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95화 (195/212)
  • 제195화

    율리우스는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앞에 쓰러져 있던 목이 잘린 언데드는 간헐적인 떨림만을 보이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주위로는 신체가 분리된 언데드가 널려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언데드가 출현하는 이곳, 나스트론드 평야의 광경은 이미 몇 번이고 들어왔음에도 그는 질리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의 앞으로 두 명의 사제가 다가왔다.

    순백의 색과 구불거리는 태양의 선을 표현한 문양이 그려진 사제복.

    이곳에서 멀지 않은 광휘교 본단의 사제였다.

    젊은 얼굴의 사제는 율리우스가 보인 업적에 감격한 듯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역시 최초로 축복을 받으신 것이 이해가 가는 광경입니다. 이제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성… 아니 율리우스 님.”

    그의 앞으로 다가온 사제는 옆 사람이 옆구리를 치자 입으로 나오던 말을 집어삼켰다.

    옆에 있던 중년의 사제는 못마땅한 얼굴로 젊은 사제를 보다 애써 웃으며 율리우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 하하. 밖으로 나오다 보니 이렇게 실수를 하게 되는군요. 제가 다시 교육시킬 테니 부디 개의치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태도에 율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년간 그들과 함께 지내본 결과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조용히 있자, 그의 뒤에 있던 레이나가 앞으로 나섰다.

    “자, 이제 남은 일을 처리하러 가세요. 이렇게 있을 시간 없잖아요?”

    그녀의 말에 그들이 물러서자 율리우스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일정은 더 없지?”

    “잠시만요….”

    레이나는 자신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끝일 거예요. 일정은 넉넉하니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이 짓도 참 힘들어.”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김우진은 젊은 사제가 입 밖에 내뱉으려다 말았던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성자.’

    그건 아직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명이었다.

    광휘교의 신도들, 그중에서도 광신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만 알려진 이명.

    이제는 2년이 지나 일반 신도들에게도 퍼지는 모양이었지만 그들이 세운 도시 밖으로 퍼져 나갈 만큼 유명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 명칭을 가진 이유는 명확했다.

    ‘이제 슬슬 연락할 차례인가.’

    아나스타샤 이사장과 거래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정체가 고대 제국의 멸망 때 살아남은 신격의 잔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접촉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녀가 원작에서도 그 정체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도 있고….

    ‘이사장은 경계심이 크지.’

    행동하는 것에 극도로 신중을 기울이는 성격인 탓도 있었다.

    외부에 보이는 행동도 기껏해야 마리아를 후원하는 정도?

    그 외에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다. 그녀의 정체 역시 원작의 끝물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신뢰를 쌓으며, 마왕 토벌이 본격화 된 후에 접촉하려 했다.

    대충 그 기간을 5년으로 넉넉히 잡았을 정도로.

    그러나, 2년 전 상황이 변했다.

    ‘마리아의 실종.’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김우진 역시 알 수 없었다. 혹시 알렌 형님이 데려갔나 싶어 조사해 보기도 했지만, 전혀 무관하다는 결과만 나왔을 뿐, 어디로 향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실종 때문인지, 원작의 극 후반부에서나 등장했을 광휘교의 발호는 지나치게 빨라졌고 상황도 달라졌다.

    본래 원작과 달리 자신에게 먼저 접촉해올 정도로.

    “크흠, 내가 잘났긴 하지.”

    “네? 공자님,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야.”

    아나스타샤는 외부에서 젊은 영웅으로 칭송받는 자신에게 지원을 대가로 광휘교가 중부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게 돕기를 바랐다.

    그 대가로 그는 영구적인 축복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의 보고에서 괜찮은 물건을 정당한 절차로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하는 일도 그 거래의 연장선이었다.

    “레이나, 정화까지 얼마나 걸린 데?”

    “음… 아마 4, 5일은 있어야 이 땅의 사기를 지울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얼마 안 남았지?”

    “네. 영지를 이 정도로 넓혔으니 광휘교 쪽도 만족하겠죠.”

    광휘교의 세력 확장.

    광휘교가 세운 도시가 여러 세력과 지형의 중심에 위치한 것은 좋았지만. 세력 확장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아카데미 쪽으로 확장하기에는 아카데미와의 관계가 들킬 수 있고, 미켈란트 산맥이나 동부로 넓히기에는 그곳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세력들의 눈치가 보인다.

    아무리 광휘교가 신흥 세력치고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남부를 향하는 길목을 막는 마경, 나스트론드 평야의 개척.

    언데드가 우글거리는 마경이지만 그곳의 개척이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단지 끔찍하게 힘들 뿐이지.

    마경을 개척하는 건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정도로 힘들지만, 신성력이 있다면 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신성력은 그 자체만으로 삿된 것을 배척하기에.

    ‘일석이조나 마찬가지지.’

    현재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마경의 정화를 외부에 선보임과 동시에 광휘교의 영토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빙의자라고 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내가 말한 장소까지는 아직이지?”

    “아, 아! 거기. 제가 알아보니까 이틀 정도만 더 가면 될 거예요.”

    원작에 나왔던 기연.

    나스트론드 평야 안에 있어 언젠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광휘교의 요청을 받아서 간다면 업적이 한 줄 더 추가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 공자님. 그리고 아까 재밌는 소식 하나를 들었어요.”

    “재밌는 소식?”

    그는 이제 이틀 후면 도착할 거대한 검이 박힌 유적에 대해 생각하던 중 고개를 돌렸다.

    “알렌 공자님이 세운 도시에 대해서는 아시죠?”

    “…어, 알지.”

    비다르.

    자신이 세운 현대 도시와 마찬가지로 마법과 공학이 섞인 것이 특징인 도시였다.

    처음에 자신의 도시가 더 우월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비다르로 향했다. 하지만 계획 도시 뺨칠 정도로 정돈된 모습에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했다.

    “거기서 나스트론드 평야를 탐사할 모험가를 모집했었나 봐요.”

    “모험가를?”

    “네. 저희 쪽 개척단에 자원한 모험가 중 하나가 나스트론드 평야 탐험 경험이 있다며 설명하더라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었다. 비다르 역시 영지를 개척하기가 마땅치 않으니 그곳으로 눈을 돌리는 거겠지.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그녀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깊은 곳까지 탐사할 사람을 모집했다더라고요.”

    “…깊은 곳이라. 거기는 괴물밖에 없을 텐데?”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그가 나스트론드 평야의 깊은 곳까지 가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 이미 몇천 년이나 흘러서 제대로 된 유물도 없고, 원작에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광휘교를 따라가 얻을 기연, 그것 빼고는 얻을 것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아, 비슷한 고대유적은 있으려나.’

    그가 향하는 기연이 있는 곳과 비슷한 고대유적이 나스트론드 평야를 넘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들었다.

    원작에서도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피라미드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상징적인 건축물이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기연이 나오는 장소는 그가 알기로 자신이 찾아가는 장소뿐이었고.

    그는 신경을 껐다.

    “뭐, 알아서 하겠지. 꽤나 헛수고를 들이겠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그도 모르는 희미한 비웃음이 새겨졌다. 레이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김우진은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알렌이 아카데미를 떠나고 3년.

    그는 자신이 이렇게 노력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다.

    인재를 모집하고, 기연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율리우스 님! 이제 식사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어서 어십시오!”

    “율리우스 님이 먼저 드시지 않으면 아무도 식사할 사람이 없습니다. 빨리 오세요!”

    그 결과가 이것이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칭송과 호의적인 여론.

    어디를 가든 젊은 영웅이라 치켜세워 주며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는, 알렌에 관한 열등감을 지워내는 데 성공했다.

    성공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 모습을 복잡한 얼굴로 지켜보는 여기사가 한 명 있었다.

    * * *

    탁- 타다닥-

    불티가 화려하게 날아오르다 바닥으로 떨어져 식어 갔다.

    모닥불에서 탈출하려던 불티의 마지막에 다른 불티들도 겁먹을 만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그 뒤를 이어 잠시간 하늘을 날았다.

    그 광경은 사람의 넋을 잃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알렌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카를로스 카터.”

    “…….”

    “카를로스 카터?”

    “예? 예!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알렌은 뒤늦게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깨달은 듯 허둥지둥 자세를 바로잡은 그를 보았다.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불안하나?”

    “아, 아닙니다!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습니다.”

    “옛날 생각이라…. 그래, 젊었을 때 자주 밖으로 나돌았다고 그랬지.”

    “…자랑할 만큼의 과거는 아니지만…. 예, 그랬지요.”

    알렌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도 않지. 그 덕분에 기사인 딸을 얻지 않았나?”

    그 말에 그는 자랑스러운 딸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는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본래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걸 믿고 지원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

    아무리 기사단장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봤다고 해도 그걸 믿고 지원하기란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방계라고는 해도 귀족의 신분으로 가득 찬 가문의 기사단으로 보내기에는.

    그 말에 그는 결국 부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예, 제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는, 현재 율리우스 아래로 들어간 카밀라 카터의 아버지였다.

    알렌은 영지를 받고 라인하르트 영지를 나오던 때, 가이엘에게 부탁해 마부로 쓰고자 한다며 그를 데려올 수 있었다.

    어머니가 예비 집사를 포함하여 직접 교육한 하녀들까지 보내주었기에 의심 없이 데려올 수 있었지.

    그가 진행시킬 계획에서 그가 혹시라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동생과 같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재능이 아닌가. 그 정도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그는 그 말에 무언가 눈치챈 듯 살짝 떨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죄송하지만 공자님. 제, 제 딸이라고 해도 제가 섬길 이를 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만약 공자님께서 제 딸을 가신으로 들이는 것을 원하신다고 해도, 이는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아니다.”

    알렌은 그의 걱정을 딱 잘라 끊었다.

    “단지, 그녀의 성정이 훌륭하다고 들어서 말일세. 행동만 보면, 정말 기사도에 어울리지 않나. 내 말이 틀렸나?”

    “……예, 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동화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그렇게 자라나고 말았습죠.”

    “그래, 그렇지.”

    그녀는 악의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약자를 보호하려 하며, 욕심보다 선의를 우선시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더 옳은 대의를.

    “그러니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 일은 없을 거네.”

    그녀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찾아온다면 모를까.

    알렌은 열매가 무르익어 떨어지기를 고대하며 미소를 지었다.

    율리우스, 김우진에 대한 공작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타닥-

    타오르던 모닥불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품든 짧은 자유를 만끽하며 생을 끝마쳤다.

    깊은 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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