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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66화 (166/212)

166화

알렌은 아카데미에 돌아온 즉시 아칸더스를 찾아 상단의 지부로 향했다.

지금 사태를 의논하기 위해서는 그가 없던 사이에 일어난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가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소식은 좋지 않았다.

“…아칸더스가 없다고?”

“예, 공자님. 아칸더스 님은 현재 소네드 님을 돕기 위해 영지로 돌아갔습니다.”

상단을 지키고 있던 이들의 말에 알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 이 시기에?’

한참 아카데미에 황태자의 암살에 관련된 소문이 돌 때, 알렌은 그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소네드는 중요한 상행에 나섰다고 해서 알렌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칸더스까지 나서야 했다고?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이곳에서 자리를 비우지 않을 텐데….’

카릭은 아직 경험이 적어 일부러 많은 곳을 돌아다니게 한다지만, 소네드와 아칸더스는 달랐다.

그들은 항상 알렌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둘 중 하나는 상단에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혹시 그가 남긴 말은 없던가? 그냥 가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칸더스 님이 급히 떠나시며 공자님께 세 번째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세 번째?

‘세 번째, 세 번…, 제3세력.’

소네드는 중요한 거래를 위해 라인하르트 영지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라인하르트의 옆에 있는 엘프들과 거래를 위해 나섰겠지. 그러나 그가 제3세력과 문제가 생겨 돌아오지 못했고, 그 소식을 들은 아칸더스가 그를 도우러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떠나기 무섭게 대륙 전역에서 일이 터졌지.

‘엘프 대수림과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참 공교로운 일이었다.

알렌은 그들을 찾으러 가려는 마음을 억누르며, 다른 이를 찾았다.

지금 엘피스를 떠나 봤자 사건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꼴이다. 알렌은 이곳이 사건의 중심이 되리라 확신했다.

김우진, 세상 모든 사건의 중심인 그가 이곳에 있는 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그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주거지구에 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한정된 공간 탓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엘피스에서 주택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난다. 그러나 이 주택에 지내는 이와 연을 만들기 위해서 그 정도 값을 낼 이들이 족히 수백은 될 것이다.

알렌은 차분히 심호흡하며 주택의 문을 열었다.

그가 찾는 이는 마당에 있었다.

비욘나는 대륙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상관없다는 듯 흔들리는 바람을 쐬며 텃밭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의 취미인지 색색의 꽃이 작은 텃밭 위에 피어났고, 그녀는 손끝 위의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로 찾아왔니?”

알렌이 마음대로 찾아온 것을 신경 안 쓰는 기색.

하긴, 그녀의 실력이라면 그가 찾아오는 사실쯤은 수백 미터 거리부터 알아챘을 것이다.

문을 연 것을 허락한 것 자체가 만남에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다.

알렌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흐음, 갑자기?”

그녀가 후- 입을 불자 나비가 살랑거리며 날아갔다.

알렌은 여기까지 오며 복잡했던 생각을 대부분 정리한 상태였다.

‘에스테도르의 움직임은 놀랐지만,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 처음에는 그들이 일을 벌이자 마왕이라도 소환된 것처럼 놀랐지만 ‘아직까지’는 예상 범위 안에 있다.

알렌은 자신이 일을 벌임으로써 발생한 나비 효과에 대해 수십 가지의 대비를 세워 뒀다.

율리우스가 돌변할 가능성.

자신의 행적이 마탑에 들킬 가능성.

그늘진 여왕의 배신이나 카트린느의 전향 가능성까지.

에스테도르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히벨의 키메라 술사 처치와 베르겐의 마녀사냥.

신수의 숲의 계략을 막고 마탑 도시 습격을 이용한 것까지.

그의 행동은 김우진과 자신의 과거와 관련이 있었지만, 에스테도르 역시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알렌이 알던 것과, 검은 책에 나온 원작과 앞으로도 같은 행동을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벌써부터 이런 사건을 터트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반대로 말해 이번 혼란을 넘기면 한동안은 조용할 것이다.

“아카데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발밑에 있던 작은 그림자가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조용한 물음.

“어떤 걸 원하니?”

알렌과 그녀의 계약은 간단하다. 알렌이 그녀의 사냥개 역할을 해 준다면,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몇 가지 들어준다.

알렌은 저번 드워프 지저도시의 정보를 이용해서 그녀와의 계약을 지켰다.

그러니 이번엔 그녀가 도움을 줄 차례.

‘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알렌은 아직,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대륙의 중부, 이곳 주위의 정보를 모아와 달라든지 누군가를 암살해달라든지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스콜의 지휘권을 임시로 드리겠습니다.”

차라리 그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 이 근처에 일어나는 수상한 움직임 모두를 살펴 주십시오.”

비욘나는 알렌이 조직의 지휘권을 통째로 넘긴다는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알렌이 키우는 스콜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아칸더스라는 유능한 인재 아래 하나의 목표를 나아가는 그들은 그녀가 본 어떤 조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가끔 아칸더스가 자문을 구할 때 조언을 던져 주기도 했고.

그러나 딱 거기까지.

그녀는 알렌이 선을 지키려 노력하듯 그들의 사정을 알아도 그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를 믿는 걸까. 아니.’

그녀는 알렌이 무엇을 노리는지 파악하고는 웃었다.

“내 노하우를 그냥 가져가겠다는 거니?”

“불쾌하십니까?”

“아니… 별로 그렇지는 않단다.”

아칸더스가 노력하고 있다고 한들, 그녀에게 축적된 지식은 무시할 수 없다.

그녀 아래에서 암왕들이 키워졌고 수많은 암살자가 탄생했다. 그 노하우의 일부를 그녀가 스콜을 지휘하는 동안 얻게 된다면 이득이다.

‘어차피 그녀는 내 사정을 알고 있다.’

숨길 것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다.

그늘진 여왕이 알아내고자 하면 진정으로 알아내지 못할 사실은 없으니.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곁의 가신들이 사라져서니?”

“…예,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일도 만만치 않아서 말입니다.”

알렌이 하고자 하면 아칸더스가 했던 일을 이어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넘쳐났다.

‘다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비욘나는 다시 자신의 앞에서 살랑거리는 나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유적 실습 때 자신이 했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침 그것이 알렌과 관련이 있어 보여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번 기회 그의 곁에서 그를 자세히 관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은 그녀의 허락에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주며, 주택을 떠났다.

그가 떠났을 때, 마당에는 나비 한 마리만이 아무도 없는 꽃밭 위를 맴돌았다.

* * *

테이블 위의 조명은 탁했고, 빛은 아래로만 쏟아져 얼굴의 음영을 그려냈다.

적막한 방.

“…….”

“…….”

김우진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앞에 앉은 하이젤을 바라봤다.

그를 찾을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할 이야기가 수십 가지는 되었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니 오히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왜 하이젤이 프시케를 이용하고 있었을까.

아니, 원작에서 여러 번 사용했으니 들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왜’ 이 시기에 하필 그곳에 있었나.

‘원작에서는….’

“뭐 해?”

“…뭐?”

김우진은 잠시 그가 한 말을 깨닫지 못하고 되물었다. 하이젤은 픽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뭐 하냐고.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여기에 왜 왔어.”

결국, 입에 나온 물음은 그것이었다.

하이젤은 고작 묻는 게 그것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다 선선히 대답했다.

“정보 길드에 온 이유가 뭐겠어? 정보 사려고 왔지.”

“무슨 정보를….”

“그것까지.”

그의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가 김우진을 응시했다.

“알려줄 정도로 우리가 친했던가?”

잠시 할 말이 막힌 김우진은 그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신경질 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뭘 원해.”

마탑 도시에서 하이젤 역시 마왕이 소환되는 걸 원하지 않기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뭘 원하냐고.”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에스테도르의 목적은 명확하다.

마왕의 강림.

그를 알기에 협력할 수 있다. 원작의 하이젤도 마족들을 거둬들이지 않았던가? 원작보다 빠르지만, 지금의 하이젤 역시 지상에 소환된 마족들을 숨겨 주고 있을 것이다.

‘정보 길드를 이용하려는 목적은 다른 마족을 찾기 위함인가?’

하이젤은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다.

그것을 마탑도시의 지하수로에서 확인했다.

“뭘 원하냐….”

하이젤은 잠시 율리우스의 위쪽을 바라봤다. 김우진은 뭔가 싶어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너는 현시대의 주인공이지.”

“뭐?”

그의 뜬금없는 말에 김우진이 반문했지만, 하이젤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그 탓에 김우진은 물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뭘 원하냐고.”

김우진을 바라보는 하이젤의 눈이 이상했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혐오감이 느껴지기도 하다가 기회를 찾은 것처럼 반짝이기도 하며 끝내는 망설임이 느껴졌다.

‘…이미 그와 엮여 버렸고, ‘그들’의 계획에 들어갔겠지.’

알렌이나 율리우스의 곁에 가면 느껴지는 그 시선이 증거였다.

아마 하이젤 역시 이 꼭두각시들이 움직이는 연극의 장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면 그들을 눈치챈 즉시 대륙을 떠나거나 자살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과 관계되었다면 되려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끝이 오기 전까지는 알렌과 율리우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만은 잃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무슨 행동을 해도 승승장구하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리겠지.

아니, 그건 율리우스 쪽인가?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주인은 두 명이다.

하나는 하얗고, 하나는 검었다.

하얀 쪽이 우연과 필연 그리고 인과에 관여한다면, 하는 일에 가호를 부여해 주고, 운에 관여하는 건 검은 쪽이었다.

율리우스에게 느껴지는 것도 검은 쪽이고, 본래는 하얀 것도 섞여 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이젤은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면.’

최대한 이용하다 틈을 노린다.

“당분간 내 일을 도와줘.”

“…일을 도와달라고?”

하이젤은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은 악동 같기도 했고 냉혹해 보이기도 했다. 하이젤은 비수를 숨기고 경박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다 알잖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럼 도와달라고.”

게이트의 존재를 알린 것도.

마탑 도시의 지하수로에서 마족과 마주친 적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려준 적 없는 정보까지 율리우스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이젤은 그 사실이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하얀 것의 흔적이 닿아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게. 어차피 에스테도르를 같이 막자고 하려 했잖아?”

하이젤은 프시케에게 받은 정보를 떠올리며 웃었다.

-무제한의 지원.

언덕마루의 양 뒷다리.

프시케에서 그 뜻은 보스의 직속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는 것을 뜻했다.

“도와줄 거지?”

김우진은 뭔가에 휘둘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서로 간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

하이젤을 바라보는 율리우스의 눈에 그도 모르게 검은 감정이 꿈틀거렸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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