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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89화 (189/212)

189화

-졸업을 축하합니다!

아카데미 내부의 강당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모여 이번 연도의 졸업식을 참관했다. 입학식은 반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졸업식은 일 년에 한 번씩 열린다.

4학년의 교육 과정은 1, 2학년 때처럼 이론과 실습을 적절히 섞은 것이 아닌 철저한 성과제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이론과 실전을 토대로 아카데미에서 내준 여러 개의 졸업 과제 중 하나를 완료해야 한다.

실전이나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발명품을 개발해도 되고.

마법에 대한 새로운 논문을 제출해도 된다.

그 외에도 엘릭서를 비롯한 고위 회복 포션을 만들거나, 간단하게 괴물을 죽이는 방법도 있다.

‘비록 마지막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무력을 증명하는 방법은 대륙을 돌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까딱 잘못했다간 졸업 시기가 미뤄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을 수밖에, 프란시스카는 졸업이 미뤄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제를 달성하고도 반년이나 시간이 있어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

반년의 시간 때문에 졸업장을 안 받는 것도 우습기도 했고.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돌아봤다.

3년이나 썼던 기숙사 방은 이제 정겨울 정도였다. 앞으로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겠지. 이미 짐 대부분은 반년 전에 집으로 보내 둔 지 오래되었다.

그녀는 남은 짐마저 깔끔하게 아공간에 집어넣고 기숙사를 나섰다.

멀리서 울려 퍼지는 졸업식의 웅성거림을 흘리며 엘피스의 정문으로 향하니 잿빛 머리 위로 쫑긋거리는 삼각형의 귀가 보였다.

이제는 익숙한 소녀의 모습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일리아나.”

“아, 왔어요? 조금 늦었네요?”

일리아나는 직접 설계한 시계를 슬쩍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프란시스카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만나러 오는 사람이 오죽 많아야지.”

“졸업식은요. 안 가게요?”

“거기를 왜 가. 어차피 빠질 사람은 다 빠지고 만날 사람은 만날 텐데?”

졸업을 축하하는 졸업식에도 나름 의미가 있었지만, 그 후에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졸업 연회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졸업 후 거취를 정해놓은 학생들은 물론, 그렇지 못한 소수의 학생이 아카데미 밖에서는 더는 보기 힘들 인맥을 마지막으로 쌓을 수 있는 연회였기 때문이다.

허나 프란시스카는 그런 것에 일절 관심도 없었다.

“너도 안 갔잖아. 우리는 3년 전부터 갈 곳을 정해놨는데 뭘.”

“하긴, 그렇죠.”

일리아나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개조한 마차의 문을 열었다. 고동색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자, 타요! 이번에 개조한 건 저번처럼 사고가 나지는 않을 거예요!”

프란시스카는 그녀와 어울려주는 일이 많았기에 발명품이랍시고 그녀가 내놓는 물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그러나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법.

‘…여차하면 탈출할 수는 있으니까.’

지금 그녀는 비밀로 하고 있다지만 7위계에 도달했다.

아직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까운 폭발에서 몸을 지키는 일쯤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행히 그녀가 개조한 마차에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다.

그들은 며칠간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대사막을 가로질렀다.

마차를 끄는 것 하나 없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마차, 말이 없어 마차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것을 프란시스카는 신기한 얼굴로 바라봤다.

3년 전과 달리 이런 마차의 모습은 흔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면 제일 중요한 건 결국 보급과 운송이다.

피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나 동물로 끄는 마차는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하기에 부적합했기에 그를 대체할 여러 가지 운송 수단이 나왔다.

쉴 필요 없는 골렘으로 이끌거나, 마법으로 마차 안의 공간을 넓히거나, 소수지만 거대한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에서 차라리 정령을 사용해 보자는 것까지.

많은 의견과 발명품이 짧은 기간에 나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당장 말과 소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아카데미는 여러 세력의 압박과 비상시라는 점을 들어 철마의 설계도를 팔아넘겼다.

지금도 엘프를 제외한 각 세력에서는 철로를 건설하느라 바쁠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3년 만이지?”

“네. 마탑 쪽을 통해 라인하르트 영지처럼 빠르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카데미와 마탑 도시를 제외한 다른 곳에는 포탈이 없다.

아카데미와 마탑 사이에 설치한 포탈은 유지비가 엄청날뿐더러 과거의 유물을 복구한 것에 가까웠기에 새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서쪽의 엘프와 왕국들 그리고 수인 연합에서 포탑을 이용할 경우에는 전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지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일리아나는 보는 눈이 없음에도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녀가 자세한 일은 언급하기 꺼려진다는 듯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란시스카가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그녀 역시 당사자였으니.

아카데미가 습격당하고 만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망했다.

거기다 하이젤과 마리아를 비롯한 아카데미에 남았던 유망주들도 행방불명 되거나 목숨을 달리했고, 교정을 비롯한 도시의 전 지역의 건물들 또한 무너지거나 피해를 봤지.

그들은 알렌이 아카데미를 떠난 이유도 복합적인 이유 탓이라고 봤다.

“율리우스의 명성이 그렇게 높아질 줄 몰랐지.”

“아카데미에서도 겉으로 띄워 줄 영웅이 필요했으니, 이해관계가 일치한 거죠.”

대부분의 학생이 지원군에 참가한 가운데 남아 있는 학생 중 율리우스만 한 실력자가 어디 흔하겠는가.

거기다 팔강과 함께 아카데미를 습격한 원흉 중 하나를 죽이고 많은 이들을 구했으니 명분도 충분했다.

실제로 그 이후에도 율리우스는 영웅적 행보를 보여 주겠다는 듯 각지의 괴물을 죽이며 에스테도르의 음모를 파쇄하는 듯 다양한 행보를 보였다.

프란시스카는 어차피 지나간 이야기를 더 해서 뭐하겠냐는 듯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율리우스 하니까 그런데… 광휘교(光輝敎)라고 알아요?”

“아, 율리우스가 협력한다는 종교?”

“네.”

광휘교는 2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난 신흥 세력이다. 중부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새로운 종교.

보통 수많은 이교가 나타났다 망하는 만큼 종교가 생겨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저희는 진짜 여신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수백 년 전 대몰락 이후로 신전은 몰락한 지 오래였다.

모든 성기사와 사제가 한순간에 신성력을 잃었고, 자체적으로 신성력을 머금은 성수와 성물이 아니면 신의 존재를 실감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진짜 신성력을 사용했다는 것에 있었다.

심지어 광휘교는 자체적으로 율리우스에게 세례를 해 주겠다 접근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제한임에도 그는 수락했고, 정말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율리우스가 세례로 얻은 축복을 널리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신성력이 있다는 것과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광휘교는 폭발적으로 그 세를 넓혔다. 대륙 각지에서 사제와 성기사를 칭하던 이들이 몰려들며 중부는 그 어느 때보다 혼잡스럽게 변했다.

“으… 그때 아카데미만 나가면 진짜 온갖 놈들이 넘쳐났었죠.”

일리아나는 그때의 광경을 상기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실제 신의 존재는 지푸라기나마 이교를 믿고 있던 이들 역시 끌어들이면서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파도를 이루어냈다.

힘없는 일반인들의 등장에 갈슈딘 사막의 괴물들이 몰려들면서 2차 피해가 발생했고.

결국, 수많은 이들의 항의에 그들은 남쪽의 중간, 남부를 가로막는 대마경 나스트론드 평야의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취지는 마경의 한 축을 틀어막겠다는 거지만….”

“의도가 뻔하죠.”

프란시스카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영원한 전장, 언데드의 천국으로 불리는 나스트론드 평야는 그곳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안전하다.

북쪽으로는 아카데미, 남쪽으로는 나스트론드 평야를 두고 서쪽에 미켈란트 산맥.

사실상 동쪽만 막아 낸다면 지금처럼 혼란한 가운데 최적의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몰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시를 세운 것도 그렇다.

그만한 주목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몰려들 터.

그건 대륙의 혼란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만한 관심이라면 대몰락 전의 성세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한 세력을 이룰 정도는 성장하겠지.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괜한 게 아니었다.

“…공자님의 영지가 동쪽에 있었죠?”

“아마도.”

알렌 라인하르트가 어머니에게 수여 받은 영지는, 새로 세워진 광휘교 본진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듣기로는 동부 루피너스 쪽에 더 가깝다고 하지만, 나스트론드 평야의 끝자락에 걸쳐있으니 이웃이라 봐도 되겠지.”

“…옛날부터 광신도 만큼 성가신 게 없다는데,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일리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둘 중 그 누구도 그것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 방향 중 한 곳만 막으면 된다는 말은, 그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

프란시스카는 괜히 불길한 예감을 지워 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녀는 품에 있는 종이의 감촉을 느꼈다. 알렌이 아카데미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밀히 그녀에게 시킨 일이 있었다.

‘이 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원하는 보상을 해 준다고 했지.’

그녀는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3년간의 탐문 끝에 얼마간의 성과를 얻어냈다.

“아, 맞아. 그리고 짐승왕 님은 여전히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어?”

“…네.”

일리아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짐승왕 가이온은 아카데미를 떠난 직후 찾을 것이 있다며 사라졌다. 몇 달에 한 번씩 연락을 보내오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녀로서 걱정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곧 돌아오시겠지. 안 그래?”

“하아, 네. 다른 삼촌분들도 다들 걱정하시니까요.”

“삼촌분들이라….”

프란시스카는 새삼스럽게 일리아나가 엄청난 출신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녀가 말하는 삼촌들은 수인 연합의 중추인 열두 종족의 왕을 의미했다.

짐승왕의 원래 부족은 원래 그곳 출신이 아니었지만, 실력 하나만으로 그들의 인정을 받고 그녀조차 그들을 삼촌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

“언니도 마찬가지죠?”

“…응, 그래.”

프란시스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도 얼른 돌아오셔야 할 텐데.’

프린달, 라인하르트 영지의 영지 마법사인 그는 몇 년 전 그 자리를 그만두고 동쪽에 할 일이 있다며 떠나간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일리아나는 기대감에 부푼 마음을 안고 있었다.

‘일찍 도착하면 좋겠다.’

알렌은 그녀가 도착하면 보여 줄 엄청난 물품에 기대를 품고 있으라 편지에 직접 언급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평범한 것은 아닐 터.

그렇게 한동안 마차가 각자의 이유로 조용해지던 그때, 창문의 끝에 점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오.”

그녀는 일리아나의 탄성 어린 신음에 상념을 끊어 냈다.

삼각형의 귀가 쫑긋거리며 그녀가 눈을 빛냈다. 그녀가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프란시스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마차를 타고 이동한 지 여드레가 지나 그들은 새 보금자리가 될 장소에 도착했다.

알렌이 새로 부여받은 영지이자 하나밖에 없는 도시.

비다르(Viðarr)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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