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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64화 (164/212)

164화

알렌과 바스러진 쇠붙이는 길고 어두운 통로를 한참동안 떨어졌다.

지상보다 낮은 온도와 몸을 스치는 바람, 감지력으로 아래까지의 거리를 대략 파악했을 무렵, 알렌은 벽에 검을 꽂았다.

키이잉-

벽에 박힌 돌과 광석이 조각나고 알렌이 낙하하는 속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둠 너머로 바닥이 보일 때 알렌이 뛰어내렸다.

타닥-

바스러진 쇠붙이는 알렌보다 더 무식했다.

그는 자신의 아래로 돌로 막든 판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의 몸이 수십 개의 판을 부수고 나서야 바닥에 착지했다.

쾅-!

알렌은 무식하게 내려온 그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다 주위를 살폈다.

그들이 뛰어내린 곳은 바스러진 쇠붙이가 만든 통로와는 달랐다.

벽과 바닥에는 베어 문 흔적이 가득했고, 거대한 생물체가 이동하며 만들어진 일정한 흔적이 있었다.

알렌은 아카데미에서 이와 같은 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

“와이엄(Wyrm).”

“사도님, 어떤 괴물인지 아시겠습니까?”

“예.”

날개와 다리가 없는 지렁이나 뱀과 같은 모습의 괴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학설 중 하나는 드래곤이 퇴화하며 이렇게 변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베스틀라에게 물었을 때는 사실무근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이놈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알렌은 이 괴물이 지금까지 지진을 일으킨 원인이리라 확신했다.

보통 와이엄의 크기는 거대하다.

그렇기에 그만큼 많은 먹이가 필요하지. 옛날에는 개체 수가 꽤 있었지만, 작물에도 피해를 끼치고 사람도 잡아먹어 보이는 족족 토벌당했다.

마침 이동할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는 듯 땅이 흔들리니 오지에서는 토지신이라 숭배받기도 했다.

‘지금 시대에는 멸종되었다고 했는데….’

그걸 이곳에서 볼 줄이야.

알렌이 생각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그가 그렇게 일을 일으킨 괴물에 관한 생각을 끝마칠 즈음, 다른 곳을 살피던 바스러진 쇠붙이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사도님 보십시오!”

감응력으로 강화된 시야가 어둠으로 가려졌던 통로의 먼 곳을 꿰뚫었다.

바스러진 쇠붙이가 가리킨 곳에는 흥건한 체액이 가득했다.

알렌이 그곳으로 가자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몸의 살점 일부가 짓눌린 듯 뭉개져 있었고, 과즙이 짜인 것처럼 체액이 토굴의 곳곳에 뿌려졌다.

“…혹시 사도님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가 알렌이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와이엄은 갑작스러운 부상에 급히 도망친 것 같았다. 그렇기에 도시의 지하를 파고들다 멈춘 것이겠지.

알렌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궁-

저 멀리서 옅은 진동과 함께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모양.

“예, 제가 한 짓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놈은 도망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 얼른 쫓아가지요.”

바스러진 쇠붙이와 눈을 한 번 마주친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알렌은 질질 흐른 체액을 따라 토굴을 누볐다. 토굴에는 괴물이 가득했다. 지상에는 볼 수 없는 것들.

산성액을 지닌 슬라임과 에스테도르의 짓으로 보이는 언데드, 식인하는 두더지, 심지어 눈이 먼 고블린들까지.

지상에는 볼 수 없는 지하의 괴물들이 그들을 덮쳐왔다.

아마 이 토굴은 생각보다 오래되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순환교가 자리 잡은 이후부터 준비했다는 말이 맞겠지.

알렌과 바스러진 쇠붙이 모두 그 정도의 괴물로는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바닥에 찰박이는 체액이 다리에 달라붙어 올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질 뿐.

토굴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와이엄의 체액과 발버둥 친 흔적이 있는 탓에 쫒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끼에에에-!

“사도님!”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땅이 진동하며 흙먼지가 얼굴을 때렸고, 끈적해진 바닥은 이제 서 있기만 해도 발바닥이 빠져들 정도였다.

저 멀리 꿈틀거리는 괴물의 몸이 보였다.

보는 순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놈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통로를 지나쳤다.

“제가 붙잡겠습니다.”

바스러진 쇠붙이는 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다리를 땅에 박아넣었다.

골렘의 몸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벽에서 돌덩이들이 뭉쳐 식물의 줄기처럼 뻗어 나갔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괴물의 몸통에 줄기를 꽂아 넣었다.

퓩- 하는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터진다. 괴물이 거세게 몸을 흔들었다.

끼에에에에-!

커다란 덩치가 흔들리자 토굴이 무너질 듯 흔들렸고, 부스러진 쇠붙이가 만든 쇠 줄기 역시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흔들렸다.

알렌에게는 그 잠시의 틈이면 충분했다.

노심의 마력이 검으로 쭉 빨려 들어간다. 베스틀라가 하얀빛을 뿜어냈고, 그 빛은 검 끝에서 둥글게 뭉쳤다.

요툰스베르드 삼계 료스솔 (J?tunnsverd 三界 Ljossol) 빛의 태양이 어두운 토굴을 밝혔다.

무언가 힘을 느꼈는지 와이엄은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가 그럴수록 괴물의 몸을 휘감은 줄기의 수는 늘어났다.

콰앙!

빛의 태양은 와이엄의 꼬리를 육편으로 짓뭉개는 것으로 모자라 몸의 반절 가까이 터트렸다.

그럼에도, 괴물은 살아 있었다.

지독한 재생력으로 살점이 꿈틀거렸고, 남은 반절은 구속이 사라지자 더 강하게 날뛰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스러진 쇠붙이가 끝장을 볼 듯 달려가려 했으나, 알렌은 그를 막았다.

그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도님?”

“저놈이 끝이 아닙니다.”

“아.”

저 괴물을 이 정도로 박살 낸 것은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가 강했고, 저 정도로 다친 이상 돌아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항상 언데드 군대를 어디서 데려오는지 궁금하지 않았습니까.”

“…과연, 제가 성급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도 여러 신도가 다치고 죽은 사실에 분노하던 참이었다.

그가 밝히지 않은 비밀을 눈치채고 걱정할 정도로 신도들의 모습에 그는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더 사람다운 모습에 알렌은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마치….’

이넬리아 같군.

그의 능력에 의한 수명 제한을 제외한다면 그는 그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홀로 과거 요정의 피를 일깨운 고블린.

자의식을 가지게 된 골렘.

불가능한 실험에 성공한 키메라.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왕의 환생 하이젤, 용사의 후예 마리아, 회귀자 알렌, 빙의자 김우진을 비롯한 특수한 이들.

그것과 상관없이 마하 황녀와 린벨 그리고 일리아나, 아칸더스와 같은 천재들.

한 세기에 몇 명만 존재해도 축복인 이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고대의 괴물들도 현재에 깨어나며, 에스테도르 역시 지금 시기에 일을 벌인다.

시대는 발전을 계속하고, 기술은 성장을 거듭한다.

마치 세계가 그들을 원하는 것처럼.

‘아니, 그게 아니라….’

탁-

“사도님.”

바스러진 쇠붙이의 목소리.

“아.”

“…괜찮으십니까?”

그가 쫓아가자는 말을 한 후에 생각에 빠진 듯 침묵하자 조심스레 그를 깨웠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조금 더 늦으면 괴물을 시야에서 놓칠 수도 있었다.

놈이 도망칠 곳이 없다지만 만약 그들이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에스테도르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렌은 고개를 젓고는 괴물의 뒤를 따라 달렸다.

바스러진 쇠붙이도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괴물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놈은 꾸역꾸역 살아서 전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토굴이 잘게 흔들렸고, 간간이 내뱉는 신음은 일반인이 들으면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알렌과 바스러진 쇠붙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달려드는 괴물들은 그 울음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그 덕분에 두 번째로 쫓아갈 때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제 순환교의 도시에서부터 수십 km은 멀리 떨어졌다고 느낄 즈음, 놈이 갑자기 지상을 향해 솟구쳤다.

“선지자님.”

“준비하겠습니다.”

그가 벽면에 발디딤대를 만들었다. 알렌과 그는 경사진 토굴을 바스러진 쇠붙이가 만든 디딤대를 밟고 올라갔다.

그렇게 지상에 다다른 순간.

쾅-!

지상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흙더미가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와이엄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고, 놈은 알렌이 손을 댈 필요도 없이 바닥에서 솟구친 거대한 거시에 머리를 꿰었다.

알렌이 옆을 보자, 골렘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안내했으니 더는 필요 없겠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살폈다.

근처에 가득한 시체들과 제단을 비롯한 흑마법사 전용의 공방, 시선이 가는 쪽을 살피니 거대한 골탑이 세워져 있었고, 바닥에는 검붉은 마법진이 맥동했다.

그러나 감지력을 주변 끝까지 펼치던 알렌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큰 소음이 났음에도 아무도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렌은 의심스러운 지역으로 가려던 바스러진 쇠붙이에게 입을 열었다.

“잠시, 몸을 올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의 부탁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도 함께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 바닥에 돌기둥이 솟아나며 그들을 하늘로 이끌었다.

그리고 바스러진 쇠붙이의 몸이 굳었다.

“이게 무슨….”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흑마법사도 마녀도, 악마 계약자와 와이엄을 조종했을 술사까지.

모두.

알렌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놈들은 이미 떠난 것 같습니다.”

새벽까지만 해도 도시를 함락시키기 위해 수를 쓰고, 언데드 대군을 보낸 놈들이 홀연히 사라졌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

* * *

와이엄 한 마리가 땅속을 이동한다.

이동하는 곳마다 지진이 일며 진동을 일으켰고, 지상의 생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두려움에 떨었다.

그 괴물의 몸속에, 수십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겉모습은 다양했다.

노인도 있었고, 어린 소녀도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는가 반면, 과묵해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그들의 생김새와 겉모습은 달랐으나 단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몇 달간 준비한 일이 허사로 돌아가니 아쉽습니다.”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도중,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번에 도시를 떨어트렸다면 시간을 더 썼겠지만 실패했으니.”

“그건 그렇지요…. 저희도 성과를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의 아쉽다는 얼굴에 과묵해 보이는 남자가 답했다.

“유지르 님의 명령이 우선이다.”

“알고 있습니다. 갈든. 단지 아쉬울 뿐이지.”

몇 개월만 더 있었다면 충분히 고립시켜 목적을 성공시켰을 텐데. 아쉽게도 더는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때 소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번에 맡은 곳이 어디였지요?”

“남부.”

“아, 맞아, 맞아. 그때 광신도의 뇌수는 어떤가 싶어 연구하느라 흘렸네요.”

“다음부터 조심해라.”

소녀의 귀여운 얼굴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갈든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유지르 님의 명령을 허투루 듣는이는 필요 없으니.”

“흐…, 필요 없으면 어쩌게요?”

“어쩌긴.”

갈든이 눈을 뜨자 명백히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노란색 눈동자가 보였다. 다른 괴물의 눈을 뽑아 이식에 성공한 키메라 술사.

“그 예쁜 얼굴에서 쓸 만한 걸 뽑아내야지.”

“키메라의 뇌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요?”

소녀, 카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휙 움직였다. 그녀의 곁으로 꼭두각시 기사들이 그녀를 보호했다.

“저도 궁금한데, 알려줄래요?”

두 명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처음에 입을 열었던 카신이 입을 열었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우리의 목적은 같지 않습니까? 유지르 님도 이 모습을 반기시지는 않을 겁니다.”

갈든은 말없이 눈을 감았고, 카라는 흥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 다들 마음을 진정시키고 갑시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계획의 8할이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쯧, 알았다.”

그들이 진정하자 카신은 경건한 얼굴로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헬-크리티카.”

찬미하는 그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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