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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57화 (157/212)
  • 157화

    순환교는 평소에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드라기아스 가문에서 보았던 니드호그 같은 언데드를 죽이거나.

    흑마법사와 마녀 그리고 악마 계약자를 추적한다.

    때로는 어느 영지나 세력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경쟁 세력과 이간질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적 발굴.’

    조직은 목표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를 뒷받침해 줄 자금도 필요하다.

    알렌이 소네드와 카릭을 중용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들의 능력이 쓸 만한 것도 있었지만, 조직을 설립하기에 앞서 자금이 필수불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알렌이 일시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을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지속해서 공급시킬 필요는 있었다.

    순환교도 마찬가지.

    아직 설립 초기에 해당하는 스콜도 돈 먹는 하마처럼 끝없이 자금을 빨아들이는데, 순환교는 오죽할까.

    양지에서 대놓고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그들은, 제일 쉽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적 발굴을 선호했다.

    쓸 만하거나 중요한 물건이 나온다면 본단에 보내 보관할 수도 있었고, 그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면 넘겨서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알렌이 움직이는 이유도 그들과 관계되어 있었다.

    드라기아스 가문의 일을 처리하던 도중, 알렌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사도의 권한이 말뿐인 것은 아닌지, 그는 드라기아스 가문의 일을 처리하면서 순환교가 현재 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떠올렸다.’

    제국의 비공선이 자리한 유적을.

    물론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고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저 선지자 중 하나인 ‘메마른 물결’이 어느 유적에서 물밀듯 쳐들어오는 언데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기에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생각만 했을 뿐.

    그러나 드라기아스 가문의 일을 처리한 후, 황녀에 대한 계획을 세우던 중 그 유적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다.

    온전한 비공선.

    회귀 전, 순환교의 본단이 멸망하고 남은 이들이 쪼개질 때 비공선을 타고 도망간 일부가 있다고 했다.

    율리우스와 관련도 없고 자신이 관심 가질 만한 소문도 아니었기에 떠올리는 것이 늦었다.

    그러나 그걸 어찌 사용할까 생각하기도 전에.

    ‘아칸더스가 맡겨 달라고 했지.’

    만약 마하 황녀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황태자에게 우호의 증표라며 선물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알렌은 든든한 우방을 얻었을 것이고.

    콰앙!

    거대한 창이 숲의 나무를 찢어발기며 다가오던 언데드를 조각냈다.

    “이넬리아!”

    “알겠습니다.”

    그의 부름에 알렌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다리는 사슴 발굽으로 변해 있었는데, 한 번 달릴 때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까지 이동했다.

    “크아아아아아!”

    그녀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 걸려있던 자그마한 바늘이 커다랗게 변하며 전방에 있던 구울 셋을 박살 냈다.

    그렇게 그녀가 두어 번 땅을 박차자 주위에 남아있는 언데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대륙, 동남쪽의 끝 석재로 지어진 오래된 유적이 존재한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으나, 에스테도르의 발호 이후 완전히 발길이 끊겨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든 장소.

    알렌은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그는 감지력으로 일대의 지역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모습에 이넬리아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이쯤이면 순환교가 나와 있어야 할 텐데, 찾을 수가 없군.”

    알렌이 오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임무라는 게 루피너스 가문의 때처럼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는 한 가고 싶은 곳으로 맘대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는 간단한 임무를 두어 번 거쳐, 세 번째에 동남쪽의 피해와 현황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그것을 준비하면서 순환교에게 그가 갈 것을 알렸다.

    “그러니, 지금쯤 마주쳐야 할 텐데 이상하군.”

    마차는 진작에 이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 숨겨 뒀다.

    이곳은 마차가 지나갈 만한 넓은 대로가 없었기에 걷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가 멀지 않으니… 일단 더 가 봐야겠군.”

    알렌은 이넬리아와 함께 길을 나아갔다.

    그 사이에 몇 번이고 전투를 계속했다. 대륙의 변방에서부터 에스테도르가 날뛴다 했으니, 이곳은 이미 그들이 잠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아아아아!”

    스릉-

    날카로운 날이 크게 입을 벌리던 좀비를 반으로 갈랐다. 옅은 바람 소리에 알렌이 머리를 숙였다. 육중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고, 검은 갑옷의 기사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알렌은 길게 끌 것 없이 검을 받아쳤다.

    쾅!

    데스나이트는 제게로 떨어지는 검을 한 번은 받아쳤으나, 몇 번이고 떨어지는 거인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는지 고철로 변해 쓰러졌다.

    곁으로 다가온 이넬리아를 향해 그가 물었다.

    “몇 번째지?”

    “일곱 번째입니다.”

    “기다린 시간은.”

    “두 시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약속 시각은 진즉에 지났고, 그들의 기척을 느낀 언데드를 상대한 것도 여러 번이다.

    이번에 해결해야 할 일은 무조건 순환교의 협조가 필요하기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는데….

    알렌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하던 중, 소리가 들렸다.

    사사삭-

    누군가 숲을 지나오는 소리.

    숲에 존재하는 언데드의 존재 탓에 감지력은 꺼 두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인기척은 사람이 아닌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넬리아가 슬그머니 그의 앞에 나섰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타난 건, 일단의 무리였다.

    지금까지 고생을 한 듯 창백한 인상의 사람들, 알렌은 그들의 몸에 달린 순환교의 표시에 이넬리아의 어깨를 잡았다.

    “왜 이렇게 늦었나.”

    “죄송합니다. 중간에 언데드 무리가 나타나는 바람에… 돌아오느라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알렌은 그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새로 열린 용의 감각을 열었다. 잠시간의 두통이 있었으나,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지는 않았다.

    몸에 풍기는 옅은 혈향과 급히 갈아입은 옷. 여기까지 급히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바지 밑단으로는 흙내가 올라왔지만….

    ‘땀 냄새가 안 나는군.’

    알렌은 당황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를 티 내지 않고, 그들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사도 님, 혹시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늦은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네.”

    알렌이 그들과 가까워졌다. 대표로 나선 사내의 뒤로 순환교도들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시간 끌 것 없이 ‘저희’의 거처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곳에 있는 가인 추기경은 잘 지내고 있나?”

    “예?”

    알렌의 뜬금없는 물음에 그들이 당황해했다. 알렌은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인 추기경 말일세, 가인 추기경. 내가 사도의 자리에 앉았을 당시 나와 안면을 텄지. 분명히 이 지역에 있다고 했는데….”

    그가 순환교를 자칭하는 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없나?”

    “당, 당연히.”

    “당연히?”

    “있습니다. 가인 님께서는 지금 다른 일을 처리하시느라 이곳에 오시지 못했으나 사도님을 잘 보좌하라 이르셨습니다.”

    “그래?”

    알렌은, 이 연극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손을 휘저었다.

    마력의 실타래가 그의 노심에서 빠져나와 얽히기 시작했다. 수백 가락의 실은 언제나처럼 실제와 같은 악기를 만들어 냈다.

    “사실 그런 이는 없네, 열심히 설명했을 텐데 유감이군.”

    “…들켰다. 당장 공…!”

    알렌은 손에 쥐어진 막대기를 들어 거대한 드럼을 향해 휘둘렀다.

    쾅!

    공기가 터져나가며 말하던 남자의 상반신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이들이 입고 있던 껍질을 벗어 던지고는 그의 각 사지를 노리고자 뛰어올랐다.

    알렌이 베스틀라를 뽑아 상대하려는 찰나, 숲의 반대쪽에서 거대한 바위 하나가 크게 휘둘러졌다.

    바위는 넷의 몸을 바닥에 짓뭉개며, 뒤늦게 도망치던 이도 뭉개버렸다.

    “…골렘?”

    온몸이 철과 돌조각으로 이루어진 몸.

    알렌은 그의 정체를 짐작하며 입을 열었다. 저런 특이한 자를 멀리 찾고자 할 것도 없었다.

    그가 뒤돌아 알렌을 마주 보고 답했다.

    “네 번째 선지자, 바스러진 쇠붙이가 사도를 뵙습니다.”

    그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네 번째 선지자가 그와 마주했다.

    * * *

    “마법진의 준비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통로를 열 좌표의 추적도 끝마쳤으며, 마력을 공급할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남은 동포들도 계속 모으고 있으며, 그들에게 저희의 존재를 은밀하게 알렸습니다.”

    하이젤은 그의 앞에서 계속해서 보고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흔히 마족이라고 부르는 이들.

    그중에서는 서큐버스나 인큐버스도 있었고, 악마의 대명사라 불리는 가고일이나 데몬을 비롯해 수십 종류의 종족이 가득했다.

    그 보고를 듣는 하이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그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고를 끝마쳤을 때쯤, 입을 열었다.

    “알겠다. 앞으로도 수고하도록.”

    딱딱하게 그가 말을 끝내자, 그들이 물러갔다.

    한바탕 시끄러웠던 공간이 조용해지자, 그가 앉은 왕좌의 곁으로 한 명이 다가왔다.

    “마왕 님.”

    “나는 지금 마왕이 아니야.”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그들을 위한 일이잖아요?”

    하이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릴리트가 무어라 입을 열었다. 하이젤은 마치 석상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이 흘러들었다.

    그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다른 것을 보았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처음에 아카데미에 온 이유는 초대 용사의 후예라는 자와 용사의 신기 탓이었다.

    자신과 용사의 전투가 끝난 이후 수백 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둘러보고 싶었고 엘피스가 현재 세상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라기에 입학했다.

    그 이후 거기서 알렌과 율리우스를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문제였다.

    그들을 만났을 때 아카데미를 떠나든, 자살하든 했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건가?’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집중을 해도, 평생을 따라다니던 시선은 그를 향하지 않았다.

    그들의 곁으로만 가도 느껴졌던 시선이 붙지 않는다는 건, 기뻐해야 할 만한 일인데….

    “괜히 들었어.”

    “…네?”

    “아무것도 아니야.”

    율리우스의 말에 충동적으로 게이트가 열렸다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던 삶의 목적에 방향이란 것이 생겼다.

    아무런 구속 없었던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누를 목표가.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 있나?’

    그럴 수 없지.

    이미 늦었다.

    그가 계획한 일은 아무런 방해가 없다면, 사고가 없다면 조용히 끝날 일이다.

    아니, 혹여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잠시 난리가 일어나다 말뿐, 누군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변수가 생긴다면.

    ‘나는.’

    그때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에 설 건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하이젤 님, 하이젤 님.”

    “그래.”

    “하이젤 님.”

    “듣고 있다.”

    “하이젤 마왕 님.”

    “…그래.”

    하이젤은 몇 번이고 불안하다는 듯,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것으로 그녀의 불안감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듯.

    하루가 다시 흘러갔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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