데드의 몸을 터트리며 뼈 무더기를 흩뿌렸다. 그러나 쓰러트렸다는 생각도 잠시, 바닥에 널브러진 뼛조각은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일 오래된 마경이라⋯.”

대륙을 가로지르는 갈슈딘 대사막보다도 오래전에 생겼으며, 그건 고대 제국 시대를 넘어 용과 거인의 시대까지 거슬러 간다.

이곳도 한때 신화시대 유적 소동과 얽혀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제일 오래된 마경이라는 것 역시 그때 밝혀진 사실이다.

유감스럽게도 유적 소동은 금방 종식되었기에 그 이상 밝혀진 사실은 없었지만. 그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무언가 정보가 더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아니, 그러면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없었겠지.’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게 알려졌다면 자신의 행적에 꼬리가 붙었을 테니.

사람의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서 은밀히 행동하기에도 쉽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니⋯.”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의 행방에 의문을 갖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

알렌은 살점이 묻은 검을 털어 냈다.

이제 반나절이면 외곽을 지나 내부로 들어간다.

그의 몸이 그림자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알렌이 향하는 방향의 끝에, 점처럼 작게 보이는 도시가 하나 보였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고대 거인들의 도시가.

* * *

갸오-

몇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아니 조금은 살이 쪄 통통해진 동동이의 안내에 따라 김우진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광휘교 사제들과 함께 외곽의 지역 일부를 정화하던 중 잠시 볼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슬쩍 빠져나왔다.

그들도 자신과 함께 지내며 익숙해졌는지 잠시 사라져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처음 합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연을 숨기기 위해 온갖 변명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스로 준비했던 변명이 무의미하게 한 마디로 일축했다.

‘성자님이라면⋯.’

‘신의 축복이 있는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일 처음 축복을 받으신 분이니.’

그놈의 성자.

신의 추락을 듣고 불신했기에 더욱 부정했던 신의 등장에 열광하는 건가.

하기야 이단과 이교들이 판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반응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광신도의 비율이 조금 높아서 그렇지.

애초에 신성력도 없으면서 사제와 성기사를 자칭하던 이들이 정상일 리는 없지 않은가.

갸오갸오-

동동이는 오랜만의 보물찾기가 신났는지 발을 통통 튕겼다.

“그나저나 진짜 아무것도 없네.”

이러니 자신이 찾으러 올 때까지 아무도 못 찾지.

그들은 신화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유적의 지하에 있었다.

여타 고대 제국의 유적과는 다르게 함정 하나 없이 그저 드넓기만 한 유적은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이제는 거미줄과 먼지만 가득했다.

몇 번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기연 외에 챙길 것이 없어 보이자 신경을 껐다.

고고학적으로 가치를 가진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그걸 언제 신경 썼다고.”

그는 스톰브링거를 뽑아 들었다.

기연은 이 유적, 거대한 검 아래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조금은 부숴도 상관없으리라.

쾅-!

검에 응축된 뇌전이 바닥과 맞닿으며 폭음을 터트렸다.

바닥의 재질은 고대 제국의 것과 다르게 평범한지 그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조각난 바닥에는 그가 찾던 기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기를 잠시, 동동이가 슬쩍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여기라고?”

갸오갸오-

“아니, 조금 더 옆?”

갸오!

동동이를 따라 자세를 조정하기를 잠시, 스톰브링거의 검면으로 다시 뇌전이 모여들었다.

꽈릉-

‘원작에서는 유적이 무너지면서 드러났었지.’

무너‘졌’음에도 무사했던 물건이니 조금 더 출력을 강하게 해도 버틸 것이다.

뇌속성 검기의 최종 진화형.

검을 줄기줄기 맴돌던 뇌전이 강하게 뭉쳐 화살처럼 압축되었다.

[A급 특성 - 아스트라(अस्त्र)]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검이 바닥으로 쏘아졌다.

꽈르릉-

바닥이 터져 나갔다. 흩날리던 돌조각이 잘게 부스러지고, 박살 난 바닥을 중심으로 금이 퍼져 나갔다.

“찾은 것 같⋯.”

끼익-

김우진은 불길하게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중앙에 박혀 있던 검이 쓰러질 듯 휘청이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중간에 멈췄지만, 조금만 강했어도 완전히 쓰러졌으리라.

그렇게 됐다면 유적의 벽도 더 이상 충격을 버티지 못해 쓰러졌을 것이고.

잠시간 긴장을 늦추지 않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오⋯.”

그가 꺼낸 물건은 검집이었다.

검이 없는 검집. 보석과 금은으로 장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검집 자체를 통짜로 깎아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일반 검집보다 훨씬 무거웠지만, 이 물건의 가치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검집.’

원작에는 그렇게 소개되었다.

검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지만, 검집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귀보(貴寶)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령검이나 에고 소드를 위한 물건이지.’

이 검집에 정령이나 령(靈)이 깃든 검을 넣으면 검의 능력이 증폭된다.

거기에 본래라면 어딘가에 갇히는 것에 학을 떼는 정령일지라도 이 검집을 사용한다면 편안함을 느낄 정도.

원작에서는 후반에 용병단 하나가 전쟁을 피해 유적을 뒤적이다 발견했었다.

마침 그 용병단의 단장이 에고 소드의 주인이었기에 금방 능력을 알아냈었고.

“이것만으로도 엄청나지만⋯.”

그보다 더한 가치는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검에 깃든 존재가 영구적으로 성장한다는 것.

용병단의 단장은 이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고는, 술김에 크게 떠벌리고 다녔고 어느 날 검집을 노린 이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후 물건은 떠돌고 돌아서⋯ 하이젤에게 가게 되었고 결국 그의 차지가 된다.

‘하이젤⋯.’

율리우스는 잠시 멈췄던 손을 움직여 얼른 스톰브링거를 검집에 꽂아 넣었다.

검집의 크기는 스톰브링거보다 작았지만, 검 끝을 가져다 대자 빨려들듯이 들어갔다.

하이젤의 일은 더 이상 생각하기 싫었다.

“됐다. 이제 번개의 정령만 검에 집어넣으면 되겠지.”

정령 친화력이 부족해 번개의 정령을 다루는 건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검에 집어넣어 정령검으로 만든다면 스톰브링거의 모조품에 불과한 이것도 원본과 비교해서 엄청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다.

검집도 있겠다, 정령을 검에 넣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겠고.

“그러니 이제 돌아가면⋯.”

돌아가면.

자신은 다시 원작의 대비를 할 것이다.

하이젤이 없으니 마왕을 막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는 계획한 대로 잘 준비했다.

아니, 원작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지.

하지만.

율리우스는 잠시 망설이는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본대는 이제 코앞까지 다가와 몇 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갸오?

동동이가 얼른 가지 않고 뭐 하냐는 듯 그를 돌아봤다. 김우진은 본대가 있는 방향의 정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렌이 향했다는 곳.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신화시대와 관련해서 나온 기연은 자신이 얻은 검집, 이것 하나로 끝이었다.

나스트론드 평야가 고대 제국 시대 전, 용과 거인의 시대부터 있었다고 해도 이미 쓸모없는 쓰레기와 언데드밖에 더 있겠나.

그러나.

“⋯안 되겠다. 동동아 먼저 레이나한테 돌아가.”

마음에 걸렸다.

알렌이, 몇 년간 형으로 봤던 이가 그렇게 헛고생을 자처한다는 것이.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어쩌면 떨쳐 내지 못한, 떨쳐 냈다고 믿은 열등감과 피해망상이 겹친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율리우스는 확인해야 했다.

자신의 자리를.

드디어 가지게 된 ‘주인공’의 자리를 그가 위협하는 것이 아닌지를.

김우진의 몸에 저릿한 뇌전이 감돌았다.

쾅!

그의 몸이 본대와 다른 방향과 멀어졌다.

김우진, 그가 나스트론드 평야의 중심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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