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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55화 (155/212)

155화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렌은 눈앞에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과연 제국민에게 사랑받는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아름다웠다.

붉은 노을색 머리와 누구라도 호감을 품게 할 외모.

연두색 눈동자가 알렌을 직시했다. 알렌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 자리에 오게 된 연유를 생각했다.

‘한번 대화를 하자고 했지.’

기계식 시계의 주인은 마하 황녀였다.

그녀는 우연히 만난 알렌에게 만난 김에 대화나 하자며 자리를 만들었다.

알렌은 처음엔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다며 차일피일 미룰 생각이었지. 그러다 그녀가 제국에 돌아갈 때쯤, 유감이란 편지 한 통을 보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를 황위에서 완전히 떨어트릴 방법이 없을까.’

아칸더스의 계획은 훌륭했다.

이것으로 인해 그녀를 아카데미에서 떨어트려 율리우스와 만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앞으로 있을 비극의 시간을 늦췄으니까.

그래, ‘늦춘’ 것뿐이다.

그녀가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만약 그녀가 나중에 율리우스와 만나게 된다면, 어떠한 이익을 목전에 두고 손을 잡게 된다면.

알렌은 그녀와 율리우스가 손을 잡아 일으키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 감정은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밖에 모르겠지.

‘하지만 그녀의 황위에 대한 열망은 엄청나다.’

엄청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무려, 그 지위를 위해 황태자와 3황자 그리고 2황자까지.

3명의 형제를 참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이나 황제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마다 권력 싸움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지만, 알렌은 지금의 일라이자라는 조력자를 잃을 수 없었다.

방법은 그녀가 가진 황제의 자리에 대한 열망을 꺼트리는 것이나….

‘그보다 더한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지.’

그녀가 가진 황위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면, 그것을 이용하면 될 뿐이다.

알렌은 대화의 기본인 칭찬부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목으로 향했다.

“그 시계는 제법 귀하다고 일리아나가 말해주더군요. 과연 주인에게 어울리니 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입니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그녀는 알렌을 보며 웃음기 어린 얼굴로 답했다.

“어머니의 유품이에요. 어릴 적 저에게 남겨주신 선물이죠.”

“저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알렌은 표정 한 번 구기지 않고, 그녀를 향해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칸더스에게 들었다. 그녀가 황제가 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했지.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걸 언급한다고?

‘무슨 생각인가.’

알렌은 그녀의 의도를 머릿속으로 추측하면서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카데미에서 많은 이들과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제국이랑 어떤 점이 다릅니까?”

“음… 제국에서 제가 만난 사람은 얼마 없지만, 평가해보자면… 그래요. 조금 자유분방하다고 느꼈어요.”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남의 비밀을 허락도 없이 퍼트리는 점?”

그녀가 흘리듯이 뱉은 말에 알렌이 천천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알렌 역시 가벼운 태도로 답했다.

“예의 없는 자가 아닐 수 없군요.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알렌 님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저 역시 그렇게 느끼는데….”

그녀가 싱긋 웃으며 알렌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그걸 모르는 것 같네요.”

그녀가 말하는 것을 보며 알렌은 그녀가 자신이 요한에게 그 정보를 준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확신했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퍼트린 것도 있다.’

그늘진 여왕과의 계약을 위해.

그러나 황제나 황태자 정도가 아닌 그녀가 이 정보를 알아냈다는 사실은 많은 걸 의미했다.

그녀의 물밑 세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

수석 집행관이 긴급을 필요로 하는 서신에 올렸을 보고서를 중간에 확인했을 정도로.

황제가 되려면 기반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그녀의 세력이 크다는 건 알렌이 아는 것보다 그녀가 많은 것을 쥐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녀는 알렌이 아카데미에 소문을 퍼트린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사태를 만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황녀의 속내를 파악한 알렌의 태도가 변했다.

알렌은 그녀가 이미 자신과 그늘진 여왕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박을 감행했다.

“…흠, 그자가 실수로 그랬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글쎄요. 지금 터진 사태를 보면 실수라도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알렌은 그녀의 말에 상황에 맞지 않은 물음을 던졌다.

“혹시 마하 황녀님은 유적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네,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저희 제국은 유적의 유물에서 시작되었잖아요?”

그녀는 알렌의 뜬금없는 물음에도 변함없이 답했다. 그러나 눈동자 속에서는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생각 중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아는 소문이 있는데… 어찌,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알렌은 더 이상 대화를 끌 필요 없음을 느끼고 승부수를 띄웠다.

“스팀펑크 관련 유적에서, 비공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있지 뭡니까.”

알렌은 우스갯소리를 들었다면서 헛웃음을 지었지만, 눈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그녀의 태도를 관찰했다.

그녀의 몸이 잠시 멈췄다. 알렌의 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러갔다.

“각 유적의 주제에 따라서, 유적을 대표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세계식물원이 대표하는 것은 신목이다.

정확히는 과거에 사라졌다, 엘프들이 되살려냈다는 세계수.

마법이 대표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굳이 따지자면 엘릭서와 같은 물품들.

발전된 기계로 이루어진 탈 것 같은 물품들도 이에 속하겠지.

스팀펑크와 관련된 것은 비공선이었다. 인간이 하늘을 지배하게 해줄 무기.

제국에도 비공선 한 척이 있었다.

그러나 반 이상이 망가져 있어 아직 복원하기 힘든 상황.

최근에 진척이 있다지만, 언제 성공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소문이겠지만, 황녀님께서도 관심이 있을 만한 소식이 아닙니까?”

알렌은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알렌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말이 없었다.

“…황녀님?”

그녀는 의아한 표정의 알렌을 보며 활짝 웃었다.

마하 황녀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되려 알렌이 멈칫거렸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찾았다.”

예언에서 말한 사람을.

그녀는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알렌 님, 그 비공선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은데…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 * *

그녀는 알렌과 어느 정도 대화를 끝마쳤다 싶을 때쯤, 자리를 떠났다.

알렌은 그녀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순순히 대화를 끝마치고 사라지는 모습에 의아했지만, 마하 황녀는 그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 즉시, 소피아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알렌 라인하르트,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가져와 주세요.”

소피아는 그에 관한 정보가 준비돼있었다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져왔다.

그곳에는 그녀가 바라던 정보가 적혀있었다.

갈슈딘 아카데미의 차석.

짐승왕의 제자.

그늘진 여왕의 협력자(추정)

루피너스 가문의 직계 혈통.

그를 제외하고도 몇 개의 신분을 더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아뇨, 이걸로 충분해요.”

처음에는 의심했다.

비공선은 제국에서 기를 쓰고 발굴하려던 유물이다.

오죽하면 제국의 염원이 언젠가 창공의 하늘을 비공선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 하겠나.

그러나 그가 그늘진 여왕과 관계가 있다 하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비공선을 언급한 것 역시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녀는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의 사람은 알렌 라인하르트를 뜻하는 것이다.’

각종 기재가 모인 아카데미에서 차석을 하며 이미 두 명의 팔강급 실력자와 관계를 맺고, 삼대 가문인 루피너스 가문과 관련이 있으며 그녀가 모르는 신분이 더 있다.

이는 그녀의 기준으로 봐도 훌륭하다 칭해도 될 정도였고, 점쟁이가 한 말처럼 한눈에 직감할 수 있었다.

‘만약 비공선을 얻는다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돼요.’

비공선은 제국의 염원이다.

그것을 자신이 소유하게 된다면.

‘이번 무투제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요.’

어찌 되었든 이번 무투제의 마지막에 얼굴을 비춘다는 것은 황자들의 습격이 연이어 터진 가운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는 것을 뜻 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모습이 있는 이상 섣불리 그녀를 의심할 사람은 없겠지만, 또 모른다.

알렌이 흘린 정보와 같이 작은 단서를 모아 그녀를 찌를 비수를 만들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나.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나타난 그의 등장과 지금의 상황을 조합해보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했다.

‘그와 친분을 쌓고 비공선을 받아낸다.’

그 역시 그녀에게 비공선에 대한 것을 언급한 것과 더불어 저주받은 무기에 대해 흘린 것을 보면 마하 하뷔에론,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일 터.

그의 배경으로 보아 죽이는 것이나 강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답은 하나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비공선을 양도받는 것.’

단, 그것이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그녀는 알렌의 말이 반 이상은 진실이라고 가정했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제국 무투제가 열리기 전인 몇 달 동안 수도에서 그의 행적을 조사하며 파악하고, 만약 진짜 그가 비공선을 가지고 있다면….

‘단숨에 계승 구도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제국의 염원을 이뤄낸 것과 같기에.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거나, 다른 더러운 계략을 꾸밀 필요도 없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황위에 오를 수 있다.

‘…유언.’

어머니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그녀는 황제가 되어야 했다.

어떤 수를 사용해서든.

하지만 방심은 금물.

그녀는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기 전까지 평소와 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정말 만약에, 그를 제외한 다른 이가 예언의 그 사람일지도 모르기에, 알렌이 아닐 때를 대비해서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제국 수도로 떠나는 그 날까지 알렌을 제외하고 그렇다 할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그 예언에 대해 강한 의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 재지 못했다.

엘피스의 정문을 나설 때까지도.

그와 같은 시각, 그녀가 나섰던 정문으로 아카데미를 떠났던 2인조가 드디어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미친놈한테서 겨우 벗어났어.”

율리우스 라인하르트, 그가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받았다.

“…뭐? 황녀가 제국으로 돌아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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