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68화 (168/212)

168화

그가 학생회장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것은 유적 실습을 가던 마차에서였다.

그때 알렌은 밀레드에게 아카데미가 지금의 위치를 가지게 된 이유와 현재 아카데미 학생회장이 평민이며 그 실력이 괴물에 가깝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것을 들은 이후 알렌은 학생회장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학생회장.’

그 유명한,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가진 2황자 일라이자가 부회장의 자리를 맡고 있다.

아마 그를 제외하고도 많은 인재가 학생회에 속해 있겠지.

2황자조차 학생회장 자리에 탐욕을 딱히 보이지 않으며, 밀레드는 그녀가 회장의 자리를 맡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답했다.

그러한 점에서 알렌은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

회귀 전에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일라이자는 유명하니 말할 것도 없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천재로 손꼽히는 마하 황녀나 짐승왕의 손녀인 일리아나 그리고 마리아와 하이젤을 비롯한 여러 기재들.

알렌은 율리우스에 관한 소문을 듣다 보면 그들의 이름 또한 듣곤 했다.

그러니 알렌도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여러 일을 꾸미게 되었지.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학생회장에 대한 소문이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는 이만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밀레드는 알렌과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자신의 역할을 다 끝냈다는 듯 방을 나섰다.

철컥-

학생회장실에는 이제 그녀와 알렌 둘만이 남아있었다.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가워요. 저는 학생회장인 엘리스라고 해요.”

“1학년 알렌 라인하르트입니다.”

알렌은 그녀를 살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지적인 분위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 관한 소문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은.’

장단을 맞춰주며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알렌은 아카데미의 목적처럼, 그가 신분이 더 높다고 해서 오만하게 굴지 않았다. 그가 속으로 어떤 의문을 느끼든, 아카데미 내에서는 그녀의 위치가 더 높았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부른 이유는 별 게 아니니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벤자민과 친하다고 들었거든요.”

“…친분이야 있기는 하지요.”

그날 이후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라 벤자민은 말했다. 하나 그의 바람과 달리 알렌은 도움을 요청한 새도 없었다. 그러나 벤자민은 알렌의 몇 없는 아카데미 내의 인맥이기도 했다. 누군가 친분이 있냐 물으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럼 다행이네요.”

알렌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가지 않는 그녀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지금 벤자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고 있나요?”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까.”

엘리스는 말을 길게 끌 필요 없다는 듯 본론을 꺼냈다.

“간단해요.”

그녀는 선심 좋은 제안이라도 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알렌 라인하르트, 며칠 후에 조직되는 남부 지원군에 들어갈 생각이 있나요?”

* * *

율리우스는 하이젤의 뒤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로 내려갔다.

땅굴은 얼마나 깊은지 몇십 분째 같은 곳을 빙빙 도는 것 같다 싶으면, 여러 곳으로 갈리는 통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나치게 복잡한 땅굴은 단시간 내에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고대 제국의 시설이 여기도 있었나….’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고대 제국의 임시 피난로]

-고대 제국이 많은 사람을 피난시키기 위해 임시로 만든 땅굴이다. 쫓아오는 적을 교란하기 위해 함정도 설치되어 있으며, 지도가 없을 경우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최근에 얻은 관찰형 스킬 [관찰자의 시선(B)]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랜덤 뽑기에서 얻은 관찰안은 확률적으로 물건이나 지형의 정보를 게임의 설명처럼 나타내는 스킬이었다.

그 확률이 B급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것 같지만, 그 덕분에 김우진은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아이템에 대한 것이나 슬쩍 흘리듯이 지나간 장소에 대해서 알 방법이 생겼다.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어디까지기는, 너는 마족이 마음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냐?”

하이젤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어조로 핀잔을 주자, 김우진은 입을 열려다 참았다.

‘…마왕을 죽일 때까지만이야.’

처음 빙의되었을 때 한 결심이 무엇이던가.

원작 주인공인 하이젤의 옆에서 마왕을 물리치며 꿀을 빨고, 그가 보았던 최악의 엔딩을 막는 것이었다.

그 준비를 과하게 하다 보니 이렇게 일이 꼬여버렸지만, 아직까지는 만회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김우진은 하이젤에게 질문하지 않았고, 한참을 더 내려가고 나서야 그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하이젤은 그들이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같은 벽 앞에 멈추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발을 들었다.

“잠깐….”

율리우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이젤의 몸이 벽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가 빠르게 하이젤의 뒤를 따랐다. 하이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의 앞으로 보라색 피부를 가진 마족 하나가 보고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해결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통로의 크기가 너무 작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봤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이젤은 평소에 보이던 경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차가운 얼굴로 답했다.

“조금 있으면 지원이 올 테니, 마법진을 수정할 준비를 끝마쳐라.”

“…예, 알겠습니다!”

“너는 다른 이들에게 정체가 조금 들키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지상의 마족들을 모으라 알리도록.”

“따르겠습니다.”

그들은 떠나기 직전 율리우스의 존재를 눈치챘다.

멈칫-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하이젤이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율리우스를 노려보기만 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벽 너머로 사라졌다.

율리우스는 그들의 대화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 물었다.

“마계로 돌려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야?”

“맞아.”

역시, 율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하이젤은 마족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율리우스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듯 곧바로 알아챘다.

“앞으로 에스테도르를 같이 막는 대가로 네가 해야 할 일은 별 게 아니야.”

율리우스의 긴장한 모습이 보인다.

하이젤도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그건 최소한의 신뢰가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 하이젤에게 있어 율리우스와 알렌은, 그 개인의 성정이 어떻든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

“근처 유적 공략 좀 하자.”

“뭐?”

“이곳 땅굴 근처에 있는 유적 공략 좀 하자고.”

김우진은 설마 싶어서 입을 열었다.

“…근처에 있는 거, 모두?”

“모두,”

“아니, 미친.”

“왜냐하….”

그가 자세한 설명을 하려던 때, 하이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님!”

알고 있는 목소리에 하이젤과 율리우스는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김우진은 얼굴을 찡그렸고, 하이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각자 얼른 감정을 수습했다.

“…릴리트. 왜 여기 있지?”

하이젤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가련한 표정의 여인 한 명이 그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내가 다른 일을 시켰을 텐데….”

“다 끝마쳤어요.”

“그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지 않나?”

“그것까지 다요.”

그녀는 하이젤이 시킨 일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발적으로 그를 돕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옛날, 자신이 마왕이었을 때처럼.

“…일단 돌아가. 나는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게 이분과 관련된 일인가요?”

그녀의 시선이 율리우스를 향했다. 고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죄송하지만 제가 함께해도 괜찮을까요?”

홀린 듯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때, 무언가의 공격을 방어하듯 정신이 번쩍였다.

[매혹 저항(C)]

[검의 정신(B)]

[야수의 혼(C+)]

………

……

지금까지 모았던 정신 관련 스킬이 떠오르며 매혹되려던 정신을 바로잡았다.

“씹….”

율리우스의 얼굴이 험악해지자, 하이젤이 나섰다.

그는 평소에 그녀에게 보이지 않던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릴리트.”

“마왕님, 제가 서큐버스라 자연적으로 매혹한 거지. 고의가 아니었….”

“지금 무슨 짓을….”

띠링-

한바탕 욕지거리를 뱉어내려던 율리우스의 입이 멈췄다.

그는 제 앞에 떠오른 창의 내용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조용히 릴리트를 향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한 번은 봐줄 테니 신경 쓰지 마.”

잠시 침묵한 율리우스가 뒤늦게 뱉은 말에 하이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있었다.

그것을 직감했지만, 율리우스가 갑자기 저렇게 변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릴리트 역시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하이젤은 한 번까지는 봐줘도 두 번은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다.

율리우스는 하이젤을 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뭐해, 안 가? 유적 공략해야 한다면서.”

“…가야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에 하이젤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의 계획을 성공시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잠시만 함께하면 괜찮을 거다.’

그들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서로 다른 속셈을 품은 채 어두운 통로를 걸어 나갔다.

김우진에게 보였던 창은 간단했다.

[원작의 결말을 망친 원흉인 릴리트를 살해하라. 제한시간 : 10 : 9 : 31]

[보상 : 진실의 파편(???) x 2]

* * *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칸더스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엘프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며칠째다.

이 작은 숙소에 갇혀 지낸 지.

“…그렇다면 밖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말단이라…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잠시 산책하는 건 어떻습니까.”

“안전을 위해 여기 있어야 합니다.”

그가 여러 가지 틈을 찔러 정보를 알아내고자 했지만, 마치 골렘처럼 엘프는 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그 모습에 지쳐버린 아칸더스는 몸을 돌렸다.

“…수확은 있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하… 공자님이 걱정하실 텐데 면목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아칸더스는 지금까지의 일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미 수십 번이고 했던 행동이지만, 그는 다른 각도에서 이번 일을 꾸민 상대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처음은 그래, 편지를 받았었다.’

상단의 일꾼을 통해 들어온 편지는 그가 직접 만든 암호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소네드가 엘프 장로 중 하나와 중요한 거래를 하던 중 제3세력, 정확히는 페른 남작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목숨이 급박한 상황이라 자세한 내용은 적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칸더스는 빠르게 채비를 갖췄다.

‘다행히 알렌 공자님께 무슨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는지 말을 남겨두고 이곳에 왔지.’

그러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소네드가 계획했다는 상행은 이미 끝나있었다.

그와 동시에 엘프 대수림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생겨나며 그들을 가뒀다. 아칸더스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무언가 행동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엘프의 땅이었다.

외부인은 상행하는 것도 제한적이었고,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도 적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가 무언가를 알아내기도 전에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숙소에 감금되었다.

아칸더스는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곳에 자신의 손발은 잘려있었고 스콜과 연결할 수 있는 연락책도 없었다.

‘최소한 말 한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

그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소네드는 괜히 자신 탓인 것 같아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중, 문지기로 있던 이에게 누군가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몇 번 고개를 끄덕인 그는 뒤돌아 입을 열었다.

“아칸더스, 그대에게… 손님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손님 말입니까?”

아칸더스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라인하르트 가문의 가델이라고 하면 알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칸더스는 알렌이 흘리듯이 말하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의 눈이 밝아졌다.

“바로 만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