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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80화 (180/212)

180화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갈까.’

생산적이지 않지만, 시간을 때우기에는 적절한 의문.

하이젤은 저승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가 마왕이었을 적, 그는 거들먹거리던 저 천상의 신들보다 강했다.

그렇기에 신전에서 떠들어대는 사후의 천국이 그저 신실한 권속을 뽑기 위한 사탕발림이란 것도 알았고, 악마가 있는 지옥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악마와 계약자 그리고 악마에게 속아 넘어간 인간들이 끌려가는 곳이 지옥의 실체다.

지금에야 신전이 몰락했기에 사후에 무엇이 있는지 떠드는 인간이 줄었지만…, 그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자신에 의해 죽은 수많은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왜 자신은 인간으로 환생을 했지?

그리고.

‘정말로 용사는 없나?’

성검 위에 세워진 아카데미를 구경하고자 찾아갔다.

그런 변명을 괜히 만들어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용사의 후예가 용사의 환생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자신의 환생으로 인해 영혼이 실존한다는 건 증명되었다.

그 의문은 다시, 환생이 있기에 저승이 실재하는 것인가- 하는, 죽은 자들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하이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가끔, 지루할 때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

그러나 지금 다시 그 의문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래, 눈앞에 보이는 시체 때문일 것이다.

저벅-

시야의 끝에 비친 광경을 본 그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마족! 마족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번 일을 꾸민 게 마족인가? 어떻게 이곳을-.”

“지금 가이온 님과 자크니르 님 모두 누군가와 전투를 하고 있네.”

평소라면 당장이라도 반응했을 소리가 섞여 있었을 텐데.

저벅-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대의 모습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아카데미 생도복.

저벅-

바닥에는 제법 신경을 쓴 듯 살짝 말려 들어간 머리끝이 헝클어진 채 퍼져 있고, 그 옆에는 음료수를 담은 컵 두 개가 붉은 피와 섞여 나뒹굴었다.

가까이 가니 얼굴도 보였다.

“…당장, 이사장님께 연락을!”

“아니, 지금 상황을 모르시지 않을….”

저벅-

유감스럽게도, 그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현실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의 그는 꼭두각시였을 때와 달리 그런 행운을 바랄 수 없었으니.

“마족이 나타났다! 당장 죽여라!”

“놈들의 머리 위로 하얀 구름 같은 게 있으니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서 무슨 조치를 취한 것 같….”

현실은 바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없는데….

‘왜.’

믿기지 않을까.

탁-

걸음이 멈췄다.

끈적한 음료수와 시뻘건 피가 그의 발을 적시고 있음에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릴리트가 죽었다.

하이젤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반쯤 뜨인 눈은 그가 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듯한 가슴의 상처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피는 전신을 붉게 물들였다.

바닥에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쓰려 했는지 붉게 번져 있었다.

아쉽게도, 고인 피 웅덩이에 휩쓸려 사라진 모양이다마는.

“인간 놈들을 죽여라! 당장 마왕님을 찾아!”

“…인간 놈들, 우리 마족을 죽이기 위해 이딴 짓을 벌이다니!”

하이젤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툭 내뱉었다.

“그냥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그 소망이 너무 커다란 것이었나?

모처럼 인간으로 태어났다. 용사, 그놈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던 세상이 궁금했고 기왕이면 이 대륙 밖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찾았다! 하이젤 님! 당장, 이곳을 피하셔야…!”

“지금 인간들이 저희를 잡기 위한 함정을 팠….”

그러다 아카데미의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와 봤고, 우연… 아니 이제는 놈들의 의도라 생각되는 릴리트를 만났다.

“마족을 죽여라! 저건… 위장한 마족인가? 생도복을 입고 있는데 왜 머리에….”

“아마 아카데미에 숨어들었던 놈 같은데. 다른 마족들 태도를 보면 저놈이 높은 위치에….”

분명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번 시대의 주인공이라 추정되는 사람이 말했던 정보와 연결되어 있으니 함정이 아니라 생각하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겠지.

하지만….

‘솔직히 상관없었다.’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그녀를 만나리라 생각하지도 못했으니.

주인공의 운명에 조금이나마 엮이게 된 것은 짜증 났지만, 그 대가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더 깊이 엮이지만 않는다면 제법 남는 장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이젤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며 마족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멍청했네.”

놈들은 하이젤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그가 유적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마족들이 갑작스럽게 도시에 나타나고, 그들이 마족인 것을 드러내듯 머리 위로 하얀 구름 같은 것이 그들을 따라다닌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마족들이 모두 우연인 듯 그의 근처로 모여들면서 자신의 정체마저 드러나게 생겼다.

그의 곁에서 인간과 마족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저것도 우연일까?

‘서큐버스가 그 정도도 못 한다면 종족의 수치랍니다.’

그가 픽 웃었다.

“차라리 나오지 말지 그랬어.”

그랬다고 해도 하이젤은 이런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으리라 여겼다.

늦고 빠르고의 차이겠지.

놈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뭐 때문에 환생까지 한 자신에게 이따위 짓을 저지를까.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고 자신이 이성을 잃고 학살이라도 하면, 그 두 명이 여기에 나타나고?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떨어질 듯 매달렸다.

“이제 이유 따위는 상관없지.”

하이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이유를 알아봐야 달라질 건 없었고, 안다고 해서 그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마족들을 죽이면 이번 일이 해결… 커억.”

뚜둑-

하이젤은 그를 향해 달려들던 용병 하나의 목을 꺾었다.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겠네.”

그의 몸 깊숙이 숨겨두었던 마기를 방출했다.

하이젤의 몸을 휘감는 압도적인 양의 마기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인간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까지는, 마족들에게 마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가 실수로 마기를 방출했을 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마족들은 ‘순수한’ 육체의 능력만으로 인간들을 상대했다. 아무리 약한 마족이라고 한들, 한낱 용병이나 생도들이 마족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 봐야 마족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조사단이나 강자들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적어도 주 전력이 빠진 아카데미를 공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리라.

결국, 일이 이렇게 벌어졌으니….

“지금부터.”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

“마기의 사용을 허가한다.”

마족들의 얼굴에 환희와 기쁨이 어렸다.

족쇄를 달고 싸우던 그들은 마기의 제한이 풀리자 순식간에 인간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 끄윽.”

“닥쳐라, 인간.”

수인, 엘프, 인간 할 것 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몸을 뉘었고, 마족들은 그걸로도 모자란 지 열렬히 그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바라는 것이 담긴 눈빛.

하이젤은 픽 웃으며 여전히 바닥을 바라본 채로 낮게 읊조렸다.

“첫 명령이다. 이제부터….”

놈들이 바라는 게 이런 거라면…, 그리 해주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이미 놈들의 계획 안이라면.’

벗어나더라도 뜻밖의 우연이나 불행으로 인해 다시 휘말릴 것이다.

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

그렇다면, 해야지.

“덤벼 오는, 도시의 모든 인간을 죽여라.”

완벽하게.

마족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충동을 터트리듯 그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하이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얼굴로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

묵묵히.

* * *

알렌은 밀레드와 함께 도시를 뛰어다니며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마족들이 나타났다!”

“이번 일은 마족들이 벌인 일이다!”

“…머리 위에 표식이 있는 자는 모두 죽여라!”

평범한 주민처럼 생긴 이들의 머리 위로 작은 구름이 떠다니며 반짝였다.

마치 그들에게 무언가가 있음을 가리키듯이.

다른 이들은 그들을 마족이라 가리키며 무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인간의 모습을 한 마족들이 제 정체를 드러내며 그들에게 맞서 싸웠다.

그건 알렌이 공간을 더듬으며 나아갈수록 소란은 심화되었고, 이제는 마족인 것을 숨기지 않으며 마기까지 사용했다.

그늘진 여왕의 정보로 에스테도르가 배후란 것을 짐작해 낸 그와 다르게 도시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마족이 도시 습격의 배후로 지목되어 있었다.

그 위화감은 그와 같이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후배.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밀레드는 공간을 넘어갈수록 늘어나는 사상자의 모습에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주동자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이에게 거의 다 왔으니 차라리 놈을 해치우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두 명으로 충분할까?”

자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렌은 니드호그와의 전투를 치른 후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붙었다.

신역을 얻기 전까지는 7위계 마법사와 승률이 반반이었다. 그러나 신역을 얻고 베스틀라의 검술까지 일정 궤도에 오르며 7위계 마법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8위계 초기의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

‘팔강이 보통 8위계 후반, 9위계 초기에 닿아있으니….’

팔강보다 한 수 아래.

8위계 중반.

알렌의 실력은 어느덧 그 정도에 속해 있었다.

물론 마법사 한정의 이야기다.

비슷한 경지의 전사라면 알렌의 전투력은 한 단계 더 낮아졌다.

전사에게는 그가 잡아먹을 수 있는 신역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팔강 급의 실력자가 나타난다고 한들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밀레드는?’

또래 중에서는 아카데미 생도답게 5위계 마법사로 무려 프란시스카 양과 비슷한 실력이다.

보통 한 위계마다 몇 년씩 막히는 이들과 다르게 한 두 학년 윗급의 선배와 비슷한 실력자.

허나 니드호그 급 실력자, 아니 그란델 급의 실력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녀가 버틸 수 있나?

알렌이 잠시 생각하던 모습이 그녀에게 다른 의미의 침묵으로 다가왔던 걸까. 그녀는 알렌이 이제 한 번만 더 나아가면 된다는 공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후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녀는 후배보다 약한 실력이라는 것에, 또 그를 혼자 보낸다는 사실에 자괴감 어린 미소를 지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았다.

“어차피 후배가 그렇게 고민할 정도라면 내가 도움이 되지 않다는 말 아니야?”

“그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정에 이끌려 그녀를 데리고 다니다가 진짜 강적을 만나면 그녀까지 신경 써 줄 틈이 없었다.

‘특히, 다음에 만날 상대가 하이젤이라면.’

자신 역시 긴장해야겠지.

그녀는 알렌의 배려에 가볍게 웃으며 등을 짝하고 두드렸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후배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 후배도 신경 써야 겨우 맞설 만한 상대가 그곳에 있다는 거잖아.”

알렌은 뜻밖이라는 듯, 그녀의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곳으로 들어가려는 놈들을 막을게. 후배는 후배의 일을 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군요.”

“아이, 진짜!”

알렌의 농담에 그녀는 확 손을 들어 올렸다가도, 금세 그의 등을 툭 쳐 주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안 다치게 조심해.”

“선배님도요.”

“응.”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녀는 알렌이 말했던 다른 공으로 이동되는 경계선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게 주의하며 뒤돌아섰다.

알렌은 심호흡을 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느릿하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때 베스틀라가 한 마디씩 해 줬는데.’

그녀가 지금 깨어 있었다면… 겁먹었어요? 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려나.

알렌은 시답지 않은 생각을 접어두며 공간을 넘었고….

“…둘 중 하나가 올 것 같더니.”

다른 곳과 달리 홀로 자리한 청년이 그를 맞이했다.

“네가 왔네?”

초대 마왕의 환생, 하이젤 카일루스.

그가 평소에 짓던 경박한 웃음을 내버린 채 그를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하얀 책이 미친 듯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과(와) 이어진 책이 대상을 인지합니다. ■왕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마■와(과) 연관된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

『■■■■과(와) 이어진 책이 마왕을 막아내기를 원합니다!』

『조건 충족!』

『?악의 길로 돌아서려는 마왕을 막아내고 죽이십시오.』

『혹은.』

『?그의 악행을 막고 동료로 끌어들이십시오.』

오랜만에 나타난 하얀 책의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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