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58화 (158/212)

158화

알렌은 뒤늦게 도착한 순환교도들과 함께 그들이 세웠다는 주둔 장소로 향했다.

그는 그곳을 향하면서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곳에서 전투가 시작된 지 반년이 넘었다든가, 그들의 공세가 석 달 전부터 강해지기 시작했다든가.

그를 안내하던 바스러진 쇠붙이 외에도 메마른 물결이 언데드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그를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고, 알렌이 상대한 이들이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도플갱어라는 것도 들었다.

“저희도 먼저 출발했던 선발대가 당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챘습니다.”

알렌의 옆에서 총대주교의 직위를 가진 남자가 조곤조곤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는 주둔지로 빠르게 향하는 와중에도 목소리 한 번 떨리지 않았다.

“놈들은 먼저 출발한 저희 신도를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냈지요.”

순환교의 직급은 사제에서 시작해 두 가지로 갈라진다.

보통 전도를 담당하며 현지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대사제와 그 지역에 있는 순환교도들을 관리하는 주교.

대사제는 많은 지역을 거쳐 가며 여러 일을 돕고 적합한 이를 순환교로 끌어들인다면, 주교는 그렇게 전도된 순환교도들 교육하는 역할.

그렇게 연차가 쌓이고 신망이 높아진다면 대사제는 투표에 따라 추기경이 되며, 주교는 작은 지역을 담당하는 대주교가 된다.

눈앞의 남자는 그 대주교보다 한 단계 높은 총대주교의 위치에 있었다.

“도플갱어까지 나온다고? 내가 알기로 그 수가 적어 희귀하다고 알고 있는데….”

“예, 하지만 놈들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점점 수단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알렌이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추기경과 같은 위치.

대사제로 임명되는 이들은 순환교에서 신뢰해야 할 만한 인물이라, 보통 대주교와 그 권한이 비견되며, 평범한 일반 신도들의 투표로 뽑힌 추기경은 한 지역의 모든 순환교도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총대주교와 비견된다.

다르게 총교구라 불리기도 하지.

“이런 시기에 나서주신 사도님의 조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순환교의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하는 다섯 선지자를 제외하면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고위 성직자였다.

“아니… 순환교는 이제 내가 속한 곳이기도 한데 그렇게 감사할 필요도 없지.”

“하하, 그렇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치고 그는 지나치게 알렌을 향해 자신을 낮추었다.

“사도 님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린다면 다른 이들도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내 존재만으로?”

“예.”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 님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저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인데 아니 그러겠습니까.”

“…그렇겠지.”

알렌은 선량해 보였던 그가 한순간에 광기 어린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풀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그가 가는 곳은 옛날에 존재했다던 성직자들의 교단이 아니다.

세상의 멸망을 바라며, 내세의 새 세상을 위해서 지금의 시대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자들.

그는 그런 광신도들의 믿음을 한 번에 받는 위치였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고작 그런 이유로 그는 총대주교에게 존중받으며, 다섯 선지자 중 하나가 마중 나오는 특혜를 받게 되었다.

이러니 회귀 전에 제3세력이 이들을 이용하려 했지.

몇 번 얼굴을 비추지 않은 알렌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데, 직접 권력을 잡고 움직인다면 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그의 말대로 앞을 바라보자, 시선의 끝에 돌로 쌓은 성곽이 보였다.

높게 쌓아 올린 성곽과 그 위에 나부끼는 깃발.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저기로 가서 하루 여독을….”

“총교구. 물어볼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그는 알렌이 말을 끊은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알렌은 감응력으로 안력을 돋우며 본 광경을 천천히 입에 담았다.

“혹시, 그곳에서 뭔가 불태울 것이 있나?”

“불태울 것이라니, 무슨….”

“그런데 왜.”

알렌이 손가락 끝으로 주둔지의 위쪽을 가리켰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거지?”

그의 말을 들은 총대주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는 알렌의 말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들 곁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앞서 걷던 바스러진 쇠붙이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들도 선지자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속도를 높였다. 일행은 점차 주둔지에 가까워졌다. 이제 모든 이들의 눈에도 주둔지 위로 올라가는 두어 줄기의 검은 연기가 보였다.

조금 더 속도를 높이자 주둔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발 늦었군. 하지만 다행히 막아냈나.”

한탄과 안도가 섞인 중얼거림.

바스러진 쇠붙이가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둔 성곽이 여러 군데 무너져있었고, 곳곳에 시체와 피가 가득했다.

순환교의 표식인 순환하는 원이 그려진 깃발은 불이 붙었는지 검게 그을려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벽돌은 원형을 유지하는 게 드물었고, 한쪽 성곽도 기울어진 것이 툭 치면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모습에 알렌 일행이 급히 다가가자, 성곽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사도 님! 사도 님이 오셨다!”

그는 위에서 알렌의 얼굴을 확인한 듯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바스러진 쇠붙이가 앞으로 다가서자 울퉁불퉁한 흔적이 가득한 철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가 마중 나온 신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들은 알렌 쪽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우선 보고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선지자의 물음에 빠르게 답했다.

“선지자님이 가시고 난 뒤, 기다렸다는 듯 대군이 몰려왔습니다.”

“…대군이 몰려들었다는 말인가?”

“예,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언데드들이 작정한 것처럼 공격했습니다.”

골렘인 그의 표정은 어느 때에든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표정에 깃든 그늘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선지자 두 명이 항시 상주하며 공격을 막아냈다.

본래는 메마른 물결만 유적 발굴지를 관리했지만, 저번의 회의 이후 그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 잡았다.

본래 한 유적지에 한 명만 존재하던 선지자가 둘이나 이곳에 있으니 언데드들을 막아내던 순환교도들은 숨통이 트였겠지. 그런데, 그가 나가자마자 공격이 들어왔다는 말은….

그는 이어져 나가려는 생각을 끊었다.

메마른 물결이 있는 한 배신자는 절대 존재할 수가 없으니.

“…알겠다. 일단 사도 님을 안으로 모시도록, 나는 그녀와 만나 봐야 할 것 같으니.”

“예!”

그들이 기쁜 얼굴로 알렌을 향해 달려갔다.

그걸 바라보던 바스러진 쇠붙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겠군. 사도 님은 내가 모시겠다.”

“아….”

알렌이 괜히 어정쩡하게 아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있자, 쇠붙이와 돌이 곳곳에 박힌 골렘이 유리알 같은 눈으로 다가왔다.

“따라오십시오. 저 말고 다른 선지자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선지자?”

“예, 그녀도 사도 님을 계속 만나고 싶어 했으니 말입니다.”

골렘이 몸을 돌리자, 알렌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넬리아가 그림자처럼 그의 뒤에 붙었다.

바스러진 쇠붙이는 그걸 힐끔 바라봤으나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알렌은 뒤에서 따라붙는 시선을 느끼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알렌은 안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더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들은 약과에 불과했고 심지어 그가 지나갈 때 무릎을 꿇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는 애써 그 광경을 무시하며 성곽 안쪽을 살폈다.

이곳은 하나의 성, 작은 도시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안쪽 도시의 중앙에는 석재로 지어진 유적이 자리해있었고, 수많은 인부와 무장한 이들이 드나들었다.

그 근처로 대장간과 식당을 비롯한 필수 시설들이 지어져 있었고, 그 뒤로 종교적 건축물과 다른 이들이 지낼 목재 여관 등이 자리했다.

신기한 것은 곳곳에 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신기하십니까?”

알렌의 그런 시선을 눈치챘는지, 바스러진 쇠붙이가 입을 열었다.

“제 능력입니다. 썩어버린 뿌리가 자신의 태생 탓으로 저주와 같은 것을 해제할 수 있다면 저는 땅 밑에 있는 돌이나 광석을 지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한낱 이름도 없는 골렘이었다.

자의식도 없고, 그저 마법사의 쓰임새에 따라 만들어진 광부용 골렘.

그는 마법사가 죽고 수십 년간 방치되어있다가, 어느 날 문득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가까이했던 돌과 광석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었다.

누구도 그가 어떻게 자아를 가지게 됐는지는 모른다.

마력이 다하고 시간이 흘러 바스러졌을 몸뚱이가 남아있는 이유도 알 수 없고.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여겨 각자 사연이 있는 다섯과 모였고, 당시 작은 사교에 불과하던 순환교를 지금과 같이 부흥시켰다.

그렇게 길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작은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의 기둥과 벽에는 색색이 피어난 꽃이 가득했고, 그곳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다녔다.

돌로 지어진 건물 사이에 있는 오두막은 이질적인 모습이었으나, 바스러진 쇠붙이는 익숙한 듯한 발걸음으로 문 앞에 다가섰다.

“문, 열려있다.”

그는 문을 열고 조용히 비켜섰다.

알렌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햇빛에 비친 유리알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는 건 사도님 혼자입니다. 저는 대화가 끝난 후에 들어가겠습니다.”

알렌은 이넬리아를 돌아봤다. 그녀는 그의 명령이 있다면 그와 함께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절차라면, 괜히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비공선을 얻는 것도 그들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니. 알렌이 석상처럼 굳게 선 그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팔목 위의 팔찌가 목소리를 전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력으로 능력을 사용하도록. 괜히 눈치를 보며 사릴 필요 없다.]

그녀는 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틀라, 너도 기회를 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를 도와.’

「잠깐, 알렌 뭘 하려고…. 」

알렌은 허리춤의 검집 채로 이넬리아에게 검을 건넸다.

그들이 무기를 빼앗지 않았으나 알렌은 대화를 하러 온 자리에 무장을 들고 가는 것은 예의에 속하지 않는다 여겼다.

바스러진 쇠붙이의 표정이 조금 더 온화하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알렌은 오두막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이하게도 창 하나 없이 사방이 막힌 방은, 별다른 구멍이 없음에도 밝았다. 작은 침대와 난로 그리고 탁자가 자리한 오두막.

묘하게 생활감이 느껴지는 그곳의 중앙에 욕조가 있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를 바라본 알렌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비늘이 달린 물고기 같은 하반신과 눈을 가린 안대, 안대 주위 눈가로는 화상이라도 입은 듯 흉측하게 변한 피부가 보였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낀 듯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가 자신의 겉면을 벗겨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알렌 라인하르트.”

그녀는 입이 귀까지 찢어지도록 크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잠깐, 뭐라고? 알렌은 이상함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면서 대부분 이들이, 아니 바스러진 쇠붙이마저도 자신을 사도 님이라 불렀을 텐데….

“존재하지 않는 사도를 자칭하는 사도.”

“잠깐, 뭐라….”

그러나 그가 의문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나?”

메마른 물결, 두 번째 선지자는 그를 보며 알 수 없는 얼굴로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