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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96화 (196/212)

제196화

세상에 비슷한 양식의 유적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유적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모두 하나의 원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대 제국.

지금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제국은 분야를 막론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낸 제국이었다. 유적만 보고 판단하더라도 여러 문명이 뒤섞여 보일 정도로.

그렇기에 원하는 양식의 유적을 찾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유적들은 대륙 곳곳에 존재해 왔으며, 대륙인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수백 년 동안 온갖 연구를 해 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유적의 종류를 나누고, 함정과 크기에 대해 서술하며, 이제는 서서히 출토된 유물을 모방하며 따라 하기까지.

그럼에도 모든 비밀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왜 고대 제국에서 유적들을 만들어 놓았는지, 유적 안의 유물 중 몇 가지를 제외하면 왜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초대형 유적이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사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런 대륙에서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유적이 있었다.

고대 제국의 시대보다 더 이전, 용과 거인이 넘쳐나는 신화 시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유적.

지금처럼 수호자와 괴물이 머물고 유물과 잊힌 기술이 가득한 미궁과 같은 유적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의 유적(遺蹟)이라 할 수 있는 장소.

부서진 신전과 거주지 그리고 고분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념물 같은 것이 특징적인 유적은 발견 당시에도 많은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역사적 가치나 사료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고대 제국의 유적처럼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랜 시간 연구한다면 잊힌 고대 종의 의식주나 문화를 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직 고대 제국 시대에 대한 진실도 다 알아내지 못한 실정인데.

거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발굴해 봤자 시간에 스러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물건들 뿐.

신화시대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열정을 지닌 자를 제외하고는 고대 제국 시대의 유적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신화시대의 유적이, 주목된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같은 양식으로 지어져 대륙 곳곳에 발견되는 유적.

그곳에서 신화 시대의 보물을 얻어낸 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곳도 그 유적 중 한 곳이었다.

“버려진 유적을 거점으로 이용한다. 꽤 좋은 선택이군.”

“의견 자체는 아칸더스 님이 먼저 내셨습니다. 저희는 그걸 따른 것에 불과합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며 걸음에 따라 갑각으로 둘러싸인 꼬리가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다.

미니마 부족의 후계자, 알렉시우스.

모험의 도시 카이란에서 인연을 맺어 초대형 유적까지 같이 행동했었던 사이.

오랜만에 만난 그는 거점에 도착한 알렌을 반가운 얼굴로 환영해 주었다.

알렌이 묘하게 익숙한 느낌에 유적을 둘러보자, 그는 거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유적의 내력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최하층에 거대한 검이 꽂힌 지하 형태의 유적.

외관의 모양은 제각각이나 지하의 중앙에 꽂힌 거대한 검 형태의 비석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그런 유적이 서너 곳도 아닌 대륙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문제는 그곳에서 일반 유적에서는 찾기 힘든 귀한 보물도 함께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끄러워졌겠어.”

현재만 해도 새로운 유적이 나타났다고만 하면 그 지역은 한동안 시끄럽게 변한다.

귀족 가문에서 먼저 선점하는 게 아닌 이상 모험가와 용병 가리지 않고 달려드느라 살인은 물론 약탈과 함께 치안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하지.

“알렌 공자님께서는 귀족이시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지요.”

만약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유적에 보물이 있다면 귀족 역시 체면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적의 지하로 내려가며 알렌에게 이야기를 마저 이어갔다.

물론,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뿐만이 아니라.’

그 끝과 후일담마저도.

이 유적은, 알렌이 시끄러운 에고소드와 처음 만난 유적과 닮아있었다.

베스틀라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는 것, 그 이상은 알 수 없었지.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유적만 그럴 뿐, 유적 대부분은 가치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싱겁게 마무리되었지요. 이게 끝입니다.”

탁-

알렉시우스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그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넓은 공동 안에 여러 개의 천막이 쳐 있었다. 알렌의 도착 사실을 전달받은 것 때문인지 제법 분주해 보이기도 했다.

“간혹 일확천금을 노리고 유적에 들어가 보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은 신경도 안 쓰게 되었습니다. 유적의 재질도 평범하니 말입니다. 그 덕에 저희가 이곳에 거점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이고요.”

일반 유적이라 한들 모든 발굴이 끝났다고 그것이 온전한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유적을 이루는 재질 자체도 준팔강 이상이 아니라면 부수기도 힘든 강도인데 그대로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렇기에 대부분은 모든 발굴이 끝난 후 그 지역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귀족의 별장이나 병사의 주둔지, 혹은 관리 거점으로 재활용된다.

당장 라인하르트 영지에도 이렇게 재활용되는 유적이 몇 곳이나 있었다.

“짐은 이 천막에 푸시면 됩니다. 잠시 후에 공자님께 직접 작성한 지도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휴식을 취하신 후에 하시지요. 그럼….”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잠시,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나?”

알렌은 뒤돌아서기 전 입을 열었다. 이 유적의 내력에 관한 것은 그렇게 알아보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알렌도 베스틀라에 관해 조사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이야기였다.

그가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알렌도 조사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를 그는 어떻게 이리 깊게 알고 있을까.

그 궁금증에 그리 묻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십시오. 앞으로 저희가 이웃이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뭐, 그 때문이 아니라도 저희 사이에 질문 하나가 어렵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그는 초대형 미궁을 탐험하던 때를 생각하는 듯 조금 친근감이 묻어나왔다.

“이런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지? 예언이라는 것 때문인가?”

“예, 지금은 알렌 님과 율리우스 님 덕분에 해결한 상황이지만… 그전까지는 별의 곶이 유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적이란 유적은 다 알아봤습니다. 이 유적에 대한 것도 그때 얻은 지식 중 하나입니다.”

혹시 그들이 따른다는 성좌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전혀 관련 없는 답변이 나왔다.

“…그렇군. 고맙다.”

“별말씀을요.”

알렌은 생각을 끝마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천막에 들어가려던 차, 알렉시우스는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저희가 공자님을 돕는 것에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에 알렌에게 말했다.

“예언하니까 떠오른 겁니다. 알렌 님의 도움으로 방랑하는 별들의 예언을 이룬 후, 수십 년 만에 별들께 신언이 내려왔습니다.”

“…신언?”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알렌이 집중하자, 그는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준비한 자들이 머지않아 내려올 것이다.

검은 오래되었으나 하루도 담금질을 거스르지 않았고.

불꽃이 꺼지려들 때마다 새로운 불씨가 나날로 더해지니.

끝없는 시련 속에서 단련되지 않는 자 하나 없다.

어느 검보다 날카롭고, 어느 불보다 뜨거우며, 어느 시련보다 고되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거친, 준비된 자들이 내려올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거친, 준비된 자들이 내려오리니, 그 고난을 피해갈 수 없으리로다.

낮에 인연을 만들지 아니하고, 밤에 객의 사연을 무시하며, 삶에 엮인 숙연을 정리하라.”

생각보다 긴말에 알렌이 생각에 잠기자 알렉시우스는 자신의, 정확히는 족장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족장님께서는 예언을 끝마쳤으니 이제 다시 세상에 관여하지 말고 조용히 은둔하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신을 믿지 않는 시대라 해도, 만약 인간들이 방랑하는 별들께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 말이 정답이라고 증명하듯 광휘교 사태로 중부는 크게 시끄럽게 변하기도 했었지.

“아직 다른 부족원들은 모르는 내용이라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장차 부족을 이어받을 후계자라 알게 된 것이니까요. 어찌 됐든 이것이 저희가 알렌 님의 영지로 이동하게 된 이유입니다.”

점차 신, 광휘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만약 광신도들이 신앙과 관련지어 미니마 부족이나 아라흐니 부족에 관심을 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부족들은 자신의 신앙이 자랑스러웠지만, 다른 이들이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으니.

“저희는 이주를 끝마치고도 조용한 삶을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조용한 삶이라….”

이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겠군.

알렌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고 후계자에게만 알려 준 신언을 공유한 목적은 명확했다. 저희의 처지를 고려해 달라.

알렌이 영지의 주인이지만, 그들은 알렌보다 신의 뜻을 우선시한다.

그의 성정답게 부드럽게 돌려서 하는 요청에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를 끝마치고도 너희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약속하지. 다만, 지금처럼 한 번씩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그 정도로 은혜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알렉시우스는 알렌의 답변에 안도한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그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마부 역시 따로 개인 천막을 내줬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알렌은 잠시 그의 말을 곱씹으며 천막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알렌은 알렉시우스의 앞에서 그들의 해석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그는 그것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하나의 궁금증이 소리 없이 그의 곁으로 떠돌았다.

그가 알려 준 사실은 무척 도움이 되었다.

아니, 예언의 존재나 그들의 도움 덕에 하얀 책과 검은 책에 관한 의심을 빠르게 키울 수 있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

저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대비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때보다 훨씬 나은 대응을 할 수 있게 될 테니.

‘그러나.’

세상에 남아 있는 신은 없다.

대몰락에 하늘의 별은 저물었고, 하얗게 세상을 밝히던 신성력은 한 줌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알렌과 김우진, 마왕과 용사를 주무르는 초월자 둘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미니마 부족과 아라흐니 부족을 다스린다는 두 명의 신적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신을 믿지 않는 시대에 움직임을 보이는가.

방랑하는 별.

항상 그들이 자신들의 성좌를 칭하던 호칭이었다.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생겼다.

부르르-

그러나 그 때문일까, 그는 유적에 들어온 직후부터 매우,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을 보이던 검의 진동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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