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74화 (174/212)

174화

왕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하이젤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으니.

눈을 뜨자마자 괴물을 죽였고.

저항하는 괴물을 모두 죽여 마계를 통일했다.

그 후에 마계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인간계로 향했다.

그 모든 일을 결정하는 그에게 망설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낙관적이었다.

인간계는 마족의 왕이 쳐들어오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없었으니.

그들은 저항하지 못했고, 순조롭게 영역을 넓혔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언제부터일까.

생각해보자면, 그래.

“…힘이 딸리나 봐?”

“마음대로 생각해라.”

용사에게 밀리기 시작했던 날.

성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봤다.

‘왜?’

왜.

‘몇 년이나 전쟁이 지속되는가.’

지금까지의 행동대로라면 인간계를 이미 정복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를 도와준 행운은 감쪽같이 사라지며 전쟁의 승기는 점점 인간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인간들은 전과 다르게 더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왜.

‘자신은 왜 마계에서와 달리 성장하지 않는가.’

마계에서의 자신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어제와 오늘이 달랐고 오늘과 내일이 달랐다.

오랜 시간 살았던 괴물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경험이 거짓이라는 듯 성장하지 않았다.

왜.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는가.’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정말 마족을 위하는 게 맞나?

마족을 위해서라는 명분과 달리 그들에게 진정 관심이 있었는지 더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이미 여기서 끝내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정말로.

‘내가 한 결정이 옳은가?’

마계에서와 달리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도 그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사와의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패배할 게 분명했으니.

그러나 하이젤은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행동은 홀로 결정을 내렸는데, 어디서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마왕님, 피해 현황에 대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의 곁에 물어볼 마족이 없지는 않았다.

릴리트.

모두가 조용히 있는 가운데 혼자 의견을 냈기에 참모 자리에 앉힌 여자.

그는 용사를 상대하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였기에, 대부분의 전투는 그녀가 관리하게끔 했다.

하이젤은 오랜만에 그녀에게 보고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릴리트, 내 행동이 옳은가?”

“성공적으로 적들을 함정에 몰아넣는 데 성공해… 예?”

그녀는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되물었다.

릴리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것을 왜 자신에게 묻는다는 말인가. 그녀는 그가 잘못 물었기를 빌며 못 들은 척했지만….

그는 진지했다.

“내가 요즘 하는 짓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나?”

하이젤은 정말로 궁금한 듯 입을 열었으나, 릴리트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눈을 꾹 감으며 외쳤다.

“…예! 당연히요. 마계에서부터 마왕님의 결정은 단 한 번도 틀리신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가.”

“마왕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셔도, 저희는 뒤에서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트가 저리 말한 이상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

“…닥쳐라.”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용사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하이젤은 숨겨 두었던 무기까지 써야만 겨우 호각을 이루었다.

그 차이는 이제 갈수록 줄어들어, 한 번의 전투를 끝마칠 때마다 며칠을 내리 쉬어야 했다.

결국,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른 그는 다시 릴리트를 불렀다.

“릴리트. 다시 묻겠다. 이번에는 제대로 말하도록 하라.”

다시 그 질문이 날아올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예.”

“내가 하는 행동이 옳은가? 혹여 고쳐야 할 점이나 잘못된 것이 있나?”

“그게….”

그녀는 말을 골랐다.

하이젤의 표정을 봐선 저번처럼 쉽게 넘어갈 수 없을 듯했다. 같은 말을 했다가는 그가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계의 주인이자, 모든 마족의 구심점인 그의 행동을 지적하라고?

그녀는 오래 살고 싶었다.

‘어차피 이번 대답을 회피할 수 없다면.’

몇 번 심사숙고한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먼저 마족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마족이 생활하는 모습을…?”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릴리트는 그가 신경 쓰지 않았던 아니, 아무도 그에게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현재 마족들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마계에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 * *

처음 인간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마족들은 꿈에 부풀었다.

끔찍한 열기와 한기가 휘몰아치고, 독액이 가득한 늪과 살갗을 녹이는 빗물이 흐르는 마계와 다르게 인간계는 풍족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왕이 남은 자원을 긁어모아 인간계로 향한다 했을 때는 불만이 없지 않았으나, 도착한 인간계를 살펴보고는 그의 결정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러나, 대륙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제국.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제국이 먼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했다.

후에는 뒤통수를 노리는 마족과 마물을 먼저 죽여야 했고.

하이젤이 나타난 뒤로부터는 마계의 다양한 세력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풍족한 땅을 얻기 위해 인간들과 싸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은 지나칠 정도로 빨랐어요.”

강력한 육체와 선천적인 능력, 수많은 전투를 거친 마족들을 제국이 막아내기는 무리였다.

연신 그들이 후퇴할 때까지만 해도 인간계 역시 무난하게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지만….

“그들은 교활했지요.”

제국은 마족을 상대할 전술과 무기를 개발하면서도 그들을 약화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마왕 역시 용사를 상대할 때 외에는 움직이지 않았기에 기회였다.

그렇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제국은 저희 마족이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알자, 식량을 노렸어요.”

그것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든 물러서지 않았다.

가까이 있는 숲은 모조리 불태웠고, 식량 창고 하나를 없애기 위해 수백 명을 미끼로 던졌다. 대규모 마법으로 산을 폭격했고, 끊임없이 땅에 저주를 걸었다.

마족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변의 환경이 되돌릴 수 없이 척박해진 후였다.

“그 결과가 바로 이거예요.”

하이젤은 그녀와 함께 모습을 숨기며 도시를 돌아다녔다.

병자들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누워 있었고, 배를 곯은 이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식량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랐고, 병사인 이와 아닌 이의 격차는 더 뚜렷해졌다.

그건 마왕이 전쟁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질서한 혼란으로 모든 이가 고통스러웠던 마계와 다르게, 지금은 병력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만이 고통 받았다.

그건, 서큐버스와 같은 약한 종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인간들을 붙잡아 농사를 시도해 보고 있지만…, 이미 땅의 지력도 상했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이젤은 침묵했다.

그녀가 최대한 말을 돌리려던 것이 이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숨기기도 힘들었다.

출전할 수 있는 병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마왕 같은 초월적인 강함을 가진 것이 아닌 이상 생물은 생리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마족은, 전투로 인해 죽는 것보다 굶주림으로 죽는 이가 더 많아질 지경이 되었다.

“…이곳에 올 때 자원을 탈탈 털었기에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본 마왕의 발걸음이 멈춘 장소는, 병든 마족 하나가 벽에 기댄 곳이었다.

그는 멈추고 싶어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제발, 식량을 조금만 나눠 주십시오.”

그녀는 하이젤의 발치에 매달렸다.

그걸 본 릴리트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지금 그들은 마도구를 통해 모습이 변한 상태였다.

그 탓에 마족은 하이젤을 알아보지 못했다.

릴리트는 급히 앞으로 나섰다.

“무엄하게 무슨 짓이냐! 식량은 시간에 맞춰 정량 배식하고 있으니 그때 얻도록 하라!”

“…저, 저도 그러고 싶지만 받는 족족 그들이 뺏어 갑니다.”

“그건 이분이 신경을 쓸 필요 없….”

“병사였나?”

하이젤이 입을 열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때 자랑스러운 마왕군의 선봉으로서 활약했었습니다.”

마족은 병사였는지 몸에 전투의 상흔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을 후회하나?”

그녀는 과거에 미인이라 불렸을 법했지만, 홀쭉해진 뺨과 수많은 흉터로 인해 그 빛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이렇게 되었지만… 마왕님과 함께했기에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왜 그걸 물어보나 알 수 없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어쩌면 답례로 식량을 내어 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가.”

하이젤은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다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하더라.’

그는 그녀를 보며 어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런 순간에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머리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순간적으로 용사의 모습이 떠올렸다.

조금은 경박하고, 실실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얼굴 예쁘네.”

“……예?”

지금만큼은 쓸모없지 않았다.

“얼굴 예쁘다고.”

“…가, 감사합니다?”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릴리트에게 눈짓했다. 그녀는 그의 의중을 알아챈 듯 소량의 식량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대답을 잘한 보상이다. 다시 빼앗길 수도 있으니 얼른 먹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식량을 삼켰다.

하이젤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몸을 돌렸다.

릴리트가 그의 몇 걸음 뒤로 따라왔다. 그는 그 이후로 조용히 성으로 걸음을 옮기다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네, 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냐 물었다.”

그가 당황한 모습의 릴리트를 돌아보며 답했다.

“마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야 하지?”

* * *

릴리트는 마왕이 변할 거라는 기대감은 없었다.

그는 마계를 통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뒤를 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것을 알린다고 해서 달라질까?

‘…적어도 병사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 정도는 주었으면 하는데.’

그녀의 바람 역시 그가 당장에 닥친 상황을 해결해 주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친 이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선물해 주고 싶을 뿐.

그 이상은 바랄 수 없었다.

그러나 도시를 한 번 돌아본 이후부터.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됐지?”

그는 변하고 있었다.

제국의 기습으로 인해 전투를 보고했을 때도.

“…육천이 죽었지만, 그들의 복수를 위해 오천의 수인을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부상자는 몇 명이지?”

“네? 부상자는, 잠시… 예. 일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들을 확실히 치료해서 그들이 다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라.”

“아, 알겠습니다!”

결국, 남은 식량도 떨어져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었을 때도.

“…아니,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남쪽의 끝에 있는 바다에 잠시 들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생물이 많더군. 식량으로 쓰도록 해라.”

“이만한 양을 모두….”

“내일도 가져올 테니 부족하면 말하도록. 식량으로 인한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중재하라.”

“…다른 이들도 기뻐할 겁니다.”

심지어 도시에서 일어난 갈등과 병사들이 일으킨 사고에 대처할 때도.

“현재 많은 수의 병사가 도시에서 식량으로 인한 부패와 사고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들 모두가 정예이기에 처벌하기 어렵….”

“그들 모두를 죄질에 따라 벌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들 모두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처벌한다면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길 겁니다.”

“이곳에서, 나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서서히.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조금 서툴고, 일을 제멋대로 처리할 때도 있었지만.

“알았나?”

“따르겠습니다.”

그는 분명히 마계에 있을 때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웃고 있지?”

릴리트는 의아해하는 그의 얼굴에 급히 입술을 매만졌다. 어느새 입술의 끝이 올라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어쩌면, 자신마저도.

그녀가 입을 가리며 환하게 웃었다.

만약 그렇게 십 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정말 그들은 인간계에 무사히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영토를 늘리지 않고, 정복한 곳을 지키고.

마족의 힘으로 지력을 회복하며, 이 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생활 방식을 바꾸고.

그렇게 천천히 나갔다면… 그들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쾅-!

“마왕님! 용사가 마족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용사가 드디어 행동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