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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56화 (156/212)
  • 156화

    “내부에 배신자를 포함한 49명의 처리를 끝마쳤습니다.”

    “드디어 끝났습니까….”

    바르덴은 들려오는 보고에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수두룩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파악한 배신자들의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말은 한시름 놓기에 충분한 한 말이었다.

    이번에 벌어진 일은 그냥 끝낼 수 없으니까.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하하, 놈들이 살려고 발악을 하지 뭡니까.”

    그의 앞에 있는 건 6위계 빙결계 마법사로 명성이 있던 마법사이자, 새롭게 떠오르는 얼음 마탑으로 떠오른 대변인 역할을 하는 라크였다.

    그는 유들유들한 얼굴을 지우며 한결 시원한 듯한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저희 추적대를 떨쳐낼 수는 없었지요. 마족까지 잡는 저희인데 어떻게 벗어나겠습니까.”

    바르덴은 피곤한 안색에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혹시 다른 소식은 더 없습니까? 전번에 했던 제안에 대한 아카데미의 답변이라든지….”

    “아, 여기 있습니다.”

    라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르덴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는 평범한 이는 못 읽을 정도로 어지러운 글자들이 꼬물꼬물 기어 다녔다.

    “제가 이곳에 오기 직전에 받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바르덴에게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르덴은 서류에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라크에게 말했다.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이만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배신자들을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한동안 도시의 경계를 강화하라 이르십시오.”

    “알겠습니다.”

    라크는 바르덴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을 나섰다.

    바르덴은 라크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서류를 향해 손가락 끝을 한 바퀴 돌렸다.

    동그란 빛의 고리가 생겨나며 종이에 흐르듯이 흡수되었다. 잠시간 꾸물거리던 글자는 무언가를 파악하는 것처럼 빛을 휘감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력의 형태 인식 잠금.

    마탑에서 최근에 새로 발견한 기술 중 하나다.

    마법사마다 마력을 인식하는 형태는 다르다. 누군가는 안개고 누군가는 실일 수도 있지.

    서류에 걸려있던 마법은 그의 마력을 인식하고서야 서류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이가 마력을 주입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바르덴은 이 기술이 장차 발전하는 시대의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짐작했다.

    그의 긴장감 어린 눈이 서류의 첫 문단에 향했다.

    “…드디어 받아들인 건가.”

    그는 아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도한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집무실을 어스름한 분위기로 만들던 푸른빛 등이 그의 감정에 영향을 받은 듯 밝기가 더해졌다.

    몇 달 전 일어난 에스테도르의 마탑 습격.

    겉보기에는 마탑의 배신자들과 에스테도르의 흑마법사가 힘을 합쳐 마탑을 지워 버리려 했던 사건이지만….

    “답변이 왔느냐?”

    내막은 보기보다 더 깊었다.

    “예,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다행히 저희의 뜻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렇게 등장했으니까.

    “…고얀 년. 이번 일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렇게나 늦게 답을 해?”

    마도여황 베네사 사브리나.

    늙수그레하나 힘 있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일곱 개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과 고풍스러운 검은 드레스를 입은 노인이 보였다.

    “부상은 괜찮으십니까?”

    “아직이다. 그 음흉한 놈의 실력이 제법 만만치 않았으이.”

    그녀는 기다란 담뱃대를 입에 물고 둥그런 연기를 뻐금뻐금 내뱉었다. 집무실이 독한 향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지만 바르덴의 얼굴에 불쾌함은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항의했지만 부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보다 다른 것이 걸렸다.

    “에스테도르의 수장이 그렇게 강합니까…?”

    바르덴은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마탑 습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이유도 마탑주들의 배신과 비프로스트를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시간 대부분을 도시 깊숙한 곳에서 보내던 마도여황이 에스테도르 수장의 도발에 이끌려 나섰기 때문이다.

    전투의 결과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도시의 습격이 끝난 이틀 뒤,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왔다.

    “강하다기보다는… 그래,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준비해둔 느낌이더구나.”

    그녀가 할 행동과 대처 그리고 전투 방식을 철저히 대비한 함정.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내 실력보다는 못했지. 하지만… 그놈도 그리 약한 것은 아니라서 서로 부상을 입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마지막 몸의 반절을 날려버렸으니. 자신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그리 말을 끝마쳤다.

    바르덴은 그녀의 눈치를 보다, 슬쩍 입을 열었다.

    “…배신자들 역시 처리를 끝마쳤습니다.”

    “남은 놈들이 살아있었다면 내가 처리했을 게야.”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으나, 눈 깊은 곳에는 흉흉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일을 서둘러 처리한 만큼 물어야 했다. 그녀의 의중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마탑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중요했으니.

    “이렇게 급박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래 마탑의 할 일은 아카데미와의 동조와 여러 나라의 협력을 통한 마족의 박멸이었다.

    지금 아카데미에서 대륙 전역으로 학생들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러나 방금 온 답변은 바르덴이 아닌 베네사 사브리나가 원한 것이었다.

    베네사가 불쑥 내뱉었다.

    “끝이 올 수도 있다.”

    “예?”

    그녀의 답에 바르덴이 입을 열었다.

    “끝이 온다니 무슨…, 혹시 요즘 고위층 사이에 도는 소문을 말하는 겁니까? 그건 그저 미신에 가까운….”

    “멍청한 녀석.”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바르덴의 말을 더 듣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말을 내뱉으며 제자에게 당부했다.

    “쯧, 멍청한 제자야. 제국의 황제도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요즘 북쪽에 핌불베트르가 왜 조용한지는 아느냐?”

    고대의 괴물이 각자 준비를 하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대륙의 각지에서 마녀와 흑마법사로 인한 피해가 늘어났으며 삼대 가문도 시끄럽게 변했지.

    무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내 짐작일지도 모르고, 늙은이의 망상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이번 일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알겠느냐?”

    어차피 이사장의 확답을 받았으니 따르고 말 것도 없다.

    “예, 알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를 뽑자면, 모두 마도여황 베네사 사브리나를 뽑는다.

    그러나 분야를 한정시킨다면 그녀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마도여황은 알았다.

    아나스타샤 프세우도, 갈슈딘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그녀는 세간에서 말하듯이 공간에 정통하지 않다.

    진짜는 영혼.

    그녀는 에스테도르의 수장인 흑마법사를 제외한다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혼 마법으로 팔강급에 오른 실력자였다.

    베네사 사브리나.

    마도여황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모든 영혼을 색별하고 추방하고자 했다.

    * * *

    삭막하고 음산한 바람이 지하의 아래로 흘러들었다.

    수십 곳의 통로로 흘러든 바람은 이리저리 갈 곳을 정하지 못해 흩어졌고, 운이 좋은 바람은 지하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벽화가 새겨진 거대한 석문 뒤로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있었다.

    그의 밑으로 창백한 얼굴의 시종이 다가왔다.

    “유지르 님, 괜찮으십니까.”

    “여황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 정도는 예상 안에 있으니 작업을 멈추지 마라.”

    그의 답에 시종은 변함없는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밖으로 나섰다.

    이제 놈은 밑의 수많은 마녀와 흑마법사에게 그의 명령을 전달하겠지.

    “…반은 성공인가.”

    마탑주들을 끌어들이더라도 중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들었다면 분통을 터트릴 일이겠지만, 배신하는 인물을 쓰는 지배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그들이 분란을 일으켜 마탑 도시의 영향력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

    “넷.”

    이번에 죽은 마탑주의 숫자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령왕이 죽었지만, 그 대가로 팔강급에 미치지 못하나 그 아랫급의 실력자인 넷을 죽였다.

    그 덕분에 당분간은 불타는 무지개 비프로스트를 운용할 수 없겠지.

    하지만….

    꿈틀-

    그의 상반신에 새로 돋아난 붉은 살덩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반이 날아가고 새로 붙은 신체.

    엘릭서 같은 포션으로도 그의 상체를 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키메라 술사들을 지원하여 끌어들였다.

    “그래, 키메라 술사 하니….”

    라인하르트 가문.

    그곳에서 지원해주던 놈이 떠올랐다.

    라인하르트 영지에서 진행하던 계획이 순식간에 어그러지고, 사라졌다는 용사의 신기가 재등장함으로써 한동안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주춤해야 했지.

    허나, 이제는 상관없었다.

    “알렌 라인하르트와 율리우스 라인하르트를 건드리지 말랬던가.”

    그래, 그 약속은 지켜주지.

    베네사 사브리나의 정보를 넘겨받는 대가로 유지르는 자신에게 정보를 넘겨준 그들에게 알렌 라인하르트와 율리우스 라인하르트를 5년의 기한을 두고 건드리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유지르는 그 덕분에 베네사 사브리나보다 부족한 실력으로 그녀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다.

    이번 계획에서 주의할 점은 두 명을 노리지 않는 것.

    ‘그들이 그렇게 두 명을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익으로 잠시 협력했을 뿐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을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벌이려던 장소에 그들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지?”

    흐하.

    그는 탄식과 같은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바닥에서 눈알 하나가 솟구치더니, 금방 날개가 달리며 팔다리가 솟아났다.

    “제국이나, 마탑이나, 아카데미나 지금 이 틈을 타서 이득을 얻으려 하니 참 우리가 만만히 보였나 보구나.”

    아니면,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던가?

    그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옛날에는 신경 썼을지 몰라도 지금의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심지어 자신의 주변이 죽게 되더라도 상관치 않았다.

    파닥이는 눈알을 향해 그가 속삭였다.

    “작업하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집결하라 전해라.”

    우리가 잠잠해진 줄 아는 놈들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지.

    “팔강 중 최소한 둘의 목을 끊는다.”

    안온한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알던 세상은 끝났노라 고할 때가 왔다.

    * * *

    “이넬리아, 느낌이 어떻지?”

    알렌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호흡하는 이넬리아를 바라봤다.

    그녀와 알렌은 현재 개인 수련장에 있었다.

    이넬리아는 키메라의 몸이다. 강해지는 것에 한계가 있고 본래 능력을 발휘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요정왕의 능력.’

    알렌은 키메라 술사의 공방에서 보았던 그녀를 떠올렸다.

    눈앞의 모든 것을 분해했던 요정왕의 이능.

    그러나 그녀의 몸은 그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알렌이 만약 그때 그녀를 막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목숨을 잃었겠지. 알렌은 지금까지 그녀의 능력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여러가지 조합된 키메라 탓인지 그녀는 사라진 여러 요정의 능력을 사용 가능했다.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그림자로 변하거나, 몸을 동물처럼 변화시키는가 하면 손을 무기로 바꾸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낮잡아 말해 ‘잡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원칙적으로 린벨이 아카데미 학생이라 데려갈 수 없었다면, 이넬리아는 시종으로서 데려갈 수 있었음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녀의 안전을 생각했기에 엘피스의 경매장에 대한 것과 그녀의 재능을 살릴 연금술을 배우도록 종용했지.

    하지만….

    “예, 괜찮습니다. 세상이 확연히 달라진 것 같군요.”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그녀의 눈에 보랏빛이 한번 반짝였다 빛무리로 흩어져 사라졌다.

    “정말 괜찮나? 혹시 니드호그의 사념이라든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

    “공자님은 제 원래 종족이 무엇인지 잊으셨습니까?”

    그녀가 그의 걱정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녀는 원래 정신체만 존재했다.

    그것을 키메라 술사가 소환에 성공해 여러 요정의 종족을 합친 키메라에 넣는 데 성공한 것이지.

    “저를 충동시키는 사념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를 침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옷차림을 정돈했다.

    알렌은 손에 들어온 니드호그의 노심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그가 삼키는 것.

    그러나 알렌이 가지고 있는 노심은 니드호그가 탐낼 정도로 순수했다.

    삼키다간, 괜히 불순물을 첨가하게 될 수 있기에 삼킬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유물이나 유물에 준한 수준의 아티펙트를 만드는 것.

    문제는 아직 신드리 남매나 일리아나가 그 정도의 물건을 만들어 낼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알렌은 반쯤 썩은 보랏빛 보석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이넬리아가 생각났다.

    그녀의 몸은 키메라다.

    그리고 알렌도 경계해야 할 정도의 비장의 수를 가졌다.

    그런 그녀에게 용의 노심을 삼키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이넬리아는 알렌의 권유를 단숨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시녀 복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를 보며, 알렌은 제일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넬리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겠나?”

    그녀는 잠시 집중하나 싶더니 몸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몸의 피부가 잿빛으로 변하며 등 뒤에서 열 두 쌍의 날개가 솟아났다. 전보다 뾰족해진 귀가 돋아나며, 그녀의 뒤로 눈동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녀가 답했다.

    “…예, 성공입니다. 적어도 5분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너도 함께해도 되겠지.”

    알렌이 한 말에 그녀는 한껏 웃으며 뒤따랐다.

    “준비하겠습니다.”

    마하 황녀에게 말했던 비공선을, 직접 찾으러 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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