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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70화 (170/212)

170화

가델은 빠른 속도로 숲을 빠져나갔다.

엘프 대수림을 감싼 결계나 그 주위에 펼쳐진 마경조차 그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보다 한층 조심히 몸을 움직였다.

혼자였다면 마물이나 괴물 따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아칸더스와 소네드도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들 두 명을 옮기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데 전투까지 치르며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전속력으로 달린 그는 어느 도시의 외곽에 멈춰 섰다.

“…여기는.”

“설마, 가비아입니까?”

아칸더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네드는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보다 보니 익숙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델은 몸에 묻은 거미줄과 흙먼지 등을 털어내며 옷을 대충 정돈하고는 답했다.

“예.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도시의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지금이야 잘 움직이지도 않고 집무실에서 업무나 본다지만, 어릴 적 그는 호위 기사들을 따돌리며 도시를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만날 장소가 여기라니… 참 아이러니하군요.”

아칸더스는 복잡한 감정을 털어내듯 그리 중얼거렸다.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가델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소네드와 아칸더스가 조용히 뒤따랐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거리, 익숙한 도시.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볼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가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

아칸더스는 가델 뒤를 따르면서도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가비아의 모습을 조금씩 힐끔거렸다. 원래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곳을 다스렸을 텐데.

그렇게 가델의 뒤를 따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도시의 외곽과 중심부로 향하는 사이에 있는 작은 주택.

병사들이 치안을 관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위치와 살짝 떨어져 있으며, 중심부와 외곽의 끝에 걸쳐 있어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은 절묘한 곳이었다.

가델은 아무도 들어간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뒷문을 열고 작은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1층에 위치한 방문 앞에서 입을 열었다.

“엘리자 님, 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얼른 들여보내 주렴. 알렌의 수하가 어떤지 전부터 궁금하던 참이니.”

아칸더스는 안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긴장감을 높였다.

그녀가 알렌의 어머니라는 신분만으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영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루피너스 가문의 장녀였다니.

‘…믿을 수가 없군.’

그가 아는 엘리자 루피너스의 정보는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천재.

현재 마하 황녀의 위상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엘리자 루피너스는 그녀가 라인하르트 가문에 시집가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천재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장래에 큰 업적을 세우리라 믿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사라지고 잊히는가 싶더니, 라인하르트 가문에 있을 줄이야.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끼익

“저는 잠시 주변을 살펴볼 테니 먼저 대화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가델이 문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아칸더스는 가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문은 열려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만나서 반갑구나.”

그녀의 모습을 본 그는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안녕하십니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구나.”

그녀는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섞인 의아함을 느꼈는지 엘리자는 별 게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 이것 때문에 그러는 거니? 눈의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유물이란다. 혹시 괜찮다면 양해를 구하….”

“예, 괜찮습니다.”

아칸더스는 알렌처럼 자잘한 것까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

복수를 위해 도시의 양아치들과 어울리기도 했었고, 알렌의 앞에서 고주망태 연기를 하며 그를 떠보기도 했다.

그는 예법보다 실리를 더 중요시했다.

그녀의 시선이 소네드에게도 향하자 그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고맙구나.”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말이 끊겼다. 아칸더스는 먼저 질문을 입에 담았다. 알렌의 어머니라고 해서, 마냥 그녀에게 휘둘릴 수는 없었다.

“저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엘리자는 그의 의도를 눈치챈 듯했지만, 순순히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전부… 라기보다는 거의 모든 걸 알고 있단다. 아들에 대해 모르는 게 있어서 되겠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있던 아칸더스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전부 말입니까….”

아칸더스는 지금까지 정보를 숨기는 것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늘진 여왕에게 직접 자문하기도 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했다고 봐도 좋았다.

아무리 그녀의 밑에 전직 암왕이 있다고 한들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거짓 정보를 넘겨 흔들려는 생각인가?’

그녀는 그의 생각을 눈치챘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너와 알렌이 처음 만난 곳이 카르빌의 빈민가에 있는 술집이었지?”

“거짓이….”

그 말에 아칸더스는 의심을 그만두었다.

적어도 그녀가 알렌의 행적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것은 맞았다.

“…아니시군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 솜씨는 괜찮았으니까. 흔적도 깔끔하게 지워내서 알아내는 것이 꽤 오래 걸렸으니. 평범한 정보 길드보다 수준이 높으니 자랑해도 좋아.”

“혹시 저희 조직에 배신자가 있습니까?”

아칸더스는 엘프 대수림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예상할 수 없던 종류의 답이었다.

“아니, 애초에 너희 조직과 접촉한 적도 없단다.”

“그럼 어떻게….”

“추측했지. 작은 단서만 있으면 전체적인 판을 읽는 것 정도는 쉽잖니?”

그녀는 간단하다고 말했지만, 아칸더스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단서로 추측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당사자밖에 모를 일까지 추측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칸더스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를 현재의 마하 황녀 정도 된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비교할 수 없다.’

머리를 쓰는 위치에 있기에 더욱 와 닿았다.

체스판 위에서라면 상대의 수를 몇 수, 뛰어난 자라면 몇십 수 앞까지 내다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수많은 변수와 우연이 겹쳐 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경지에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멀리 닿아 있겠지. 아칸더스가 입을 다물자 그녀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얘는,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다? 긴장 풀렴. 더 물을 건 없니?”

아칸더스는 식은땀에 등이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그는 팽팽한 신경 줄을 애써 풀리지 않게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를 부르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답을 하자면… 슬슬 우리와 스콜을 연계함으로 정보 공유도 시작하고… 아들에게 선물도 하나 줄까 싶어서 말이지.”

“…선물 말씀입니까?”

정보 공유에 대한 건 이해했다.

그녀가 방금 알렌에 대한 걸 알고 있다 했으니, 스콜의 진짜 목적을 알 것이다.

그녀 역시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고, 스콜의 수뇌부인 자신과 소네드를 불러들여 정보 공유와 협력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선물에 대한 건 무엇인가?

“지금까지 엘피스와 라인하르트 영지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있지?”

“예.”

“지금까지는 나와 가델이 너희가 실수로 드러낸 움직임들을 숨겨줬지만… 앞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따로 방법을 찾았단다.”

아칸더스는 그녀의 말 사이에 섞인 의도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할 말이 없군….’

자연스럽게 은혜를 언급하고, 그가 부족했다는 걸 돌려 말한다. 엘리자는 아칸더스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알렌에게 땅을 줄 생각이란다.”

“그 말씀은?”

그녀가 말을 다 끝내기 전에 아칸더스가 이해하자 그녀는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조금 있으면 영지에서도 대대적으로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 국왕의 이야기도 있으니.”

“그….”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모습에 소네드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두 명의 시선이 향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소네드는 노련한 상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두 명의 대화에 따라가기 벅찼다.

“아.”

아칸더스는 그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듯 설명했다.

“엘리자 님은 저희가 움직이는 것이 라인하르트 영지와 엘피스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 탓에 보안에 위험이 있고 움직임이 제한된다는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슬쩍 엘리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의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알렌 공자님께 땅을 드리는 것이 최선이지만, 아시다시피 이 근방의 땅은 모두 라인하르트 백작님의 소유입니다.”

“그럼 땅을 주겠다는 엘리자 님의 말씀은….”

소네드가 거기까지 이해하자, 그는 땅을 주겠다는 말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니 편법을 사용하신 겁니다. 통치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후계자 훈련을 시킨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알렌 공자님께만 드리게 되면 율리우스를 지지하려는 가신들이 반발할 겁니다.”

“아!”

거기까지 설명하자 소네드 역시 완전히 이해했다.

“며칠 전 율리우스 님이 세운 공의 보상으로 영지를 내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칸더스가 웃는 얼굴로 긍정했다.

“예, 정확합니다. 율리우스 님이 영지를 받았으니, 알렌 공자님 역시 후계자 통치 훈련을 명목으로 영지를 받는다고 하면 가신들도 이를 막지는 못할 겁니다.”

“다음 이야기를 해도 될까?”

이야기가 끝난 것을 본 엘리자가 입을 열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몇 달 후면 땅을 받고 거기서 세력을 키우면 된단다. 그곳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이 없는 새로운 장소니까.”

“이주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아, 그 아이를 비롯한 몇 명은 남겨 두렴. 연락책도 필요하고… 감시가 붙어서 괜히 움직이는 것도 좋지 않을 거야.”

“그 아이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람은 아칸더스도 알고 있는 이였다.

“노아.”

알렌이 스콜의 방책을 뜯어고치게 된 이유이자 원인.

그가 언급되자, 아칸더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노아는 다른 아카데미 학생을 만나느라 너무 많이 노출됐지요. 평민인 신분에 그런 만남을 가졌으니 이상하게 여겼을 만합니다. 이건 제가 신경 쓰지 못했군요….”

그녀의 입에서 언급되는 그의 실책에 아칸더스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엘리자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했지.’

그녀의 눈에 차는 인재는 몇 없다.

아칸더스는 그 선에 드는 인재였고, 그가 그 목적을 위해 알렌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호재라고 할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니 시야가 좁아지는구나.’

그녀는 아칸더스가 그 일에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면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목적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도 있었던 거겠지만.

이제 아칸더스가 무슨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럼 이제 물러나 주겠니? 여기 온 것도 겨우 시간을 낸 거라 오래 있을 수는 없을 듯하니.”

그러나 아칸더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칸더스…?”

소네드가 작게 부르자 아칸더스는 몇 걸음 움직이는가 싶었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더 할 말이 있니?”

“아직, 이야기가 더 남아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엘리자의 수완과 머리에 주눅이 들긴 했지만, 자신 역시 어디서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엘리자 님은 지금까지 제 질문에 답을 해 준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처음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을 보면 일부러 자신에게 질문할 권리를 넘겨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승자박인가….’

자신의 행동과 말 때문에 스스로를 옭아맸다.

“이제 알려 주십시오. 저희를 부른 이유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웃었다.

아들의 곁에는 훌륭한 가신들이 그를 받쳐 주고 있었다. 그들 말고도 몇 명 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아이처럼 돌봐줄 필요 없다.

“알렌도 이제 다 컸구나.”

그녀의 말에 기특함이 묻어나왔다.

그들을 만난 이유는 근거지에 대한 것과 스콜과의 연계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그건 모두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제 저희를 데려온 진짜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진짜 이유….”

그녀는 뜸을 들이듯 잠시 침묵했다.

아칸더스도 소네드도 조용히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말을 고르듯, 잠시 어떤 이야기부터 할지 고민하는 듯 생각하다, 첫마디를 꺼냈다.

“그래, 처음은 이걸 물어보는 게 좋겠지.”

그녀가 루피너스 가문에서 알렌에 관한 일을 처리한 이후의 일은, 모두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으니.

“너희는 기적을 믿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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