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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71화 (171/212)

171화

엘리자 루피너스.

알렌과 율리우스의 어머니이자 루피너스 가문의 후계자였던 그녀는 가문의 도움으로 수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영혼과 공간에 관련된 분야에서부터 알렌이 구하지 못했던 지식까지.

그 모든 것을 살펴본 엘리자는 루피너스 가문에서 모은 방대한 지식과 그녀의 뛰어난 머리를 토대로 직접 마법을 시도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를 도출했다.

‘현재 기술력으로 율리우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율리우스의 영혼을 찾는다고 쳐도 그것을 다시 본래의 몸으로 되돌리는 것 역시 어려웠다.

그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알렌이 루피너스 가문에서 봤던 자료들도 모두 그 조사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율리우스는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들이었다.

그런 그의 몸을 어떤 이방인이 강탈해 갔는데 두고 볼 부모가 어디 있다고.

하지만 마법과 사령술, 악마 계약까지.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율리우스를 되돌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모두 부작용이 크고 허황된 방법들만 가득할 뿐.

그렇게 그녀가 옛 친구들과 가문의 힘을 빌려 연구를 진행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인간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하다면.’

신이 일으킨 기적은 어떠한가.

그것도 불가능할까?

그녀의 다음 이야기는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기적 말입니까?”

“그래, 기적. 더러는 신성력이라고 부르지.”

신성력.

작동 원리를 알 수 없고, 대몰락 전에 신전에서 사용하던 힘이며 신을 믿어야 쓸 수 있는 힘.

“현재는 그 누구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지? 그 힘에 관한 견해를 묻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아칸더스와 소네드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렌 님에게 율리우스 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엘리자 님이 말씀하신 방법 같은 건 알렌 공자님밖에 알지 못하십니다.”

그들도 율리우스가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를 되돌릴 방법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엘리자는 괜찮다는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럼 다른 건 어떻니?”

그녀는 제 눈을 천으로 가려 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생각해 보렴. 정령, 마법, 오러. 그 모든 힘은 근원이 있지.”

용의 마법에서 베낀 마법과 용의 피어에서 시작한 오러.

자연적으로 탄생한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과 인위적인 조건과 다른 존재의 힘을 빌리는 주술.

“그렇다면 프라나는 어디서 왔을까.”

“…스스로에 대한 욕망이나 갈망, 염원과 믿음 같은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칸더스의 원론적인 답변에 그녀는 반문했다.

“그럼 신성력은?”

“신성력 역시 방금 말하신 것과 같이 신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 두 개가 믿음을 토대로 한다면, 결국 두 개가 다를 건 뭐니?”

그는 엘리자의 거듭된 질문에 최대한 답변을 하고자 입을 열었다.

“…프라나가 자신과 어떠한 목적에 대한 믿음이라면, 신성력은 어떤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럼 신에 가까운 존재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에 대한 믿음은 신성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칸더스의 대답이 막혔다.

그러나 엘리자의 물음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신앙자가 믿고 있는 것이 살아 있는 생명체거나, 존재하지 않는 허구임에도 신성력이 유지된다면.”

그녀가 묻는 건 아칸더스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신성력은 신이 아닌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아칸더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소네드는 아칸더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대몰락 이후 신성력이 사라진 지 얼마나 되었는가. 밖에서는 간간이 성기사나 사제라고 칭하는 놈들이 돌아다니지만, 결국 사용하는 힘은 마법이나 프라나였다.

그런 신성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칸더스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더니, 확신이 없는 얼굴로 답했다.

“…엘리자 님이 말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프라나와 신성력 모두 인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그래, 맞단다.”

신성력은 인간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한가?

엘리자의 눈이 아칸더스와 소네드를 보았다. 천으로 가려진 그녀의 눈에 다른 것이 비쳤다.

하얀빛.

그들의 몸에서 각자 다른 광채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의 농도는 각자 달랐으나 그것이 신성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엘리자는 최근에 신성력을 연구하면서 특별한 눈을 얻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 때문인지 다른 이를 볼 때면 눈에서 빛이 번쩍였기에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능력은 엘리자가 다루기 힘들 정도로 까다로웠다.

뭐, 적응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는 않겠지만.

“이 설명을 한 이유는 간단하단다. 내 연구에 대한 걸 알렌에게 알리고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란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어떤 것이 필요하십니까.”

그녀의 연구는 저 가설을 끝으로 정체된 상태였다.

저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선행되는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너희가 무엇을 할 필요는 없고…, 그냥 알렌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된단다. 린벨을 잠시 빌리고 싶다고.”

“…린벨을, 예. 일단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는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도님의 힘을 빌리고 싶다고 하렴.”

“…사도님?”

“그냥 그렇게 전하면 알렌은 알아들을 거야.”

아칸더스는 알렌이 숨기고 있는 여러 비밀 중 하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예, 알겠습니다.”

대화가 얼추 다 끝난 것 같아 보이자 아칸더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숲에서 탈출을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화는 다 끝났다.

소네드는 그렇게 생각했고, 아칸더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한 이야기 중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긴장이 풀어졌을 때, 엘리자가 입을 열었다.

“아.”

그들이 나가던 발을 멈추고 돌아보자, 그녀는 방 안의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하늘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 주겠니? 지금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없어서 그렇단다.”

아칸더스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하늘은 맑습니다. 푸른 하늘이 드리워있고 구름 한 점 없군요. 조금 있으면 해가 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그것뿐이니? 다른 건 없고?”

“다른 건… 바람이 차가우니 창문을 여실 때는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엘리자는 그렇게 말하는 아칸더스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더니 미소를 띄며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가델에게 말하면 상단의 지부로 데려다줄 거란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나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창밖의 하늘을 쳐다봤다.

엘리자의 눈에 들어온 하늘은.

-끼익

별빛 하나 없이 어두운 하늘의 아래로.

검은빛과 하얀빛 두 개가 반짝이는 장면이었다.

* * *

“…이걸로 일곱 번째.”

하이젤은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을 유적의 최하층에 그려냈다.

이미 몇 번이고 연습했기에 실수는 없었다. 만약 실수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프시케에서 많은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기에 몇 번 더 실패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한 번에 그려내는 것이 좋았다.

그의 주위로는 박살 난 수호자들과 함정이 즐비했다.

최하층에 자리한 문이란 문은 죄다 박살 난 상태였고, 그 안의 보물 역시 조금 있으면 다른 마족들이 회수하러 올 것이다.

초대형 유적같이 거대한 유적이 아닌 이상 소규모 정도는 홀로 공략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작업을 끝마친 그가 유적을 빠져나오자 그에게 손을 흔드는 인영이 있었다.

“하이젤.”

“율리우스, 너에게 맡긴 건 다 했냐?”

“당연히 했지.”

그에게 다가가던 하이젤은 율리우스의 몸에 느껴진 혈향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유적의 수호자인 생체 병기나 마물, 몬스터 같은 종류의 피가 아니었다. 이건 지겹게도 맡았던 인간의 피 냄새였다.

“…최대한 눈에 띄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죽으면 숨길 필요 없잖아.”

“유적을 공략하는 이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수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생각이 없나?”

하이젤은 율리우스에게 유적의 최하층에 마법진을 설치하라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율리우스는 따로 일을 진행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을 저질렀다.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데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러다 죽을 텐데, 달라질 것도 없잖아.”

하이젤은 잠시 율리우스를 말없이 바라봤다.

‘…이미 물들었군.’

저 상태가 되면 되돌리기는 어렵다. 자신이 용사와 대몰락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친 듯이 싸웠던 것처럼. 한 번 빠져든다면 벗어날 수 없는 저주에 가까웠다.

경험해봤기에 그는 율리우스의 상태를 이해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

그래도 저항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텐데.

하이젤이 율리우스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을 때, 율리우스 역시 그의 눈앞에 떠오른 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작의 결말을 망친 원흉인 릴리트를 살해하라. 제한시간 : 8 : 11 : 10]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죽여야 하나?’ 하지만 죽인다면 원작처럼 하이젤이 폭주할 텐데.

그럼 죽여도 같은 결말만 반복되는 게 아닌가?

[하이젤의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릴리트를 살해하라. 제한시간 : 8 : 11 : 08]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아니 아직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하이젤이 릴리트랑 지낸 지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원작처럼 10년을 넘게 함께 보낸 것도 아니다. 그러니 괜찮을 수도 있다.

‘아니 하지만 하이젤은 환생하기 전에도 릴리트와 함께했을 텐데….’

[새로운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 릴리트를 살해하라. 제한시간 : 8 : 11 : 05]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하지만 새로운 마왕이 강림하면?

이미 원작은 바뀌었고, 에스테도르 역시 원작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만약 릴리트를 놔뒀다가 배신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발생하면?

‘그래도 하이젤이 원작 주인공인데….’

[나의 ■■■■야. 릴리트를 죽여라. 제한시간 : 8 : 11 : 01]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릴리트를….

[릴리트를 죽여야 한다. 제한시간 : 8 : 11 : 00]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릴리트를 죽여야 한다.’ 율리우스의 눈에 무지개 마안이 한순간 반짝였다 사라졌다.

그래, 어차피 하이젤도 이해할 것이다. 굳이 알려줄 것 없이 마족들을 위해 차원문을 열 때 몰래 죽인다면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원래 그녀는 새로운 마왕의 부하라 마계로 갈 수 없겠지만, 당장 이대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하이젤은 그녀가 마계로 돌아갔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우진은 퀘스트창을 켰다.

퀘스트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원작의 결말을 망친 원흉인 릴리트를 살해하라. 제한시간 : 8 : 10 : 55]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8일….’ 그는 잠시 어지러운 느낌에 인상을 썼다.

하지만 패시브 스킬을 비롯한 정신 방어 스킬이 발동하지 않자 그냥 우연으로 치부했다.

“하이젤, 일단 돌아가자. 주위 유적은 다 처리했으니까 마법진의 마력이 충전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지?”

“…그래.”

하이젤은 혼자 웃다가 인상을 찌푸리던 그의 모습을 봤지만, 잠시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이 지나 차원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바다로 향할 것이다.

다른 곳에 발목 붙잡히는 것 없이.

‘…릴리트랑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그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계획이 실행되기 전의, 마지막 휴식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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